-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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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는 여자 친구와 집 앞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주말 장보기는 요즘 들어 매주 빼놓지 않고 하고 있는 나들이다. 예닐곱 되는 밑반찬이 넉넉해서 따로 살 건 딱히 없었지만 둘 다 별식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정한 메뉴가 바로 ‘골뱅이 무침’이었다. 골뱅이 통조림 큰 것 하나와 사과 식초 하나, 소면 한 봉지, 가시오이 두 개를 사 왔다. 여자친구가 팔을 걷어 부치고 요리를 시작하고, 나는 식탁에 앉아서 읽다 만 난중일기를 마저 읽는다. 여자친구가 오이와 양파를 ‘송송송’ 썰 때, 우리 조선 수군과 왜군의 칼 소리도 ‘챙챙챙’ 꽤나 격렬했다. 고추장에 식초를 풀어 초장을 만드는 소리가 들리고 또 얼마 간의 리드미컬한 소리가 더해지자 짠하고 ‘골뱅이 무침’이 완성이 되었다. 완성이 된 골뱅이 무침 위로는 깨소금이 간간이 뿌려져 있었다.
한 젓가락 푹 떠서 맛을 보았다. 여자 친구는 나를 보는 건지 골뱅이 무침을 보는 건지 그도 아니면 골뱅이 무침을 먹는 나를 보는 건지, 침을 꼴깍 삼키며 나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장 간이 심심했지만 맛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 없이 계속 먹었다. 마침 집에 술이 떨어져 먹다 말고 슈퍼에 다녀오면서 비빔면 한 봉지를 사왔다. 마트에서 소면을 사오기는 했지만 면을 따로 삶지 않고 골뱅이와 야채만 먹기에는 아무래도 좀 심심했었던 것 같다. 비빔면도 함께 끓이자고 말했다. 골뱅이 무침 양도 넉넉했었기에 다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며 걱정하던 여자친구에게 나는 다 먹을 수 있다고 우겼다. 여자친구는 다시 비빔면을 끓여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빔면이 완성 되었다.
한 젓가락 푹 떠서 맛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오~’하는 탄성을 던졌다. 그 자리에서 신나게 두 젓가락을 소리 내서 먹었다. 나도 모르게 ‘음~’하는 소리도 냈던 것 같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고개를 들어보니 여자친구가 눈을 흘기며 나를 째려본다. 아뿔싸. 아차 싶었다. 다시는 골뱅이무침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앞에 두고 면은 제쳐두고 열심히 골뱅이를 집어 먹었다. ‘음~’하는 탄성도 여러 번 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둘 다 말없이 골뱅이 무침을 먹는데 그렇지 않아도 시원한 골뱅이 무침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그녀가 요리하는 뒷모습을 보며 책을 읽던 행복한 시간이 불과 십여 분 전이데, 지금은 온탕에서 냉탕으로 넘어 왔다. 내가 말 없이 골뱅이무침을 먹을 때부터 그녀의 속은 이미 속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팔백오십원짜리 비빔면 한 젓가락에 ‘음~’하고 탄성을 질렀으니 얼마나 기가 차고 서운했을까.
살다 보면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 나를 기쁘게 할 수는 있다. 좋아하는 작가나 연예인연예부터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차피 나와는 관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큰 상처는 주변 사람들에게 받는 경우가 많다. 그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 심해진다. 그 사람에게 제일 큰 상처를 받고 또 제일 큰 상처를 준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 대신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을까?
다행히 사람 간의 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변치 않는 기술이 있다. 바로 ‘칭찬’이다. 천 냥 빚을 모두 갚을 수 있다는 것은 옛 말일 수 있겠지만 요즘도 얼추 구백 냥 까지는 퉁(?)을 치고, 백 냥만 갚아도 되는 상황은 여전히 올 수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적절히 칭찬을 하지 않을 경우 가만히 있던 빚이 천 냥에서 이 천냥으로 갑작스레 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칭찬은 그래서 어렵다. 물론 칭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진심’을 담는 것이다.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그 안에 내용물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선물이라고 하지 않는다.
칭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술은 연습을 통해서만 쌓을 수 있다. 어떻게 연습해야 할까? 바로 ‘즉시 하되 구체적으로 할 것’이다. 목표와 결과를 중요시 하는 남자들은 밥을 먹어도 맛이 ‘있다’와 ‘없다’ 그 두 가지 외에는 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마저도 밥을 다 먹고 나서는 대게 ‘배가 부르다’는 공통된 결과에 쉽게 만족한다. 그걸로 끝이다. 직선이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지, 대체 안에 무슨 재료를 어떻게 썼는지, 이 작은 재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지 등을 빙빙 둘러가며 생각하기는 참 힘들다. 그래도 사랑 받는 애인이 되고 싶다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당장 나부터 그렇다. 아부 하라는 것이 아니다. 물건도 오래 두고 자주 쓰면 주인에게 길이 들 듯, 우리는 함께 있는 사람과도 서로 길들여 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칭찬’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아주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다.
만약 다음에 또 골뱅이 무침을 먹게 된다면 나는 그녀의 변화된 솜씨에 좀 더 구체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설사 그녀의 솜씨에 변화된 것이 없다 하더라도 요리가 나오기까지 애를 쓴 그녀의 수고를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해 줄 것이다. 어쩌면 그녀 조차 모르고 있었던 습관이나 행동을 보게 된다면 그것도 알려 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맛있는 음식이라는 결과가 아닌 그 과정 속의 그녀의 노력과 정성에 고마워 할 것이다. 모든 구체적인 것들은 다 사랑이고 애정이기 때문이다.
“음~ 자기야 지난 번 보다 맛있네! 간도 과하지 않고 골뱅이와 양파도 적당한 크기로 썰려있어서 먹기 좋은 것 같아. 식감도 좋은 것 같고. 면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부족하지 않은 것 같애. 그리고 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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