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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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으랴. 그 아픔은 아마도 철없던 시절의 죄송스러움과, 그럼에도 맹목적으로 사랑해주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리라.
작년 11월부터 두 달간 20대를 정리하며 나의 이야기(Me-Story)를 썼다. ‘20대, 생의 보고서’라고 거창하게 적어둔 제목 아래에는 과거와 미래의 몇 가지 장면들이 겹쳐있다. 얼마전에서야 내 문서 폴더의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파일을 클릭하여 구구절절한 기록들을 다시 보았다.
「...다음날 부모님과 함께 서울에 있는 병원을 방문했다. 영등포 건양병원(김안과)와 서울대학교 병원. 두 명의 의사들은 부모님에게 거만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아드님, 곧 실명할 것 같습니다.”
젠장! 그렇게 말하는 의사 얼굴에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부모님은 허망한 표정으로 연거푸 한숨을 쉬기만 했다.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부모님의 묻는 말에 대답 없이 다른 곳을 쳐다봐야 했다. 」
부모님 가슴에 돌이킬수 없는 피멍을 남긴 날. 그날 부모님도 말씀이 없으셨다. 돌아볼때마다 ‘젠장’ 이라고 탄식하는 장면.. 아시다시피, 그 사건을 계기로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많이 방황했고, 사부님을 만났고, 카네기 입사를 결정했다. 결정을 해 놓고 정작 내 발목을 잡은 것은 전공과는 무관한 분야의 일이라거나, 알려지지 않는 조그만 회사라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부모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들 둘을 ‘영재’로 키우신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당신들이었다. 대학교 때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 아들 KAIST 나왔어요’라고 자랑하시는 부모님에게 그러지 마시라고, 민망하다고 짜증을 부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분들이 아들의 이런 결심을 이해해줄까? 말씀 드리러 집에 내려가기가 두려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다이어리에 꽂혀 있던 아버지의 편지를 보게 되었다. 휴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기 전날 밤에 쓰셨던 편지였다. 그 날 나는 답답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댁에만 계시는 중이었다. 덕분에 건강도 많이 안 좋아지셨다. 그런데 한사코 사다 드린 약을 드시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는 방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리고 펜을 잡아 휘갈기듯 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그만 좀 고집 피우시라고. 아빠 돌아가실까 봐 걱정되어 죽겠다고. 아직 보여드린 것도 없는데 가시면 어떡하냐고.
편지를 쓴 다음날 나는 학교로 돌아왔다. 가방을 뒤지다가 아버지가 가방에 몰래 숨겨놓은 답장을 보았다. 밤새 방에서 혼자 쓰신 편지였나보다.
승오에게
벌써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成年이 된 승오.
고맙다.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지만 왜 조급하고 걱정이 많은지?
…(중략)…
아버지는 근래 가슴 뿌듯한 느낌과 작은 성취감을 감지하고 있단다. 兄과 승오의 자신감을 표현하는 태도와 행동을 보면서.. 걱정스러움도 있고. (이것은 단지 노파심일 것이고)
아버지의 바램이라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계획된 일을 재미있게, 시간은 넉넉하게 (조금 어려운 경제 사정이라도)... # 아버지가 보여준 조급함은 금기시 하면서 #
울보. 박승오 씨.
아빠는 느끼고 있어! 박승오의 마음 씀씀이를!
건강과 엄마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 아빠의 차기 계획은 잘 이루어 지리라 믿고 참을게!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심 전심. 한가지는 백 가지를 대표한다.
표현력의 부족함을 새삼 느끼면서 아버지는 兄과 승오의 기본을 감지하고 충분한 능력을 인정하게 되어 기분이 대단히 좋아!
승오야!
걱정 마세요. 우선 약속 2가지 (약 먹는 것, 책보고 느끼는 것) 지키는 것부터. 크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가능한 것이라면 언제던지 연락하시고. 건강하여라.
2004. 10. 15.
아빠가
편지를 발견하면서 펑펑 울었다. 눈에 커다란 구멍이 난 듯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부족해도, 하고 싶은 것을 하거라.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당연한 것인 양 흘려 듣고 있었다. 안타깝고 후회스러우면서도 부모님께 말씀드릴 용기가 생겼다. 며칠 후 천안으로 내려가 모든 것을 말씀 드렸다. 힘드시겠지만 딱 2년만 아들이 하는 것을 믿어달라고 간청했다. 부모님은 걱정은 되지만 믿어 주시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았다. 감사하고 기뻤다. 그리고 다음 날 카네기 연구소로 입사를 희망하니 이력서를 검토해 달라는 전화를 했다. 그리고 이메일의 전송 버튼을 눌렀다. 」
아아.. 부모님! 일상의 무던함에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가슴 한 켠이 젖었다. 당신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 고맙고 안타까운 자리, 힘겹거나 외로울 때 떠올리면 이를 악물게하는 기억들. 너무나 미련스럽고 안타깝기만 한 눈물로 촉촉히 젖은 장면들. 나는 미래의 풍광에 하나를 다시 끼워 넣었다.
「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간 형 부부 내외와 부모님을 모시고 태국을 다녀왔다. 다행히 예전에 있었던 곳들을 기억해 낼 수 있어 내가 가이드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다. 대신 되도록 바다에서 오래 머무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랫동안 통영의 푸른 바다에서 살았지만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었다. 코 따오(Ko Tao)와 끄라비(Krabi)의 해변에서 바다를 삼킬 듯 타는 석양을 보았다.
우리가 다시 함께 바다를 찾을 날이 또 있을까?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건강하시지만 노인들은 언제 아플지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미리 작별인사를 나눴다. 나는 그 동안 키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말씀 드렸다. 오직 두 아들만을 위한 당신들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잘 살겠다고 했다.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대견하다 하셨다. 울음이 그치지 않는 밤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엄마와 아빠를 두 팔로 감아 번갈아 가며 꼭 안아드렸다. 오랜만의 포옹이었다. 다시 아이가 된 듯 품 안이 너무나 따뜻했다. 나는 이 따뜻함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임을 알고 있었다.」
“역사란 과거의 여러 사건과 차차 나타나는 미래의 여러 목적간의 대화이다” – E. H. Carr
개인의 미시사(微示史)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기억해내고 미래를 상기하며 현재를 아름답게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이다.
얼마전에 중국을 보내드렸다. 아들들 옆 자리에만 계시던 분들이라 처음 나가시는 여행이었다. 국내 여행도 못했는데 무슨 해외 여행이냐. 한사코 가지 않으시겠다는 아버지의 고집을 겨우 설득했다. 하나투어에 아는 사람을 소개받아 특별히 잘 해달라는 부탁을 전했다. 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우리 아들.. 덕분에 아빠가 세상 천지,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것 처음 알았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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