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素田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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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을 해본 일이거나 내 업무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눈이 힘이 들어가고 한 페이지에 걸쳐있는 많은 단어 중에서 유독 그 단어만 눈에 확 들어온다. 리오휴버만의 가자 아메리카로에서도 1700년대 미국의 성립초기에 영국제국의 벗어나 식민지 청산하게 된 과정에서 영국의 세관직원과 밀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1750년대 벤자민 플랭클린의 평론에서 영국세관원들의 행동을 신랄한 풍자를 섞어 표현하는 글이 나온다.
“ 무장한 함대를 이끌고 식민지 해안의 항만을 강·시내·골짜기 할 것 없이 구석구석 뒤지고 어떤 무역선이나 나룻배나 어부나 만나는 대로 붙들고 늘어져서 배에 실린 짐을 쑤시고 엎고 속속들이 뒤집은 다음, 통관되지 않은 일 센트짜리 핀이라도 발견하면 전체를 압수했다.”
나도 모르게 옛날 내가 했던 일이 떠올랐다. 1990년에 부산세관으로 첫 발령을 받은 후에 몇 번의 업무가 바뀌면서 직접 배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생겼다. 배가 부산항에 입항하면 세관의 입항수속 후 허가를 해주는 업무인데 수속서류를 살피고, 배를 한번 둘러본 후에 서명을 해주는 업무로 주로 펜만 가지고 하는 업무였다. 그와는 반대로 밀수조사를 하는 부서에서는 펜 대신에 드라이버나 망치 등 공구를 가지고 옷도 세관직원의 옷이 아닌 기름 때가 묻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배의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밀수품이 은닉 여부를 확인한다. 아직도 한 여름에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는 기관실을 검색하는 것과 역한 기름 냄새를 맡으면서 연료탱크를 검사하는 일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벤자민 플랭클린의 표현대로 18세기 식민지 시대의 영국 세관직원들의 행태와는 같지 않지만, 시대를 떠나서 세관직원과 밀수범과의 쫒고 쫒기는 숨이 막히는 추격전과 긴장은 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밀수가 많아지고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하자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조치로 5대 중범죄로 분류하여 최고 사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여 하였다. 이렇게 처벌조항도 높아지고 단속도 심해지다 보니 밀수행태는 갈수록 지능화되고 그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무를 계속하다 보면 우연찮은 사건,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한번씩 일어나게 된다.
군대 제대 후에 다시 복직하여 부산항 감시를 하는 부서로 배치가 되었다. 주로 항구내 정박중인 선박의 감시와 출입하는 차량 및 인원을 검사하는 업무로 보통 24시간 교대근무를 한다. 그날따라 오후부터 이상하게 트럭 한대가 눈에 들어왔다. 특정한 선박회사에 소속되어 하역장비나 비품 등을 운반해주는 2.5톤 트럭이었다. 운전기사는 별로 낯도 없었는데,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나한테 인사를 하였는데 뭔가 느낌이 달랐다. 하루 저녁 근무를 마치고 나서 맞이하는 아침은 늘 분주하다. 일지 작성과 인수인계 준비, 식사로 정신이 없다. 초소 차량 출입문이 비어있어 나가보라는 계장님의 지시를 받고 바로 나와 보니 그 문제의 차량이 나오고 있었다. 차를 한쪽으로 세우고, 기사를 내리라고 하였다. 당황한 기사모습, 바쁘다며 빨리 회사로 가야한다고 한다. 운전석부터 차례로 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감이 왔는데, 계속해서 운전사를 살펴보니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그냥 이대로 보내기는 좀 그랬다. 긴장과 침묵의 시간이 흘러가고 안돼겠다 싶어 그냥 보내려고 하는데, 화물칸 밑 부분에 달린 시커먼 공구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속을 열어보니 일제 캠코더 10대가 검은색 비밀봉지에 포장되어 들어 있었다.
가뜩이나 몇 달간 단속 실적이 없다는 과장님의 호통 속에 가라앉았던 과 분위기도 살아나서 좋았고, 거기에 덤으로 표창과 포상금까지 받았다. 그 몇 짧은 순간에 일어났던 팽팽함과 짜릿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IP *.118.101.221
“ 무장한 함대를 이끌고 식민지 해안의 항만을 강·시내·골짜기 할 것 없이 구석구석 뒤지고 어떤 무역선이나 나룻배나 어부나 만나는 대로 붙들고 늘어져서 배에 실린 짐을 쑤시고 엎고 속속들이 뒤집은 다음, 통관되지 않은 일 센트짜리 핀이라도 발견하면 전체를 압수했다.”
나도 모르게 옛날 내가 했던 일이 떠올랐다. 1990년에 부산세관으로 첫 발령을 받은 후에 몇 번의 업무가 바뀌면서 직접 배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생겼다. 배가 부산항에 입항하면 세관의 입항수속 후 허가를 해주는 업무인데 수속서류를 살피고, 배를 한번 둘러본 후에 서명을 해주는 업무로 주로 펜만 가지고 하는 업무였다. 그와는 반대로 밀수조사를 하는 부서에서는 펜 대신에 드라이버나 망치 등 공구를 가지고 옷도 세관직원의 옷이 아닌 기름 때가 묻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배의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밀수품이 은닉 여부를 확인한다. 아직도 한 여름에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는 기관실을 검색하는 것과 역한 기름 냄새를 맡으면서 연료탱크를 검사하는 일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벤자민 플랭클린의 표현대로 18세기 식민지 시대의 영국 세관직원들의 행태와는 같지 않지만, 시대를 떠나서 세관직원과 밀수범과의 쫒고 쫒기는 숨이 막히는 추격전과 긴장은 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밀수가 많아지고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하자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조치로 5대 중범죄로 분류하여 최고 사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여 하였다. 이렇게 처벌조항도 높아지고 단속도 심해지다 보니 밀수행태는 갈수록 지능화되고 그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무를 계속하다 보면 우연찮은 사건,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한번씩 일어나게 된다.
군대 제대 후에 다시 복직하여 부산항 감시를 하는 부서로 배치가 되었다. 주로 항구내 정박중인 선박의 감시와 출입하는 차량 및 인원을 검사하는 업무로 보통 24시간 교대근무를 한다. 그날따라 오후부터 이상하게 트럭 한대가 눈에 들어왔다. 특정한 선박회사에 소속되어 하역장비나 비품 등을 운반해주는 2.5톤 트럭이었다. 운전기사는 별로 낯도 없었는데,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나한테 인사를 하였는데 뭔가 느낌이 달랐다. 하루 저녁 근무를 마치고 나서 맞이하는 아침은 늘 분주하다. 일지 작성과 인수인계 준비, 식사로 정신이 없다. 초소 차량 출입문이 비어있어 나가보라는 계장님의 지시를 받고 바로 나와 보니 그 문제의 차량이 나오고 있었다. 차를 한쪽으로 세우고, 기사를 내리라고 하였다. 당황한 기사모습, 바쁘다며 빨리 회사로 가야한다고 한다. 운전석부터 차례로 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감이 왔는데, 계속해서 운전사를 살펴보니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그냥 이대로 보내기는 좀 그랬다. 긴장과 침묵의 시간이 흘러가고 안돼겠다 싶어 그냥 보내려고 하는데, 화물칸 밑 부분에 달린 시커먼 공구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속을 열어보니 일제 캠코더 10대가 검은색 비밀봉지에 포장되어 들어 있었다.
가뜩이나 몇 달간 단속 실적이 없다는 과장님의 호통 속에 가라앉았던 과 분위기도 살아나서 좋았고, 거기에 덤으로 표창과 포상금까지 받았다. 그 몇 짧은 순간에 일어났던 팽팽함과 짜릿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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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영훈오라버니... 저도 공감가는 부분을 읽을 때 눈에 힘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막 그 대목만 여러 번 읽을며 속으로 마저마저 이런답니다.... ^^ 이 책에서 개척자들을 두고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 발명가가 된다" 라고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갑자기
혼자 자취할 때가 생각 나더라고요.
살아야 하니까 요리를 혼자 하기 시작했는데 가끔 궁합이 맞지 않는
재료들이 한 두 개씩 남을 때면, 사람이 아주 발명의 여왕이 되요 ㅋㅋ
남은 두부 위에 치즈 쪼각 얹어서 후라이팬에다 구워 먹기 뭐 이런거.
먹다 남은 허니머스타드 소스에 밥비벼 먹기 뭐 이런거.
이러다 보면 요리도 늘어요 ㅎㅎㅎ
(근데 내가 요리 잘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안 믿더라 )
것이 아니라 막 그 대목만 여러 번 읽을며 속으로 마저마저 이런답니다.... ^^ 이 책에서 개척자들을 두고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 발명가가 된다" 라고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갑자기
혼자 자취할 때가 생각 나더라고요.
살아야 하니까 요리를 혼자 하기 시작했는데 가끔 궁합이 맞지 않는
재료들이 한 두 개씩 남을 때면, 사람이 아주 발명의 여왕이 되요 ㅋㅋ
남은 두부 위에 치즈 쪼각 얹어서 후라이팬에다 구워 먹기 뭐 이런거.
먹다 남은 허니머스타드 소스에 밥비벼 먹기 뭐 이런거.
이러다 보면 요리도 늘어요 ㅎㅎㅎ
(근데 내가 요리 잘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안 믿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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