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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6일 15시 21분 등록

지방 출장지에서도 곧잘 전철을 이용하곤 합니다. 지역별로 특색이 있습니다. 음악이 나오기도, 명소 소개, 풍경을 마주하게 하기도.

전동차 벽에 붙여진 광고 홍보지 하나. 마음을 잡아끕니다. 00면옥. 아직도 저 식당이 영업 중이군요. 얼마나 되었을까요. 꼬맹이 시절부터 들락거렸으니 적잖은 역사성을 자랑하지만, 무엇보다 어머님과의 추억이 담겨있는 곳이라 더 크게 가슴에 아른거립니다.


학교 방과 후 점심 무렵. 쪼르르 달려가면 당신은 별미라며 그곳으로 안내를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씩씩대며 들어간 실내. 고즈넉합니다. 흘러간 다방 같은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빛바랜 나무식탁. 뒤뚱거리는 의자. 최신 유행노래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종업원이 다가와서 내려놓는 엽차 한잔.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습니다.

무얼 드시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냉면과 갈비탕. 요새사람 입맛에 맞게 가미된 조리도 아닙니다. 스테인리스그릇에 담긴 면. 당신은 여기 자랑을 하십니다. 유명인 누구누구도 다녀갔다는 등.

손가락을 빨며 드십니다. 저리도 맛있을까요.

돌아가시기 전에도 이곳을 들렸었습니다. 이제는 내리막의 애환을 받아들여야하는 동지처럼 삐거덕거리는 출입문이 늘어진 어깨와 함께하였습니다.


어린 삼남매 손을 홀로 이끌고 도착한 낯선 도시. 여기에서 애환을 내려놓았나봅니다. 생업에 쫓겨 식사시간을 놓치곤 하여 찬바람이 불어올 때면 갈비탕, 뙤약볕의 시기엔 냉면을 드셨습니다. 목숨 줄의 한 그릇. 고단한 현실을 감내한 당신의 자화상이 묻어있습니다.

00면옥. 단순한 가계 간판이 아닙니다. 수많은 식당중의 하나도 아닙니다. 철없이 음식투정도 하며 때론 다투기 도한 당신과 나와의 기억의 공간입니다.


만년필 브랜드 파카 설립자 증손자가 홍보행사에 참석키 위해 최근 우리나라를 찾았습니다. 만년필. 한때는 갖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죠. 볼펜과 다르거니와 뭉툭한 촉감에 섬처럼 솟아있는 은빛색깔의 기상. 부러웠습니다. 가격도 비쌌지만 샐러리맨 재킷에 꽃은 형세가 폼 나 보이기도 하였죠.

지금은 만년필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편리하지가 않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바로 쓸 수 있는 필기구들이 넘쳐나지요. 잉크도 구입해야하고 무엇보다 담아 쓰는 것이 번거롭기도 합니다. 묵혀두었던 만년필을 꺼내 글도 써보았으나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터라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대를 이어 만년필 브랜드 업에 종사하는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아내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사랑한다’고 쓰는 것과 손으로 쓰는 것은 무슨 차이일까요. 디지털 음원이 넘치는 시대에 왜 여전히 콘서트를 갈까요. 왜 사람들이 다시 필름 사진을 찍는 거죠.”

그러면서 파카는 단순한 펜을 넘어 소비자에게 특별한 추억과 경험, 사람들 간의 애정과 소통을 전달하도록 노력한다고 합니다.


일회성 도구가 아닌 그 대상에는 만년필처럼 당시의 인물, 상황, 사연이 동행합니다. 학창시절, 졸업식, 사회 초년병 그리고 이를 선물한 이의 따뜻한 여백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영화로도 개봉된 ‘살인자의 기억법’의 저자 김영하. 그는 인간이 가진 능력중 하나로 시간을 되돌리는 기억을 꼽습니다. 현재에 살고 있으면서도 다른 동물과 달리 맘만 먹으면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인간.


오늘의 마음편지는 느릿 걸음을 옮기는 무궁화호 열차 안에서 긁적이는 중입니다. 한가위 명절 북새통의 기차 안. 자리가 없어 서서가는 이들. 몇 시간을 가야함에도 얼굴 표정은 환한 달빛입니다. 저의 두 손에도 쇼핑백들이 쥐어져 있습니다.

행선지는 고향이 아닙니다. 이제는 반겨줄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찾지 않는 한 00면옥도 만년필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기억은 그곳으로 향합니다. 잊힌 누군가가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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