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海瀞 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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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가 외롭다
나는 사실 미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별다른 감정이 없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터라 요즘 유행인 미국 드라마에 열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패스트푸드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아니어서 미국 문화의 흡입력을 일상에서 느끼지는 못하는 듯싶다. 미국이 좋지도 싫지도 위대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위력만큼은 내 삶에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다.
누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외국에서 많이 살다 왔어요”라고 얼버무리는 말에 사람들은 흔히 미국인 줄 으레 짐작해 버리곤 한다. 대학교 때는 과외 3-4개를 하며 용돈벌이에 여념이 없었는데 미국에서 교육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잘리는 웃지 못할 경험도 해보았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어린 동생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어머니 대신 입학 수속 밟아주러 작년에 처음 그 미국 땅이라는 데를 밟아봤다. 사실 짧게 다녀온 거라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모든 것이 크.다.는. 것.
이런 나에게 <가자, 아메리카로!>는 500페이지가 대수롭지 않게 읽힌 드물게 재미있는 역사책이었다. 첫째는 나의 무지를 깨우쳐 줘서, 둘째는 흔하디 흔한 영웅중심의 서술이 아니어서, 그리고 셋째는 미국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줘서.
그렇다. 좀 더 ‘잘’ 살고자 여기 저기서 모여든 미국이라는 땅. 식민지 해방과 황야에서의 개척, 그리고 인종차별과 끊임없는 투쟁. 그러한 거친 과거의 자궁 속에서 자라난 미국이기에 오늘날 그토록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늠름한 장년이 된 것이구나.
그러나 누가 나에게 이 책 한 권을 통해 깨달은 핵심을 몇 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복잡다단한 역사 속에서 자란 미국. 우리 모두 가고 싶어하고, 실제 환상을 품고 꿈에 부풀어 찾는 미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닮고 싶어하는 미국. 언제나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 그러나 정작 누가 누구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일까.
물론, 미국 외의 나라들이 미국의 힘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약육강식의 논리와 경쟁의 시대에 적합한 이치겠지만 정작 누가 더 애가 탈 것인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미국이야말로 미국 이외의 나라들의 모아진 힘과 도움 없이 유지되기 힘들다는 사실. 그것을 인지할 필요는 있을듯싶다. 덩치가 크다고 해서, 힘이 세다고 해서 그게 전부가 아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겉으로 강한 사람이 속은 여리듯이. 그리고 가진 게 많은 만큼 지킬 것도 많아서 더더욱 절실하다는 것. 어쩌면 무조건적 반미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미국이 혼자 힘으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도 발버둥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먼저 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저서 <미래의 물결>에서 미국이 힘이 빠진 나머지 스스로 ‘거점’이 될 권리를 포기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바 있다.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과연 정말 그렇게 될까. 이것은 기대를 갖고 두고 봐야 할 재미있는 ‘미래 예언 맞추기’ 내기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잠깐, 나는 이 글을 단지 미국에 관한 글로 끝마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자, 아메리카로!>를 읽고 가지게 된 일련의 생각들을 확대시켜 내 삶의 어떤 부분에 프로젝션 시켜볼까를 고민해 보았다.
비 오는 5월의 첫째 주 주말. 아버지를 모시러 가는 차 안에서 핸들과 기어를 만지작거리다 문득, 내 생각의 더듬이는 나의 아버지를 향했다. 나이 50이 넘으셨는데도 아직도 순수하시고 꿈이 있는 나의 아버지. 그리 살가운 부녀관계는 아니지만, 항상 말없이 딸래미를 위해주시는 나의 아버지. 나를 웃고 울게 하시는 나의 아버지. 사회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이해하게 된 사람이다. 나약한 딸래미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이렇게 두 번씩이나 이직을 했는데, 그 모진 세월 다 참으시느라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었을 나의 아버지. 나는 나의 외로움만 보듬어줄 줄 알았지, 정작 아버지께서 느끼셨을 외로움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설령 이해한다고 한들 그 마음을 전부 다 헤아려 드릴 수는 없을 듯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하소연할 곳 없어 소주잔만 기울이시는 그 모습. 한 가정의 기둥이기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정신력을 무제한으로 발휘하며 사시는 나의 아버지의 모습 속에, 아마도 대한민국 대부분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이 딱 한 번 있다. 아쉽게도 ‘살면서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라고 자랑할 수 없게 되어 참 나로 하여금 후회하게 만든 일이었다. 때는 2002년도 추석. 공무원이 되 보겠다는 일념으로 행정고시 재정 경제 직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혼자 이사 다니며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 들어 사는 원룸에 비가 새는 것이었다. 모두가 따뜻한 집 밥 먹으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추석 명절날, 나는 10 시간 동안 학원 수업을 듣고 들어와 문을 열었는데 물이 종아리까지 차 있는 것이었다. 맙소사. 이제껏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나였기에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었다. 마땅히 도움 청할 사람도 없었고, 불친절한 집주인과 한 동안 신경전을 벌여야 했었다.
그 때 처음으로 부모님이 나를 위해 해주실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고인 물처럼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일단, 나는 정신적으로 버텨야 했기에 자기 합리화를 작동시켰다. 아, 나중에 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이 됐을 때, 장마철 수해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될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구나. 그래 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지금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거야. 라고.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재미있는 자기합리화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나의 아버지께서는 이제껏 살면서 얼마나 많은 자기 합리화를 하시면서 사셨을까. 내가 모르는 아버지만의 자기 합리화. 그것을 다 합해 보면 아마 산 하나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아버지가 가정에 좀 더 신경 쓰지 않으신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탓하곤 하지만, 가끔씩은 우리가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집안의 가장은 외롭다. 왜냐하면 지킬 것이 너무나도 많기에.
아버지…… 단 한 번도 입 밖에 말로 내어보지 못한 말.
사랑합니다……
IP *.129.52.5
나는 사실 미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별다른 감정이 없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터라 요즘 유행인 미국 드라마에 열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패스트푸드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아니어서 미국 문화의 흡입력을 일상에서 느끼지는 못하는 듯싶다. 미국이 좋지도 싫지도 위대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위력만큼은 내 삶에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다.
누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외국에서 많이 살다 왔어요”라고 얼버무리는 말에 사람들은 흔히 미국인 줄 으레 짐작해 버리곤 한다. 대학교 때는 과외 3-4개를 하며 용돈벌이에 여념이 없었는데 미국에서 교육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잘리는 웃지 못할 경험도 해보았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어린 동생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어머니 대신 입학 수속 밟아주러 작년에 처음 그 미국 땅이라는 데를 밟아봤다. 사실 짧게 다녀온 거라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모든 것이 크.다.는. 것.
이런 나에게 <가자, 아메리카로!>는 500페이지가 대수롭지 않게 읽힌 드물게 재미있는 역사책이었다. 첫째는 나의 무지를 깨우쳐 줘서, 둘째는 흔하디 흔한 영웅중심의 서술이 아니어서, 그리고 셋째는 미국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줘서.
그렇다. 좀 더 ‘잘’ 살고자 여기 저기서 모여든 미국이라는 땅. 식민지 해방과 황야에서의 개척, 그리고 인종차별과 끊임없는 투쟁. 그러한 거친 과거의 자궁 속에서 자라난 미국이기에 오늘날 그토록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늠름한 장년이 된 것이구나.
그러나 누가 나에게 이 책 한 권을 통해 깨달은 핵심을 몇 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복잡다단한 역사 속에서 자란 미국. 우리 모두 가고 싶어하고, 실제 환상을 품고 꿈에 부풀어 찾는 미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닮고 싶어하는 미국. 언제나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 그러나 정작 누가 누구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일까.
물론, 미국 외의 나라들이 미국의 힘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약육강식의 논리와 경쟁의 시대에 적합한 이치겠지만 정작 누가 더 애가 탈 것인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미국이야말로 미국 이외의 나라들의 모아진 힘과 도움 없이 유지되기 힘들다는 사실. 그것을 인지할 필요는 있을듯싶다. 덩치가 크다고 해서, 힘이 세다고 해서 그게 전부가 아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겉으로 강한 사람이 속은 여리듯이. 그리고 가진 게 많은 만큼 지킬 것도 많아서 더더욱 절실하다는 것. 어쩌면 무조건적 반미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미국이 혼자 힘으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도 발버둥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먼저 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저서 <미래의 물결>에서 미국이 힘이 빠진 나머지 스스로 ‘거점’이 될 권리를 포기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바 있다.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과연 정말 그렇게 될까. 이것은 기대를 갖고 두고 봐야 할 재미있는 ‘미래 예언 맞추기’ 내기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잠깐, 나는 이 글을 단지 미국에 관한 글로 끝마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자, 아메리카로!>를 읽고 가지게 된 일련의 생각들을 확대시켜 내 삶의 어떤 부분에 프로젝션 시켜볼까를 고민해 보았다.
비 오는 5월의 첫째 주 주말. 아버지를 모시러 가는 차 안에서 핸들과 기어를 만지작거리다 문득, 내 생각의 더듬이는 나의 아버지를 향했다. 나이 50이 넘으셨는데도 아직도 순수하시고 꿈이 있는 나의 아버지. 그리 살가운 부녀관계는 아니지만, 항상 말없이 딸래미를 위해주시는 나의 아버지. 나를 웃고 울게 하시는 나의 아버지. 사회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이해하게 된 사람이다. 나약한 딸래미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이렇게 두 번씩이나 이직을 했는데, 그 모진 세월 다 참으시느라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었을 나의 아버지. 나는 나의 외로움만 보듬어줄 줄 알았지, 정작 아버지께서 느끼셨을 외로움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설령 이해한다고 한들 그 마음을 전부 다 헤아려 드릴 수는 없을 듯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하소연할 곳 없어 소주잔만 기울이시는 그 모습. 한 가정의 기둥이기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정신력을 무제한으로 발휘하며 사시는 나의 아버지의 모습 속에, 아마도 대한민국 대부분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이 딱 한 번 있다. 아쉽게도 ‘살면서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라고 자랑할 수 없게 되어 참 나로 하여금 후회하게 만든 일이었다. 때는 2002년도 추석. 공무원이 되 보겠다는 일념으로 행정고시 재정 경제 직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혼자 이사 다니며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 들어 사는 원룸에 비가 새는 것이었다. 모두가 따뜻한 집 밥 먹으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추석 명절날, 나는 10 시간 동안 학원 수업을 듣고 들어와 문을 열었는데 물이 종아리까지 차 있는 것이었다. 맙소사. 이제껏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나였기에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었다. 마땅히 도움 청할 사람도 없었고, 불친절한 집주인과 한 동안 신경전을 벌여야 했었다.
그 때 처음으로 부모님이 나를 위해 해주실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고인 물처럼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일단, 나는 정신적으로 버텨야 했기에 자기 합리화를 작동시켰다. 아, 나중에 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이 됐을 때, 장마철 수해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될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구나. 그래 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지금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거야. 라고. 지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재미있는 자기합리화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나의 아버지께서는 이제껏 살면서 얼마나 많은 자기 합리화를 하시면서 사셨을까. 내가 모르는 아버지만의 자기 합리화. 그것을 다 합해 보면 아마 산 하나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아버지가 가정에 좀 더 신경 쓰지 않으신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탓하곤 하지만, 가끔씩은 우리가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집안의 가장은 외롭다. 왜냐하면 지킬 것이 너무나도 많기에.
아버지…… 단 한 번도 입 밖에 말로 내어보지 못한 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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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저도 서서히 아이들한테 책임을 져야된다는 나이가 다가오고,
옛날에 아버지한테 느꼈던 그런 기억들이 하나둘씩 살아납니다.
해주지 못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
그것을 자기 말로 못하고 끙끙거리다 마는 것.
아마 자식이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아버지로써
그러한 고민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이들 키우는 것이 힘든 것이 나를 모델로 해서 크는데,
나보다도 더 잘 살게 될 것을 꿈꾸는 것이
허황된 욕심이라는 알면서도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아버지로서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이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는 것은 어떨까요.
옛날에 아버지한테 느꼈던 그런 기억들이 하나둘씩 살아납니다.
해주지 못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
그것을 자기 말로 못하고 끙끙거리다 마는 것.
아마 자식이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아버지로써
그러한 고민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이들 키우는 것이 힘든 것이 나를 모델로 해서 크는데,
나보다도 더 잘 살게 될 것을 꿈꾸는 것이
허황된 욕심이라는 알면서도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아버지로서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이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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