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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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가 보세요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여탕에 갔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당도한 그 곳. 지금은 여탕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지만, 어머니께 참 감사할 일입니다. 목욕은 물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같은 학교 여학생을 만나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따라갔을 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어쨌든 어머니를 따라간 여탕은 좋은 기억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아 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친구들을 참 많이 따라갔습니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간 피씨방은 처음으로 중독이라는 무서움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학원비는 학원비 대로, 용돈은 용돈대로 날리는 만행을 저질렀지요. 수퍼 스튜핏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에게, 어머니는 항상 고생했다는 따뜻한 온기를 주셨습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밤을 지새고, 또 피씨방엘 갔습니다. 5개월 정도 지속된 게임중독은 저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중독은 쉽게 해독되지 않는다는 것, 사람을 악독하고 고독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대학의 선택도 ‘따라감’이었습니다. 제가 따라간 것은 ‘점수’였습니다. 점수를 따라간 대학생활은 유토피아였습니다. 자유라는 공기로 숨을 쉬고, 의지라는 물로 목을 축였습니다. 지식의 목마름 보다는 술의 목마름을 배운 어리석은 시간이었지만, 지금의 인연과 행복의 시작점이기에 참으로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따라가는 삶’. 이것이 사람의 인생을 또 다르게 정의한 표현이 아닐까요? 친구 따라간 나이트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커플. 국가의 부름을 따라 간 군대에서 말뚝을 박은 군인.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간 고기집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난 부부. 삶을 돌이켜 보면 ‘따라감’이라는 우연이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따라감’이라는 경험 뒤에 얻은 성찰과 깨달음이 지금의 사고방식과 신념을 형성하지 않았나 헤아려 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모님, 형제, 친구들을 따라 왔습니다. 그들의 이끌림에 끌려 왔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따라가 보세요. 부모도 친구도 점수도 아닌 자신의 ‘마음’의 끌림을 따라가 보세요. 마음을 따라가기 힘들다고요? 위험하다고요? 지금까지 누군가를 따라간 것처럼, 그냥 그렇게 따라가면 됩니다. ‘마음’이 이끄는 그 곳에는 나의 재능이 있습니다. 나의 강점이 있습니다. 나의 행복이 있습니다.
부모의 권유를 따라 선택한 공무원이 자신의 재능일까요? 대기업 취업이 나의 강점일까요? 마음이 내키지 않는 그 곳이 행복일까요? ‘톰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죽어서 천국의 문에서 베드로를 만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매우 현명하다는 걸 알고 있던 남자는 평생 궁금하게 여기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베드로여, 저는 생전에 군사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장군은 누구입니까?”
베드로는 바로 대답했습니다.
“간단한 질문이군요. 바로 저기 있는 사람입니다.”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저 사람을 이승에서 알았는데, 그저 평범한 노동자였을 뿐입니다.”
베드로는 답변했습니다.
“맞습니다. 만약 장군이 되었다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음이 따라가 보세요. 물론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얻은 그 어떤 결과물보다 값진 보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따라가 보세요. 그것이 본능입니다. 마음을 따라가면 만능이 될 수 있습니다. 무능이 아닌 유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가능성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이제 마음을 따라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