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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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년시절은 기억을 더듬을 필요가 없다. 손만 내밀면 언제든지 그 영롱한 빛을 발하며 내게 다가선다. 그의 온기는 따스하며 달콤한 향은 취기조차 느끼게 한다.
늦가을 햇살은 투명하다 못해 청초하기 까지 했다. 울타리 삼아 심어둔 올밤나무에서는 떡 벌어진 알밤송이가 가을 햇살을 소롯이 담아 품고 또 품는다. 고추잠자리는 집 앞 공터에 떼지어 날고 산그늘을 타고 내려오는 산자락 공기는 온갖 가을향을 다 쏟아 놓았다. 우리들은 그 속에서 커다란 우주를 발견하고 신세계로의 발걸음을 내 딛기도 하였던 것이다.
지금의 농촌 모습과는 사뭇 다르겠지만 내가 지나온 가을걷이 후 찾아든 농촌의 농한기는 축제의 시기였다. 현란한 가을 무대 장치 속에 우리는 뛰어들기만 하면 되었다. 어른들은 노동의 노곤함을 풀어내고자 강어귀 넒게 펼쳐진 모래톱에서 농악마당을 펼지고 마을 노인네들은 뒷간에서 익을 대로 익은 농주 한잔으로 노년이 주는 넉넉함에 빠져든다.
축제의 최고 수혜자는 아이들이였음에 틀림없다. 재잘거림 그 자체가 노래였고 논두렁이며 밭두렁을 타고 한바탕 뒹구는 것이 연극이나 다름없었다. 때로는 대나무 빗자루를 가지고 나와 온통 가을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고추잠자리를 잡는 일은 놀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황금색을 띤 고추잠자리의 양 날개를 잡고 꼬리를 살짝 흔들어 주면 그는 우리에게 시를, 노래를 들려주고 환상의 세계로 데려가기도 했다. 잠자리와의 놀이가 끝나면 모자이커 무늬의 잠자리 날개위에 우리의 꿈을 담아 다시 저 창공으로 날려 보낸다. 그러면 아이들은 잠자리가 되고 새가 되고 구름이 되었던 것이다.
나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에게 있어서 집짓기 놀이와 소꿉놀이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각자의 뒷사립문을 나서면 우리들의 훌륭한 놀이터가 펼쳐진다. 야트막한 뒷동산은 온갖 것을 품어 놓고 우리를 유혹하고 붙잡아 매었다. 봄이면 진달래하며 찔레송이와 찔레꽃 향기로,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과 산바람으로 그리고 가을이면 풍성하기 이를 데 없는 열매와 형형의 색깔로 우리들을 잡아 끌었던 것이다.
가을 뒷동산
솔가지마다 솔방울을 달고 솔잎은 아래로부터 노랗다. 솔향기는 온 뒷산을 품고 찹찹한 늦가을 공기에 살짝 기댄다. 도토리는 다람쥐와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집짓기 놀이를 하기에 제일 좋은 곳은 소나무가 1m 이하 정도되고 네댓 그루가 빙 둘러 쳐진 곳이다. 그 소나무를 기둥삼기에 적합함 때문이다.
동네 아이들이 다 모이면 보통은 17,8명은 족히 된다. 몇 명이 빠지더라도 10명은 훌쩍 넘기에 집짓기 놀이를 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보통 한 팀이 2-4명으로 구성된다.
먼저 일정한 범위내에서 터를 잡고 각 팀별로 적당한 장소를 물색한다.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면 제일 첫 번째 일이 터를 고르는 일이다. 돌멩이가 있으면 치우고 뽀족히 튀어나온 나뭇가지는 꺽어버린다. 불룩 솟아오는 곳은 흙을 약간 겉어내고 땅을 고른다. 땅고르기가 끝나면 다음은 지붕 만들기 차례다. 주워온 긴 막대를 나뭇가지와 가지 사이에 걸쳐 이엉을 만들고 다음은 볏짚으로 지붕을 올린 다음 솔기지를 얻는다. 아주 건사한 지붕이 완성되었다.
지붕만드는 일이 아빠 역할을 맡은 아이의 일이라면 바닥재를 모으고 울타리를 치는 일은 엄마와 아이역을 맡은 사람 몫이다. 바닥은 먼저 낙엽으로 수북히 채워진다. 그위에 짚단을 깔고 준비해온 헌 옷 가지를 펼치면 된다. 소나무 사이사이에는 남은 볏짚으로 채워넣고 사금파리들을 주워와서 살림을 차리면 끝이다. 가을 집짓기놀이는 풍성하기 이를 데 없다. 군고구마와 알밤이 있고 감이며 심지어 쌀과보리 뻥튀기까지 등장할 때도 있다. 거기다가 산머루를 비롯한 갖가지 산열매가 더해진다고 상상해 보라.
그곳에는 아빠가 있고 엄마도 있고 이이들도 있는 완벽한 한 가족이 있었다. 아빠역은 제일 나이가 많고 힘센 아이가 주로 했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었다. 내가 아빠도 될 수 있고 엄마도 될 수 있으며 아이도 될 수 있는 마법의 세계였던 것이다. 또한 우리는 마음만 먹으렴 언제든지 집을 옮길 수도 있었고 다시 지을 수도 있었으며 식구를 더 늘릴 수도 있었다.
집짓기 재료 또한 우리 마음이었다. 볏짚단으로만 지을 수도 있고 솔가지와 억새풀로만으로도 지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붉은 황토흙을 30-40cm 파 낸 후 땅 속에다 집을 짓기도 하였다. 물론 그 작업은 열대여섯살을 넘긴 오빠나 형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그들도 역시 즐거운 집짓기 놀이에 빠져들기는 마친가지였다.
집짓기 놀이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이제 가족놀이다. 아빠역을 맡은 아이는 삭정이를 더 모으고 엄마역의 아이는 솔잎으로 반찬을 만들고 준비해온 고구마며 먹거리등을 펼쳐 놓는다. 아기역을 맡은 아이는 연신 응애 거리며 마을 뒷산을 온기로 채운다. 이렇게 해서 뒷동산은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지고 또 다른 우리들의 일상이 시작되곤 했다.
집짓기와 가족놀이가 어느 정도 끝나면 이제부터는 전체 숨바꼭질에 들어간다. 뒷동산은 숨을 곳이 무궁무진 하다. 나무는 얼마나 많고 억새풀이며 찔레덩굴, 심지어는 나무위에 올라가 솔가지 뒤에도 숨을 곳은 있다. 이 때 만은 다른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집에 들어가 숨을 수도 있고 덩치 큰 언니나 오빠뒤에 숨을 수도 있었다. 놀이는 끝없이 계속될 것 같지만 산자락 아래로 어스럼이 찾아들고 차가운 공기가 나이론 빨강모자 잠바아래 까지 찾아들면 각자는 집으로 향한다. 그 때는 소가족을 모두 해체하고 거대한 한 가족이 되어서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것이였다.
결혼을 하고 처음 집을 구입할 때 주위 맞벌이 부부들의 일반적인 선택과는 달리 우리는 단독 주택을 구입했다. 여기에는 나의 유년시절에 즐겨했던 집짓기 놀이와 이어 행하여 지던 숨바꼭질놀이가 큰 작용을 했음이다. 물론 남편도 결혼초기부터 착실하게 해오던 둘만의 숨박꼭질 놀이에 익숙해 있던 터라 별 반대나 이의 제기도 없었다. 주택은 아파트와는 달리 숨을 곳이 많다. 우리가 선택한 집에서는 등나무 아래도 좋았고 옥상의 장독대 뒤 그리고 보일러실도 있었다. 먼저 퇴근한 사람이 숨을 만한 곳은 뻔한 커텐뒤가 아니더라도 숨을 곳은 많고 많았음을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무용담인냥 들려 줄 수 있는 우리들만의 완벽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로 이사온 후 우리 가족의 숨바꼭질 놀이는 다소 변형 되었다. 숨을 곳이 많지 않은 관계로 각자의 생각주머니에서 마련해낸 임시 방편인 셈이다. 급하면 잠에 골아떨어진 척 하기도 하고 장롱 안에도 들어간다. 물론 2분이내에 그 숨은 노고와는 관계없이 박장대소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짜릿한 즐거움은 해가 갈 수록 더해진다.
유년의 시절은 유토피아다.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몇 번이고 교무실에 불려가던 힘겨움은 제거된 손에 잡히는 낭만의 세계인 것이다. 한편, 우리는 그 시절의 온기와 따스함을 긴 수로나 터널로 다시 일상으로 끌어 들일 수도 있다. 그것은 소소한 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작은 댓가만 지불하면 된다.
남편과 내가 20년 동안 가지고 있는 아파트 청약권에 별 미련을 가지지 않음은 이 즐거운 우리들만의 집짓기 놀이와 숨바꼭질 놀이에 수반된 중독성이라는 것을 눈치챈지는 극히 최근의 일이다.
IP *.86.55.214
늦가을 햇살은 투명하다 못해 청초하기 까지 했다. 울타리 삼아 심어둔 올밤나무에서는 떡 벌어진 알밤송이가 가을 햇살을 소롯이 담아 품고 또 품는다. 고추잠자리는 집 앞 공터에 떼지어 날고 산그늘을 타고 내려오는 산자락 공기는 온갖 가을향을 다 쏟아 놓았다. 우리들은 그 속에서 커다란 우주를 발견하고 신세계로의 발걸음을 내 딛기도 하였던 것이다.
지금의 농촌 모습과는 사뭇 다르겠지만 내가 지나온 가을걷이 후 찾아든 농촌의 농한기는 축제의 시기였다. 현란한 가을 무대 장치 속에 우리는 뛰어들기만 하면 되었다. 어른들은 노동의 노곤함을 풀어내고자 강어귀 넒게 펼쳐진 모래톱에서 농악마당을 펼지고 마을 노인네들은 뒷간에서 익을 대로 익은 농주 한잔으로 노년이 주는 넉넉함에 빠져든다.
축제의 최고 수혜자는 아이들이였음에 틀림없다. 재잘거림 그 자체가 노래였고 논두렁이며 밭두렁을 타고 한바탕 뒹구는 것이 연극이나 다름없었다. 때로는 대나무 빗자루를 가지고 나와 온통 가을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고추잠자리를 잡는 일은 놀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황금색을 띤 고추잠자리의 양 날개를 잡고 꼬리를 살짝 흔들어 주면 그는 우리에게 시를, 노래를 들려주고 환상의 세계로 데려가기도 했다. 잠자리와의 놀이가 끝나면 모자이커 무늬의 잠자리 날개위에 우리의 꿈을 담아 다시 저 창공으로 날려 보낸다. 그러면 아이들은 잠자리가 되고 새가 되고 구름이 되었던 것이다.
나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에게 있어서 집짓기 놀이와 소꿉놀이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각자의 뒷사립문을 나서면 우리들의 훌륭한 놀이터가 펼쳐진다. 야트막한 뒷동산은 온갖 것을 품어 놓고 우리를 유혹하고 붙잡아 매었다. 봄이면 진달래하며 찔레송이와 찔레꽃 향기로,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과 산바람으로 그리고 가을이면 풍성하기 이를 데 없는 열매와 형형의 색깔로 우리들을 잡아 끌었던 것이다.
가을 뒷동산
솔가지마다 솔방울을 달고 솔잎은 아래로부터 노랗다. 솔향기는 온 뒷산을 품고 찹찹한 늦가을 공기에 살짝 기댄다. 도토리는 다람쥐와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집짓기 놀이를 하기에 제일 좋은 곳은 소나무가 1m 이하 정도되고 네댓 그루가 빙 둘러 쳐진 곳이다. 그 소나무를 기둥삼기에 적합함 때문이다.
동네 아이들이 다 모이면 보통은 17,8명은 족히 된다. 몇 명이 빠지더라도 10명은 훌쩍 넘기에 집짓기 놀이를 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보통 한 팀이 2-4명으로 구성된다.
먼저 일정한 범위내에서 터를 잡고 각 팀별로 적당한 장소를 물색한다.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면 제일 첫 번째 일이 터를 고르는 일이다. 돌멩이가 있으면 치우고 뽀족히 튀어나온 나뭇가지는 꺽어버린다. 불룩 솟아오는 곳은 흙을 약간 겉어내고 땅을 고른다. 땅고르기가 끝나면 다음은 지붕 만들기 차례다. 주워온 긴 막대를 나뭇가지와 가지 사이에 걸쳐 이엉을 만들고 다음은 볏짚으로 지붕을 올린 다음 솔기지를 얻는다. 아주 건사한 지붕이 완성되었다.
지붕만드는 일이 아빠 역할을 맡은 아이의 일이라면 바닥재를 모으고 울타리를 치는 일은 엄마와 아이역을 맡은 사람 몫이다. 바닥은 먼저 낙엽으로 수북히 채워진다. 그위에 짚단을 깔고 준비해온 헌 옷 가지를 펼치면 된다. 소나무 사이사이에는 남은 볏짚으로 채워넣고 사금파리들을 주워와서 살림을 차리면 끝이다. 가을 집짓기놀이는 풍성하기 이를 데 없다. 군고구마와 알밤이 있고 감이며 심지어 쌀과보리 뻥튀기까지 등장할 때도 있다. 거기다가 산머루를 비롯한 갖가지 산열매가 더해진다고 상상해 보라.
그곳에는 아빠가 있고 엄마도 있고 이이들도 있는 완벽한 한 가족이 있었다. 아빠역은 제일 나이가 많고 힘센 아이가 주로 했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었다. 내가 아빠도 될 수 있고 엄마도 될 수 있으며 아이도 될 수 있는 마법의 세계였던 것이다. 또한 우리는 마음만 먹으렴 언제든지 집을 옮길 수도 있었고 다시 지을 수도 있었으며 식구를 더 늘릴 수도 있었다.
집짓기 재료 또한 우리 마음이었다. 볏짚단으로만 지을 수도 있고 솔가지와 억새풀로만으로도 지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붉은 황토흙을 30-40cm 파 낸 후 땅 속에다 집을 짓기도 하였다. 물론 그 작업은 열대여섯살을 넘긴 오빠나 형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그들도 역시 즐거운 집짓기 놀이에 빠져들기는 마친가지였다.
집짓기 놀이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이제 가족놀이다. 아빠역을 맡은 아이는 삭정이를 더 모으고 엄마역의 아이는 솔잎으로 반찬을 만들고 준비해온 고구마며 먹거리등을 펼쳐 놓는다. 아기역을 맡은 아이는 연신 응애 거리며 마을 뒷산을 온기로 채운다. 이렇게 해서 뒷동산은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지고 또 다른 우리들의 일상이 시작되곤 했다.
집짓기와 가족놀이가 어느 정도 끝나면 이제부터는 전체 숨바꼭질에 들어간다. 뒷동산은 숨을 곳이 무궁무진 하다. 나무는 얼마나 많고 억새풀이며 찔레덩굴, 심지어는 나무위에 올라가 솔가지 뒤에도 숨을 곳은 있다. 이 때 만은 다른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집에 들어가 숨을 수도 있고 덩치 큰 언니나 오빠뒤에 숨을 수도 있었다. 놀이는 끝없이 계속될 것 같지만 산자락 아래로 어스럼이 찾아들고 차가운 공기가 나이론 빨강모자 잠바아래 까지 찾아들면 각자는 집으로 향한다. 그 때는 소가족을 모두 해체하고 거대한 한 가족이 되어서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것이였다.
결혼을 하고 처음 집을 구입할 때 주위 맞벌이 부부들의 일반적인 선택과는 달리 우리는 단독 주택을 구입했다. 여기에는 나의 유년시절에 즐겨했던 집짓기 놀이와 이어 행하여 지던 숨바꼭질놀이가 큰 작용을 했음이다. 물론 남편도 결혼초기부터 착실하게 해오던 둘만의 숨박꼭질 놀이에 익숙해 있던 터라 별 반대나 이의 제기도 없었다. 주택은 아파트와는 달리 숨을 곳이 많다. 우리가 선택한 집에서는 등나무 아래도 좋았고 옥상의 장독대 뒤 그리고 보일러실도 있었다. 먼저 퇴근한 사람이 숨을 만한 곳은 뻔한 커텐뒤가 아니더라도 숨을 곳은 많고 많았음을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무용담인냥 들려 줄 수 있는 우리들만의 완벽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로 이사온 후 우리 가족의 숨바꼭질 놀이는 다소 변형 되었다. 숨을 곳이 많지 않은 관계로 각자의 생각주머니에서 마련해낸 임시 방편인 셈이다. 급하면 잠에 골아떨어진 척 하기도 하고 장롱 안에도 들어간다. 물론 2분이내에 그 숨은 노고와는 관계없이 박장대소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짜릿한 즐거움은 해가 갈 수록 더해진다.
유년의 시절은 유토피아다.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몇 번이고 교무실에 불려가던 힘겨움은 제거된 손에 잡히는 낭만의 세계인 것이다. 한편, 우리는 그 시절의 온기와 따스함을 긴 수로나 터널로 다시 일상으로 끌어 들일 수도 있다. 그것은 소소한 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작은 댓가만 지불하면 된다.
남편과 내가 20년 동안 가지고 있는 아파트 청약권에 별 미련을 가지지 않음은 이 즐거운 우리들만의 집짓기 놀이와 숨바꼭질 놀이에 수반된 중독성이라는 것을 눈치챈지는 극히 최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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