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제산
  • 조회 수 988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7년 10월 9일 15시 46분 등록



사랑하는 수민이에게  


사랑하는 내 딸 수민아! 공학도가 되고 싶은 수민이의 꿈을 아빠는 응원해. 이번 추석 연휴에 수민이가 희망하는 공과대학 교정을 갔을 때, 아빠는 수민이의 눈동자에서 열망을 보았어. 그 열망은 빛나면서도 평온했어.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어.  


아빠와 엄마는 결혼하기 전부터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면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꼭 지원해주자고 다짐했어. 엄마의 경우 대학에서 영문학이나 국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집안 반대로 경영학을 공부했어. 꿈과 맞지 않는 공부를 한다는 건 너무 끔직한 일이었다고 엄마는 늘 아빠에게 이야기했어. 아빠는 신학공부를 하여 신부가 되고 싶었어. 그러나 할아버지께서 워낙 강하게 반대하셨지. 3 100일이 넘게 할아버지와 밤마다 논쟁했지만 결국 엉뚱한 곳에 대학입학원서를 냈지. 그러나 아빠는 승복할 수 없었기에 대학시험 전날 가출을 했어. 덕분에 재수를 했고 재수를 마칠 때 할아버지와 아빠는 일종의 타협으로 신학과 대신 철학과에 입학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지. 엄마와 아빠의 이런 경험들 때문에라도 우리 자녀들은 자신들이 소망하는 것을 공부하도록 지원해 주자고 오래 전부터 굳게 약속했어.  


아빠가 철학이나 신학 같은 인문학에 관심이 생겼던 일은 초등학교 졸업하기 한 두 해 전부터였었던 것 같아. 한 시간 이상 걸어야 도착했지만 주말마다 빠지지 않았던 성당. 그 성당의 1층 복도 캐비닛에 쌓여 있던 신학 서적. 그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다 보니 철학도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어. 철학의 세계를 처음 보았던 것을 고등학생 시절로 기억을 해. 아빠가 살던 대전 고향집 근처에 제법 큰 도서관이 개장을 했어. 주말이면 그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철학의 세계를 보았어. 다른 사람이 손에 이끌려 읽는 교과서가 아니라 아빠 스스로 발견하여 점점 더 빠져드는 세계였어. 내 주변 어느 누구도 관심 없어하는 분야이지만 아빠에게 그 세계는 어찌나 경이로워 보였던지 몰라그래서 알아먹지도 못하는 책들을 구경한다고 도서관 서가에 서서 몇 시간이고 철학을 비롯한 인문고전들을 들여다 보았어.  


물론 직장생활 하는 동안 철학과 신학 같은 인문고전의 세계를 멀리 하기도 했지. 그러나 2013년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이 되면서 오랫동안 잊었던 인문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 행복했어. 인문고전의 세계에 한 발 한 발 들어 갈수록 새로운 길이 보이는 그 맛에 아빠는 지금도 헌책방에 가면 중고책 더미에서 철학책이나 신학책을 골라 읽고 있어.  


수민이가 기계를 다루는 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재미있어 하는 것을 보면서 수민이의 타고난 천성이구나 느꼈어. 문제는 지금부터야. 수민이의 길은 이제 수민이가 찾아 가야 해. 초등학교까지는 수민이의 길을 찾아가는데 아빠와 엄마가 손을 잡고 도와 줄 수 있지만, 내년이면 너도 중학생이구나. 지금부터는 수민이가 스스로 찾아가야 해. 아빠와 엄마가 이미 가본 길은 잘 알려줄 수 있지만 공학의 세계는 아빠와 엄마도 가보지 못한 길이거든. 그래서 아빠와 엄마의 역할이 점차 변할 수 밖에 없어. 지금까지 초등학생 수민이 옆에서 손을 잡아 주었다면,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수민이의 옆이 아니라 뒤에서 받침목이 되어 주는 역할로 점차 변해야 하는 거지.  


수민이가 수민이의 미래상을 글로 썼다고 했지? 그 글을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들었어. 그래! 그만큼 고민했다면 한번 가보는 거야. 가다 보면 길이 막힐 때도 있지만 방향이 맞는다면 길은 머지않아 드러날 거야. 그렇다면 방향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결국 수민이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내는 거야. 맑고 투명한 눈으로 자기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면, 열망과 두려움 너머로 가야 할 길이 보일 거야. 우리의 영혼은 가야 할 방향을 이미 잘 알고 있단다. 자기 자신을 믿고 따라 가는 거야.  


아빠는 수민이를 응원하면서 동시에 아빠의 길을 계속 갈 꺼야. 좋은 책을 찾아 알리고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글을 쓰는 게 지금 아빠가 찾은 길이야. 긴 호흡과 잰 걸음으로 천천히 서둘러 갈 꺼야. 수민이는 수민이의 길을 가고 아빠도 아빠의 길을 가면서 한번씩 서로가 가는 길을 서로에게 보여주는 삶, 생각만 해도 멋있겠다. ^^  



2017 10 9 


수민이의 꿈을 응원하는 아빠가 


  


10 23일 월요일에 아내 김정은의 편지가 이어집니다.  


 


IP *.202.114.135

프로필 이미지
2017.10.13 10:14:29 *.18.187.152

초등학교 졸업 전에 철학에 대해 어렴풋이라도 생각하셨다니 진짜 남다른 유년시절이셨네요. 수민이가 균형감각 갖춘 아이로 자랄 수 있겠어요. 두 분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16 핀테크는 왜 '개인금융의 미래'라 불리는가?(1편)-어니스트 펀드 file [2] 차칸양 2017.09.26 852
1515 [수요편지 14- 새벽형 인간으로 변신] [2] 수희향 2017.09.27 956
1514 먼저, 정보공개서부터 확인하세요 [2] 이철민 2017.09.28 812
1513 백열아홉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2017년 10대 풍광 재키제동 2017.09.29 958
1512 시장물건도 자신의 이름을 걸어야 한다 이철민 2017.10.05 970
1511 기억의 회향(回向) 書元 2017.10.06 754
» 수민이의 꿈을 응원하는 아빠가 [1] 제산 2017.10.09 988
1509 핀테크는 왜 '개인금융의 미래'라 불리는가?(2편)-레이니스트 [2] 차칸양 2017.10.10 772
1508 [수요편지 15- 명함없는 삶] [2] 수희향 2017.10.11 888
1507 자신에게 냉정한 통찰력을 발휘하라 [2] 이철민 2017.10.12 899
1506 백스무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소셜 마케팅 특강 [2] 재키제동 2017.10.13 811
1505 개들은 모르는 것을 보면 짖는다 옹박 2017.10.16 742
1504 핀테크는 왜 '개인금융의 미래'라 불리는가(3편) - 디레몬 [2] 차칸양 2017.10.17 852
1503 알아두면 쓸데있는 근거없는 계산법 1 [2] 이철민 2017.10.19 938
1502 백스물한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용기 1그램 [2] 재키제동 2017.10.20 1110
1501 Business Tip - 진심 한잔 [1] 書元 2017.10.21 898
1500 '갈등'은 꼭 필요하다 제산 2017.10.23 793
1499 이제 막 인생2막에 발을 디디려는 너에게 [2] 차칸양 2017.10.24 831
1498 [수요편지 16- 스승님과의 공저] [4] 수희향 2017.10.25 875
1497 알아두면 쓸데있는 근거없는 계산법 2 [2] 이철민 2017.10.26 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