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따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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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올 해의 노벨문학상을 탔다. 당분간 그의 이름과 작품이 전세계 인터넷의 파도 위에서 검색어로 오르내릴 것이다. 그는 35년간 8편의 작품을 남긴 과작가(寡作家)이다. 그런 그가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은 한달 만에 썼다고 하니 대체 어찌된 일인가. 그 배경엔 바로 이시구로의 ‘마눌님’인 ‘로나 맥도갤’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마눌님’은 ‘마누라’, ‘부인’과는 또 다른 포스를 주는 용어이므로 특별히 선정하여 사용하기로 한다).
1982년부터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던 30대의 이시구로는 1년에 80여 페이지를 쓰며, 그런대로 만족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1년에 고작 80여 페이지를 쓰면서 ‘만족하며’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니 그의 패기와 인간미에 매우 정이 간다. 그러나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은 그렇지 않았는지 날카롭게 빛나는 칼 같은 시선으로 글 쓰는 이시구로의 등을 뜨끔하게 한 모양이다. 첫 소설의 성공과 함께 여기 저기 밖으로 불려 나가거나 집 안에서는 빈둥대는 그를 보다 못한 부인은 그에게 ‘전력집필’을 요구한다. 그는 점심식사 1시간, 저녁식사 2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침 9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주 6일간 글쓰기에 매달린다. 마눌님의 말씀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휘몰아치는 몰입으로 글쓰기에 매달린 결과 ‘남아 있는 나날’을 한달 만에 쓰는 쾌거를 이룬다. 마눌님 말씀을 듣다가 한달 만에 떡이 생긴 것이다!
반면 그의 ‘파묻힌 거인(The Buried Giant)’은 무려 10여 년이 걸렸다. 2004년에 착수한 그 소설은 2015년에야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2004년의 어느 날, 그는 ‘파묻힌 거인’의 초안을 마눌님께 보여드린다. 마눌님의 입에서 단 3음절이 나온다.
쓰-레-기(ru-bbi-sh).
13년 후 노벨문학상을 타게 되는 남편의 작품을 마눌님은 가차없이 ‘쓰레기’라 평한다. ‘이런 쓰레기를 출판해서는 안된다. 처음부터 다시 써라’ 그가 ‘파묻힌 거인’을 세상에 내보내기까지 10여 년이나 걸렸던 이유이다. 그의 독자들은 그 세월을 기다렸고 파묻힌 거인 역시 성공을 거둬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비록 오래 걸렸지만 매우 맛있고 유익한 떡을 빚은 것이다. 그는 2015년 ‘더 톡스(The Talks)’라는 인터뷰에서 마눌님 말씀을 들으면 떡이 생기는 체험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나를 대단치 않게 보는 사람의 한결같은 지적질이 중요합니다(I think it’s very important for people like me to have a consistent editing voice and someone who doesn’t take me too seriously.)”
마치 경쾌한 노래 제목 같은 ‘Mr. and Mrs. Handy’ 부부는 또 어떤가. ‘코끼리와 벼룩’의 저자 찰스 핸디는 신혼 초 회사생활이 어떠냐는 아내의 말에 “좋아 그런대로”라고 대답한다. 신혼 초 어떤 개떡 같은 말을 해도 찰떡같이 반응할 시기, 그러나 찰스 핸디의 마눌님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좋아, 그런대로'의 태도를 가진 사람과 한평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녀의 말은 찰스 핸디로 하여금 후에 ‘포트폴리오 인생’이라는 아이디어의 떡을 빚게 한다. 그러나 포트폴리오 인생으로서 하는 일이 잘 되어 갈 때에도 찰스 핸디는 마눌님으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당신 일이 잘 되는 건 기쁜 일이예요. 하지만 당신이 내가 아는 가장 지루한 남자가 되었다는 것만은 좀 알아야 할 거 같아요(I am very glad your work is going so well. I just think you should know you have become the most boring man I know.).”
성공은 사람을 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와 찰스 핸디 모두 성공 따위 아랑곳 하지 않는 마눌님의 말씀으로 성공이 품고 있는 잠재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하다.
국내 사례로는 작가 조정래를 들 수 있겠다. 이미 마눌님을 통해 떡이 생기는 기적을 많이 체험한 그는 ‘황홀한 글 감옥’에서 마눌님 찬가를 늘어 놓는다. 그의 마눌님은 시인 김초혜씨다. 함께 문학을 하는 반려자로서 작가 조정래의 최초의 독자이자 열독자라고 한다. 감시자, 감독자, 교정자, 조정자로서의 마눌님이시기에 그녀가 잘못된 부분이나 어색한 표현을 지적하면 '태백산맥'의 위대한 작가 조정래는 마눌님 말씀에 절대복종 하며 100% 수정을 가한다고 한다.
주로 작가의 아내에 대해 썼지만 일상에서 마눌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잘 듣다가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신비한 기적의 체험을 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오죽하면 ‘마누라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생겼을까. 도대체 마눌님의 말은 어떠한 말이길래 자다가도 떡이 생길까. 아내야말로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진실을 직설하는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아내는 그 대상이 남편인 경우 때로는 독하게 지적을 한다. 사실 살다 보면 직언을 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 역시 서로 얼굴 붉힐 일 하지 말자 싶어 친한 관계가 아니고서는 가능한 직언을 삼가하는 편이다. 하지만 마눌님의 말씀은 이러한 제한에서 초월해 있다. 또한 반려자와의 관계는 ‘상극’이라기보다는 ‘대극’의 관계에 놓여 있다. 나의 반쪽(半)인 동시에 반쪽(反)인 것이다. 이렇듯 대극으로서의 반려자의 말은 때로는 악셀이, 때로는 브레이크가 되어 의사결정과 방향제시에 균형감각을 준다. 바로 여기에 마눌님 떡의 비밀이 있지 않을까.
반대로 아내에게 남편이 직언하는 것은 금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