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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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은 모든 것이 작았다. 한 평 반 남짓한 공간, 누우면 어깨와 발가락이 침대 밖으로 비죽이 내미는 좁고 가느다란 침대, 침대를 겹쳐서 놓여있는 조그마한 책상, 창이라고도 할 수 없는 화장실에나 있을 법한 작은 창문. 그것이 모든 것이었다. 처음 이사를 결심하고 혼자 방안을 둘러보는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는 그렇게 시작했다. 한평 반짜리 조그마한 공간에서 쪼그려 자며, 다음날이이면 뻐근한 허리를 추스르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할 때면 벽에 머리가 닿아 비스듬히 서서 해야 했던 그 작은 공간에서.
2005년의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 카네기 연구소로 입사한 것이 11월이었는데 돈이 없어 회사 근처의 허름한 고시원으로 옮겨야 했다. 기본월급 없이 영업에 대한 커미션으로만 수입을 충당해야 했는데, 그 돈으로는 조그마한 방 한 칸도 얻을 수 없었다. 게다가 변변찮은 코트 하나 장만할 수 없어 내복을 입고 가을 양복을 걸치고 다녀야 했다. 이런 환경보다도 겨울을 춥게 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어쩌면 나쁘지 않은, 탄탄대로일 수도 있었던 나의 커리어가 바닥으로 내려갈 지도 모른다는 소리 없는 두려움이 일었다…」
리오 휴버만의 ‘가자, 아메리카로!(We, the People)’를 읽는 동안 예전의 내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힘든 시간들이었다. 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던 당시의 나는 ‘교육’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게다가 내게 맡겨진 일은 ‘세일즈’였다. 영업이라니. 학교에서 공부만 한 탓에 사람들을 만나도 인사하는 것 조차 힘겨워하는 소심한 성격인 내가? ‘과연 나는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매일 질문할수록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약간의 재능이 있다는 것만을 믿고 뛰어든 이 분야에 나는 점점 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황량한 벌판 끝 경계에 서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왔건만, 그 첫걸음은 너무 힘겨웠다.
미국 초창기, 동부에서 출발한 개척자들이 새로운 땅을 찾아 서부로, 서부로 나아가던 때를 책에서는 이렇게 적어두고 있었다.
“최후의 정착이 끝난 곳에는 황야가 시작됐다. 문명의 끝과 미개의 시작이 만나는 곳, 그곳이 변경이었다. 바로 문턱까지 황야가 닿아 있던 이곳에서는 인생을 처음부터 새출발 할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변경으로 왔다… 그들은 조금씩 황야를 변형시켜 갔다. 그 사이에 그들 자신도 변형되어 갔다. 그들은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황야가 개척자에게 가르쳐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황야와의 투쟁은 그들에게 자립을 가르쳐 주었다. 자신의 두 손으로, 오로지 자신의 힘에만 의존해서 낯선 상황과 맞섰고 그리고 정복했다. 그는 자기 스스로 독립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었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믿게 되었다. 개척자는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 그가 누구인가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배웠다. 누구든 자기 일에 성공한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과도 평등할 수 있었다.
황야는 후덕한 마음을 주었다. 개척자들은 인심이 후했다. 길을 잃었거나 여행길에 지친 나그네는 항상 그들의 볼품없는 오두막에서 따뜻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어려운 형편에서도 나누어 가질 줄을 알았다. 제임스 홀은 숲속을 여행하던 길에 개척자를 만나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그에게 뱃삯을 더 지불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우유를 한 그릇 청했다. 우유를 다 마시고 나서 뱃삯이 얼마냐고 했더니 그는 ‘여행중인 나그네를 도와주었는데 돈은 무슨 돈이냐’며 사양했다.
‘그러면 우유값을 내겠습니다.’
‘우유를 팔아본 적이 없소’
‘그래도 돈을 내겠습니다. 돈은 충분히 있습니다.’
개척자가 말했다.
‘네, 나도 우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니 그만둡시다. 당신이 내게 돈을 줄 권리가 있는 만큼 나도 당신에게 우유를 드릴 권리가 있습니다.’
황야는 그에게 소박함을 주었다. 개척자의 생활은 소박하고 단순했다. 그는 화려한 것을 혐오했다. 그는 꾸밈을 싫어했으며, 그의 태도는 직선적이었다. 그는 평등과 자유를 믿고 있었다. 그는 자주적이었고, 강한 자존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고, 두려움을 몰랐으며, 지칠 줄 모르는 부지런함을 갖고 있었다. 황야에서의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입사한지 1년 반. 돌이켜보니 나도 많이 변해있었다. 먼저 다가가 인사하게 되었고, 어느 누구와도 잘 어울리게 되었다. 생활은 안정을 찾았고, 나는 더욱 독립적이고 유연하게 되었다. 서서히 영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의 도전은 나를 변화시켰다. 황야가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의 나는 불평 투성이었다. 지난 3개월간 영업 프로모션이 있었다. 실적이 좋은 몇을 뽑아 대만에서 개최하는 컨벤션에 참가하게 해 주는 것이었다. 무척 가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영업했고 내 실적이 제일 좋았다. 그런데 참가자 발표에서 내 이름이 빠져 있었다. 당황해서 회의에선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상사에게 가서 여쭸는데 "자네 요즘 근태가 좋지 않아서 이름을 빼버렸어"라는 대답뿐이었다.
남해 연구원 모임을 다녀와서 몸이 좋지 않아 회사에 휴가신청서를 제출하지 않고 전화상으로만 휴가를 알려 이틀을 쉬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잘 한 것은 인정해주지 않고, 못 한 것에 대해서만 질책하는 상사가 미웠다. 회사를 옮겨야 할까? 다시 열심히 할 수 있을까? 그 일을 계기로 자연스레 회사에 대한 마음이 멀어지고 있었다. 빈 자리는 불평으로 채워졌다. 더 이상의 새로운 도전은 없었다. 나는 소리없는 반항을 하고 있었다. 허나, 나는 잊고 있었다. 돌이켜 내가 처음 이곳에 입사했을때의 간절한 마음을.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미국 초기 서부 개척자들의 호연함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 나는 잊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독하게 떠나왔음을. 그렇게 절실히 나의 재능을 시험해 보고 싶었음을. 내가 진실로 원했던 것은 상사의 인정이 아니요, 보란듯한 보상도 아닌, 나의 성장, 온갖 어려움에 직면하여 마침내 얻어지는 나의 자립(自立)임을.. 아아, 나는 잊고 지냈다. 황야가 가르쳐주는 소중한 가르침들을!
잊지 말자. 간절한 처음의 마음을, 고통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자유롭고, 평등하며, 겉치레 없으며 온유하게 자라 있을 내 미래의 모습을.
두려워하지 마라. 황야는 개척자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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