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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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이유 없이 유독 꺼려지는 물건이 있다. 가끔 예비 신부와 길거리 상점을 걷다 우연히 발견이라도 하면 그녀에게 이 물건은 절대로 사면 안 된다고 버릇처럼 다짐을 받기도 한다. 바로 ‘레이스 달린 여성용 덧신’이다. 평생 내가 신을 일도 없는 이 물건에 나는 이상하리만큼 예민하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취향과 기호는 있는 그대로 존중 되어야 하며, 덧신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덧신이 불편하다. 나는 그것을 왜 꺼려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을 볼 때마다 항상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그것을 꺼려하는 이유도 바로 그 사람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바로 어머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렸을 적 ‘엄마’가 떠오른다. 내가 중학생 때였는지, 고등학생 때였는지 정확하게 기억 나지는 않지만, 얼추 그 즈음부터 나는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철이 들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막연히 그렇게 부르면 철이 들어 보일까 싶어서 그렇게 불렀다. 또 그게 효도하는 길 인줄 알았다. 대학생 시절 용돈이 떨어져 어렵게 집에 전화 할 때는 ‘어머니’라는 말을 좀 더 낮고 애절하게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 직장을 얻고 스스로 벌이를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연락은 아주 뜸해졌고 요즘은 거리감이라도 줄이고 싶어 그냥 ‘엄니’라고 부르고 있다.
내가 아직은 당신을 ‘엄마’라고 부를 때의 일이었다.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온 당신은 유난히 어두운 낯빛으로 늦은 저녁을 차리기 시작했다. 반찬 통 몇 개를 꺼내고는 그대로 식탁 위에 올려 두고 드셨다. 당시 우리 집은 반찬을 작은 접시에 따로 담지 않았다. 그것은 무한히 반복되는 설거지만 늘릴 뿐이었고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사치였다. 그 날 분명 엄마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누나가 없는 때 일수록 막내인 내가 잘하고 싶었다. 나는 냄비 뚜껑을 열고 콩나물이 가득 든 식은 육개장을 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나를 향해 다그치듯 말씀하셨다.
“냄비 뚜껑은 닫고 데워야지. 그래야 쪼매 라도 까스 덜 쓰지!”
나는 멍해졌다. 딴에는 잘해보려고 했는데 서운한 마음과 함께 그 순간 머리 속에는 ‘아니 냄비 뚜껑을 닫고 데우면 뭐 얼마나 가스가 더 아껴진다고’ 하는 불만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문득 바라본 그녀의 모습에서 곧 울음이 터져나올 듯한 어떤 슬픔이 보였다. 어린 나에게도 느껴지는 지독한 삶의 고단함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참고 참았을 서러움이 어린 아들 앞에서 난데 없이 툭 하고 터져버린 당혹감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렁그렁해진 눈을 집 안 어디에도 두지 못하고 꽃처럼 붉어진 얼굴을 푹 숙인 채 말없이 밥만 입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하... 오늘은 또 누가 우리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한 것 일까. 붕어빵 기계에 달린 반죽 호스를 이유도 없이 자르고 도망 간 그 호로 자식이었을까. 아니면 어렵게 찾아 간 은행에서 이름 석자 제대로 못 쓴다고 면박 준 나쁜 여직원이었을까.
당시 그녀는 ‘레이스 달린 덧신’ 자주 신곤 했다. 나는 요즘도 그것과 비슷한 덧신을 볼 때마다 그 때 그 엄마의 고단해 하던 표정이 떠올라 마음이 저릿하다. 그 고단함의 아주 많은 부분이 바로 나로 인한 것이었음을 안다. 내가 그 동안 길가에서 파는 덧신을 보면 마음이 움찔했던 것도 다 도둑이 제 발 저려서 그랬었나 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엄마’가 ‘어머니’가 되고, 다시 ‘어머니’가 ‘엄니’로 변해가는 동안 그녀는 더 많이 세련되어 졌고, 얼굴에도 자주 웃음꽃이 핀다는 사실이다. 자식들은 모두 장성했고, 하나 남은 아들도 이제 곧 결혼을 하기 때문이다. ‘엄니’의 얼굴에 앞으로도 웃음꽃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는 일요일에는 예단을 드리러 안동 고향집에 간다. 갈 때 잊지 말고 꼭 예쁜 덧신 하나 사서 가야겠다.
덧) 심순덕 시인의 시(詩) 한 편 첨부 합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 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 인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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