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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8일 12시 18분 등록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의 목소리가 불안한 듯 떨리고 있다. 나는 회의 중이라 전화를 끊일 수 밖에 없었다. 회의 시간 내내 엄마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엄마에게 전화를 급히 했다. 하지만 통화가 되질 않는다. 엄마가 나에게 전화 하는 일은 살면서 흔한 일이 아니다. 칼 퇴근은 생각하기도 힘들지만, 오늘 만큼은 엄마에게 빨리 달려가야 했다. 일을 뒤로 하고 집으로 부랴부랴 달려 왔다. 엄마는 해가 저물어가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엄마의 얼굴빛이 해를 등진 그림자처럼 어두웠다.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는 막내둥이에 대한 실망을 늘어놓으셨다. 낮에 동생과 심하게 다투셨나보다. 엄마의 목소리가 또 떨리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조마조마한 마음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막내랑 싸우고 친구들과 등산을 갔는데, 등짝이랑 온몸이 아파서 한발 한발 걷기가 너무 힘든거야, 소라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가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세상에, 엄마가 내 앞에서 울고 있다. 엄마가 내 앞에서 울고 있다.’ 나의 30년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다. 믿을 수가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소리가 엄마한테 들릴까봐 조마조마 했다. 조금이라도 소리가 덜 세어나가게 두 손으로 가슴을 꾹 누른다.

“엄마가 너희들을 잘못 키웠나보다. 너희들을 이 세상에 잘못 나오게 했나보다. 엄마가 매번 부족해서 늘 이렇게 힘든가보다. 어제는 언니 집에 가는 길에 전철을 탔는데, 신문 줍는 아저씨 5명이 한꺼번에 정신없이 타더라. 그리곤 서로 싸워가며 신문을 한 장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냥 눈물이 나는 거야 소라야. 고생하는 아빠도 생각나 안쓰럽고, 사는게 뭔지, 엄마가 요즘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일에 눈물이 자꾸 난다..” 엄마는 더 이상 흐느껴 울지도 못하고 꺼이꺼이 눈물을 흘리셨다.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심장이 오그라들고 또 오그라들며 짜내는 아픔이 이런 걸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침묵 속에서 눈물이 볼을 지나 가슴의 길로 타고 내려갔다. 그때, 엄마의 포옹이 스쳐지나갔다. 고3때, 나는 조각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가정형편으로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던 나는, 몇 개월의 화실수업을 뒤로하고 꿈을 접어야 했다. 뒤늦게 다시 인문계로 공부를 시작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내가 대학입시에 처음으로 실패했을 때, 두려움이 앞서 말을 꺼내지 못하던 나에게 엄마는 따스한 포옹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센스 있는 농담도 잊지 않으셨다. “폭신폭신 하지? 엄마가 한 쿠션 하잖니” 나의 눈물과 실패 그리고 웃음이 뒤범벅이 되었던 그때, 그렇게 엄마는 나의 실패를 품어내는 폭신폭신한 영웅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이제는 엄마를 내 품으로 안아야 할 때다. “엄마 안아 줄께.” 혹시라도 엄마가 날 이상하게 보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며, 용기 있게 두 팔을 벌렸다. 엄마는 거짓말처럼 나의 품에 안겼다. 놀라움도 잠시, 나의 몸이 한 송이의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활짝 핀 나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한 마리 꽃벌 같은 엄마. 꼭, 나의 어린 딸 같다.

엄마의 우주는 내 품안에 쏙 들어올 만큼 작아졌다. 작은 몸에는 완결되지 않은 엄마의 한숨들, 사랑들, 절망들, 기다림들, 추억들, 시간들이 파도친다. 그 파도의 리듬이 내 몸으로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 졌다. 내가 아파하던 그때, 엄마도 먹먹해진 마음을 뒤로하고 나를 품었다는걸 새삼 깨닫게 된다. 꼭 안긴 엄마에게 나는 이야기 했다. “엄마, 기억해? 엄마가 이 세상에 날 내 놓은게 아니라, 내가 엄마를 선택해서 이 땅에 온 거야. 내가 엄마한테 반해서 엄마배속에 자리 잡고 버텼다고. 얼마나 경쟁률이 쌨는데. 그러니 그런 말 말아요. 나 엄마 원망 절대 안해. 오히려 엄마가 나 원망스럽지?” 순간 ‘킁킁!’. 막혀있던 콧물 터지는 소리. 엄마가 허탈하게 웃었다. 성공이다.

“엄마, 우리 매일 아침 포옹으로 모닝 인사 하는거 어때?” 늙은 엄마, 계집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그래, 그래, 요샌 아메리칸식 인사가 유행이라더라. 우리도 하자.” 그러신다. 어느새 나는 엄마의 품에 안겨있다. “소라야, 엄마 여전히 폭신폭신 하지?”. 물론이다. 정말 폭신폭신하다. 왜냐하면 그건 엄마의 전부니깐.

누군가의 개입을 향해 온몸을 열어둔 채, 오늘도 그 자리에 여왕처럼 앉아 계신 엄마. 엄마는 늘 그렇게 내게 있다. 나의 역사의 끝에서 서성이는, 아득히 다 마치지 못한 말로, 나의 폭신폭신한 영웅 ‘엄마’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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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27 15:42:39 *.70.72.121
우리 엄마는 전쟁터의 싸움 대장 같았다. 적은 돈으로 살림을 꾸리고 일궈나가시면서 용해빠지신 아버지와 아무것도 모르는 사내아들을 키워내시며 세상사에 돌맹이처럼 이리저리 치이시며 온갖 푸념을 막내인 내게만은 늘 정직하게 털어놓으셨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나마 내가 계집아이인 탓에 그나마 내 눈에는 그것들이 보였나보다.

언젠가 엄마가 우시는 것을 본 때가 있었다. 참으로 용맹하던 장군이 우는 것은 자신의 힘이 딸려서 이다. 살아도 살아도 힘에 부쳐서 약해지는 첫 신호음... 누군가의 이해와 동조를 구하는 빠알간 사이렌이 울려퍼지는 소리다. 그래도 영웅은 울면서도 그 믿음의 자리를 신앙보다 굳건하게 지켜나간다. 그래서 영웅이다. 소라 과제 빨리 했네. 영웅 덕분에.^^ 매일 안아드리자. 철없는 딸로서 강철같은 사랑으로 울 엄마 매일매일 꼭 안아드리자. 영웅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꼭 달라붙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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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05.27 22:26:58 *.128.229.230
잘 읽었다. 소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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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2007.05.28 05:06:46 *.6.5.183
언니... 내가 며칠 전에 좀 많이 안 좋은 꿈을 꿨는데 아침에 눈
뜨자마자 온집안에 울려펴지게 엄마! 를 외쳤어. 그리고는 말했지.
"엄마, 안아줘" 아마 파파 할머니가 되어도 "엄마, 안아줘"는
언제 어디서나 남발할 수 있는 자식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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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7.05.28 09:52:01 *.99.120.184
남자와 여자의 세계는 이런 점에서 큰 차이가 있나 봅니다.
내 기억으로는 엄마 품에 안겨 크게 울어본 경험이 아니 안아본 경험조차 없습니다.

항상 부모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고자 약한 모습을 보여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고자 무진 애를 썼지요.
그러나 부모가 된 지금 아들이 울 때 되도록 많이 안아주려고 합니다. 아빠도 푹신 푹신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마음이 짠 하네요. 오늘 전화라도 드려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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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5.28 13:00:41 *.244.218.10
따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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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05.28 16:05:29 *.249.167.156
소라누나가 돌아왔네^^ 살랑살랑 봄바람이 나서 어디론가 떠났다가, 폭신폭신한 감성을 껴안고 다시 돌아왔네! 많이 반갑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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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5.28 19:06:34 *.112.72.168
내가 연구원 시작하고 읽었던 연구원 글들 중에 최고의 글이다.
짧은 글 하나가 어떻게 이렇게 울리고 웃길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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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뎀뵤
2007.05.29 09:36:26 *.151.244.28
예전에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쓴적이 있어요. 선생님만 읽게되는 20장짜리 개인사인것 같아요. 언니글을 읽으면서 내 글에서 무엇이 부족했구나 끄덕끄덕 알았습니다. 잘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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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29 09:54:42 *.72.153.12
찡하다.

난 아빠하곤 놀아도 엄마하곤 안노는 아이였는데...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구. 미안하네.

아씨~ 학원가야 하는데, 소라. 다음에 만나면 나 안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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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7.05.30 13:55:59 *.252.38.242
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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