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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연구
피터 드러커 (Peter F.
Drucker: 1909.11.19 ~ 2005.11.11) 190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으나 생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 경영학자이자 교수,
컨설턴트, 작가로 30권이 넘는 경영서적을 썼다. 20세기의 기업 경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 중의 하나로, 경영학의
아버지, 구루, 미래학자 등으로 불렸지만 정작 그는 ‘미래학자’로 불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대신에 그는 스스로를 “사회생태학자(Social Ecologist)”라고 불렀다. 피터 드러커, 경영학을 그것도 미국의 대학교에서 배우면서 지겹도록 들은 이름이다. 그의 책을
제대로 정독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Harvard Business Review) 등에
쓴 그의 글은 매니지먼트나 마케팅 수업의 교재로 많이 읽었다. 2000년대 초반에 경영학과 대학원 학생으로
그의 글을 읽으면서 너무나 뛰어난 그의 혜안과 방대한 지식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번 주에
리뷰할 책이 그의 책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기대감에 잠시 설레기도 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 걸까? 아니면 내가 변한 걸까? 기대와는 달리 첫 부분부터 뭔가 이상했다. 뒤로 가면 좀 다르겠지… 했는데,
별로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좀 더 실망스러웠다. 이
책이 첫 출판되었던 10여 년 전에 읽었더라면 달랐을까? 지금, 즉 조직을 떠났고 앞으로는 그와 같이 큰 규모의 조직에서 일할 생각이
없는, 시점에서 읽은 이 책의 느낌은 뭔가 시대에 많이 뒤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다. 내가 조직에서 일하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다. 2주 전에 읽었던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과 비교한다면, 아직도 조직 내에서의 개인의 성공에만 집중하는 그의 관점이 매우 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찰스 핸디가 피터 드러커보다 23년이나 늦게
태어났고, 그는 아직도 현역이다. 다를 수 밖에 없겠다. 다소 실망스럽고 공감이 안 가는 부분도 많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고 해도
자신이 살지 못하는 앞 날에 맞춰 글을 쓰기는 어려웠겠지. 책을 읽고 나니 그가 왜 “미래학자”로 불리고 싶어하지 않았고,
또 예측이나 예언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싫어했는지 이해가 된다.
저서에는 <The End of Economic Man> (1939),
<The Concept of the Corporation>(1946), <The New Society> (1950),
<The Practice of Management>(1954), <America’s Next Twenty
Years>(1957), <The Age Of Discontinuity>(1969), <Technology,
Management and Society>(1970) <The Changing World of the
Executive>(1982),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1999) 등이 있다.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한국 독자들에게_한국의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9 지금 한국의 교육받은
사람들이, 전문가들이, 경영자들이 그리고 학생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도전들은 50년 전 그들의 조부모와 부모들이 부딪쳤던 도전들과는 매우 다릅니다. 그러나 해결해야할 일들이 아주 많은 데 비해 시간은 별로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지난 50년간 한국이 이룩한 것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일은 고도로
교육받은, 성취 능력이 뛰어난 지식 근로자를 창출한 것인데, 그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준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16년 전에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고도로, 성취 능력이 뛰어난 교육받은 지식 근로자들이
미래를 위해 큰 도움이 안되는 시대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렇게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미래를 살아갈 세대를
어떻게 교육해야할 지 모르고 길을 잃고 있다. 2001년과 같은 점은 여전히 해결해야할 일들이 아주
많은데 비해 시간은 더 없다는 정도…?
서문_지식 경제 시대의 개인과 기업 11 나로서는 20세기에 일어난 사건들 가운데 ‘인구 혁명’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고 싶다. 인간의 삶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 인구 혁명 말이다. 12 20세기 초에는
어느 국가에서든 육체 노동자가 전체 노동 인구의 90퍼센트 내지 95퍼센트를
차지했다. 농부들, 가정의 하인들, 공장의 노동자들, 광부들 그리고 건설 현장의 인부들이 노동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것이다. 또한 평균 수명, 특히 평균 근로
수명(working life expectancy)이 아주 낮았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50세 – 당시 노령 인구로 취급되기 시작한 연령
– 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육체 노동을 할 수 없는 무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런데 오늘날 개인의 평균 수명, 특히 지식 근로자의 평균 수명은 20세기 초에 예측되었던 것 이상으로 월등히 증가한 반면, 고용 기관의
평균 존속 기간은 실질적으로 감소했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혁명까지는 아니겠지만 인구 변화가 사회를 다시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 나라의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는 그의 저서 <정해진
미래: 인구학이 말하는 10년 후 한국 그리고 생존전략>에서 ‘사회 변화와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수단이 “인구 변동”이란 것을 깨닫고 이를 읽어내는 해석력을 가져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3 따라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지식 근로자들은 그들의 고용 기관보다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남은 인생의 후반부를 위해 새로운 경력을 쌓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며,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고, 더 많은 새로운
관계를 개발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13 지식 근로자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스스로 보유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의
생산 수단을 어디에나 가지고 갈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지식 근로자의 “생산 수단”이 조직을 벗어나면 크게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회사를 그만뒀고, 그러다가 2년이 넘게 헤매기도 했다. 지식 근로자가 자신의 생산 수단이 조직
밖에서도 그 자체로도 효용이 있는지 꼭 확인하고 조직을 떠나기 전에 보완, 고유의 생산 수단화, 상품화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16 되풀이하거니와, 지식 근로자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과거의 어떤 근로자와도 다르다. 첫째, 지식 근로자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휴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지식 근로자는 어떤 고용 기관보다도 더 오래 살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지식은 과거의 어떤 자원과도 다른 매우 독특한 자원이다. 지식은 오직 고도로 전문화되었을 때에만 효과를 발휘한다. 17 이러한 사실은 모든 지식
노동에 정확히 적용된다. 지식 경제에서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 이것은 일본 기업을 포함하여 전통적인 대부분의 기업이 개발하려고 노력한 인적 자원의
모델이지만 – 의 역할이 매우 제한된다. 정말이지, 제너럴리스트는 그 자신이 지식을 관리하고 또 지식 근로자를 관리하는 전문가가 되는 경우에만 존재 가치가 있다. 그것은 또한 아무리 ‘충성심’을
강조할지라도 앞으로 지식 근로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고 개별적인 특성을 강조해 주는 대상으로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 아닌 자신의
전문 분야를 택하게 되리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앞으로의 공동체는 어디에서 그리고 누구를 위해 일하든지
간에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될 것이다. 19 이제 단 하나의 의미
있는 경쟁 우위는 지식 근로자의 생산성이다. 그리고 지식 근로자의 생산성은 경영자의 손에 달려 있지
않고, 거의 대부분 지식 근로자 그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앞으로
고용 기관의 성공은 지식 근로자 개개인에게 더 많이 의존하게 될 것이다. 1.
새로운 사회의 거대한 변화 제1장.
지식의 전환과 지식 사회 32 서양과 동양 모두에서
지식이란 언제나 ‘존재(being)’에 대해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지식이 ‘행위(doing)’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지식 그 자체가 자원이 되고 실용적인
것이 되었다. 과거에는 언제나 사유 재산이었던 지식이 어느 한순간에 공공 재산이 되었다. 지식의 의미가 변화하게 된 첫번째 국면인 100년 동안 지식이 작업 도구와 제조
공정 그리고 제품에 적용되기 시작함으로써 산업 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 일어났다. 또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말하는
‘소외’, 새로운 계급과 계급 투쟁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공산주의가
탄생하였다. 1880년경부터 시작하여 제 2차 세계대전 무렵
최고 절정기에 이른 두번째 국면에서 새로운 의미의 지식은 작업(work) 그 자체에 적용되었다. 이는 ‘생산성 혁명(Productivity
Revolution)’으로 연결되었고, 그 후 75년만에
생산성 혁명은 프롤레타리아들을 상류 계급과 거의 맞먹는 소득을 올리는 중산층 부르주아로 바꾸어 놓았다. 결국
생산성 혁명은 계급 투쟁과 공산주의가 무릎을 꿇도록 만들었다. 40 기술학교와 <백과전서>는 1,00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장인 기술의 비밀을 한데 묶어 정리하고 출간하였다. 이 작업은 경험을 지식으로
바꾸었고, 도제 제도 대신 교과서를 만들었으며, 은밀한 비밀처럼
전수되던 것을 공개적으로 전수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또한 지식의 응용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런 것들이 바로 지금까지 우리가 ‘산업 혁명’이라고 불러왔던 것의 본질이다. 즉 기술에 의한 사회의 전환과 문명의
세계적인 확산 말이다. 이에 더해 21세기는 인터넷이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되었거나
집안에 몰래 전수되어 오던 기술의 비밀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Copy-right 이니 Copy-left니 말도 많다. 내가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이것 역시 기술에 의한 사회의 전환과 문명의 세계적인 확산이다. 51 그러나 테일러가 지식을
작업에 적용하기 시작한 지 몇 년 안 되어 작업자의 노동 생산성이 연간 3.5퍼센트 내지 4퍼센트씩 향상되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산해 보면, 매 18년마다 생산성이 두 배로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테일러의 훈련 방식을 도입한 국가들의 생산력은 거의 50베 가까이
증가하였는데, 이 놀라운 생산력 증대야말로 모든 선진(developed)
국가에서 생활 수준과 삶의 질을 월등히 향상시킬 수 있었던 근원이었다. 증대된 생산력의 반 정도는 보다 높은 생활 수준을 의미하는 구매력의 증대로 나타났다. 나머지 3분의 1 또는 절반 정도는 여가 생활의 증가로 나타났다. 선진국의 근로자들 역시 1910년경까지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연간 3,000시간 가까이 일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일을 많이 한다는
일본인들도 연간 2,000시간 정도 일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
근로자들은 연간 약 1,850시간을 일하며, 독일인은 잘해야 1,600시간 정도 일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생산력은 80년 전과 비교해 시간당 50배나 증가하였다.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 나라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163 시간이다. OECD 가입국 중 멕시코에 이어 2위라고 한다. 1위가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OECD 국가 평균 근로시간의 1.3배 이며 네델란드 사람들 보다는 1.6배 더 많은 시간 일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노동생산성은 이들 나라에 비해 떨어진다고 한다. 뭐가
문제일까? 해결 방법은 있는 걸까? 59 경영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 주위에 있어왔다. 나는 “당신은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경영자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언제나 이렇다. “4,000여 년 전 최초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지을 생각을
하고, 설계하고 그리고 건설한 사람이지요. 피라미드는 아직까지도
무너지지 않고 여전히 서 있지 않습니까?” 제1장.
조직 사회와 지식 근로자 67 지식은 빨리 변한다. 오늘은 확실했던 것이 내일에 가서는 언제나 어리석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지식의 본질이다. 새로운 조직 사회에서 어떤 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갖고 잇는 지식인은 4년 내지
5년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유하고 있는 지식이 모두 진부한 것이 되어버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되고 만다. 69 앞으로 조직들은 기존의
제품과 정책과 경영 관습을 어떻게 지속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것을 폐기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 70 둘째, 모든 조직은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즉 이미 성공을
거둔 어떤 지식을 응용하여 새로운 제품을 창출해내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까지는 일본 기업들이 이런 일을 가장 잘해왔다. 이런 사실은
일본 가전 제품 회사가 미국 기업이 최초로 발명한 테이프 리코더를 응용해 얼마나 많은 새로운 제품을 내놓았는가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성공 경험을 활용하는 능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미국 지역 교회들의 하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72 모든 변화는 ‘불공평하다.’ 모든 변화는 안정을 깨뜨린다. 76 사회적 힘은 사회적 책임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재가 되고 만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권력은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 따라서 조직은 성과를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조직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청은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확대될 것이다. 81 산업 사회의 역사를 통틀어
보건대, 기계공들과 같은 모든 육체 노동자들은 언제나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시를 받으며 일했다. 하지만 지식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이런 식의 감독을 할 수가 없다. 지식 근로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조직 내의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으면, 지식 근로자들은 근본적으로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82 전환기는 고통스러웠고, 새로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도 전보다 적은 돈을 받으며 일해야 했고, 또한
전처럼 즐겁지도 않았다. 그러나 일시 해고되었던 지식 근로자들은 그들에게 지식이라고 하는 ‘자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직에서도 생산을 위한
물리적 도구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지식 근로자와 조직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 이제 더 이상 봉급을 주는 것만으로는 조직에 대한 종업원들의 충성심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직은 지식 근로자들에게 그들의 지식을 작업에 투입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지식
근로자들의 충성심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82 현대의 조직은 주로 지식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는 까닭에 동등한 입장에 잇는 사람들의 조직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모두 동료 내지는
협력자여야 한다. 지식 그 자체로서 서열을 매길 수는 없다. 지식의
서열은 그것이 공동의 과제에 공헌하는 바에 딸라 평가되는 것이지, 지식 그 자체로서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현대의 조직은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구성된 조직이 될 수 없다. 현대의 조직은 팀(team)처럼 조직되어야 한다. 1.
지식 노동과 지식 근로자의 생산성 제2장.
생산성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 93 자본도 기술도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지식을 이용하는 일에 있어서는 결코 자본이 노동(즉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새로운 기술도 그 자체로는 지식
노동의 생산성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물건을 생산하고 운반하는 일에 있어 자본과 기술은 경제학자들의 용어에
따르면 ‘생산 요소들(factors of production)’이다. 지식 노동에 있어 그것들은 ‘생산 도구들(tools of production)’이다. 그것들이 생산성을 향상시키느냐
아니면 저하시키느냐 하는 것은 사람이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95 ‘보다 현명하게
일하기(Working Smarter)’는 ~ 지식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는 ‘유일한’ 열쇠이다. 또한 지식 노동에 있어서 ‘보다 현명하게 일하기’가 갖는 의미는 물건을 생산하고 운반하는 일에 있어서의 그것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 지식 노동의 생산성 향상에 있어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업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수행하려 하는가?” 그리고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만 한다. 지식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업을 다시 정의해야 하며,
특히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100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은 지식 노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외과 의사는 수술실에서 전화를 받지 않으며, 변호사도 사건 의뢰인과 상담하는 중에는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효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102 현장의 판매책임자들은
고객들을 응대하는 대신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근무 시간의 3분의
1을 빼앗기고 있다. 그리고 엔지니어들은 작업장에서 한창 바쁘게 일해야 할 시간에 회의실
의자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직무 충실화(job enrichment)가 아니다. 그것은 직무의 착취(job impoverishment)이다. 직무의 착취는 생산성을 파괴한다. 근로자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사기를
떨어뜨린다. 103 지식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지식 노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에 대하여
봉급을 지불하는가?” 그리고 “이 직무는 어떤 가치를 창출하기로
되어 있는가?” 104 지식 노동들
중 몇 가지 직무들의 성과는 곧 질(質)을 의미한다. 그 하나의 예가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수행하는 직무인데, 이 직무에서 성과의 양(量) – 연구 결과의
수 – 은 질적인 문제에 비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 성과가 질과 양 두 가지로 구성되는 지식 노동도 매우 많다. 백화점 판매원의
작업이 그 한 예이다. ‘고객의 만족’은 질적인 성과이기
때문에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 질적인 성과는 판매 전표의 매수나 총판매액과 같은 양적인
성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105 지식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특정 직무가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를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분석해야 할 일’과 ‘개선해야 할 일’ 그리고
‘변화시켜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도 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특정의 지식 노동에 있어서 생산성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09 우리가 일본의
기업들로부터 정말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있지 않고 이미 잘하고 잇는 것을 훨씬 더 잘하게 되는 데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지난 몇 년간의 관찰로 알게 된 것인데, 지식 근로자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가르칠 때 가장 잘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110 정보 시대에는
모든 기업이 배우는 기관(learning institution)이 되어야 한다고 흔히 이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은 또한 가르치는 기관(teaching
institution)이 되어야만 한다. 제3장.
어떻게 성과를 올릴 것인가 112 반면에 모든
조직에는 상당히 높은 성과를 올리는 끈질긴 사람들도 있다. 다른 머리 좋은 사람들이 종종 ‘창조성’과 혼동되기도 하는 열정과 분방함 속에 빠져 있는 동안 그들은
동화 속의 거북이처럼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결국에는 목표 지점에 먼저 도달하는 것이다. 지식 근로자에게 있어 지능과 상상력 그리고 지식은 기본적인 요소로서 이 요소들을 성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목표 달성 능력(effectiveness)이 필요하다. 지능과 상상력 그리고 지식
그 자체는 성과의 한계를 설정할 따름이다. 114 육체 노동자들의
성과를 측정하고 검증하기 위해 개발된 평가 시스템 – 산업공학을 비롯하여 품질 관리에 이르기까지 – 은 지식 근로자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불량품밖에 만들지 못할 멋진
설계도를 재빨리 만드는 엔지니어만큼 비생산적이고 기업의 경영자를 실망시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올바른’ 일을 하는 것만이 지식 노동을 효과적인 것으로 만든다. 지식 노동은
육체 노동을 평가하는 척도로는 측정될 수가 없다. 지식 근로자를 직접적으로 세부적인 면까지 감독할 수는 없다. 다만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지식 근로자는 스스로 방향을 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성과와 공헌, 즉 목표 달성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115 정말이지, 우리는 지식 근로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지식 근로자 고유의 일이다. 생각하는 것이 곧 ‘일’의 시작이다. 지식 근로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그 자신의 목표
달성 능력 혹은 성취 능력이다. 만일 목표 달성 능력이 부족한 지식 근로자가 있다면,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없고 공헌하고자 하는 의욕도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정해진 근무 시간만 겨우 때우며 일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