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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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병사들과 함께 있을 때 사랑하던 젊은 친구 헤파이스티온이 죽었다. 자신의 살과 피가 절반이나 찢겨나간 것처럼 그는 주체할 길 없는 슬픔에 빠졌다. 바빌론으로 돌아와서는 술에 빠져서 지냈다. 어느 날 저녁 장수들과 술판을 벌이던 중에 왕은 술 시합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프로마코스는 포도주 12리터를 한꺼번에 마시고 1탈란트의 상금을 탔다. 그리고 사흘 뒤에 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연회에서 왕은 6리터를 비웠다. 다음날 밤에도 엄청나게 술을 마셨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그는 열병에 걸려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11일을 버티고 나서 죽었다. 기원전 323년 서른 두 살의 나이였다. 그의 장수들이 누구에게 제국을 넘기겠는가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강한 사람에게.> 』
이렇게 공허한 최후를 맞은 이는 알렉산더 대왕으로 잘 알려진 알렉산드로스 3세이다. 그는 뛰어난 지략과 용맹으로 그리스를 통일하고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육체적으로 그는 거의 신에 가까웠다고 알려져 있다. 모든 스포츠에 뛰어났으며 장난 삼아 사자를 사냥하였다. 이전의 왕들보다 훨씬 잘생겼고, <일리아드> 구절들을 읽고 또 읽어서 수백 구절을 완전히 암기할 정도였다.
그토록 완벽함과 힘을 갖춘 젊은이는 스무 살의 나이에 벌써 왕관을 쓰게 되고, 죽을 때까지 전쟁과 통치로부터 마음을 빼았기게 되었다. 그런 그가 성숙한 판단력이나 교육받은 정신을 발전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가정교사였지만 철학자는 그에게 아주 작은 영향만을 미쳤을 뿐이다. 마음이 어진 사람이 아닌 ‘가장 강한 사람’을 후계자로 정하라는 그의 당부가 귀를 맴돈다. 역사를 쓰는 철학자 윌 듀런트는 그를 이렇게 평한다.
그에게는 카이사르의 조용한 성숙이나 혹은 아우구스투스의 섬세한 지혜가 없었다. 그를 보면 마치 나폴레옹을 보듯이 경탄하게 된다. 그가 혼자 힘으로 세계의 절반에 맞섰기 때문이고, 또한 그는 한 개인의 영혼 안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력이란 천재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지혜의 능력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온통 정력뿐이었다.
죽음 앞에서 그는 신하들을 불러 서기에게 자신의 유언을 기록하게 하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죽거든 나의 모든 몸은 묻되, 오직 두 손만은 밖으로 내어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하라”
신하들은 당황했고,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천하를 손아귀에 쥐었던 알렉산더 조차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뿐이다”
유능함을 앞세워 젊은 나이에도 기세 좋게 피라미드의 전망 좋은 곳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는 정상에 잠시 머물렀다가 곧장 곤두박질쳐 피폐하고, 타락한 생활을 연명하다가 심지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한 때 화려하게 피었던 연예인 이은주, 유니와 더불어 얼마 전 정다빈의 죽음은 모두 ‘사라져버린 인기’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작년 중국에서는 과학계의 선두주자로 꼽혀 온 물리학자와 유기화학자가 각각 36세, 26세의 나이에 학문적 성과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들은 모두 빠르게 달려 올랐지만 결국 빠르게 달려 내려가고 말았다. 역사는 결국 반복된다.
“살면서 남자가 피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초년 성공, 중년 방황, 말년 빈곤이 그것이다." – 한근태의 글에서(작자 기억나지 않음)
나도 여전하다. 과거에 나의 시신경이 거의 죽은 이유, 스테로이드가 들어간 안약을 반년간 넣은 이유, 무리하며 분별의 지식에 매달려 공부했던 이유도 결국 건설회사의 전문경영인으로서 빠르게 성공하고 싶어서였다. 아픈 경험으로 이제는 성공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한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마음이 조급하다. 빨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고 싶은 욕심, 젊은 나이에 학습에 대한 전문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변화는 힘겹다.
잊지 말아야 한다. 빠르게 오르는 것의 약점은 유지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는 것임을. 그것이 대부분의 일찍 성공한 사람들이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유임을. 성공이 또 다른 채찍이 되도록 하는 지혜는 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능력에는 그에 합당한 성품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혜는 능력을 앞선다.
‘어떻게 지혜로워 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은 성품을 훈련할 수 있는가? 성품은 타고 나는 것인가? 지혜는 단지 선택 받은 자들의 몫인가? 만일 그렇다면.. 내 앞엔 절망뿐이다.’
그러나 다행이다. 언제나 절실히 구하면 스치듯 주어진다. 같은 책에서 나는 공자의 이 구절을 만났다.
『온 세상에 최고의 미덕을 펼치기 원했던 옛사람들은 먼저 자기 나라의 질서를 잘 잡았다. 나라의 질서를 잘 잡기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가족을 단속하였다. 가족을 단속하기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렸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였다. 마음을 바르게 하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생각을 신중히 하였다. 생각을 신중히 하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지식을 최대한 넓혔다. 지식을 넓힌다는 것은 사물을 탐구하는 것이다.
사물을 탐구하자 지식이 완전해졌다. 지식이 완전해지자 생각이 신중해졌다. 그들의 생각이 신중해지자 마음이 바르게 되었다. 마음이 바르게 되자 그들은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다스리게 되자 그들은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다스리게 되자 가족을 단속할 수 있었다. 가족을 단속하게 되자 나라가 바르게 통치되었다. 나라가 바르게 통치되자 온 세상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되었다.』
이제야 알겠다. 아름다웠던 그날 밤, 남은 와인을 가지러 댁에 함께 가면서 왜 사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젊었을 때에는 최대한 많이 읽어야 한다”
통합된 지식은 바른 마음과 신중한 생각의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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