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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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사주?
11기 정승훈
2017년 9월 18일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 연락도 없어 전화를 했어요. 아들이 말하길 “나 다니던 중학교에 와서 경위서 쓰고 있어요.”라는 거예요. 아니 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고등학교도 아니고 중학교에 가서 경위서를 쓰고 있나 덜컥 했어요. 작년 생각지도 못한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렸는데, 1년에 한 번씩 뭔 일인가 싶었어요.
집에 온 아들에 말에 의하면 고등학교로 중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중학교에 가게 됐대요. 중학교 3학년이 중학교 2학년 아이를 때렸는데 아들이 사주한 걸로 됐다고 해요. 일의 시작은 아들이 동네의 좁은 길을 가다가 자기가 다니던 중학교 아이들 몇 명이 지나가 길래 옆으로 비켜서 있었대요. 아이들이 지나가고 반대편으로 가는 데 뒤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대요. 그래서 아들이 ‘뭐라고 했냐? 욕했냐? 너 몇 학년이냐?’ 물었고 친구에게 한 소리며 중2라는 대답에 그냥 알았다며 오던 길을 왔대요. 중딩들 철없는 걸 알기에 뭐라 하지 않고 보냈대요. 마침 아는 중3 동생을 만나 중2들에게 발렸다(졌다의 비속어)고 하며 웃으며 이야기하고 집으로 왔대요.
그런데 이후에 일이 이상하게 전개돼서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중3 후배가 같은 중3 친구에게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알지도 못하는 중3 아이가 중2 아이를 불러내서 아들에게 한 행동이 사실이냐고 물으며 때렸다는 거예요. 때린 중3이 맞은 중2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내용을 녹음해서 아들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왔대요. 녹음 내용을 듣고 아들은 ‘왜 이런 짓을 하냐? 그러지 말아라.’ 하고 메시지를 보냈대요. 그땐 그 학생이 때린 걸 알지도 못했다고 하더군요.
맞은 중2 어머님이 겁이 나서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결국 중학교 생활지도 선생님은 그 일과 연관된 학생들에게 경위서를 쓰게 한 거였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맞은 중2 학생이 아들 친구 동생이었더래요. 그걸 알고 아들이 자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며 친구에게도, 친구 동생에게도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대요.
나는 아들에게 지난 일을 다 듣고 어이가 없었어요. 이젠 학교폭력 사주 혐의까지 받게 되다니... 남편과 이야기를 하며 그냥 있다가 사주한 걸로 되면 어쩌나 싶고, 이런 사실을 맞은 아이의 부모님은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아들에게 부모님 연락처를 알아보라고 했어요. 연락처를 받고 전화를 해서 사건의 경위와 맞아서 속상하고 힘드셨겠다는 위로를 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이 사건의 발단이 되어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어요. 그 어머님은 동급생도 아닌 선배에게 맞아서 더 겁이 났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신이 아들이 욕을 한, 우리아들과 길에서 마주친 학생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들이 아니라고 했는데 때리니 어쩔 수 없이 맞다고 했대요. 그러면서 정작 때린 학생이나 부모님은 사과도 없고 연락도 없다고 하더군요. 아들이 사주한 것처럼 된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아들이 사과 전화를 했다는 것도 알더군요. 속으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어머님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아들이 연관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어요.
전화를 끊고 혹 때린 부모님이 우리처럼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연락처를 알 수 없어 연락을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럼 신고한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렸어야 했나 싶었어요. 남편은 가해자 부모님 연락처를 알아보고, 신고가 들어갔으니 그 다음 수순이 어떻게 되는 지 우리가 겪은 걸 알려주면 어떠냐고 하더군요. 난 그건 아니라고 했어요. 남편은 우리도 그 일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데 도와주고 싶다는 거였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지만 혹시라도 가해자 입장에서 이야기한 사실을 피해자 어머니가 알게 되거나, 혹여 잘못 일이 커질지 모르니 나서지 말자고 했어요. 우리가 사건에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되지만 혹시 아들에게 잘못 불똥이 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어요. 그리고 상황에 대한 것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개입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어요.
아마 신고한 어머니도 학교에만 알리면 제대로 처리하지 않을까 싶어 경찰에 신고한 것 같았어요. 경찰에 신고하면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을 거예요.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아들에게 물었더니 때린 학생은 강제 전학을 가게 됐다고 하더군요. 그 외에는 자세히 모른다고 했어요. 나는 그 정도로 해결됐으면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러면서 강제전학 간 그 학생이 그 학교에서 잘 적응할지 걱정이 되더군요. 강제전학을 오면 대부분 처벌에 의한 것이기에 학생, 교사 모두 좋게 보지 않거든요. 그러다 한 번이라도 안 좋은 일에 연류되면 바로 또 강제전학을 보내지기도 해요. 그리고 강제전학의 이유를 모를 것 같지만 결국 다 알게 되더라구요. 피해자 입장에선 같은 학교 다니는 것이 불안하고 무서우니 당연히 취해지는 조치이지만 가해자에겐 또 힘든 학창시절이기도 하죠. 이와 관련해서는 서로의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춘 ‘회복적 정의’와 관련된 내용으로 좀 더 고민하고 글을 써보려고 해요.
여하튼 생각지도 못한 일에 또 다시 연관되며 가슴 철렁했던 일이었어요. 아들에게 웬만하면 뭐든 모른 척하고 아무 말도 말라고 했어요. 남편은 뭐 하러 중3 후배에게 얘기했냐고도 했고요. 부모 입장에선 혹여 라도 또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었던 거죠.
이제 1년이면 고등학교 졸업이네요.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으로 살아가야 할 아들에게 그동안 겪은 일들이 분명 큰 깨달음이 되었을 거예요. 미성숙한 시기에 호되게 치른 값진 경험이 나머지 삶에 기준이 된다면 그것만큼 다행인 것도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