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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연구
카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1875.07.26~ 1961.06.06) 1875년 7월 26일에 스위스의 국경도시, 바젤
근처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고, 할아버지는
유명한 정신의학자였는데, 괴테의 사생아였다는 “불쾌한” 전설이 친척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두 세살 때 있었던 일과 장면을 기억하고, 서너살 때 꾸었던 최초의 꿈을 분석하면서
그의 학문의 기반을 마련한 것을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니다. 매우 기억력이 좋을 뿐 아니라 상당히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언어지능 및 자기 성찰 지능이 높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어릴 때 신경증을 꾸며내서 학교를 빠지기도 했으며 자신이 두가지 인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 뿐 아니라 엄마와 괴테 등 다른 사람들도 겉으로 보이는 인격 외에 숨어 있는 제2의 인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니, 그가 스스로 정신분석학자가 되어
연구를 하지 않았더라면 다중인격을 지닌 정신병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의사가 되기 위해
국가 고시를 앞두고 “운명”과도 같이 정신과를 택했던 건
그 자신과 인류를 위한 그야말로 운명이었던 것 같다.
1900년 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를 선택한 융은 취리히 의과대학의 부르크휠츨리 병원에서 의사로서의 일을 시작했다. 미래가 보장된
내과 의사 대신에 당시로서는 아직 기반이 잡히지 않고 모든 것이 불분명한 정신과를 선택했지만, 다행히도
그는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를 만든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연구하고 일하면서 정신분석학의 중요함과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자유 연상’ 기법을 개선한 ‘단어 연상’ 기법을 제안해서 주목을 받았고, 환자가 지닌 고통의 근본 원인이 되는 다양한 생각의 집합을 일컫는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고안해 내기도 했다.
정신분석학자로 명성이 높아가던 1905년에 융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표현한
프로이트를 만났다. 융은 프로이트와의 첫 만남에서 열 세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을 정도로
인간적, 학문적 교감을 나누었다. 당시 프로이트와 교류하고
그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것은 학계에서 매장될 수도 있는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융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편에 서겠다”며 프로이트의 이론을 지지하고 그와 깊은 학문적 교류를 나누었다. 또한
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융은 프로이트와 교류가 깊어질수록 그와의 입장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즉 모든 정신적 문제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성적 트라우마에서 찾으려는 프로이트와는
달리, 융은 인간의 정서적 문제에는 다른 심리적 원인, 체면차리기
등 복잡한 상황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와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1909년 7주간 함께 한 미국 방문이 결정적인 이별의 계기가 되었는데, 이때
융은 프로이트가 “진리보다는 개인의 권위”를 앞세운다는 인상을
받으며 그에 대한 신뢰가 깨지게 되었다.
이후 융은 취리히 의과대학에서 사임하고 무의식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몰두했다. 이때부터
융은 다양한 신비 현상을 체험하고 영지주의와 연금술에 빠져서 신비주의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To Be
Continued…)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옮긴이 서문: 자서전 문학의 백미 9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Selfstverwirklichung)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는 ‘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많이 들어봤으나 정확히 이해가 안 되는 개념들이다. 이 책을 읽고나면 좀 이해가 되려나? 잘 읽어보자.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12 사실 인간은 모든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결코 알지 못한다. 한 생애의 이야기는 어떤 지점,
즉 그 사람이 기억해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데, 이미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인간은 일생이 어떻게 되어나갈지 모른다. 그러므로 생애의 이야기는
시작이 없으며, 그 목표지점도 단지 막연하게만 제시될 뿐이다.
13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그것은 숫자상으로만 보면 거창한 현상이다.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너무나 불충분하여,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융이 살았던 1960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지금은
과학기술이 너무나도 발전했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남아있다. 아무리 인간이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생명과
우주에 대한 비밀을 알아낸다 해도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의 말처럼 강에서 물 한 바가지를 푸나
한 양동이를 푸나 강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13 언제나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단지 여름 동안만 버틴다. 그러다가
시들고 마는데 하루살이같이 덧없는 현상이다. 생명과 문화의 끝없는 생성과 소멸을 생각하면 전적으로 허무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_유년시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23 나의 기억은 두세 살
적부터 시작된다. 나는 목사관, 정원, 세탁장, 교회, 성곽, 라인폭포, 뵈르트의 작은 성, 그리고
교회 관리인의 농가 등을 회상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호한 바다에 떠 다니는 기억의 섬들일 뿐이다. 그것들은 서로 이어져 있지 않은 듯이 보인다. 아마도 내 생애에서 최초라고 할 만한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 기억은
자못 흐릿한 인상으로만 남아 있다. 나는 나무 그늘 아래 유모차에 누워 있다. 화창하고 따뜻한 여름날, 하늘은 푸르다.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고 있다. 유모차 덮개는
젖혀 있다. 나는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막 눈을 뜨고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나무의 잎사귀와 꽃들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온통 경이롭고, 다채롭고, 그리고 찬란하다. 정말 그의 기억일까? 아니면 기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일까? 나의 최초의 기억은 5~6세 때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건 정말 나의 기억일까? 아니면 엄마나 할머니로부터 들은
말들을 끼워맞추는 걸까? 것도 아니면 그냥 나의 상상일까?
32 꿈에서 나는 그 초원에
서 있었다. 한순간 나는 거기서 테두리가 쳐져 있는 컴컴한 직사각형 구멍이 땅바닥에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 그 구멍으로
다가가서 그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돌 계단이 저 밑으로 이어져 있는 것 보였다. 무서운 마음으로 머뭇거리면서 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밑바닥에는 녹색 커튼으로 가려진 둥근 아치형 문이 하나 있었다. 그 커튼은 방직된 직물이나 수놓은 비단으로 만든 듯 크고 묵직하여 무척 호화로워 보였다. 그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나는 커튼을 옆으로 밀어젖혔다.
~ 창문도 없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데 방은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그 형상의 머리
위에는 어떤 밝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형상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도 어느 순간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보좌에서 내려와 나에게 기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려움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 견딜 수 없는 순간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바깥에서인 듯 위에서인 듯 들려왔다. 어머니가 외쳤다. “자, 그를
좀 보라구. 저것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야!”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두려움으로 식은 땀에 젖어 있었다. 그후로 많은 날 동안 밤마다 잠자러 가는 것이 무서웠다. 그 꿈과
비슷한 꿈을 또 꾸지 않을까 겁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꿈을 꾼다. 그것도 여러 개가 겹쳐진
복합적인 꿈들을 꾼다. 꾸는 동안에는 너무도 생생해서 현실 같을 때도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 잠을 깨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모두 잊어버린다. 그런데 꿈을 것도 네 다섯살 때 꾼 꿈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다니… 정말 경이롭다. 나도 좋은 꿈일 거라고 해몽만 찾아볼 게 아니라
일어나자마자 꿈을 적어봐야겠다. 해석은 좀 나중에…
35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 대한 불안은 잘 생각해보면 모든 어린 아이가 느낄 법하다. 하지만
그런 불안이 그 체험의 본질은 결코 아니었다. 그 본질은 나의 어린 뇌리를 고통스럽게 파고든 인식, 즉 “저것은 예수회 수도사다!”라는
인식이었다. 그러므로 그 꿈에서도 본질적인 것은 기묘한 상징적 치장과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라는 놀랄 만한 해석이었다.
불화와 확실성 속에서 45 나는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고 있는’ 밝은 대낮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차츰 인색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무섭고도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차 있는, 피할 길 없는 어둠의 세계를 예감했다.
48 나는 어떤 사람도 그
필통을 거기서 발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나의 비밀을 발견하여 망가뜨릴 수 없었다. 나는 안정감을 갖게 되었고 나 자신과의 불화로 인한 괴로운 감정은 사라졌다.
49 나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만, 보통 일주일 간격으로 종종 몰래 꼭대기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거기 들보 위로 기어올라가 필통을 열고 그 인형과 그 돌을 바라보곤 했다. 이렇게
할 적마다 나는 미리 어떤 글을 써놓은 작은 종이두루마리를 필통 속에 넣었다. 그 글은 내가 고안해낸
비밀문자로 학교 수업시간에 적어둔 것이었다. 그것은 작은 종잇조각이었는데, 빽빽하게 글을 써서는 돌돌 말아서 그 남자 인형이 보관하고 있도록 그에게 전달되었다. 새로운 종이두루마리 하나를 보탠다는 것은 항상 엄숙한 의식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기억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무슨 말을 인형에게 전하고 싶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의 ‘편지들’이 인형에게 일종의 도서관을 의미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 편지들은 특히 내 마음에 드는 어떤 문장들이 아니었나 막연한 추측을 해본다. ~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결코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비밀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가 자문해보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이런 아련한 기억이 없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은 부모님과 동생들 말고도 할아버지와 삼촌까지 다 같이 살던 대가족이었다. 나만의 공간은
커녕 방도 따로 없었다. 다락마저 짐들로 가득 찬 창고 같은 곳이었지,
호젓이 숨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의 이런 아련한 경험이 융을 독특한 관점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 같다.
52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_학창시절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55 그 세계에서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유력한 명사들이 크고 화려한 저택에 살면서 빼어난 말들이 끄는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다녔으며, 품위있는
말투로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했다. 좋은 옷에 세련된 예절을 갖추고 용돈이 풍족한 그들의 아들들이
이제 나의 동급생이 되었다. 나는 놀라움과 은밀하고 지독한 부러움을 안은 채 그들이 방학 동안에 알프스, 그러니까
취리히 근처 저 ‘불타오르는 눈덮인 산들’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바다에 갔다 온 이야기도 들었는데, 나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치 그들이 또 다른 세계, 즉
붉게 타오르는 눈덮인 산들의 다다를 수 없는 영광으로부터, 그리고 너무 멀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바다로부터
온 존재들인 양 나는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가난하다는 사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목사요 나는 그보다 더 가난한 목사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경험한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고등학교까지는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비슷비슷한 아이들이었던 것 같은데, 대학에 들어가니까 너무나도 다른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이름도 못 들어본 남도의 섬에서 온 아이가 있는 가 하면, 아빠를 따라 세계 여기 저기에서 사다가 온 아이들도 있었다. 나도
놀라움과 부러움을 안은 채 그 아이들이 살았던 인도며 미국에서의 삶을 듣곤 했었다. 그리고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를 자유스럽게 하는 그들을 동경했었다. 아마도 내가
이후에 글로벌 라이프를 지향하는데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56 아버지가 나에게 “오늘밤 너에게 누이동생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무척 놀랐다. ~ 어머니는 작은 생명체를 팔에 안고 있었다. 그 모습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노인처럼 붉고 쭈글쭈글한 얼굴에 눈을 감고 있었다. 아마도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눈을 뜨지 못하는 듯했다.
63 수학수업은 나에게는 정말
무섭고 괴로운 시간이 되고 말았다. 다른 과목은 쉬었다. 수학에서도
나의 우수한 시각기억 덕분에 오랫동안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으므로 대개 좋은 점수를 딸 수 있었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나를 둘러싼 광대한 세계 앞에서 느끼는 왜소감은 내 마음에 의욕상실뿐만 아니라 일종의 은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것들이 학교를 극도로 싫어하게 만들었다.
65 “~ 그 아이가 만일
불치의 병에 결렸다면 끔찍한 일일세. 나는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다 써버렸어. 만일 그 아이가 자립해서 살아갈 수 없다면 그 아이는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현실과의 충돌이었다. ‘아, 그래. 그렇다면
나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쳤다.
67 신경증은 나의 또 다른
비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부끄러운 비밀, 일종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럴 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성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때로는 학교에 가기 전에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공부한 적도 있었다.
67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돌 하나, 식물 하나, 그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잇는 것으로 보였고 형용할 수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 무렵 나는 자연으로 빠져들면서, 말하자면 자연의 본질 속으로 숨어들면서 모든 인간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너는 누구냐? 68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안개의 벽 같은 것이 나의 등뒤에 있었고, 그 벽 너머에는
아직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에게 내가’ 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이모가 했었다던 성령 체험과도 비슷한 것 같다. 아쉽게도
나는 이런 강렬한 느낌을 아직까지 한 번도 못 겪어봤던 것 같다. 앞으로 죽기 전에 가져볼 수 있을까?
70 그때 몹시 난처하게도
나 자신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수학도 잘 모르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위대한 권위를 지니니 중요한 인물로 경시해서는 안 될 사람이며 그 공장주(집주인을 가리키는 말인 듯함 –옮긴이)보다 더 막강하고 영향력을 지니고 잇는 인물이었다. 이 사람은 18세기에 사는 노인으로, 조임쇠가 있는 신발에 하얀 가발을 쓰고
높고 오목한 뒷바퀴들이 달린 마차를 타고 다녔다. 그 바퀴들 사이에는 좌석 하단부가 용수철과 가죽띠
위에 얹혀 있었다. 나도 내가 서로 다른 두가지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힘들어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까지는 하고 있지 않다. 저런 증상이
조금 더 심하게 나가면 자아 분리 또는 다중인격의 정신병을 갖게 되는 것 아닌가? 융은 환자가 아니라
의사가 되었으니 매우 다행이라고 하겠다.
80 하지만 나는 결국 다시금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분명히 하느님도 내가 용기를 내기를 바라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실행한다면, 하느님은 나에게 은총과 계시를 내려주실 것이다.’
80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종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나는 행복감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울었다.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쓰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내가 계시를 체험한 것과도
같았다. 내가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이 나에게 분명해졌다.
81 내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나는 체험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의지로, 아버지는
아주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깊은 신앙심을 내세워 그 의지에 대항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치유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의 기적을 아버지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성서의
계명을 자신의 규범으로 삼았다. 아버지는 성서에 씌어 있고 조상들이 가르치는 대로 하느님을 믿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살아서 직접 임하시는 하느님, 성서와 교회를 넘어서
전능하고 자유로운 하느님, 당신의 자유를 인간이 누리도록 촉구하고, 당신의
요청을 무조건 실현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와 신념들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도 잇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한다면 그는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82 나는 또한 그 체험으로
나의 열등성을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을 일종의 악마 또는 돼지, 어떤
타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버지의 성서를 몰래 탐색하기 시작했다. 복음서에서 바리새인과 세리들에 관한 부분을 읽고는 그 타락한 자들이 선택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다소 만족감을 느꼈다. 불성실한 청지기가 칭찬받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으로 명명되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82 열등감이 커짐에 따라
하느님의 은총은 나에게 점점 더 불가사의한 것이 되었다. 나에 대해 어떤 자신감도 가질 수 없었다. 어머니가 한번은 나에게 “너는 언제나 착한 아이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착한 아이라고? 그것은 일종의 새로운 소식이었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타락하고 열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85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천 년 동안 살아 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정말 청소년기에 생각했다는 건가?
자연과 사원 87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믿어야 해.”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말로는 “나에게 그런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 추켜올리고는 체념한 듯 몸을 돌렸다. 종교란 게 그런 것 같다. 생각을 해서는 믿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자연과 신의 일을 생각하고 체험해서 알 수 있을까? 생각해서
알 수 있는 일들은 인간의 일. 그것도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87 나는 모든 경쟁을 싫어했다. 누가 놀이까지도 경쟁적으로 하게 되면 나는 그 놀이를 그만두었다. 그후
나는 학급에서 2등에 머물렀는데 그것이 훨씬 마음을 편하게 했다. 학교
과제는 몹시 성가셨다. 나는 그것 역시 경쟁심으로 부담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두 인격의 어머니 97 어머니는 나에게 무척
좋은 분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넓고 깊고 따뜻한 마음을 지녔고 무척 친절했으며 매우 살이 쪘다. ~ 그녀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온갖 인습적이고 전통적인 견해를 가졌으나, 그녀의
무의식적인 인격이 갑자기 돌출하곤 했다. 그 인격은 예상 외로 강력했으며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어둡고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 역시 두 개의 인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했다. 하나는 악의 없고 인간적이었으며, 거기에 반해 또 하나는 으스스했다. 그것은 가끔씩만 나타났으나 그럴
때마다 예기치 못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곤 했다. 그럴 때 어머니는 독백을 하듯 말했으나 내게는 유용한
말들이었고, 보통 내 가장 깊은 곳을 찔렀기 때문에 나는 할말을 잃곤 했다. 보통 아이들은 엄마에게서 이런 다른 면을 발견할 때, 놀라거나
무서워하거나 거리감을 느끼게 되지 않나? 그러고 보면 우리들도 이렇게 다른 면을 가진 사람을 볼 때
‘이중인격자’라고 부르며 꺼려했으니 아주 보기 드문 현상을
아닌 것 같다.
100 어머니의 두
인격 사이에는 엄청나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유년시절에 어머니에 대해 불안한 꿈들을 꾸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녀는 낮에는 사랑스러운 어머니였으나 밤에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했다. 그 시간 어머니는 이상한 동물이기도 한 예언자처럼, 곰의 동굴에
사는 여사제처럼 보였다. 고태적이고 잔인했다. 진리와 자연과도
같이 잔인했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자연의 마음(인간 본성에서 솟아나는 것으로, 본성 고유의 지혜를 의미하며 사물을
거침없이 말하는 특징이 있다)’이라고 불러왔던 그것의 화신이었다.
102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그 인식은 마치 나 자신의 착상인
것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으나, 그 목소리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것 같았고 그 상황에
들어맞는 내용을 정확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