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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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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0일 10시 56분 등록

지난주 제 편지(1인 기업가 재키의 열혈 엄마 모드)에 많은 분들이 응답해주셨습니다. 그 중에는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도 있었고 이미 그 시기를 지나 경험담을 들려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응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런저런 일이 많았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걱정이 많았지요. 그 고민이 오늘에서야 잦아 들었습니다. 딸의 편지 덕분이지요.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는 무엇을 중요하게 봐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시성적과 면학 분위기를 이야기하더군요.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1992년이나 25년이 지난 2017년이나 고등학교의 실적(?)은 여전히 SKY를 몇 명 보냈는가로 평가하더군요. 세상이 엄청 변했는데 기준이 똑같다니 신기하지요? 고등학생 자녀를 둔 지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 성적으로 대학에 갑니다. 내신 1등급 올리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 아주 중요해요. 나는 그때 윈터스쿨에 안보낸게 아주 후회스러워요."


윈터스쿨이라고 아세요? 재수생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기숙학원들이 예비고1, 그러니까 중3들을 모아놓고 5주간 스파르타식으로 공부를 시킵니다. 불안한 마음에 지인이 알려준 학원 두 곳에 전화를 해봤습니다. M학원은 이미 예약이 다 찼답니다. 대기번호 60번인데 이 번호로는 가망(?)이 없답니다. (사실 그 학원은 우리 아이 성적으로는 입학이 어렵습니다.) D학원은 아직 자리가 있다고 하네요. 그 정도 성적이면 받아주겠다고 친절하게(!) 말하네요. 5주 수업료는 328만원! 헉! 정말 비싸지요? 아이를 5주나 집떠나 있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분당에 있는 입시학원들도 알아봤습니다. 정말 대부분의 학원들이 예비 고1을 대상으로 한 윈터스쿨을 개설하더군요. 저만 몰랐던 것일까요? 다시 한번 저의 무관심과 무신경을 통렬히 반성했습니다.


며칠 후 EBS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을 인터뷰 했는데 모두들 힘겹고 불안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고등학생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수업 끝나고 편의점에서 라면이랑 김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학원에 갔다가 집에가면 12시가 다 되요. 학원 숙제하다 자면 2시죠. 다음날 6시에 일어나 등교를 합니다. 이런 생활을 무한반복하고 있어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기회 조차 얻을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죠. 단 며칠이라도 마음편히 쉬고 싶어요." PD가 여고생에게 행복하냐고 물었습니다. "친구들과 있을 땐 행복한데 그 외 시간은 아닌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곤 울음을 터뜨립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아버지가 여자 직업은 교사가 최고라며 나에게 교대 진학을 강요했을 때 나는 얼마나 진저리를 치며 싫어했는가? 아버지가 여자의 최고 행복은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 살림하는 거라며 조건 좋은 남자와의 결혼을 강요할 때 나는 얼마나 비참했는가? 내가 싫은 것을 강요할 때마다 아버지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다' 했을 때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던가?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그 말, 그 행동을 내용만 다르지 나도 아이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끝인가? 이후엔 좋은 회사에 취업하고 승진하고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할 것인가? 내 욕심에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은가? "


며칠 후 아이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선 나는 너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 나는 교육철학에 입각해 너를 그리 교육한게 아니다. 나 하는 일이 바빠 너를 방치한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나의 잘못이다. 그러면서 이제와 성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뻔뻔한 짓이다.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네가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다. 열심히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네가 공부의 희열과 맛을 알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나의 기대에 못미친다고 해도 너는 여전히 내 딸이다.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할 것이고 내가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는 것에 의의를 두자."


어제 제 생일에 딸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요즘 성적 문제도 그렇고 고등학교 학원 등등 때문에 자주 부딪혔었지만 이제 제가 마음 다잡고 노력 할꺼니까 천천히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서로 안 맞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해서 관심을 가지는 거니까 앞으로도 잘 맞추어나가요. 생신 너무 축하드리고 이렇게 기회 되는 날에 편지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게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하지도 못하고 예쁜 말만 하는 딸은 아니지만 실망시키지 않도록 앞으로 더 잘 하려구요. 허술한 편지지만 마음 전달 잘 되었으면 좋겠고 정말 많이 사랑합니다. 생신 축하드려요. - 내 최고의 롤모델인 어머니에게 딸이 (편지 원문을 보고 싶다면 클릭!)  


이런 딸이라면 믿고 기다려줘도 되겠지요?

엄마를 최고의 롤모델이라고 하는 딸을 두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저도 딸도 열심히 공부해 원하는 꿈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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