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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연구 카를 구스타프 융(Carl Custav
Jung: 1875.07.26~ 1961.06.06) (Part 1에 이어서...) 융의 이론은 비과학적이라고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책을 읽을수록
이해가 되었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융과는 매우 달랐다. 특히
신화와 종교는 물론이고 영지주의, 연금술, 만다라, 도교, 주역, UFO에 대해 연구한 글은 워낙 모호하고 불투명해서 갖가지 해석과 오해를 불러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비하자면 융의 이론은 뚜렷한 체계나 개념을 잡기가 힘들다고 평가된다. 정신의학자 앤터니 스토는
프로이트에 비해 “융이 이처럼 도외시된 것은 그가 자신의 사상을 쉬운 용어로 잘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1944년에 융은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고, 심근경색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그 와중에 그는 임사체험을 경험했으며,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차라리 이 상태로 세상을 하직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황홀감을 느꼈다. 1947년에는 두
번째 심근경색으로 병원 신세를 졌지만, 건강을 회복한 다음부터는 다시 활발한 연구에 돌입했다. 1948년에는 취리히에 C. G. 융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욜란데 야코비(1890-1973)와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1915-1990) 등은 융의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말년의 저서 중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분석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아이온](1951)과 [욥에게 보내는 답](1952), UFO 현상을 집단무의식의 발현으로
해석한 [현대의 신화](1958), 융 사상의 입문서로 유명한 [인간과 상징](1961) 등이 유명하다. 82세 때인 1957년부터는 5년간
집필 및 구술을 통해 자서전을 만들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이 유명한 말로 시작되는 자서전은 융의 생애와 이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신비 체험에 대한 증언을 담았고, 그의 사후인 1961년에야 간행되었다. 1955년에 취리히에서는 80세 생일을 맞이한 융을 위해 대대적인 축하 행사가 펼쳐졌다. 하지만
그 해 말에는 반세기 넘게 해로한 부인 엠마가 사망하면서, 융도 급속히 노쇠의 기미를 보였다. 1961년 6월 6일
저녁, 칼 구스타프 융은 퀴스나흐트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부르든
부르지 않든, 신은 존재할 것이다.” 융의 묘비에 적힌 문구는
언젠가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상기시킨다. 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자, 융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분을 믿는 게 아니라, 그분을 압니다.”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내 안의 여인 아니마 신화와 환상 315 나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환자들이 스스로 이야기하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의도는 우연에 맡겨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꿈과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단지 질문만을 던졌다. “그것과 관련하여 당신에게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당신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까?” “그것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의 질문이었다. 간혹 답이 안 보이는 것 같은 상황에서 우연 또는 운에 맡겨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나의 의도는 ‘될 대로 되라’는 체념 내지 포기인데… 그러다 뜻 밖에도 잘 되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다. 나의 의식보다 우연이 더 힘이 셌던 건가?
316 꿈은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사실이다.
316 그 무렵 나는
이상하게도 명료한 정신상태 속에서 내가 걸어온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너는 이제 신화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졌다. 그리고 무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 내 안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있었다. “무엇 때문에 모든 문을 열려고 하는가?” 그러나 갑자기 내가 무엇을 이뤄왔는지
의문이 생겼다. 지난 주에 앞부분을 읽을 때만해도 우려했던 것보다 쉽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내친 김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도 읽어볼까,
했었다. 그런데 동기들의 북리뷰를 읽다보니 ‘이런
내용이 있었나? 왜 나는 처음 보는 것 같지’ 하는 부분이
꽤 있었다. 너무 띄엄띄엄 읽었나 보다. 이번주는 읽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서 자꾸 되돌아가서 읽어야 했는데, 내가 정말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고 있는지
확신이 안 들고 있다.
318 그 즈음 끔찍한
환상이 되풀이해서 나타났다. 뭔가 죽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아직도 살아 있다고 느껴지는 그런 환상이었다. 예를 들면 시체를 화장하기 위해 화덕에 넣었는데 그것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식이었다. 이와 같은 환상이 최고조에 달하자 한 꿈속에서도 나타났다. 나도 가끔 비슷한 꿈을 꾸거나 현실에서도 문득 그런 걱정이 드는 때가 있는데… 특히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르던 치르던 사람이 관 속에서 일어났다거나 하는 뉴스를 본 후에 그런 걱정이 들더라. 너무 1차원적인가?
320 그러나 그러한
회고는 효과가 없었고, 나는 나의 무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토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둬보자.” 그리하여 나 자신을 의식적으로
무의식의 충동에 맡겨버렸다. 나와 융에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데 그 후의 액션은
많이 다르다.
320 나는 속으로
말했다. “아하, 여기에 삶이 있구나! 그 작은 아이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내게 결여되어 있는 창조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성인이 된 남자와 열한 살 소년을 서로 이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그
시절과 다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번 더 살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이 내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그 놀이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아이의 놀이를 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 크나큰 체념과
굴욕감의 고통이 따랐다. 건장한 융이 아이의 놀이를 하는 모습을 그려보니 재미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의 장난감을 좋아하고 아이의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설마 이런 이유로 그런건가?
322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너는 종교의식을 치르듯이 작은 마을을 세워 완성해가고 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내 신화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는 중이라는 확신은 느끼고 있었다. ~ 이런 종류의 일은 내 인생에서 늘 되풀이되었다. 내 후반기 인생에서 장애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림을 그리거나 돌을 다루었다. 그런 일은 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생각과 일을 위한
통과의례였다.
324 8월 1일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제 나의 과제는 분명해졌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나자신의 체험이 집단의 체험과 어느 정도까지 연관이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힘써야만
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을 성찰해야 했다 그 시작은 집짓기 놀이에서 생겨난 환상들을 그려내는
일이었다. 이제 이 작업이 우선시되었다. 끝없는 환상의 흐름이 펼쳐졌다. 나는 방향감각을 잃지 않고 길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는 낯선 세계 속에 속수무책으로 서 있었다. 모든
것이 내게는 어렵고 이해하기 불가능한 듯이 보였다. 나는 줄곧 팽팽한 긴장 속에 살았다. 마치 거대한 돌이 내게로 굴러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뇌우(雷雨)가 연이어 일어났다. 내가 그것을 견뎌낸 것은 맹목적인 힘을 지닌 하나의 문제
덕분이었다. 다른 것들은 그 뇌우에 부서지고 말았다. 니체와
횔덜린(Holderlin)과 그외 많은 것이 부서졌다. 그러나
내 안에 마력과 같은 힘이 있어, 내가 환상에서 겪은 것의 의미를 찾지 않으면 안 되도록 처음부터 나를
붙들어주었다. 내가 노도와 같은 무의식의 엄습을 견뎌냈을 때, 보다
높은 어떤 의지에 순종하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고, 그러한 느낌은 나의 과제를 수행하는데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다.
327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환상을 붙잡기 위해서는, 이를테면 나 자신을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해야만 했다. 거기에 대해 나는 저항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무척 불안하기도 했다. 자기
제어력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신과의사로서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미지들을 내 것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감행해야만
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미지들이 나를 자기들 것으로 삼았을 위험성이 있었다.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한 가지 중요한 동기는 내가 감히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을 나의 환자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는 확신이었다. ~ 내가 나 개인뿐 아니라 나의 환자를 위해서 이러한 모험을 자청해서 한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위험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게
했다. 안과 의사는 절대 라식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피부과
의사는 자식들에게 피부과 약을 먹이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의사들뿐이랴. 자기 가족이 절대 먹지 않을 음식을 만들어서 팔고, 자신은 절대
입지 않을 옷을 만들고… 마케터로 일하면서 회사를 선택할 때의 기준이나 고민도 그랬다. 내가
실제로 사용하고 싶은 서비스나 제품을 만드는 곳. 남들에게 구매를 권하면서 부끄럽지 않을 곳이어야 했다.
필레몬과의 대화 340 내 안에서 생겨난
한 여인이 나의 생각에 간섭한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십중팔구 그것은 원시적인 의미의 ‘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혼이 왜 ‘아니마’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자문해 보았다. 왜 사람들은 그것을 여성적인 것으로 상상하는가? 나중에 나는 내
안에 있는 여성상이 남성 무의식 속에 있는 전형적인, 또는 원형적인 형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아니마(Anima)’라고
불렀다. 드디어 나왔다. 아니마.
341 매일 저녁 나는
글쓰는 일에 매달렸다. 내가 아니마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면 그녀는 나의 환상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성실한 글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미 적어놓은 것은 아니마가 왜곡할 수 없을 것이고, 그걸 가지고 책략을 쓰지도 못할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보면, 우리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만 먹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어놓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될 수 있는 한 정직하려고 노력했다. 옛
그리스 격언을 따른 것이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받으리라.” 아니마나 아니무스와는 상관이 없지만 나도 마음 먹은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적어 놓으려고
노력한다. 연초의 1년 계획이든 오늘의 할 일 리스트든, 일단 적어야 우선 순위가 정리가 되고 실제로 하게 된다. 리스트를
적은 뒤에 실제로 한 일을 하나씩 지우는 재미도 좋다. 이번주에 오프 모임이라 할 일이 많다. 내일 집에 돌아가면 주간 투 두(To-Do) 리스트 작성부터 해야겠다.
342 아니마의 말은
대개 유혹하는 힘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교활함을 지니고 있다.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346 니체는 내면의
사상세계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다. 사실 그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소유했다기보다 오히려 내면세계가 그를 소유한 셈이었다. 그는 뿌리가 뽑혀 땅 위를 떠돌아다녔다. 그리하여 그는 과장하는 습성이 생기고 비현실성에 빠졌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날아갈까 걱정이다. 떠돌다 날아가지 않도록 붙잡아줘야겠다.
347 그러므로 나의
가족과 직업은 다행스럽게도 늘 현실감을 잃지 않게 했으며, 내가 정상인으로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증해주었다. 설마 그런 이유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나아서 가족을 만든 것은 아니겠지.
353 나는 심사숙고한
끝에 학문적 출세의 길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무의식과의 실험이 끝나기까지는 내가 공중 앞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었다. 뭔가 엄청난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충만히 채울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대학 교수가 되든 안 되든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교수직을 버린다는
것은 물론 괴로운 일이었다. 숙명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까지 있었다. 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들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점을 여러 면에서 후회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감정은 지나가는 것이었고, 실은 하찮은 것이었다. 이에
반해 다른 것이 중요한 법이다.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때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요즘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나의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지 잘 듣자. 나의
마음의 고통도 사라지길…
354 말해봤자 오해를
사기 십상일 것이었다. 나는 외부 세계와 내면의 이미지세계 간의 차이를 아주 예리하게 느꼈다. 당시에는 그 두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지금 내가 이해하듯 인식할 수 없었다.
나는 단지 ‘안’과 ‘밖’의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심적 체험의 내용이 ‘진실’이며
그것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집단적 체험으로서도 진실이라는 사실을 남에게 제시해줄 수만 있다면, 바깥세계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일이야말로 가장 철저한 노력을 요할 것이었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373 연금술에 대한
나의 작업에서 나는 괴테와의 내적인 관계를 보게 된다. 괴테의 비밀은 그가 수세기 동안 지속된 원형적
변환과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파우스트>를 자신의 ‘주요과업’이라
불렀으며, 그의 생애는 이 드라마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그의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생동하는 실체로서 초개인적인 과정이며 원형세계의 위대한 꿈이라는 것을 인상깊게 지각하게 된다. 나 자신도 그와 같은 꿈에 사로잡혀 있었고 열한 살 때부터 착수해온 ‘주요과업’이 있었다.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즉,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모든 것은 이러한
중심점에서 설명되며 나의 모든 연구는 바로 이 주제와 연관된다.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387 맹목적인 수용은
결코 해답을 주지 못한다. 기껏해야 답보 상태로 있게 할 뿐이며, 그로
인해 다음 세대가 심각한 부담을 안게 된다.
398 오늘날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일찍이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이토록 성공을 거둔 것이 무척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말해야만
했던 것이 말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능한 것이면 무엇이든 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앞의 ‘말해야만 했던 것’의 “말”과 ‘말해졌다’의 “말”은 서로 다른 “말”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도 그렇게 말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일찍이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이토록 성공을 거둔 것이 무척 놀라운 일입니다.”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404 처음부터 탑은
나에게 성숙의 장소였다. 즉, 그 안에서 내가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로 다시 존재할 수 있는 자궁, 모성적 이미지의 장소였다. 탑은 내가 돌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미리 예감했던 것의 실현, 즉 개성화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청동보다도 오래갈 기억의 징표였다. 그것은
나의 존재에 대한 긍정처럼 느껴져 나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쳤다. 건축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단편적으로
그때그때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들만 좇아서 일을 했다. 그래서 내적인 연관성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꿈속에서 탑을 지은 셈이었다. 나중에야 비로소 나는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의미있는 형태, 즉 정신적 전체성의 상징을 이루게 된 것을 알았다. 마치 오래전에 뿌린 씨가 싹이 트는 것처럼 그 일이 전개되었다.
405 나는 전기를
쓰지 않고 벽난로와 화덕에 손수 불을 지핀다. 저녁에는 옛날 등잔에 불을 붙인다. 수도도 없어 나는 펌프로 직접 물을 긷는다. 장작을 패고 음식을
요리한다. 이런 단순한 일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머리가 복잡할 때 뜨개질이나 인형 눈 붙이기 등 단순 노동을 하는 것과 비슷한 건가? 나에게는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 오래 달리기가 나를 가장 단순하게 만드는
일인 것 같다.
411 나는 짜증을
내면서 생각했다. ‘이럴 수가! 이게 꿈이라 여겼는데 이제
보니 실제구나!’ 이런 느낌으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과 덧창을 열었다. 그러나 모든 게 그전과 똑같았다. 죽음처럼 고요한 달밤이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순히 도깨비 장난이야!’ 꿈속의 꿈?? 나도 가끔 꾸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에 나는 거의, 깨고 싶어도 못 깨는 가위에 눌린다.
412 그날 밤, 모든 것이 그와 같이 정말 현실이거나 적어도 그런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두 개의 현실을 거의 구분할 수 없었다. 그 꿈도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골 청년들이 음악소리를 내며 길게 늘어서서 행진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호기심으로 탑을 구경하려고 온 것 같았다.
카르마 418 나의 그릇된
결론은 내가 젊은 날에 제삼자로부터 얻어들은 한 새로운 소문에서 비롯되었다. 즉, 나의 조부 융이 괴테의 사생아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짜증스러운 소문이 <파우스트>에 대한 나의 유별난 반응을 뒷받침해주고 설명하는 것같이 여겨질 정도였으니, 그만큼 그것이 나에게 먹혀든 셈이었다. 나는 환생을 믿지는 않았지만
인도 사람들이 카르마라고 부르는 개념은 본능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무의식의 존재에 관해서 아무런 자각도 없었으므로 나의 그러한 반응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또한 나는 미래가 장기적인 전망으로 미리 무의식적으로 준비되며, 그리하여
투시력을 가진 사람은 훨씬 이전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아맞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지금도 일반인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421 옛 것이 한번
파괴되면 그것은 대부분 아예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파괴적인 전진은 결코 그칠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성의 상실이며 근원과의 단절로서 ‘문화
속의 짜증’과 성급함을 야기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발전의
역사가 아직 전체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현재에 사는 대신 미래에 살며, 황금시대가 오리라는 터무니없는
약속에 의지한다. 사람들은 점점 깊어지는 결핍감과 불만, 초조감에
사로잡힌 채, 새로운 것을 향해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돌진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며,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어둠속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반대로 과거의 특정 시대를 황금시대라 부르며 그리워하거나 좋았던 것만을 기억하며 과거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둘다 현재에 발을 딛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421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이 나쁜 것들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보다 큰 자유에 대한 희망은
국가에 대한 예속의 증대로 사그라들고 만다. 가장
눈부신 과학의 발견이 우리에게 끔찍한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찾던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우리도 그만큼 더욱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온 힘을 다하여 개인의 근원과의 단절이 심화되도록 부추긴다.
그러면 각 개인은 집단의 한부분으로 단지 ‘중력의 혼(니체가
말한 집단정신)’을 따라가게 된다. 융이 살던 20세기 초.중반에도 과학의 발견이 가져온 끔찍한 재앙에 대한 성찰이 있었구나. 하긴
그 때 핵폭탄이 터지고 각종 전쟁무기가 눈부시게 발전했으니 끔찍해할만도 하다. 현재는, 그리고 앞으로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겠지.
422 앞을 향한 개혁, 즉 새로운 방법 또는 ‘묘안’을
통한 개혁은 지금 당장은 확실하겠지만 길게 볼 때는 의심스러우며 어떤 경우에도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즐거움, 만족 도는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실재의 허울좋은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옛스승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서
나온다.” 20세기 유럽 vs 21세기 한국. 말해
뭐하랴.
423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너무 뚜렷하면 우리는 오늘의 시간에 제약을 받아 우리 조상들의 혼이 오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 다시 말해 무의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감지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조상의 세계가 우리의 삶에 근원적인 즐거움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의 삶을 뒤집어
놓고 잇는지, 혐오감으로 외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어둠속에 남게 된다. 우리의 내적인 평안과 만족은, 개체를 통하여 인격화된 역사적 가족이
우리 현재의 덧없는 상황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거의 대부분 좌우된다.
여행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431 우리가 사하라로
들어갈수록 나는 시간이 점점 느려지는 느낌을 받았고, 심지어 시간이 거꾸로 가도록 위협당하고 있는 듯했다. 열기가 진동하며 점점 높아지는 바람에 나는 그만 몽롱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우리가
오아시스 초입의 야자나무와 집에 이르자 모든 것이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보였다. 사막의 매력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사막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막에 가면 잠깐 사이에도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메롱~’ 상태에
빠지게 된다.
438 많은 부분에서
합리적인 특성을 가진 유럽인에게 인간적인 것은 무척 낯설다. 유럽인은 합리적인 특성을 꽤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생의 열정을 희생하고 얻은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원시적
인격 부분이 국부적인 지하존재로 떨어지는 운명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합리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상대적이라는 말인가? 아무리
융이라도 동의할 수 없다. 아니, 번역이 좀 이상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