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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8일 15시 51분 등록
과거사회의 모습과 지나온 나의 길


1. 인류의 과거 역사 중에서 가장 경이로운 떨림으로 다가온 다섯 가지 장면

(1) 꿈을 찾아가다.(절실함에 대하여)

1732년 2월. 길이는 90피트가 될까 말까 하고 너비는 26피트에 300톤 밖에 안되는 돛단배에 900명의 사람들이 짐짝처럼 실렸다. 배에는 휴게실도 갑판실도 없다. 따뜻한 음식이라곤 일주일에 단 세 번 밖에 공급되지 않으며 배급된 음식도 형편없는 데다 양도 매우 적다. 그 음식도 너무나 불결해서 차마 먹을 수가 없다. 배에는 주는 물도 색깔이 시커멓고 벌레들이 우글거려 아무리 갈증이 심해도 마시기만 하면 구역질이 난다. 12주 동안 오랜 항해 끝에도 바로 배에서 내릴 수 없다. 뱃삯을 지불하지 못한 사람은 2주, 3주씩 배에 머물며 있어야 하고 그 사이 목숨을 잃는다. 하선을 하더라도 뱃삯의 댓가로 몇 년 동안 고용살이를 하며 일을 해야 한다. 어린아이들 경우 21세가 될 때까지 노예생활을 해야 한다.

부패한 음식, 갖가지 해충과 질병, 고용살이 등 여러 가지 시련에 불구하고 무엇이 이들을 멀고 먼 낯선 땅에 오게 하였을까?


(2) 2% 부족을 뛰어넘다.(열정에 대하여)

2002년 6월 18일 저녁 8시 30분. 그토록 기다리던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 대 이탈리아전이 열렸다. 초반 이탈리아 선수들의 힘과 체격에 밀려 한국 선수들이 몸싸움에서 나둥그러지기 시작했다. 원래 이탈리아 축구는 수비가 강하고 거칠기로 유명하다. 그런 분위기에 끌려 다니다가 전반 4분에 이탈리아 수비진의 옷을 잡아당기는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었다. 그러나 안정환의 슛을 부폰 골키퍼가 막았다. 기세가 오른 이탈리아 팀이 계속 공격을 하며 주도권을 잡았다. 그 때 토티가 올린 코너킥을 비에리가 헤딩으로 선취점을 뽑았다.

이후 동점을 뽑으려는 한국팀과 이를 방어하는 이탈리아 팀의 공방이 전후반 계속되다 후반 2분을 남기고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었다. 서든 데스 방식의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연장 전반 10분 토티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옐로우 카드!! 그리고 경고 누적으로 레드 카드! 바로 퇴장!! 연장 후반 10분 경 안정환의 환상적인 헤딩골로 8강에 진출하였다. 항상 2%가 부족하던 한국 축구가 뚝심을 발휘하여 연장전에서 이탈리아를 이긴 것이다.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그날의 흥분은 너무나 짜릿해서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3) 불의를 보다.(분노에 대하여)

1987년 봄 축제날 광주민주화 운동의 비디오를 상영하는 날이었다. 길거리에는 장갑차와 총으로 무장한 특전사 군인들이 트럭과 버스로 시위하는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는 장면이 돌아가고 있었다. 더구나 머리에 피를 흘리며 도로에 쓰러져 있는 시민들을 워커발로 사정없이 차고 팬티만 남기고 옷을 벗긴 상태에서 진압봉으로 내리치는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나의 눈에 포착되었다. 손에 힘이 가며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런 장면의 연출자가 바로 대통령 이였다는 사실은 더욱 분노케 하였다.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대학생이 수용하기에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 비디오를 본 이후 학생들의 데모는 더욱 거칠어졌고 험악해졌지만 나는 그런 시위대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그저 뒤에서 몇 번 돌멩이나 던지고 최루탄가스에 눈을 흘리며 도망가는 그런 정도였다. 적극적으로 단체나 모임에 가담하여 나의 소신을 피력하지도 못했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소신도 없이 그저 그 원인에 대한 분노의 표현일 뿐이었다.


(4) 백의종군하다.(재기에 대하여)

원균은 이순신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 많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순신과 계급이 같았다. 하지만 원균은 전쟁초기에 거느리던 군사들과 배들을 거의 다 잃고 이순신에게 명령까지 받는 처지가 되었다.

이순신을 미워하던 사람은 원균 만이 아니었다. 조정 대신들과 왕인 선조도 이순신을 미워하였다. 전쟁을 겪으면서 백성들이 왕과 조정 대신들보다 이순신을 더 존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니시의 계략에 말려든 이순신은 원균의 상소로 내려진 선조의 명령을 어긴 죄로 벼슬을 빼앗기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원균의 패배로 남겨진 13척의 배로 울돌목(명량해협)에서 ‘사즉생, 생즉사’의 정신으로 싸워 133척의 왜군을 격파하는 대첩을 거둔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


(5) 벽이 허물어지다.(개방에 대하여)

동서 분단과 냉전 체제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1989년 11월 9일 마침내 붕괴되었다. 1961년 8월에 동독이 동·서 베를린 사이를 차단했던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망치로 벽을 깨는 독일인들의 모습이 TV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되고 있다. 깨진 벽의 일부를 기념으로 간직하고자 서로간의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1990년 10월 3일 역사적인 독일 통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되었다.

그동안 52년간 단절되었던 경의선과 동해선이 서로 연결되어 시범운행을 하였다. 이 운행으로 통일이 앞당겨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도 통일이 된다면 벽 대신 철조망을 서로 가지려고 싸우겠지. 그럼 미리 절단기를 사두어야 되는 것은 아닌지. 아니 돈을 벌려면 절단기를 미리 생산해야 되겠구나.



2. 나의 과거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3가지 장면

(1) 일등을 하다. (‘하면 된다’는 신념에 대하여)

경남 진해 도천초등학교로 전학을 오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특별한 재능도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어떤 일에 유별난 호기심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태권도 도복이 멋있어서 몇 번 다니다가 자유대련시간에 친구에게 발로 얼굴을 강타당하고 나서 그만 관두었다. 수학을 잘해보겠다고 주산학원에 다니다가 시시해져 관두었다. 서귀초등학교에 기계체조부가 있었는데 덤블링을 연습하다 ‘너는 몸이 유연하지 못하다’고 몇 번 혼이 나서는 그것도 재미없어 관두었다. 처음에는 초기심이 많아 시작하다 지속하지 못하고 관두는 경우가 많은 아이였다.

그러던 아이가 진해초등학교로 전학을 와서 본 첫 시험에서 일등을 하였다. 그것도 반이 아니라 전교에서 1등을 한 것이다. 나 자신도 믿기지 않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반 아이들, 담임선생님, 부모님까지 난리가 났다. 평범했던 제주도 촌놈이 육지학교로 전학와서 그것도 첫 시험에서 일을 냈으니 말이다.

그 당시 학교에서 지금의 자습서 같은 책을 학생마다 무료로 나누어주고 교과서와 같이 공부한 것으로 기억한다. 제주도에서 전혀 없던 책으로 수업시간에 공부한 것이다. 그 때까지 참고서는 사지도 않고 공부에 취미도 없던 내게 자습서를 주고 수업시간에 참고하면서 공부를 하니 참으로 신기하였다. 그 맛에 공부에 빠지게 되었고 그 내용을 중심으로 시험공부를 하였더니 우연찮게 시험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

그 때부터 공부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고 자신 스스로도 ‘나도 잘하는 것이 있구나. 이것을 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2) 실패를 경험하다. (절실함에 대하여)

대학 졸업반이 되어갈 즈음 취업과 군대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막연히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KAIST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친구들과 스터디 그룹을 구성하여 공부하기 시작했다. 마침 학과 내에는 진학준비를 하는 전통적인 스터디 그룹이 있어 시험공부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때 또 한 번의 좌절을 맛보게 되었는데 1차 시험에 합격하고 2차 면접에서 탈락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그 당시 면접관의 질문이 있다. “자네 대학동기 OO와 자네 중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마 당락을 결정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정확한 나의 답변은 기억나지는 않지만 소신 있게 대답은 못했던 것 같다.

이후 다시 KAIST에 재도전하여 진학하게 되었다. 이 때는 실패하면 군대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배수진을 치고 공부하였다. 중간에 군대 영장이 나와 이를 시험이후로 연기하느라고 마음고생도 많이 하였다. 그때만큼 합격에 대해 절실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합격을 하였으니 나에게 큰 기쁨과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3) 반환점을 돌다. (새로움에 대하여)

2006년 4월 어느 날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려는 참에 나무에서 새로 돋아난 새잎을 보았다. 그런데 그 느낌은 이전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하고 새로움이었다. 진한 청록잎 사이로 새롭게 피어난 연한 연두색의 새가지가 돋아난 것이다. 지금도 그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저물어가는 시간 속에 새롭게 피어나는 시작이라고 할까.

나이가 40을 넘어서면서 마라톤으로 치면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그런 느낌이 든 것은 내 자신이 저물어가는 잎에서 새순이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나온 서러운 감정이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꽃을 보아도 아름답다는 느낌을 느낄 수 없었던 나에게 그런 애틋한 감정이 나오리라고는 나 자신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느낌을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내 왈, “당신 최근에 큰 충격을 많이 받아서 그런 모양이야.”

그렇다. 짧은 시간동안 큰 충격을 여러 번 받았다. 친한 교수의 죽음, 아버지의 위암 선고, 학교의 구조조정 등 한 가지 일도 벅찬데 몇 가지일 연달아서 다가왔다. 아마 그 충격이 마음속에 꽉 막혀있던 감성의 물꼬를 틀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지금 이렇게 연구원에서 이런 내 자신을 돌아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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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6.04 09:02:46 *.114.56.245
글쓰기에 있어서 저한테 부족한 부분을 골고루 가지고 계시군요.
분석적이고 세밀화 된 관점, 한 주제에 밀착시켜 나가는 인내심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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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6.04 11:43:05 *.72.153.12
창용 오라버니....이번글을 읽을 때는 친구들과 수다떨고 있고, 사춘기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경쾌하고, 순수한 친구들과 재미나게 재잘거리는 것처럼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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