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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2일 22시 34분 등록
역사 속의 경이로운 사건에 바치는 헌화가와 내 아름다운 물비늘
(과거의 경이로움)


역사 속에서의 경이로운 장면 5가지 - 헌화가 =========================
경이로운 5가지의 역사적인 장면에는 제 나름대로 꽃을 바쳐봅니다.
꽃을 바친다는 의미는 그런 경이로움을 준 것에 감사의 의미도 있고,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각각에게 바치는 꽃의 상징은 그것과의 교류를 통한 경이로움을 의미하기도 하고, 제가 인식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꽃을 바친다는 의미는 마음을 바친다는 의미로, 자신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1. 로마의 길
윌듀란트의 [역사속의 영웅들]에 나오는 이 구절들에서 길, 교류, 소통의 의미가 떨림으로 다가옵니다. ‘노예 이외에도 범죄자들도 함께 동원되어 대규모 도로를 건설하였다. 이 도로들은 무역을 촉진시키고 군대와 사상의 움직임을 빠르게 해주고 마지막에는 이탈리아를 하나로 만들어주었다.'(p158)
'이렇게 합쳐진 고전 세계의 유산이 자라 로마의 도로들과 알프스를 넘어 북유럽으로 건너갔고, 여가 시간이면 당신과 나에게도 넘어와 있다.'(p172)
로마는 길을 건설할 때, 문화의 교류까지 생각 안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때로는 그것을 통해서 엄청난 일이 일어나 버리기도 하지요. 로마는 번성했고, 결국 유럽은 같은 문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헬레니즘, 헤브라이즘. 그리고, 로마는 자신이 만든 그 길을 통해서 들어온 것들에 의해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립니다.
내게 경이로움을 준 이 길에 길과 잘 어울리는 꽃, 코스모스를 바칩니다.

2. 불의 사용
람세스 2세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당시 전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전차였다. 말이 끄는 전차에 이집트는 2명이 타는 전차였으나, 히타이트는 3명이 타도 고속을 낼수 있는 전차였다. 이집트이 전차에 탄 병사 두명은 운전과 공격을 했고, 히타이트의 전차에는 3명은 운전과 공격, 그리고 방패방어를 할 수 있었다. 전차에 한명을 더 태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병사들 무게를 견디어 내는 낼만한 바퀴축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로 가름되었다. 전쟁의 승패는 금방 판가름이 났다.
히타히트에서는 철을 이용한 견고한 바퀴축울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병기 이외에 전차에 철을 할당할 정도로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불을 잘 다룰 줄 알았던 이들은 암석을 녹여 철을 대량생산해 낼 수 있었다.

불로부터 제국으로 이어진 이 경이로움에는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는 제왕을 상징하는 꽃, 붉은 모란을 바칩니다.

3. 금속활자의 이용
청주 흥덕사에서는 부처님과 큰 스님들의 말씀을 간추려 책을 출판을 했다.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많이 찍어 여러 곳에 보급한 요량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인쇄술의 발명(발견)으로 우리는 지금 과거로부터의 유산을 누구나 쉽게 받아 들 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식의 축적될 수 있었고, 보급이 빨라졌습니다. 금속활자는 시민의 힘도 키웠습니다. 금속활자, 책 그것들로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되는 문명은 놀라움입니다.

하나의 것이 많은 것을 만들어 내는 이 경이로움 민들레를 바칩니다.

4. 천장화를 그린 화가와 교황 그리고 그 의미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의 부름을 받고 영묘를 끝내려는 마음으로 로마로 돌아갔다. 그는 시스티나 천장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말을 듣고 기겁하였다. 자신은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니랄고 항의하고는 라파엘라고 그 일에 더 어울리는사람이라고 추천하였다. 율리우슨ㄴ 고집을 부렸고, 미켈란젤로는 마침내 뜻을 굽히고 1508년 5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늙은 교황(율리우스 2세)이 화가(미켈란젤로)의 작업대를 받치는 약한 받침대로 올라가서 '일이 언제 끝나나?'하고 초조하게 여러차례 물었다. 미켈란젤로는 언제나 한가지 대답만을 했을 뿐이다 .
'예술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가 필요하다고 믿는 일을 모두 마칠 때입니다.'
미켈란젤로가 마지막으로 작업대에서 내려왔을 때 그는 지치고 수척하고 나이보다 일찍 늙어 있었다.

천장화를 그린 화가와 그것을 그리게 한 교황 그리고, 그들을 모두 묶고 있는 더 커다란것에 사상(종교)에 백합을 바칩니다.

5.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
1958년 11월 18일 밤, 수많은 발사체가 밤하늘을 날았다. 천지를 진동하는 방포 소리가 밤바다를 뒤덮었다. “적의 허리를 잘라라”그렇게 접근전을 시도했다. 거북선이 없이 판옥선만으로 싸워야 하는 상황 아군의 피해가 늘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적을 완전히 섬멸하기 위해서는 접근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선 수군과 일본군은 한 덩어리가 되어 싸웠다.
자정쯤 시작된 전투는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길고 긴 밤이었다. 멀리 동녘의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일본군은 퇴로를 찾으려 했다. 관음포로 몰려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은 남해의 깊숙한 만이었다. 얼핏보면 바다와 바다가 연결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물길이 막힌 곳이었다. 앞길이 막히자 일본군은 최후의 발악을 했다.
“전 함대 총공격하라!”
“잡아라! 단 하나의 적도 살려 보내지 마라!”
이순신은 직접 독전고 북채를 취고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을까. 도망치던 일본 전선의 후미에 조총수들이 배치도어 잇는 것이. 뿌연 포연 속에서 일본군 조총이 이순신을 노리고 있었다. 혼전 중이라 아무도 눈치 못한 순간, 어쩌면 이순신 자신은 노리는 총구를 보았을지 모르는 순간, 일본군 조총은 불을 뿜었다. 그와 동시에 이순신은 가슴에 묵직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쓰러졌다. 즉각 조카들이 달려오고 부장들이 달려왔다. 조선 수군은 방패로 이순신을 둘러쌌다. 조카 이완이 이순신을 부축했다.
“숙부님.....”
“싸움이 급하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이순신의 유언대로 그의 죽음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정오가 되기 전, 노량 앞바다에 포성이 잦아들었다. 대신 조선 수군의 함성 소리와 감격에 겨운 눈물이 가득했다. 사사건건 이순신의 발목을 잡던 명나라 도독 진린이 이순신의 대장선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진린은 세반이나 쓰러지면서 이순신의 시신 곁으로 다가왔다. 이순신의 전사 소식은 곧 조선 수군 전체에 얼려졌다. 승전고 높던 노량 관음포 바다에 깊은 슬픔이 흘렀다.
임진왜란을 통틀어 가장 길고 치열했던 노량해전, 조선 수군의 승전과 조선국의 승리, 그리고 이순신의 전사로 노량해전은 끝났으며 마침내 길고 길었던 임진왜란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순신의 마지막 해전은 인생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는 마지막 해전에서도 승리했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지 자신에게 결정권을 주었다.

이 아름다운 장면과 장군님께는 봄부터 눈이 오기까지 끊임없이 꽃을 피워내는 백일홍을 바친다.


나의 과거의 아름다운 풍경 - 물비늘 =========================

내 과거의 경이로운 장면 3가지는 늦은 오후 냇물에 비치는 햇살로 만들어지는 물비늘의 반짝임처럼 조악스럽다. 유치하게 반짝이면서 아름다운 반짝임이 있기에 난 과거 속에 머물며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과거 속에서 휴식한다.

1. 첫사랑과 한 여름 밤에

어느날 미순이의 언니의 이삿짐을 나르는 것을 돕는다는 이유로 미순이의 시골집에 가게되었다. 그리고 당일로 집에 돌아올 줄 알았던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갔다가 그 집에 며칠을 머물게 되었다.
여름방학기간이라 시골에서는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도착한 그날부터 고추밭을 메러 나갔다. 고추밭 두렁을 오리걸음을 하며 메고는 끊어질 것 같은 다리 때문에 밥이 제대로 넘어가질 않았다.
시골의 여름밤, 더위에 밖에 마당으로 나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름밤은 짧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그 밤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깊어지는 밤과 함께, 서늘해짐과 함께, 우리의 이성은 또렷해졋다. 그 짧은 여름밤이 길게 느겼졌던 것은, 우리가 자지 않고, 깨어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적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순이의 말대로 인생의 1/3을 자면서 보내고, 깨어있는 시간마져 이것저것 뭘 할지 몰라 해메대가 그냥 가버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날 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우리는 어떻게 살고 싶은 지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문제 제기를 해서 나를 흔들어 놓는 그녀석이 웃고 있다.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얼굴을 한번 만져보고 싶다. 웃는 그녀석이 너무나 좋다. 밤늦도록 그녀석이 너무 좋았다.


2. 쌀집오빠와 고아원에

어느 겨울, 아마도 크리스마스를 전후했을 어느 겨울.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만날 일 없는 쌀집오빠. 그날도 그가 보고 싶어 전주에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 찾아갔다. 거기가면 그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날은 그가 내게 시간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귤 한 박스를 사서 나를 태우고 전주 교외로 나갔다. 그가 계속 방문하던 고아원에 같이 가는 것이었다. 그는 귤박스에 자신의 월급의 일부를 넣고는 마루에 귤박스를 놓고는 잠깐 인사를 하고는 고아원을 총총히 나왔다. 가끔 그는 교회 후배들이랑 같이 그 고아원에 와서는 놀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 돌아오는 순간, 그 순간은 쌀집 오빠의 따뜻함에 전염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쌀집오빠랑 계속 고아원을 같이 갔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진 것이다. 마음이 환해졌다. 어눌하고, 못 생기고, 일을 만들어서 저지르고, 뒷북만 친다고 꾸사리 듣던 그가 좋은 사람을 알게 된 기쁨을 누렸다. 나는 그로 인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사람을 알고 있는 내가 좋아졌다.


3. 공주 - 유성 간 고속국도, 한밤중에

공주대학교에서 석사과정 공부를 늦게까지 하고는 운전을 하면서 돌아올 때. 12시가 다 되어 도로에는 다니는 차가 거의 없고, 그렇게 휑한 밤에. 갑자기 기쁨이 몰려왔다. 그 며칠 사이 책을 통해 읽었던 말이 마음 속에서 울렸다. 책에 쓰여진 말대로, 마음속에 울린 말대로, 내가 너무 가진 게 많아서 기뻤고, 너무나 많은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 기뻤고,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픈 마음이 솟구쳤다.
내게 아무것도 이익을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나 또한 그 어느 것도 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내가 가지고 살던 삶의 자로 나를 재어보면, 나 또한 세상에 준 것이 없으니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내가 세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받고 있음을 알았다.
도로에 중앙 선을 그어준 사람이 고맙고, 그리고, 신호등을 만들어 준 사람이 고맙고, 그리고, 자동차를 만든 사람, 좋은 신호체계를 만들기 위해 고생했던 사람들이 고맙고, 그리고, ‘공사중’ 팻말을 붙여준 사람이 고마웠다. 고마운 것을 세자니 끝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내가 세상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한밤중에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너무 고마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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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6.04 13:36:56 *.114.56.245
정화씨.
지나고 나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글에는 삶이 녹아나고 대화엔 장미향이 풍겨요. 언니라 불러줘서 고맙고 같은 식구가 되어줘서 고맙고.
8월이 기대된다. 몽골갈 때 맛난것 많이 싸갈께. (나 혼자 여행 다닐땐 싸가지고 간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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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7.06.04 13:43:13 *.99.120.184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꿈을 그리는 화가답게, 꽃을 헌화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어릴 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가장 부러웠는데, 거기에 꿈을 그려주니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시간이 되면 제 꿈도 그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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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6.05 05:48:25 *.72.153.12
우제언니, 난 풀을 좋아해요. 야채 많이 ^^*

창용 오라버니....그린다는 게 뭔지...요즘 그리는 것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린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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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애
2007.06.05 10:10:56 *.92.200.65
갑자기 기쁨이 밀려온 순간, 모든 것으 감싸안을 수 있는 사랑이 솟는 느낌, 그때의 울림을 언젠가 자세히 듣고 싶군요. 정화연구원님의 과거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마음이 촉촉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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