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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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상담 자원봉사를 시작하다.
11기 정승훈
11월 초 우연히 청예단 상담자원봉사자 모집공고를 봤다. 지원 자격은 교육학이나 상담을 전공한 석사 이상이었다. 나는 학사는 교육학이지만 석사는 인문학인 문화사다. 엄밀히 따지면 지원 자격이 안 된다. 하지만 교육시민단체에서 사이버 상담위원으로 만 7년의 경험이 있고, 강의 중에 만나는 학부모들과 질의 응답하는 것 또한 상담의 일종이라 생각하고 지원했다. 청예단은 아들 학교폭력과 관련해서 무료 법률 상담을 받았던 곳이
다.
자기소개서에도 이를 밝혔다. “학교폭력 가해자의 엄마로 청예단에 방문해 도움을 받았다. 막막하기만 했던 그 때, 위안이 되었던 곳이다. 제가 자원상담원 활동을 통해 그때 받았던 감사를 보답하고자 한다. 더불어 직접 경험한 당사자로 상담을 받고자 하는 분들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되고자 한다.”
지원서를 내고 청예단으로부터 면접을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그곳은 예전의 사건을 생각나게 했다. 마치 먼 옛날인 듯싶었다.
청예단 상담원들이 나의 소개서를 보며 “궁금했어요. 대부분 도움을 받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시곤 다시는 연락이 없으세요.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으시죠. 그런데 어머님은 어떻게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으셨어요?”
나는 대답했다. “아~ 그래요? 하긴 우리 아들도 그렇고 또 다른 학교폭력 경험이 있는 학생도 똑같이 얘기하더군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요. 저도 그 당시엔 기억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때의 고마움이 생각났어요. 상담 받았던 데로 되지는 않았지만 위안이 많이 됐거든요.”
상담원들은 “경험이 있으시니 상담하시는 분들의 마음에 공감을 잘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라며 최종 결과는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다.
아들과 학교폭력을 경험한 학생에게 그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했을 때 처음 반응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기억나지 않는다.’ 였다. 아이들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나 보다. 어느 날 아들은 내가 물었었다.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엄마는 언제야?” 아들의 질문에 난 대답하고 다시 물었다. “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지금 모든 게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다시 살고 싶지는 않아. 넌 언젠데?“ 아들은 ”난 그 사건이 있던 그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라고 했다. 난 아들이 그동안 별말 없이 잘 지내기에 괜찮은 줄 알았다. 그만큼 힘든 기억이었던 거다. 그런데 이 아이들만 이런 건 아닐 거다. 상담원의 말처럼 대부분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럼 난 왜 자청해서 상담 자원봉사를 하려고 했을까. 단지 도움에 보답하고자? 곰곰이 생각해보니 경험자인 내가 나서는 게 나는 당연하다고 여긴 것 같다. 아는 사람이 하는 게 맞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최종적으로 상담봉사자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오리엔테이션을 갔다. 앞으로 하게 될 업무와 유의사항, 숙지해야할 것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상담원으로 상담하며 있었던 어려운 일들, 내담자 유형들도 알려주며 무엇보다 학부모이며 학교폭력 경험자이기에 잘 할 것 같다고 했다. 목소리도 내담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톤이라고까지 하며 격려해줬다.
상담원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도움을 주며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그러기에 미묘하고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았다.
전화상담은 처음이라 사실 걱정이 됐다. 즉각적 대응을 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가해자의 경험이 내 안에서 작용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또는 오히려 너무 쉽게 감정이입이 돼서 섣부른 판단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도 된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겪은 어려움을, 아이들이 겪은 고통을 한 명이라도 겪지 않게 되면 그것으로 더 바랄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