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냥이
- 조회 수 1398
- 댓글 수 2
- 추천 수 0
아이들과 노는 것이 힘들다고요?
아이들을 키워 보신분들은 아실 겁니다. 아이들이 쉬지않고 논다는 것을 말입니다. 주말 아침, 8시라는 꼭두새벽(?)에 자고있는 엄마, 아빠를 깨워 놀자고 보채는 것도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잠깐 집에서 놀다 보면 지겨운지 놀이터로 이끕니다. 놀이터에 진입한 아이들은 쫓아가지 못 할 정도로 쉼 없이 뛰어 놉니다.
"엄마, 시소타자"
"아빠~~ 그네 밀어줘"
"미끄럼틀~ 미끄럼틀~~~"
아이들을 당최 따라잡을 수가 없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명석한 두뇌가 가동됩니다.
"응~ 이제 8살이니깐 형아야, 형아~. 그러니까 그네는 혼자 타야 해~ 봐 봐 저 형봐~ 혼자 타지?"
"엄마는 지켜보고 있어~ 걱정하지마! 엄마는 몸이 커서 미끄럼틀을 못 타요~ 너무 아쉽다"
아이들은 가끔 굉장히 너그럽습니다. 엄마, 아빠의 능수능란한 핑계와 술수를 알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신나게 뛰어놉니다.
이제 앉아 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까요? 몸은 여유가 생겼지만, 눈은 다시 아이들을 쫓습니다. 그런데 눈 조차 피로해짐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녀 시선으로 조차 따라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눈이 피로해지면 다시 달콤한 유혹을 아이에게 던집니다.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이제 점심시간인데 피자 먹으러 갈까?”
아이스크림과 피자로 아이들을 간신히 잡아 두는데 성공합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순간에는 그나마 편히(?)쉴 수 있습니다. 물론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지만 놀이터보다는 천국입니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나면 어떻게 하나요? 자전거를 타자고 하거나, 야구를 하자고 하거나, 소꿉장난을 하자고 합니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다시 사이클 코치로, 야구 인스터럭터로 변신을 합니다. 소꿉장난을 하게 되면 그나마 아기가 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아기역할도 굉장히 힘들다는 사실은 경험해 보신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우리 부모들은 몸으로 눈으로 따라잡기 급급합니다. 아이들의 지치지 도 않는 체력과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함께 있다 보면 우리는 지쳐서 나가 떨어져 버리고, 또 쉬었다가 따라잡아 보려 하지만 또 놓치고. 계속 따라잡고 놓치기를 반복합니다.
시간이 아이들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달리는 것처럼 시간도 신나게 달리기를 합니다. 아이들이 ‘시소를 타자, 그네를 밀어달라, 미끄럼틀을 타자’라고 칭얼대듯 시간은 10대때는 공부를 해야 한다. 대학을 가야한다. 취업을 해야 한다. 결혼을 해야 한다고 칭얼댑니다. 그러면 시간이 하자고 하는 대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렇게 시간을 쫓아 따라가다 보면 지쳐있는 우리를 발견합니다. 그러면 명석한 두뇌가 역시 가동을 합니다. 업무시간 눈을 피해 농땡이(?)를 피운다든가, 아내 혹은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과 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아주 잠깐의 일탈을 경험하지만 그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시 시간을 쫓아갑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가면을 쓰고 시간과 놉니다. 자식으로, 남편으로, 한 회사의 일원으로, 아빠로, 엄마로 우리는 변신을 합니다. 시간을 따라가다 학부형이 되고, 시아버지도 되고 친정엄마도 됩니다.
시간의 체력과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시간을 잡아보려 해도 잡지 못하고 그저 계속 끌려 다니기 급급합니다. 따라잡으려 하다 놓치고, 따라잡으려 하다 또 놓치기를 반복합니다.
이 난제의 답은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답을 내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잡으려다 놓치는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겁니다. 오히려 시간이 따라 오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만약 주말에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미리 짜 놓는다면? 아이들은 아빠, 엄마의 계획하에 놓이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미리 설명을 하면 되겠지요.
“오늘은 어린이 연극을 오전에 보고, 점심을 먹고 다시 사파리로 이동해서 동물친구를 만날 거야. 동물친구들과 헤어지고 나서는 딱 1시간만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거야.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빠, 엄마와 또 생각해 보자”
라고 말입니다. 물론 집에서 아이들과 놀 일은 중간중간 생각해야겠지요. 아이들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아야 아이들이 따라옵니다.
이렇듯 우리는 시간에게 미리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나의 삶을 살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나를 따라와라! 나는 너를 따라가지 않겠다”
그러면 시간은 생각할 틈이 없겠지요. 시간이 고집을 부리면 혼을 내야 합니다. 이제는 시간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 시간이 나를 쫓아오는 삶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항상 지쳐서 살 것인지, 아니면 시간을 가지고 놀면서 살 것인지는 개인의 몫입니다. 모두가 시간을 가지고 노는 그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