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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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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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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8일 06시 48분 등록


불현 듯 하나의 느낌이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심장이 두근두근 쿵쾅쿵쾅 요동쳤습니다.


지난 11월 15일 수요일 오후 5시경 부문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목요일 저녁 시간이 있냐고 묻습니다. 선약이 있다 하자, 약간 당황해하더니 그러면 오늘은 어떠냐고 합니다. 괜찮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순간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인사철이자 갖가지 루머들이 난무하는 시기. 그런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저는 그저 평소처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문장으로부터 저녁을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들은 겁니다. 불길한 예감이 맞을 것 같긴 한데, 혹시 그래도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아닐까? 금융권 사람들하고 갑작스러운 저녁 약속이 생긴걸까? 아니면 다른 부서 혹은 관계사로 이동을 해야만 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저녁 6시를 조금 넘어 부문장이 나가자고 합니다. 함께 건물을 나왔습니다. 그가 제게 회사 근처의 조용한 식당 이름을 대며, 거기 괜찮지 묻습니다. 만약, 만약에 정말로 제 예감이 맞다면, 분명 식사가 제대로 넘어갈 리 없습니다. 그래서 부문장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혹여나 안 좋은 이야기를 하실 거라면 차라리 차나 한잔했으면 좋겠다고요. 그의 얼굴에 약간의 당황이 서렸지만 그러자며 근처의 커피집으로 옮겼습니다. 웬일인지 손님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문을 하는데 그가 옆에서 혼잣말을 합니다. 너무 조용한데...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가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순서대로라면 본인이 먼저 나가야 하는데, 동거동락한 후배를 먼저 내보내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명퇴자 리스트에 제가 올라 있음을 확인하고, 백방으로 뛰며 빼보려 했지만 허사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 인사팀으로부터 제가 대상자로 확정되었음을 확인하고는, 바로 제게 저녁을 먹자 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가 서두른 이유는 단 하나, 혹여나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할 수 있겠다는 이유때문이었습니다. 차라리 자신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따뜻한 커피가 나왔고, 한모금 마시려 잔을 드는데 손이 떨려 왔습니다. 그냥 잔을 내려 놓았습니다. 이 순간 떨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건 정말 싫은데... 그의 말이 끝나고 제가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혹여나 이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냐고요. 그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단답형으로 하나의 단어를 토해냅니다.


없어.

그래, 한 사람의 인생이 단지 몇 사람에 의해 이렇게 정해져 버리고 마는구나. 본인의 의견을 듣고 말고도 없는 거구나...

부문장에게 조금은 힘을 주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2가지 뿐이겠다고요. 하나는 회사에서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 사직서에 사인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사의 의도를 거슬러 버틸 때까지 버텨보는 것. 두 번째 선택을 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조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 회사, 그래서 직원들을 너무나 쉽게 내보내고 있는 회사의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라도 안 나가고 버틸 수 있다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합니다. 너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요.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고요.

아마 제가 나가지 않고 버티게 되면, 당장 부문장이 힘들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사쪽에서 직접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려 하진 않기 때문이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내보내라고 계속해서 부문장을 쪼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버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이라서가 아니라, 엄연히 이제부터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데 이런 일로 제 힘을 빼고 싶은 생각은 없기 때문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했고, 꿈에서도 몇 번 경험해 봤지만, 내 감정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그리고 어떤 기분이 될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심장이 덜컥, 할 것이란 생각만 들었었죠. 하지만 지금, 그 감정의 굴곡이 강하디 강한 맞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솔직한 지금의 제 감정은 이런 듯 합니다. 감정을 100이라 했을 때,

당혹스러움 30,   분노 15,   아쉬움 10, 
의외의 담담함 5,   경제문제에 대한 걱정 10, 
아내와 가족에 대한 걱정 30...

특히나 아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답답함과 미안함이 밀려 왔습니다. 사실 지난 11월 6일 지금의 사장님이 다른 곳으로 가고, 부사장이 사장으로 올라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 좋은 예감이 들긴 했습니다. 뭐랄까요, 사장님은 저를 아껴주시는, 소위 제 편이라 할 수 있지만, 부사장은 저에 대해 그리 탐탁해하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빠르면 당장 올해, 그게 아니라면 분명 내년에는 회사를 떠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죠. 그래서 아내와 아들에게도 그 얘기를 해두긴 했습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다고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제 속마음은 내년일 가능성이 크겠구나 했었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평소와 다르게 많이 멀게 느껴집니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내일로 미루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일 아내와 영화를 보러 가기로 예약까지 해 놓았는데, 오늘 이야기를 꺼내면 당연히 영화를 보러갈 순 없겠지요.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좋은 기분을 유지한 채 이야기를 꺼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

집에 왔습니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법 묵직한 변화가 있네요. 제 마음 속에 큰 돌 하나가 얹혀졌기 때문이겠지요. 언제가 되더라도 필히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일. 다행히 아내가 제 마음 속을 들여다보진 못하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오늘 하루라도 그냥 무사히, 평소처럼 지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제 오늘 일은, 내일의 몫으로 넘기려 합니다. 이 또한 삶에서 겪어야 하는 변화이자 순간이라면, 그저 어떻게든 잘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11시를 넘긴 시간, 자리에 눕습니다.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 제가 오늘은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잘 오지 않네요. 그래도 내일을 위해, 다시 충전을 위해 잠을 청해야겠지요. 


후... 오늘 참 긴 하루였네요...



차칸양(bang_1999@naver.com) 올림




*****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공지 ***** 

1. [출간소식] 『어쨌거나 회사를 다녀야 한다면』 박경숙 지음
변화경영연구소 6기 박경숙 연구원의 신작 『어쨌거나 회사를 다녀야 한다면』이 출간되었습니다. 전작인 『문제는 무기력이다』를 통해 살아가며 경험하게 되는 무기력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회사에서 경험하게 되는 업무 무기력에 대해, 그리고 이를 타파하기 위한 마음 훈련법에 대해 알려준다고 합니다. 현재 회사에서 업무 무기력에 빠져있는 분이라면 꼭 일독하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2. [안내]  ‘좋은 책 읽고 쓰기 프로그램’ <에코독서방> 6기 모집합니다~!
변화경영연구소 4기 차칸양 연구원이 ‘좋은 책 읽고 쓰기 프로그램’ <에코독서방> 6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 그 좋은 느낌을 글로 남기며, 오프 모임을 통해서는 좋은 사람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에코독서방>에서 6기로 참여할 선남선녀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경북/안동지역에 계신 분들을 위한 <에코독서방-안동점> 1기도 동시에 모집하고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 바라며, 오늘이 지원 마지막날이니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3. [안내] <1인회사 연구소> 6기 모집
변화경영연구소 5기 연구원이자 1인회사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수희향 대표가 1인지식 기업가로 살고자 하는 꿈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일, 콘텐츠, 책, 비즈니스 모델 등 1인지식 기업가로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하고 모색하는 연구원에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4. [안내]  <나를 세우는 네 개의 기둥> 4기 모집
변화경영연구소 4기 연구원이자 함께성장연구원의 정예서 원장이 진행하는 <나를 세우는 네 개의 기둥> 4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1년간 책과 글, 심리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배움으로써 자신을 세울 네 가지 기둥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대상이라 하니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적극적 참가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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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06:51:05 *.122.139.253

딱 이틀, 감정의 기복이 있었네요.

하지만 지금은 평온합니다. 아니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오랫동안 한 회사일은 그만하고, 새롭게 너 할일을 시작하라고, 너의 갈길을 가라고 등까지 밀어주니 감사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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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09:06:27 *.225.82.68

후... 이번 저희 회사 임원 인사 발령에 제가 모셨던 임원의 퇴임이 결정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거래처의 임원분도 퇴임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회사의 owner가 아닌이상 언젠가는 나가야 되는 운명을 어쩔수는 없겠지요..

평소에 퇴임을 준비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바라보는 제 마음도 편치 않네요..

 

유난히 힘든 11월을 보내시는 모든 분들 화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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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15:20:18 *.122.139.253

저랑 친하게 지내는 계열사의 임원분이 계신데, 어제 전화해보니 그분도 퇴사하신다고 하네요. ㅠㅠ

그럼에도 그분 왈, 세상이 부르기 때문에 기꺼이 나가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분처럼 기꺼이 나가보려고요. 어차피 나가는 거 한번 힘차게 부딪쳐 보려고요.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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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13:25:21 *.102.1.69

힘내십시요.

새로운 시작과 도전에 힘껏 박수로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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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15:21:02 *.122.139.253

감사합니다, 김산님!

박수와 응원의 말씀, 그 기운을 받아 힘차게 달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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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15:16:32 *.7.46.59
진짜 긴 하루셨겠네요.
어떤 길을 선택하시든ᆢ
형님을 잘 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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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17:54:25 *.122.139.253

사업가 큰바위 선생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 많이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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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21:19:04 *.35.229.12

선배는 그 동안 많은 준비를 하셨으니 잘 해나갈 거에요.

이제 본격적으로 그동안 구상했던 일들을 해보시길 바래요.

1인자회에도 초대해야겠네요.

선배, 화이팅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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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07:20:58 *.122.139.253

ㅎㅎ 그러지 않아도 조만간 재키한테 찾아가려 했지!

앞으로 초짜로써 귀찮게 할테니 많이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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