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픈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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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공장엘 다니게 되었다.
당시의 시대상으로 보면,
소공동에서 왔다 갔다 하던 사람이
갑자기 구로공단으로 가게 된 것 같은 거라면 이해가 될까 ?
어렵게 미국 " 샘 방 " 공장에 들어 가서 보니,
육군 대령으로 예편 하신 분이 없나.
모 종합 무역회사의 전무 하시던 분이 없나.
서울대 출신도 서너명.
한국에서 그래도
잘 나갔다던 사람이 모두 공장에 있었다면
이걸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가 .
간혹가다 보게 되었던 개성공단의 재봉일을 하는 북한 여성들.
그 모습이 당시에 이대 나왔다고 하는 사람들의 미국 생활이였다.
나 같이 일반 직장에서 생활을 하다 이민을 택한 사람은
미국 공장에 다니는게 마치 무슨 큰 성공이나 한듯 한
착각 마저 들게 하였다.
그런 분들과 같이 공장에 다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당시, 한국의 위상이라는게 이 정도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참으로 많은 비애감을 느끼며 공장에 다녔다.
이 모든게 영어를 못해서 받게 된 불이익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물론 한국에서 잘 나가던 사람들도 영어를 못해서 ...
***
세월이 흘러서 은퇴를 했지만,
난 늘 이런 생각을 했다.
미국에 이민을 와서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할 기회는 없을가 하고,
이러 저러한 경로를 통하고
이러 저러한 나 만의 공부를 해서
이 직장의 최고 책임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제시한 조건은
6개월간 무보수로 일을 배우면서 일을 하겠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할 일이 나의 적성에 맞지 않으면 난 언제든 고만 둘거다.
또한
당신이 나를 평가해서 이 직장에 부적격자라면
언제든 고만 두라고 말 해라.
구두로 계약을 하고 일을 시작 했다.
작은 칸막이 책상이 나에게 주어 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Marketing.
나는 미국에서 팔고 있는 Marketing 에 관 한 책이
한국에서 번역된 책이 있으면
무조건 사서 공부를 했다.
내가 영어를 못하기에 이 방법으로
나는 Marketing 공부를 했다.
3개월 동안에
나는 번역 된 책을 모두 17 권이나 사서 읽었다.
그런던 어느날
나 더러 인사과 ( H R ) 에 가서
서류 제출을 하란다.
처음으로 입사 원서라고나 할까
그걸 제출을 하는 날이였다.
다음에 계속
슬픈낙조님 저는 님이 제시했다는 조건에 꽂혔습니다..^^
내가 제시한 조건은 6개월간 무보수로 일을 배우면서 일을 하겠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할 일이 나의 적성에 맞지 않으면 난 언제든 고만 둘거다. 또한 당신이 나를 평가해서 이 직장에 부적격자라면 언제든 고만 두라고 말 해라.
이런 자신감 넘치고 열려있는 제안을 자신이 일하고자 하는 곳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 조건안에는 일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 조직이 나를 검증하는 것처럼 나 역시 당신들 안으로 들어가 검증하고 나서 향후 행보를 결정하겠다, 그리고 조직 역시 나를 직접 검증해 봐서 아니라고 여겨진다면 언제든지 그만두라고 할 수 있다는 공평함까지 담겨있어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