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素賢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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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선 물이 뚝뚝 떨어진다. 가방 속에 무엇을 넣고 있는지도 모르게 초고속 스피드로 가방을 싸들고 현관문을 향해 질주한다. 평소의 나의 패턴으로는 불가능한 초인적인 스피드가 발휘되는 출근시간이다. 일주일에 몇일은 1분이 금쪽같은 쓰디쓴 맛을 보게 된다. 시간의 소중함과 초스피드 신체훈련을 따로 할 필요가 없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 나의 스피드를 높여야 하는 사건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은 엄마와 포옹인사를 약속한 일이었다. ‘아, 엄마와 포옹인사를 하기로 했었지.’ 질주하던 몸에 급브레이크를 걸고, 신속하게 엄마를 두 손으로 안는다. 스피드 한 나의 두 팔이 엄마의 피부에 거칠게 닿을 때, 그 순간, 신비롭게도 모든 시간은 멈추었다.
나는 당연히 지각을 했다. 허겁지겁 뛰어 들어오던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나 여유 있게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동료 활동가들이 뻔뻔하다며 투덜댔다. 그 소리를 뒤로하고 책상위에 배달된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꺼내들었다. 첫 페이지에 등장한 초1일(임술) 일기에는 어머니에 대한 짙은 그리움의 향이 배어 있었다. 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나의 팔을 코로 가져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아침에 엄마와 나누었던 포옹인사를 떠올려 보았다. 거짓말처럼 나의 팔에서 엄마의 향이 짙게 배어 나왔다. 30분전에 나누었던 포옹의 기억을 몇자 적어 봤다. 생생한 느낌이 펜 끝에서 다시 살아나, 엄마와 나의 포옹의 역사로 종위위에 그려졌다. 나의 포옹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
오로지 남을 위해 살아오신 엄마가,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쑥스럽게 말하기 시작하셨다. 이제야 말문을 연 조카처럼 그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사실, 엄마가 나에게 묻지 않았다면 그때의 약속은 순간의 추억꺼리로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엄마, 고마워.^^
#2
오늘은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져 오랜 시간 엄마 가슴에 파 붙여 있고 싶었다. 내가 엄마의 배속에 있을 때는 그 소리로 나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텐데. 다자란 귀로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니, 그냥 소리가 아니라 엄마의 인생의 소리 같다. 심장도 엄마의 동그란 얼굴을 닮았을까? 엄마의 주름만큼 늙었을까? 어떤 빛깔일까?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을까? 작아진 엄마의 몸만큼 심장 소리도 작아진 것만 같다. 코끝이 찡해졌다.
#3
엄마의 옆구리로 나의 손이 스쳐 지나 갔다. 엄마가 온몸을 흔들며 ‘까르르~’ 웃으셨다. 어, 간지름을 타네. 우습게도 나는 엄마가 단 한번도 간지름을 탄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장난 끼가 발동해 엄마의 옆구리를 요리조리 더 찔러봤다.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며 몸을 쨉 싸게 피하는 모습이 어린 아이 같다. 엄마의 어린 시절, 그때의 표정과 웃음, 움직임이 이러 했을까. 오늘은 어린 정숙이를 만난 날. 출근 내내 웃음을 참지 못한다.
#4
“잘 다녀오셔.”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어 주셨다. 나의 볼이 까슬까슬하게 느껴졌다. 엄마의 손. 오늘은 엄마의 손이 내 마음을 쓰다듬는다. 출근길이 까슬까슬 했다. 왜 이렇게 엄마의 몸은 서글픔으로 가득 찬 소주 한잔 같을까. 마시면 마실수록 취기가 올라 청승맞은 눈물이 자꾸 난다.
#5
오늘도 지각이다. 어느 때와 다르지 않게 멋지게 스피드를 뽐내고 있던 중, 뒤에서 엄마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린다. “소라야, 뭐 잊은 건 없니?” 돌아보니 엄마의 몸 전체가 나를 향해 열려있다. “엄마, 미안. 오늘은 포옹 쉬는 날.”. 입을 삐쭉거리시며 “치~ 어째 몇일 간다 했어. 늦었으니 빨리 가.” 뒤돌아선 엄마의 자태가 섭섭하기 그지없다. 미안한 마음에 엄마 어깨에 애교스럽게 기대었다. 세월의 어깨에 나의 무개가 더해졌어도 엄마의 몸은 여전히 웃고 있다.
전철에 올라, 5정거장을 지나며 기록한 일기이다. 나는 매일 매일 똑같은 포옹을 하는데, 단 하루도 나에게 다가온 엄마는 같은 엄마인 적이 없다.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 같은 몸의 노래를 한 적이 없다. 때로는 언어로, 손으로, 어깨로, 심장으로, 웃음으로, 섭섭함으로 나의 역사를 물들여 주었다. 그 물 들어, 지금의 나, 붉은 보랏빛 여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 오늘도 당신을 안고 내가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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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연히 지각을 했다. 허겁지겁 뛰어 들어오던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나 여유 있게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동료 활동가들이 뻔뻔하다며 투덜댔다. 그 소리를 뒤로하고 책상위에 배달된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꺼내들었다. 첫 페이지에 등장한 초1일(임술) 일기에는 어머니에 대한 짙은 그리움의 향이 배어 있었다. 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나의 팔을 코로 가져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아침에 엄마와 나누었던 포옹인사를 떠올려 보았다. 거짓말처럼 나의 팔에서 엄마의 향이 짙게 배어 나왔다. 30분전에 나누었던 포옹의 기억을 몇자 적어 봤다. 생생한 느낌이 펜 끝에서 다시 살아나, 엄마와 나의 포옹의 역사로 종위위에 그려졌다. 나의 포옹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
오로지 남을 위해 살아오신 엄마가,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쑥스럽게 말하기 시작하셨다. 이제야 말문을 연 조카처럼 그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사실, 엄마가 나에게 묻지 않았다면 그때의 약속은 순간의 추억꺼리로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엄마, 고마워.^^
#2
오늘은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져 오랜 시간 엄마 가슴에 파 붙여 있고 싶었다. 내가 엄마의 배속에 있을 때는 그 소리로 나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텐데. 다자란 귀로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니, 그냥 소리가 아니라 엄마의 인생의 소리 같다. 심장도 엄마의 동그란 얼굴을 닮았을까? 엄마의 주름만큼 늙었을까? 어떤 빛깔일까?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을까? 작아진 엄마의 몸만큼 심장 소리도 작아진 것만 같다. 코끝이 찡해졌다.
#3
엄마의 옆구리로 나의 손이 스쳐 지나 갔다. 엄마가 온몸을 흔들며 ‘까르르~’ 웃으셨다. 어, 간지름을 타네. 우습게도 나는 엄마가 단 한번도 간지름을 탄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장난 끼가 발동해 엄마의 옆구리를 요리조리 더 찔러봤다. ‘까르르~, 까르르~’ 웃으시며 몸을 쨉 싸게 피하는 모습이 어린 아이 같다. 엄마의 어린 시절, 그때의 표정과 웃음, 움직임이 이러 했을까. 오늘은 어린 정숙이를 만난 날. 출근 내내 웃음을 참지 못한다.
#4
“잘 다녀오셔.”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어 주셨다. 나의 볼이 까슬까슬하게 느껴졌다. 엄마의 손. 오늘은 엄마의 손이 내 마음을 쓰다듬는다. 출근길이 까슬까슬 했다. 왜 이렇게 엄마의 몸은 서글픔으로 가득 찬 소주 한잔 같을까. 마시면 마실수록 취기가 올라 청승맞은 눈물이 자꾸 난다.
#5
오늘도 지각이다. 어느 때와 다르지 않게 멋지게 스피드를 뽐내고 있던 중, 뒤에서 엄마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린다. “소라야, 뭐 잊은 건 없니?” 돌아보니 엄마의 몸 전체가 나를 향해 열려있다. “엄마, 미안. 오늘은 포옹 쉬는 날.”. 입을 삐쭉거리시며 “치~ 어째 몇일 간다 했어. 늦었으니 빨리 가.” 뒤돌아선 엄마의 자태가 섭섭하기 그지없다. 미안한 마음에 엄마 어깨에 애교스럽게 기대었다. 세월의 어깨에 나의 무개가 더해졌어도 엄마의 몸은 여전히 웃고 있다.
전철에 올라, 5정거장을 지나며 기록한 일기이다. 나는 매일 매일 똑같은 포옹을 하는데, 단 하루도 나에게 다가온 엄마는 같은 엄마인 적이 없다.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 같은 몸의 노래를 한 적이 없다. 때로는 언어로, 손으로, 어깨로, 심장으로, 웃음으로, 섭섭함으로 나의 역사를 물들여 주었다. 그 물 들어, 지금의 나, 붉은 보랏빛 여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 오늘도 당신을 안고 내가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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