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余海 송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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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심수(口傳心授)
인생은 프로젝트로 비유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프로젝트는 유일하고, 일시적이며, 점진적으로 구체화되는 특징을 갖는다고 정의한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개인에게 한번 뿐이며, 수명은 정해져 있고, 인생의 그림도 살아가면서 구체화되는 프로젝트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 업무를 추진할 때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구성하고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프로젝트관리라는 전문용어가 보통명사화 되었다. 처음 프로젝트를 맡은 관리자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지만 오래지 않아 프로젝트 성공은 프로젝트의 기술적인 요소보다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들에 의해서 더 많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자연히 알게 된다. 이는 최근 보편화된 이슈인 '사람이 중요하다'라는 사실에 결국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프로젝트관리는 결국 이해당사자관리라고 단정하는 이들도 있다. 이해관계자 중에서도 프로젝트 스폰서가 누구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성공여부가 일찌감치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여기서 프로젝트 스폰서란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자금 지원을 담당하며, 외부로부터 프로젝트 팀을 보호해주는 사람으로 통상 회사의 경영층이나 고객 책임자를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생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스폰서가 누구이고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적군이냐 아군이냐, 지원자인가 통제자인가에 따라 인생의 결과도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만약 스폰서가 그 위치에 머물지 않고, 인생의 주체인 고객인 양 인생의 목표를 미리 정하여 이것저것 요구하고 통제하기 시작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특히 어린 자식에게 부모가 스폰서로서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색깔뿐만 아니라 인생의 크기 자체도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의 사례를 여기 소개한다.
『"그 사람은 어찌하여 양반이 되었고, 우리 집은 어찌하여 상놈이 되었습니까?"
"첨산 강씨의 선조는 우리만 못하나 현재 진사가 세 사람이나 있지 않느냐. 별담 이진사 집도 그렇다."
"진사는 어찌하여 되는가요?"
"진사 급제는 학문을 연마하여 큰 선비가 되면 과거 보아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은 후부터 글공부할 마음이 간절하여 아버님께 어서 서당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아버님은 "동네에 서당이 없고, 다른 동네 양반 서당에서는 상놈을 잘 받지도 않거니와 받아주더라도 양반 자체들이 멸시할 터이니 그 꼴은 못 보겠다"며 주저하신다.
결국 아버님은 문중과 인근 상놈 친구의 아동을 몇 명 모아 서당을 새로 하나 만드셨다. 수강료로 쌀과 보리를 가을에 모아주기로 하고 청수리 이 생원을 선생으로 모셔왔다. 그 분은 양반이지만 글이 넉넉지 못하여 '양반의 선생'으로 고용하는 사람이 없어 우리 같은 '상놈의 선생'이 된 것이다. 』
위 내용은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인 <백범일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 부모의 그릇에 따라 훗날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때 서당이 없다는 현실적인 제약과 서당이 있더라도 상놈이라는 신분적인 구속을 극복하지 못한 채 포기했더라면 김구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존경받는 독립운동가로서 추앙받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식이 원하는 바를 스폰서인 부모가 제대로 지원해준다면 자신의 향기를 자아내는 꽃으로 활짝 필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스폰서는 꼭 부모일 필요는 없다. 자신의 인생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될 수 있다. 당신은 주변에 스폰서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그 끈을 놓치지 말고,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꼭 확보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자기 스스로가 인생의 고객이면서 스폰서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반대로 스폰서의 위치에 서야 한다면 그 대상에 맞춰 구전심수(口傳心授, 상대방에 절실히 필요한 바를 파악하여 말과 마음으로 전수하여 주는 것)하는 진정한 스폰서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으면 한다.
IP *.211.61.242
인생은 프로젝트로 비유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프로젝트는 유일하고, 일시적이며, 점진적으로 구체화되는 특징을 갖는다고 정의한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개인에게 한번 뿐이며, 수명은 정해져 있고, 인생의 그림도 살아가면서 구체화되는 프로젝트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 업무를 추진할 때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구성하고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프로젝트관리라는 전문용어가 보통명사화 되었다. 처음 프로젝트를 맡은 관리자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지만 오래지 않아 프로젝트 성공은 프로젝트의 기술적인 요소보다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들에 의해서 더 많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자연히 알게 된다. 이는 최근 보편화된 이슈인 '사람이 중요하다'라는 사실에 결국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프로젝트관리는 결국 이해당사자관리라고 단정하는 이들도 있다. 이해관계자 중에서도 프로젝트 스폰서가 누구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성공여부가 일찌감치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여기서 프로젝트 스폰서란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자금 지원을 담당하며, 외부로부터 프로젝트 팀을 보호해주는 사람으로 통상 회사의 경영층이나 고객 책임자를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생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스폰서가 누구이고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적군이냐 아군이냐, 지원자인가 통제자인가에 따라 인생의 결과도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만약 스폰서가 그 위치에 머물지 않고, 인생의 주체인 고객인 양 인생의 목표를 미리 정하여 이것저것 요구하고 통제하기 시작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특히 어린 자식에게 부모가 스폰서로서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색깔뿐만 아니라 인생의 크기 자체도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의 사례를 여기 소개한다.
『"그 사람은 어찌하여 양반이 되었고, 우리 집은 어찌하여 상놈이 되었습니까?"
"첨산 강씨의 선조는 우리만 못하나 현재 진사가 세 사람이나 있지 않느냐. 별담 이진사 집도 그렇다."
"진사는 어찌하여 되는가요?"
"진사 급제는 학문을 연마하여 큰 선비가 되면 과거 보아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은 후부터 글공부할 마음이 간절하여 아버님께 어서 서당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아버님은 "동네에 서당이 없고, 다른 동네 양반 서당에서는 상놈을 잘 받지도 않거니와 받아주더라도 양반 자체들이 멸시할 터이니 그 꼴은 못 보겠다"며 주저하신다.
결국 아버님은 문중과 인근 상놈 친구의 아동을 몇 명 모아 서당을 새로 하나 만드셨다. 수강료로 쌀과 보리를 가을에 모아주기로 하고 청수리 이 생원을 선생으로 모셔왔다. 그 분은 양반이지만 글이 넉넉지 못하여 '양반의 선생'으로 고용하는 사람이 없어 우리 같은 '상놈의 선생'이 된 것이다. 』
위 내용은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인 <백범일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 부모의 그릇에 따라 훗날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때 서당이 없다는 현실적인 제약과 서당이 있더라도 상놈이라는 신분적인 구속을 극복하지 못한 채 포기했더라면 김구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존경받는 독립운동가로서 추앙받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식이 원하는 바를 스폰서인 부모가 제대로 지원해준다면 자신의 향기를 자아내는 꽃으로 활짝 필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스폰서는 꼭 부모일 필요는 없다. 자신의 인생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될 수 있다. 당신은 주변에 스폰서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그 끈을 놓치지 말고,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꼭 확보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자기 스스로가 인생의 고객이면서 스폰서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반대로 스폰서의 위치에 서야 한다면 그 대상에 맞춰 구전심수(口傳心授, 상대방에 절실히 필요한 바를 파악하여 말과 마음으로 전수하여 주는 것)하는 진정한 스폰서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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