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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8일 00시 47분 등록

백범 김구는 중국에서 보낸 시간이 많다. 임시정부 주요인으로 있으면서, 독립활동을 그 곳에서 하였다. 나는 백범일지 안에서 그의 중국에서의 궤적을 쫓던 중, 나도 발 디딘 적이 있는 곳을 보았다. 상하이 임시정부와 홍코우(虹口)공원. 잠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그 때의 기억이 솟아나며 가슴에 다시 와닿아 몇 자 적어보았다.

2002년 여름 상하이에 들러 먼저 임시정부였다는 곳을 가게 되었다. 한국 근대사에 대한 지식 역시 박약한 내가 알고 있던 것은 ‘해방 전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있었다’가 고작이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임시정부도 정부이니 조금은 으리으리하고 번쩍번쩍할 줄 알았다. 그래도 번듯한 건물 하나에 멋들어진 현판은 걸려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느 허름하고 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 있는 그런 곳이었다. 주의의 민가는 중류층조차 되어 보이지 않는 낡은 곳이었다. 오래된 좁은 집들 앞으로 빨래들이 널려 있는 그런 곳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유적지’라는 간판이 없으면, 그런 집들 사이로 그냥 묻혀 버릴 것 같은 곳이었다. (왼쪽 사진)

내부는 3층(?) 이나 각 층의 공간은 참 협소했던 기억이 난다. 전시실에는 임시정부 설립 당시부터 초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설명, 당시의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 붙어있었고, 그 때 사용했던 집기들이 전시되어있었다. 김구를 비롯한 여러 인물의 사진도 본 기억이 난다.

당시 정부 요인들이 그런 곳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였을 것을 생각하니 책을 보다가 가슴이 저려왔다. 한편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독립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들의 결연함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임정시절 어려웠을 때를 나타낸 백범일지에서의 한 구절이다.

“경제적으로는 정부의 이름마저 유지하기 어려웠다. 청사 가옥세가 불과 30원, 고용인 월급이 20원을 넘지 않았으나, 집세 때문에 종종 소송을 당하였다.”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독립운동자 중에서도 왜놈에게 투항하거나 귀국하는 자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 때는 상하이에 독립운동자가 천여 명이나 되었는데. 이제 겨우 수십 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 때 방문한 사람들은 온통 한국 관광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에는 기대보다 실망하였는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별로야.”, “안 크네.”란 말과 함께 휙 나가버리는 그네들에게는 이 곳이 그저 눈 즐거움을 위한 한 낱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몹시도 씁쓸하다.


나는 홍코우공원으로 자리를 옮기었다. 중국 문학가인 루쉰(魯迅)의 묘가 이곳으로 옮겨온 후 공원명이 루쉰공원으로 바뀌었으므로 홍코우공원은 옛 이름이 되었다.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요인을 죽음으로 보낸 곳. 그 곳에는 놀랍게도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는 곳이 있었다. 매정(梅亭)이란 이름의 정자 모양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의 흔적이 없어지지 않고 기념하는 곳이 남아 있음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다. (오른쪽 사진)

김구는 윤봉길과의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 보니 그는 몸을 바쳐 큰 뜻을 이를 의로운 대장부였다.”

김구가 상하이 홍코우공원에서 거사를 제안하자 윤봉길은 쾌히 응낙하였다.

“그 말씀을 들으니, 가슴에 한 점 번민도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당시 그는 25세의 젊은 나이였다. 1930년에 중국으로 망명, 김구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1932년4월29일 거사를 하기에 이르른다. 이 의거로 당시 상하이 일본 거류민 단장 가와바타와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로카와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태극기 앞에서 선서문을 걸고 맹세하는 윤봉길 의사와 선서문의 사진에서 그의 구국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느낀다.

의거 직전 윤봉길 의사가 백범 앞에서 기록했다는 유서는 독립투사이며 한편 어린 두 아들의 아버지였던 그의 절절함이 묻어난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에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의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작년 여름 나는 어느 주말을 상하이에서 혼자 보내게 되었다. 나는 상하이 어느 곳을 가볼까 잠시 고민하였었다. 전에 갔었는데 기억이 가물한 임시정부와 루쉰공원을 다시 갈까. 아니면 번화가를 갈까. 당시 나는 심심하고 좀 외로웠었나보다. 결국 나는 마천루가 즐비한 푸동(浦東)지구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고, 번화한 거리가 인접한 와이탄(外灘) 쪽으로 걸음을 옮겼었다.

생각해보니 임시정부와 루쉰공원을 다시 갈 것을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지금 가면 분명 몇 년 전 갔었던 그 때와는 다른 눈으로 보았을 것이고 다른 감상을 가졌을 것이다. 나를 당시의 상황으로 다시 데려가 다시 느껴보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그래도 언제 또 다시 가 볼 기회가 있겠지 하며 마음을 달래본다.
IP *.204.8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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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6.18 00:48:48 *.142.243.87
보여주고는 싶은데 갖고 있는 사진이 없어 다른 분 것을 슬쩍하였습네다. 죄송&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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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6.18 09:48:14 *.99.241.60
와~~ 좋은 곳을 다녀왔네요.
아마 그 당시 근무했던 사람들은
없겠지만 그런 기운같은 것은 있을 것 같은디...
그 당시에는 일본사람보다 한국사람들이 더 무서웠고,
첩보원도 더 악랄했다고 하더군요.
1930년대에 윤봉길의사의 쾌거가 없었다면
아마 독립운동의 맥이 끊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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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6.18 13:37:46 *.244.218.10
네. 윤봉길 의사 의거는 당시 독립활동에 대한 인식에 전환점이 되었다죠.
그 기운이라는 거... 시간을 초월하죠...
그래서 그곳에서 그것을 느끼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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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07.06.24 14:56:01 *.142.170.82
잘 썼군. 글 안에 내가 있고 그가 있고 주제가 있고 정이 있고 생생함이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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