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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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모든 일은 밥이다
한 숟가락 푹 밥을 뜨고, 그 위에 어리굴젓을 얹어 한 입 크게 먹는다. 어구적 어구적 너무 맛있다. 고추장찌개 몇 수저를 연거푸 입으로 가져간다. 얼큰하고 속이 풀린다. 한 그릇만 먹으려고 했는데 두 그릇이나 먹어 치운다. 너무 맛있어서…
이렇게 우리는 밥을 먹는다. 물론 밥 맛이 없을 때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먹는다. 스타게티를 먹을 때도 있고, 죽을 먹을 때도 있고, 팟타이를 먹을 때도 있다. 배가 고프면 우리는 그렇게 먹는다.
언제 또 배가 고플까? 열심히 일하면 허기가 진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크게 봐도 배가 고파진다. 이런 경험이 다들 있을 거다. 일을 보고 갑자기 배가 고파지면 내가 짐승인지 착각이 들 때가 있지만, 다시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는다.
밥 한 숟가락 뜨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인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 많은 이들이 이 명제를 가지고 갑론을박 해 왔지만, 나는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것으로 말이다.
연말은 참으로 바쁘다. 내년도 사업계획도 수립해야 하고, 그 동안 못 만났던 지인들의 얼굴도 봐야 한다. 유독 야근이 많을 것이고 몸이 피곤할 것이다. 일은 왜 하는 것일까? 야근은 왜 하는 것일까? 답은 확실하다. 밥 한 숟가락 먹기 위해서다. 맛이 있든 없든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일을 통해 받는 보수로 우리는 끼니를 해결한다.
글을 쓰는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가 작가의 소명 때문일까? 그것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밥을 먹기 위해서다. 캔버스에 멋진 유화를 그리는 화가는 예술의 혼을 불태우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가? 그것도 맞다. 하지만 밥 한 그릇 먹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고? 그럼 먹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먹지 않으면 한 달 안에 죽는다. 만약 밥 한 수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안 먹어야 맞지 않는가? 하지만 꾸역꾸역 먹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직장에서 일을 한다. 한 숟가락에 어리굴젓 올린 한 수저 맛있게 먹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밥이다. 회의를 하는 것도, 보고서를 만드는 것도 말이다. 회의시간에 나누는 대화는 고추장찌개다. 보고서는 어리굴젓이고 명란젓갈이다. 내년도 계획은 스파게티고 스트레스는 소주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나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밥인지 몰랐다. 자아실현? 소명의식? 다 좋다. 하지만 첫 번째는 밥이다. 일단 내가 살아야 뭐든 할 수 있다. 의지가 생기는 것이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오늘 밥을 먹기 위해서 길을 나섰고, 밥 벌이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아마 하루종일 하얗게 불태우고 또 밥을 먹겠지…
내가 삶이 행복한 이유는 참으로 간단했다. 살아갈 수 있는 자체였다. 그리고 그 기반은 밥이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이 오늘도 식사 맛있게 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