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로하
- 조회 수 173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ing for Meaning: An Introduction to Logotherapy)
당신이 가진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자유는 바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저자 연구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 1905~1997)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이며 미국 인터내셔널 대학에서 로고테라피를
가르쳤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 제3학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다음으로)라 불리는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했다.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1984년 판에 부친
서문 9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목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다룰 것으로 기대되는 이 책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이것이 절박한 문제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0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햐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서문 13 네번째 만남은 2002년 아우슈비츠에서였다. 그 참혹했던 당시의 모습이 내게는 너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의 책에서 읽은 아픔이 그대로 전달되어 왔기 때문이다. 14 지옥보다 더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따/듯하면서 유머러스한 말 한 마디와 빵 한조각을 나누어 주는 고귀한 인간의
혼을 지켜본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공포와 싸우면서도 어떤 절망에도 희망이, 어떤 존재에도 거룩한 의미가 있다는 걸 설파한다. 추천의 글 15 “그런데 왜 자살하지
않습니까?” 몇 달 전 <사기열전>을 읽을 때, 나는
중국 고대 격동의 시대를 이끌어가던 영웅들의 멋진 무용담보다 참혹한 삶을 유지했던 평민들의 이야기가 더 마음을 무찔러 들어왔다. 수천, 수만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전쟁이 아니더라도 죽음은 늘 곁에
있었다. 아니 죽음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때로 죽음보다
못한 노동과 전쟁에 희생되는 고된 삶도 많았다. 저자인 사마천도 죽음보다 못한 궁형을 당하고 모진 삶을
이어가고 있지 않았던가. 이 때 가장 크게 들었던 의문이 바로 “그런데
그들은 왜 자살하지 않았을까?” 였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들은 도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갔던 걸까? 그들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책을 읽는 일주일 내내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급기야 가벼운 우울증과 슬럼프까지 왔었다. 이 책에서 드디어 답을 찾을 수 있는 걸까? 16 누이만 제외하고
가족 모두가 강제 수용소에서 몰살을 당한 셈이다.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모든 가치가 파괴되고, 추위와 굶주림, 잔혹함, 시시각각 다가오는 몰살의 공포에 떨면서 그는 어떻게 삶이라는
것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19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는 없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이것을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만약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19 “’왜(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19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뿐이다. 1.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카포, 우리 안의 또 다른 지배자 26 그들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카포들은 오히려 수용소에 있을 때 가장 영양섭취를 잘 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시하는 병사들보다도, 나치대원들보다도 카포들이 수감자들에게 더
가혹하고 악질적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카포들은 수감자 중에서 뽑았다.
수감자 중에서 이런 일을 하기에 적합한 성격을 가졌다고 인정이 되면 카포로 뽑혔고, 기대했던
대로 일을 잘 해내지 못하면 즉시 쫓겨났다. 일단 카포가 되면 그들은 금세 나치대원이나 감시병들을 닮아갔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각축장 27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희생자 명단에서 자기 자신의 이름이나 친구의 이름을 지우는 것이다. 한 사람을 구하려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누가 그들을 욕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상황에서 그들과 다른 선택을 했을까? 자신할
수 없다. 29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과 도둑질은 물론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내가 내세를 믿는
크리스찬이어서 그런걸까? 좋은 사람들, 괜찮은 사람들이 험한
꼴 당하지 않고먼저 죽은 것이 차라리 복이었다고 믿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곳에서 조금 더 살았다고
해서 뭐가 좋았을까? 전쟁이 끝난 후까지 살아남았다고 해도 그 삶 자체가 트라우마로 얼룩진 살아있는
지옥 같은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아니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으니 트라우마나 죄책감 같은 것 없이
잘 살았으려나…?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30 지극히 내밀한 체험을
털어놓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때도 있었다. ~ 내 신념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용기를 가져야 했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장 하나도 빠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믿음을 상실하면 삶을 향한 의지도 상실한다 32 그 밖의 사람들은
담배를 피울 수 없었는데,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살아갈 의욕을 잃었거나 아니면 자기에게
남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그저 ‘즐기려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경우였다. 따라서 어느 날 동료가 자기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가 자신을 지탱해나갈
힘을 잃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그 믿음을 잃고 나면 살고자 하는 의지가 다시 생기기는 힘들었다. 도살장 아우슈비츠에 수용되다 34 겁먹은 듯한 기적
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렸다. 마치 파멸에 빠질 운명에 처해 있는 이 불행한 짐꾸러미들을 불쌍히 여겨
도움을 청하는 울부짖음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것 같았다. ~ 아우슈비츠! 가스실, 화장터, 대학살. 그
모든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이름 아우슈비츠! 기차는 망설이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불쌍한 우리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현실로부터 구해내고 싶다는 듯이…… 35 나는 사람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교수대를 상상해 보았다.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사실 이것만 해도 괜찮은 편이었다. 왜냐하면 그 후로 점점 더 끔찍하고 엄청난 공포와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집행유예 망상 36 정신의학에 보면
소위 ‘집행유예 망상(delusion of reprieve)’이라는
것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불그레한 뺨과 통통한 얼굴을 한 그들을 보는 순간 우리는 크게 용기를
얻었다. 그 사람들이 수감자 중에서 특별히 뽑힌 사람들이라는 것과, 수년
동안 매일 같이 이 역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책임지는 접대반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런 망상이라도
있었기에 그런 고통의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게 아닐까? 37 ‘즐거운 저녁 한때’를 위해 필요한 슈냅스를 사는 데 몇 천 마르크의 돈이 필요했는지 지금은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장기수들에게 슈냅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술로 자기 자신을 마취시키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누가 비난을 하겠는가? 37 그들은 언젠가는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로 대치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요된 사형집행인의 역할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고, 대신 자기 자신이 그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 38 오른손을 들고 집게
손가락으로 아주 느리게 오른쪽 혹은 왼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중에 손가락으로 왼쪽
혹은 오른쪽(대게는 왼쪽이지만)을 가리키는 이 행동의 이면에
어떤 무서운 의미가 깔려 잇는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39 그날 저녁에야 우리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이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한 최초의 선별, 삶과 죽음을 가르는 첫번째 판결이었던 것이다. 우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의 90 퍼센트는 죽음 행을 선고받았다. 무너진 환상, 그리고 충격 43 우리 중에는 샤워실의
분무기에서 진짜로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었다. 43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뿐이었다. 그 동안의 삶과 현재를 연결시켜 주는 물건 중
과연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안경과 벨트가 전부였다. 44 이런 일을 당하면서
우리가 그때까지 갖고 있던 환상이 하나 둘씩 차례로 무너져갔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섬뜩한 농감기가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우스꽝스럽게 벌거벗겨진 자신의 몸뚱이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워기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서로를 재미있게 해주려고 그야말로 안간힘을 썼다. 어쨌든 샤워기에서 정말로 물이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냉담한 궁금증 45 언젠가 등반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그 절대절명의 순간에 제일 먼저 고개를 든 것이 바로 궁금증이었던
것이다. 이 위기에서 내가 살아날 수 있을까? 아니면 두개골이
박살이 날까? 부상을 당한다면 어떤 부상일까? 이런 것이었다. ~ 이것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기 마음을 어느 정도 분리시켜 어떤 일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데,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런 마음가짐을
가꾸었다. 우리는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결말은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을 무척이나 궁금해 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46 그때까지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정말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고, 이것 혹은 저것이 있으면 살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잠이 밀려 왔다. 그리고 그 잠은 비록 몇 시간 동안이지만 우리에게 고통을 잊고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48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나도 매우 예민한
편이다. 특히 소리에 민감해서 작은 소리에도 잠을 깨고 특히나 옆에서 코를 곤다면 한잠도 못 자고 밤새
깨어 있는다. 어느 의사가 제시한 건강하게 살기 위해 방법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못 하고 있는 것이
‘둔감해지는 것’이었다. 너무
쾌적한 상황이라 오히려 더 예민해진 건가?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만든다 48 수용소에 있던 사람
중에서 잠깐 동안이라도 자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과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고 나에게도 죽음이
임박했다고 생각하면서 겪는 고통이 자살을 생각하게 했다. 49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은
첫번째 단계에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가스실 조차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오히려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보류하게 만들었다. 죽음에의 선발을 두려워하지 말라 51 그 말에 나는 웃었다. 그리고 확신하건대 누구라도 당시 나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나와 똑같이 웃었을 것이다. 왜 웃었지? 혐오감 51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것이다. 52 그 다음 단계는
상대적인 무감각의 단계로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감정과는 별도로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그 고통을 약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이 찾아온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혐오감, 심지어 그저 생긴 모양에서도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53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에 대해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현상이 가속화 되었다. 무감각 54 그때 12살의 소년이 실려 들어왔다. 눈 속에 차렷 자세로 여러 시간 동안
서 있었거나 아니면 수용소 안에 맞는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밖에서 일을 해야 했던 것 같다. 그는 그것도
무감각하게 바라보았다. 소년의 발가락은 이미 동상에 걸려 있었는데 의사가 집게로 시커멓게 썩을 살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정말로 혐오감과 공포, 동정심 같은 간정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가거나 또 이미 죽은 것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용소에서 생활한
지 몇 주가 지나면 그런 것들이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주검과 수프 56 당시 나는 막사
맞은편에 있었다. 바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창문 옆에서 얼어 붙은 손으로 뜨거운
수프가 담긴 그릇을 들고는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창밖을 보게 되었다. 방금 전에 밖으로 옮겨진 시체가 동태 같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시간 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다시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 57 수감자들은 마침내
매일같이 반복되는 구타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진다. 이런 무감각을 수단으로 사람들은 곧 자기 주위에 꼭
필요한 보호막을 쌓기에 이른다. 58 구타를 당할 때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주는 모멸감이었다. ~ 나를 때린 그 감시병은 불과 몇 분 전에 우리를 향해 멸시하는 투로
너희 같은 ‘돼지들’에게는 동지애가 전혀 없다고 욕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무감각한 죄수도 분노할 때가 있다 60 내가 여기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라고 할지라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 카포에게서 받았던 작은 혜택들 64 “만약 내가 당신으로부터
도로공사 일을 배운 시간만큼 짧은 시간 안에 당신이 나에게 뇌수술을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존경하겠소.” 수감자들이 가장 흔하게 꾸는 꿈 64 현실이 불확실하면
오로지 한 가지 과제에 모든 노력과 감정이 모아지게 된다. 즉 내 자신과 생명을 본존하겠다는 과제이다. 저녁이 되어 작업장에서 수용소로 돌아올 때 수감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자, 이제 또 하루가 지났군”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된다. 65 나는 동료가 괴로워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던 어느 날 밤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잠을 자면서 몸부림을 치는 것이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평소에도 악몽이나 황홀경에 시달리는 사람을 특히 딱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그 불쌍한 사람을 깨우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지 놀라면서 그를 흔들어 깨우려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 순간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나쁜 꿈일지라도 우리를 둘러싸고 잇는 수용소의 현실만큼이나 끔찍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
끔찍한 곳으로 그를 다시 불러들이려고 했다니…… 먹는 것에 대한 원초적 욕구 67 마지막 남아 있던
피하지방층이 사라지고, 몸이 해골에 가죽과 넝마를 씌워 놓은 것 같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몸이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장기관이 자체의 단백질을 소화시키고, 몸에서 근육이 사라졌다. 그러자 저항력이 없어졌다. 같은 막사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갔다. 우리는 모두 다음에는
누가 죽을 것인지, 그리고 자기 자신은 언제 죽을 것인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68 우리 중에서 정신력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도 맛있는 음식을 다시 먹게 될 그날을 그리고 있었다. 단지 맛있는 음식
그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그때가 되면 먹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던 인간 이하의 상황이
마침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70 어느 날 아침에는
평소 꽤 용감하고 의연한 것으로 알려진 한 친구가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우는 것을 보았다. 신발이 그가
신기에는 너무 작아 할 수 없이 맨발로 눈 위를 걸어 작업장까지 가야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료가 슬퍼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나는 다른 신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호주머니에서 작은
빵 조각을 꺼내서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메마른 정서 71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다른 사람의 머리 위로 창살을 통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내가 태어난 고장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모두 삶보다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기차가 마우트하우젠 수용소로 가고 있으며, 앞으로 기껏해야 일주일이나 이주일 동안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저 세상에서 돌아와 유령 같은 도시를 내려다보고 잇는 죽은 사람의 눈으로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거리와
광장과 집들을 바라보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72 그때 나는 아주
잠깐만이라도 좋으니 나를 앞에 세워달라고 그들에게 사정하고 애원했다. 바로 그 순간에 창문을 통해 밖을
보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들에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들은 무례한 태도로 나를
비웃으며 내 간청을 묵살했다. “여기서 살았었다고? 그렇다면 벌써 실컷 보았겠네!” 수용소 안에서의 정치와 종교 73 종교와 관련된 의식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막사 귀퉁이나 자물쇠가 채워진 컴컴한 가축운반용 트럭 안에서 행해지는 임시 기도나 예배였다. 넝마 같은 곳을 입은 채 멀리 떨어진 작업장에서 피곤하고 굶주리고 얼어 붙은 몸을 이끌고 막사로 돌아가는 바로
그 트럭 안에서 즉석 예배와 기도회가 이루어지곤 했다. 75 종이 위로 천천히
연필을 움직이더니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글씨로 ‘패자에게 슬픔이’ 라는
라틴어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닌가. 서기가 라틴어를 배운 적이 없다는 것과 ‘패자에게 슬픔이’ 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기억이 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는 아마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말이 우리가 석방되기 전, 전쟁이 끝나기 불과 몇
달 전인 바로 그 시점에 그의 ‘영혼’에 작용을 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75 밖에 있을 때 지적인
활동을 했던 감수성 예민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더 많은 고통(그런 사람들은 흔히 예민한 체질을 가지고
있으니까)을 겪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 내면의 자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적게 손상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체력이
강한 사람보다 수용소에서 더 잘 견딘다는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도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77 “만약 마누라들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꼴을 본다며 어떨까요? 제발이지 마누라들이 수용소에 잘 있으면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몰랐으면 좋겠소.” 77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숭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78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9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천사들은 한없는 영광
속에서 영원한 묵상에 잠겨 있나니.’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 주오 79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80 이렇게 내적인 삶이
심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때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우슈비츠에서 바바리아 수용소로 이송되는 도중에 호송열차의 작은 창살 너머로 석양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잘츠부르크 산 정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얼굴을 보았다면 그것이 절대로 삶과 자유에 대한 모든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믿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어쩌면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곤 했다. 83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나니 (Et lux in tenebris lucet).’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났다. 강제 수용소 안에서의 예술 86 그러다가 갑자기
그 방이 조용해졌다. 곧이어 바이올린이 흐느끼듯 토해내는 애끓는 탱고 선율이 조용한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너무 많이 연주되어서 식상하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곡이 아니었다. 바이올린이
흐느끼는 소리에 나도 덩달아 흐느꼈다. 바로 그날은 어떤 사람이 24번째
생일을 맞는 날이었다. 그 사람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다른 편 막사에 누워 있다. 어쩌면 겨우 몇 백 야드 혹은 몇 천 야드에 불과한 거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로 갈 수 없는 그곳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내 아내였다. 강제 수용소 안에서의 유머 86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 준다. 88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 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행복 90 오랜 여행의 긴장도
풀지 못한 채 우리들은 밤을 꼬박 새우고 이튿날 아침 늦게까지 꽁꽁 언 채로 비를 맞으며 밖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행복했다. 이 수용소에는 굴뚝이 없고, 또 아우슈비츠는 여기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91 우리는 아주 작은
은총에도 고마워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를 잡는 시간을 준다는 것도 우리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물론 이를 잡는 일 자체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를 잡기 위해서는 천장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추운 막사에서 옷을 벗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잡는 도중에 공습경보가 울리지 않아 전등불이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고마워했다. 만약
이 시간에 이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하룻 밤의 절반을 꼬박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적 행복을 느꼈던 환자 생활 생존을 위해 군중 속으로 96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가치를 위협하고, 또 그것을 의혹 속으로 내던져버린 정신적 혼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 지닌 가치가 더 이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세계,
인간의 의지를 박탈하고, 그를 단지 처형(처음에
그를 이용할 대로 이용해 먹다가 육체의 마지막 한 점까지 이용하도록 계획된)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세계, 이런 세계에서 개인의 자아는 끝내 그 가치를 상실할 수박에 없다. 97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글자 그대로 군중 속에 자기 자신을 파묻으려고 애를 썼다. 이런 일은 대오를 형성할 때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일이 수용소 안에서 가장 절박한 자기보존의 법칙에 따라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 법칙은 될 수 있는 대로 눈에 띄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치대원들의 눈에 뜨이지 않으려고 항상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나 혼자만의 공간 99 나는 간절하게 꿈을
꾸었다. 그러면 내 마음은 북쪽에서 북서쪽, 나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구름뿐이었다. 번호로만 취급되는 사람들 101 사람은 글자 그대로
번호가 되었다.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번호’의 생명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그 번호의 이면에 있는 것, 즉 그의
삶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 된다. 그의 운명과 그가 살아온 내력 그리고 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102 수용소에 살아남은
사람들, 여전히 일할 능력을 갖고 잇는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야만 했다. 그들은 절대로 감상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전적으로 감시병들의 기분 – 운명의 노리개라고나 할까?
– 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그들 자신을 환경이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으로 만들었다. 운명의 장난 103 수용소 측에서
호송될 환자 중에서 자원해서 야간 작업반에 가겠다는 사람들은 호송자 명단에서 빼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82명의 사람들이 자원을 해왔다. 그런데 그로부터
15분 후, 환자 호송계획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82명은 야간작업반 리스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다수의 환자들에게 야간작업을 한다는 것은 곧 2주 안에 죽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테헤란에서의 죽음 105 나를 불쌍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우리가 새로 들어간 수용소보다 훨씬 혹독한 기근에 시달렸던 그 수용소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결국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확인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운명을 가르는 결정 107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일과, 어떤 일이든지 앞장서서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것은 운명이 자기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운명에 영향을 주는 일을 피했고, 대신 운명이 자기에게 정해진 길을 가도록
했다. 게다가 심각한 무감각 현상이 팽배해 있었다. 무감각은
수감자들의 감정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110 내가 친구에게
함께 탈출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나를 엄습했던 그 불편했던 감정이 점점 더 심해졌다. 나는 갑자기 운명을
내 자신의 손으로 잡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막사 밖으로 뛰어나가 친구에게 그와 함께 탈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연한 태도로 환자 곁에 그대로 남기로 했다고 친구에게 말하자마자 그 불편했던 감정이 사라졌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내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막사로 돌아가 고향 친구의 발끝에 앉아서 그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그리고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었다.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날 112 친구가 돌아온
바로 그 순간 수용소의 문이 활짝 열렸다. 적십자 마크가 그려진 번쩍번쩍하는 알루미늄 차가 천천히 점호장
안으로 굴러 들어왔다. 제네바에 있는 국제적십자사의 대표가 도착한 것이다. 수용소와 수감자들은 그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는 수용소 가까이에
잇는 농가에 숙소를 정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누가 탈출을 걱정하겠는가? 차에서 약 상자가
내려지고 담배가 공급되었다. 우리는 사진이 찍혔으며, 기쁨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제 전선을 향해 달려가는 위험한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112 시신 위에 흙을
덮기 전에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를 올리자는 우리의 제안에 따라 함께 기도를 올렸다. 오랜 시간을 긴장과
흥분 속에서 보낸 후, 동료의 주검 앞에서 올리는 평화를 갈구하는 우리의 기도는 그 동안 인간의 목소리로
올렸던 그 어떤 기도보다도 뜨거웠다. 엇갈린 운명 114 그로부터 여러
주가 지난 후, 우리는 이 마지막 순간에도 운명의 신이 우리를 우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는 인간의 결정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그것이
특히 생사와 관련된 문제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 나는 우리 수용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았다. 그날 밤 자유를 향해 간다고 믿었던 우리 친구들은 트럭에 실려 그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막사 안에 갇힌 채로 불에 타 죽었다. 사진으로도
군데 군데 불에 탄 동료들의 시신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또 다시 테헤란에서의 죽음을 생각했다. 무감각의 원인 115 수감자들의 무감각이
일종의 방어 기제였다는 것 외에 여기에는 또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굶주림과 수면부족(이것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이 이런 무감각 상태로
그들을 이끌었으며, 수감자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초조함이 이런 무감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열등의식에 시달렸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 ‘대단한 사람’이었거나
혹은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일반적인 수감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계층이 하락했다는 것을 느꼈다. 117 수감자들은 그
동안 끊임없이 구타 장면을 목격해왔기 때문에 마음 속에서 스스로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충동이 커진다. 나
자신의 경우만 보더라도 배고프고 피곤한 상태에서 화가 나면 저절로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 때가 많았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 120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수용소에도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 이것만 가지고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잇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121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잇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제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수용소에는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친해진 후,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 말을 자주 머리 속에
떠올렸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는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고 있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잇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시련의 의미 122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122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 를 제공한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124 그러면서 그 젊은이는
언젠가 자기가 본 영화 이야기를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아주 용감하고 품위 있게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영화였는데, 그 영화를 보면서 죽음을 그렇게 의연하게 맞는 것이 인간으로서 참
위대한 성취였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썼다. 이제
운명이 자기에게 그와 똑같은 기회를 주었다고. 나는 스스로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음에 대해서 이 젊은이와 같은 태도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의연함은 긍정적인 태도와는 좀 다른 차원의 정신 상태인 것 같다. 125 이 젊은 여자는
자기가 며칠 안에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나는 운명이 나에게
이렇게 엄청난 타격을 가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 “그 전에 나는 제멋대로였고, 정신적인 성취 같은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녀는
창밖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있는 이 나무가
내 외로움을 달래 주는 유일한 친구랍니다.” 창을 통해서 볼 수 잇는 것이라고는 밤나무 가지 한 개와 그 위에
피어 있는 꽃 두 송이였다.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 삶 126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거나 이야기할 때, 당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127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삶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 예를 들자면 실직자가 이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고, 목표를 세울 수도 없다. 128 수감자들 역시
기이한 ‘시간 감각’을 경험했다. 시시때때로 자행되는 폭력과 배고픔이 하루를 꽉 채우고 있는 수용소에서는 하루라는 작은 단위의 시간은 영원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보다 긴 단위의 신간, 예를 들자면
일주일은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 ~ 우리의 시간 감각이 얼마나 역설적이었던가! 우리 반은 아니었지만
고3때 어떤 반의 급훈은 “50분은 길지만 1년은 짧다”였다. 매우
역설적인 시간 감각이지만 매우 동의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1~2 시간 회의 시간은 너무 길고 지겹지만 1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린다. 기이하지만 수감자들에게만 특별하다기 보다는 일반적으로 많이 느끼게 되는 ‘시간의 상대성’이라고 본다. 131 강제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 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언제 죽을지 모를 수용소에 갇혀 지낸 수감자들에게 그런 정신적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131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sub specie aeternitatis)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때때로 자기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133 미래 – 그 자신의 미래 – 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하는 형태를 띠고 일어난다. ~ 그냥 누워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이런 위기가 병 때문에
생긴 것일 경우 그는 병실로 옮겨지는 것을 거부하고, 그 밖에 도움에 되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한다.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자기가 싼 배설물 위에 그냥 그렇게 누워
있으려고만 한다. 세상 어떤 것으로부터도 더 이상 간섭 받지 않고.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136 내 친구의 죽음을
초래했던 결정적인 요인은 기대했던 해방의 날이 오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몹시 절망했으며, 잠재해 있던 발진티푸스 균에 대항하던 그의 저항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몹시 절망했으며, 잠재해 있던 발진티푸스 균에 대항하던 그의 저항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그의 믿음과 살고자 하는 의지는 마비되었고, 그의 몸은
병마의 희생양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꿈 속의 목소리가 했던 말이 맞기는 맞았던 것이다. 살아야 할 이유 137 슬프도다!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이여! 그런 사람은 곧 파멸했다. 138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잇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139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 140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시련이 너무나 많았다. 따라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잇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살 방지를 위한 노력 141 두 사람 모두
자살 동기를 털어 놓았다. 그 동기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내세우는 것, 즉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142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집단 정신치료의 경험 145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수용소의 여러 가지 인간 군상 152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집단, 혹은 악한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순전히 한 부류’의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집단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해방의 체험 153 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되뇌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면서 얼마나 자주 이 단어를 입에 올렸는지 이제는
그것이 의미를 잃고 말았다. 현실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 우리는 글자 그대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앞으로 천천히 그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156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그때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 말을 되풀이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날, 바로 그 순간부터 새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해방 이후 나타난 현상들 158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진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귀리 수천 포기를 잃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통과 환멸 160 슬프다! 수용소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용기를 주었던 그 사람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여! 슬프다! 마침내 자유가 실현되었을 때, 모든 것이 자기가 꿈꾸어오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여! 161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제 이 세상에서 신(神)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2.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167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 실제로 로고테라피에서는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게 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168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169 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 결과 89퍼센트의 사람들이
인간에게는 살아야 할 의미를 주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왔다. 그 중 61퍼센트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기꺼이 그것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어떤 것’과
‘어떤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실존적 좌절 누제닉 노이로제 172 갈등을 겪는다고
해서 다 신경질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갈등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것이기 깨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고통도 역시 모두 다 병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그 고통이 실존적 좌절 때문에 생긴 경우에는 그것을 신경질환 증세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성취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신의 역동성 174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기보다는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의
긴장은 정신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라는 니체의 말에는 이런 예지가 담겨져 있다. 175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well-being)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전직장에 다닐
때 일하는 것이 재미없었고, 적절한 스트레스가 필요하다고 느껴져서 1년에
두번씩 시험을 봤었다. 사실 그 시험은 승진이나 급여 인상 등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전혀 안 되는, 굳이 볼 필요가 없는 시험이었다. 그냥 약간의 스트레스가 회사 생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시험 결과에 성취감을 느낀다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무의식은 그 회사에서 버티기 위해서 필요한 건강한 긴장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가 보다. 176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 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실존적 공허 178 애석한 것은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 얻게 된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는 데에 있다. 179 실존적 공허는
가면을 쓰거나 위장을 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좌절되면 사람들은 권력욕으로
그 좌절을 대신 보상받으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권력욕인 돈에 대한 욕구도 포함되어
있다. 한편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좌절된 곳에 쾌락을 추구하는 의지가 대신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삶의 의미 181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를 대신할 수 잇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삶 역시 반복될 수 없다. 따라서 각 개인에게 부과된 임무는 거기에 부가되어 찾아오는 특정한 기회만큼이나
유일한 것이다. 181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각각의 상황이 한 인간에게는 도전이며, 그것이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바뀔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존재의 본질 182 “인생을 두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183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 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는 말이다. 184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사랑의 의미 185 사랑으로 인해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과 개성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잇는 것,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사랑의 힘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함으로써
이런 잠재능력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시련의 의미 186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잠재력은 한 개인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는다. 187 어떤 의미에서
시련은 그것의 의미 – 희생의 의미 같은 – 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고 할 수 있다. 189 사람은 자기 일을
할 수 잇는 기회나 혹은 자기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시련의 불가피성이다. 이런 시련의 도전을 용감하게 받아들이면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를 갖게 되며, 그 의미는 글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보존된다. 다시 말해 삶의 의미는 절대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시련의 잠재적인 의미까지 포함하고 잇기 때문이다. 임상에 따른 문제들 로고드라마 193 이와 함께 아주
짧은 삶, 예를 들어 그녀의 죽은 아들의 경우와 같은 짧은 삶이 80년의
긴 삶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닌 사랑과 기쁨으로 풍요로울 수 잇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초의미 삶의 일회성 199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젊은이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잃어버린
자신의 청춘에 대해 향수를 가질 이유가 잇을까? 무엇 때문에 그가 젊은이를 부러워하겟는가? 그 젊은이에게 놓여 잇는 잠재 가능성 때문에? 아니면 그가 가지고
잇는 미래 때문에? “천만의 말씀”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가능성 대신에 나는
내 과거 속에 어떤 실체를 갖고 잇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용감하게 견뎌냈던 시련이라는 실체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비록 남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기법으로서의 로고테라피 200 쾌락은 어떤 행위의
부산물로, 파생물로서 얻어지는 것이고, 또 그렇게 얻어져야만
한다.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정도가 되면 그것은 파괴되고, 망가진다. 203 “신경질환 환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웃을 줄 알게 되면 그것은 그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상태, 아니
어쩌면 병을 치료할 수 잇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208 이와 똑같은 악순환의
고리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생각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강박증 환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싸우는 것이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강박증에 더욱 힘을 실어 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압력이 반대편의 압력을 더욱 높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증상이 악화된다. 이와는 반대로 환자가 강박증과 맞서 싸우기를 중단하고 대신에 아주
반어적인 방식 – 역설의도와 같은 – 으로 그것을 비웃어
주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증세가 점점 약해지면서 결국에는 없어지고 만다. 이런 증상이 실존적 공허에 의한 것이 아닌 다행스러운 경우에는 환자가 자신의 신경증적 공포를 비웃는 데에서
더 나아가 나중에는 아예 그것을 무시하게 된다. 집단적 신경증 209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가르침, 즉
인간은 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조건의 결과물이거나 유전과
환경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이론은 태생적으로 위험을 안고 있다. 인간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환자로
하여금 자기가 믿고자 하는 것, 즉 자기가 외적인 영향과 내적인 환경의 담보물이나 희생물이라는 사실을
믿게 만든다. 이런 신경증적 숙명론은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심리치료법에 의해 조성되고
강화된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고, 인간의
자유 또한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조건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조건에 대해 자기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범결정론에 대한 비판 211 인간은 조건 지워지고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에 맞서 싸우든지 양단간에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214 우리가 어떻게
감히 인간 행동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겟는가? 기계나 자동장치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정신의 메커니즘이나 역동성에 대해 예측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정신을 넘어선 존재이다. 정신의학도의 신조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의학 215 인간은 여러 개의
사물 속에 섞여 있는 또 다른 사물이 아니다. 사물들은 각자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도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잇다. 215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잇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3.
비극 속에서의 낙관 221 유럽 사람의 눈에는
미국의 문화가 인간에게 ‘행복하기를’ 끊임없이 강요하고 명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마나 행복은 얻으려고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잇다. 222 나는 스스로를
‘미래가 없는’ 세대라고 부르는 젊은이들을 생각해 본다. 이것은 한 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인데, 그런 젊은이들이 위안을 얻는 것이 담배가 아니라 마약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226 자살기도가 미수에
그친 사람들이 수없이 하는 얘기가 자살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한 사실이다. 자살에
실패하지 몇 주일 후에, 몇 달 후에, 그리고 몇 년 후에, 그들은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에도 자기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고, 의문에 대한 해답이 있었으며, 삶에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비록 사정이 좋아질
확률이 천 분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 일이 당신에게
어느 날 조만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잇습니까? 우선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날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살아야 하고, 그런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기 위해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살아남아야 할 책임감이 당신을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겁니다.” 231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무력한 희생양도 그 자신을 뛰어넘고, 그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 인간은 개인적인 비극을 승리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232 “저는 제 삶이
의미와 목표가 충만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운명의 날에 대한 나의 태도가 삶을 바라보는 내 자신의
신조가 되었습니다. 나는 내 목을 부러뜨렸지만, 내 목이
나를 무너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 대학에서 처음으로 심리학 과목을 듣고 있습니다. 나는 내 장애가 다른 사람들을 돕는 내 능력을 더욱 향상시켜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시련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도달한 인간적인 성숙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233 만약 피할 수
있는 시련이라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시련을 견디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37 “두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242 여러분은 우리가
굳이 ‘성자’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저 ‘훌륭한’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잇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의지를 본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지금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 잇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욱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
가지 측면에서의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로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 1부 수용소에서의 경험, 2부
이를 바탕으로 체득한 이론 설명, 3부 이론 보완 설명. 독자가
책에 푹 빠져서 읽고, 이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 매우 좋은 구조라고 본다. 나도 이런 구조로 쓰고 싶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3.
이 책의 장점 : 본인의 경험을 먼저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만든 이론을 설명해서
이해가 매우 잘 된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매우 담담하게 그려내서, 중간 즈음을 읽을 때에는 그곳도 살만 했던 곳이었나? 라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감성과 눈물에 호소하지 않았지만 감성이 자극되는 이야기.
실화가 갖는 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 책을 읽기 전에는 수기라고 해서 경험 부분이 하나의 스토리처럼 전개될
거라 예상했었다. 너무 감상적으로 갈 필요는 없겠지만 본인과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야기처럼 썼으면 어땠을까? 저자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생존자의
석방 이후 치료 과정이나 증언 등을 추가했을 것 같다.
190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고,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3년 동안 다카우와 다른 강제수용소가 있는 아우슈비츠에서 보냈다. 이
때의 경험을 <강제수용소를 체험한 한 심리학자>라는
책으로 1946년 출판하였다. 강제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을 자유와 책임 있는 존재로 파악한 독자적인 실존분석을 세우고, 그 치료이론으로서 의미치료로 로고테라피(Logotherapy)를 주창했다.
1924년 그가 국제심리분석학회의 잡지(<The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에
글을 발표한 이래 27권의 저서가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세계 19개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그는 하버드, 서든 메더디스트, 스탠포드 및 듀쿼슨 대학교의 초청교수로 강의했으며, 로욜라 대학교
등 여러 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브라질, 베네수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의 대학에서) 또한 전 세계의 대학교에 초청되어
강의했으며, 미국에서만 52개의 강의를 맡아 강의했다.1984년, 세상을 뜰 때까지 그는 오스트리아 심리의학협회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오스트리아 과학학술원의 명예회원이다.
주요 저서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 <Psychotherapy and
Existentialism>, <The Unconscious of God>, <The Unheard Cry for Meaning>,
등이 있다.
그의 대표작 <죽음의 수용소에서> 에서, 그는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생사의 엇갈림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줬다. 자신의 자서전적인 체험 수기와 그 체험을 바탕으로 프랭클 박사는 자신의 독특한 정신분석 방법인 로고테라피를
이룩한다. 이 책은 로고테라피의 실존 분석을 충분한 사례를 들어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752 | #32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_이수정 [1] | 알로하 | 2017.11.21 | 1727 |
4751 | #33 영적인 비즈니스_정수일 | 정수일 | 2014.12.08 | 1728 |
4750 | #30 카를 융: 기억 꿈 사상_이수정 | 알로하 | 2017.11.06 | 1728 |
4749 | #33. 그림자 [1] | ggumdream | 2017.11.27 | 1728 |
4748 | 1만 시간의 재발견 | 박혜홍 | 2018.08.26 | 1728 |
4747 | 31.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해냄 | 강훈 | 2011.11.28 | 1729 |
4746 | #9. 서양의 지혜 | 녕이~ | 2014.06.09 | 1729 |
4745 | #24 사기열전1 (2/2) | 송의섭 | 2017.09.18 | 1729 |
4744 | 11. 역사 속의 영웅들 | 해피맘CEO | 2018.05.22 | 1729 |
4743 | #6 신화와 인생(송의섭) [1] | 송의섭 | 2017.05.15 | 1730 |
4742 | #17 삼국유사 2(이정학) [1] | 모닝 | 2017.07.30 | 1730 |
4741 | #22 파우스트 2/2 (윤정욱) [1] | 윤정욱 | 2017.09.04 | 1730 |
4740 | [08] 열정과 기질 - 하워드가드너(상편) | 정산 | 2008.05.26 | 1731 |
4739 | #24.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 [1] | 희동이 | 2014.10.06 | 1731 |
4738 | #24 - 사기열전 2(이정학) [1] | 모닝 | 2017.09.18 | 1731 |
4737 | # 26 난중일기 (윤정욱) | 윤정욱 | 2017.10.02 | 1731 |
4736 | (프로페셔널의 조건) 칼 융이 피터드러커를 구경하다 | 보따리아 | 2017.10.30 | 1731 |
» | #36. 죽음의 수용소에서_이수정 | 알로하 | 2017.12.18 | 1730 |
4734 | #10.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불씨 | 2018.05.13 | 1731 |
4733 | #20. 논어 | 불씨 | 2018.07.22 | 1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