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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5일 11시 07분 등록

나는 걷는다: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

 

저자 연구

베르나르 올리비에 (Bernard Olivier: 1938~ )

구엘 차이(Guel cai, 와서 차한잔 하시오!)

저자가 터키를 여행하며 터키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나도 터키를 여행하면서 종종 들었던 것 같다. 난 대부분의 경우 사양했지만

여행 또는 해외 생활 초기에는 가급적 현지인과 교류를 많이 하고 현지인처럼 살고자 했었다. 2000년 대 초기에 초대박 베스트셀러이자, 당시에 나의 가슴을 뛰게 했던 한비야의 여행기에서 받은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지인들의 관심에 항상 적극적으로 응답을 했었고, 때로 내가 먼저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삶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나친 관심에 피로감이 커지고, 이로 인해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경우가 반복되면서, 차츰 그들의 관심에 무관심으로 반응하게 되었다. 여자가 중동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특히나 귀찮은 일이 많이 생겨서, 나중에는 아예 눈은 선글라스로 귀는 이어폰으로 막고 다녔다. 한편으로 아쉽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옥석을 가리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저자처럼 실크로드 전 구간을 걸어서 여행하기는 어렵겠지만, 차와 낙타, 도보를 적절히 섞은 실크로드 여행을 하고 싶다. 3년 전에 서둘러 회사를 그만 둔 이유 중의 하나가 친구와의 실크로드 여행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못 갔지만대신에 오랜 꿈이었던 터키와 모로코를 갔고, 그 때 덜컥 회사를 그만 둔 덕에 다른 친구를 만나 지금 변경연 과정을 하고 있고 <나는 걷는다>를 읽으며 터키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으니, 다시 한번 신이 하시는 일의 신비함(God works in mysterious ways)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 (Bernard Olivier)1938년 프랑스 망슈 지방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에 외판원, 항만 노동자, 토목공, 체육교사, 웨이터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했다. 1964년 독학으로 바칼로레아에 합격하고, 이어 CFJ  (Centre De Formation Des Journalistes, 프랑스 기자협회의 공인을 받은 저널리즘 부문의 그랑제콜)를 졸업했다. 30여 년간 파리 마치, 르마탱, 르피가로 등 신문과 잡지사에서 정치부 기자, 사회-경제면 칼럼니스트로 일했다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베르나르 올리비에 또한 열렬한 독서광이었다. 특히 역사 분야를 탐독했는데, 독서를 통해 서양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동양에 진 빚을 인식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퇴 후인 1999, 그는 바다에 병을 던지듯 실크로드에 자신을 던졌다.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기로 결심한 그는 4년에 걸쳐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갔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기간을 정해 단 1킬로미터라도 빼먹지 않고 걸어서 실크로드를 여행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으며 느리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며 자신을 비우는 법을 배워간다. 그럼으로써 은퇴 이후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재활한 것이다. 그는 또한 비행청소년에게 도보여행을 통해 재활의 기회를 주는 쇠이유(SEUIL) 협회를 설립했다. 4년간의 실크로드 여행을 책으로 낸 《나는 걷는다》의 인세는 이 협회의 운영비로 쓰인다.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편집자의 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긴 여행

7 그는 혼자 떠날 것이며, 어떤 출판사(말하자면 까다롭고 불친절하기까지 한 어떤 독자)가 자신의 기록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동기 부여를 받는 방식과 비슷하다. 때로는 족쇄가 되어 힘들게도 하지만,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높은 성과를 보이는, “성취주의자의 특성이 아닌가 싶다.

 

9 은퇴한 기자이며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인 그는 더 이상 선택을 미룰 수 없는 교차로 앞에 서 있다고 여겼다. 어떤 결정은 내일로 미루면 이미 너무 늦은 것이 된다. 서둘러 떠남으로써 최대한의 것을 건져낼 수 있고, 적어도 나이 탓을 하며 너무 서둘어 스스로를 은밀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구속하는 폐단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도 있다.

나이 탓을 하며 시작을 못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야 말로 정말 미련한 짓이라 하겠다. 내일은 하루라도 나이가 더 드니까. 내년에 하겠다고 미뤄 둔 일이 몇 가지 있다. 한살이라도 적은 올해 당장 시작해야하는데

 

11 왜 이렇게 매번 더 멀리 가려고 고집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수없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그는 언제나 당황스러워했다. 다만 그는 자신이 여전히 그 대답을 찾으려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 뿐이었다. 이것은 애초에 답이 없음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자 함이 아닐까.

 

1.     길 끝의 마을들

24 ‘왜 굳이 이 여행을 하려는 거지?’ 내가 젊은이였다면 이해해주었겠지. 가서 모험도 좀 해보라면서. 하지만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정신 멀쩡한 사람이 고향에 은퇴해서 모란이나 애지중지하는 대신 3000킬로미터를 걷겠다고 등에 가방 하나 메고 소문난 위험지역으로 떠난다는 건 사실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설령 이 같은 대형 휴가를 떠나는 것에 대해 감탄하거나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만났다 하더라도 용기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혹 내가 그들을 실망시키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25 행복했던 어린 시절과 때로 힘겨웠던 젊은 시절 그리고 부러울 것 없던 성인으로서의 삶. 나는 아주 풍요로운 두 인생을 살았다. 그런데 왜 그것이 이제 중단돼야 하나? ‘나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침착하게, 체념하듯 벽난로 옆에 앉아 책을 읽거나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노년의 덜미에 붙잡히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 내게 그런 세월은 해당하지 않는다. 내겐 아직도 만남과 새로운 얼굴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고집스럽고 본능적인 욕망이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머나먼 초원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태양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

30년간 기자로 살았던 직업병 같은 느낌도 든다. 어쨌든 60이 넘어서도 꿈을 꾼다는 건 배울만 하다. 우리는 60이 아니라 서른살만 지나도 꿈을 잊는 경우가 많다. 아니 직장에 들어간 이후에는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거나 이룰 수 없으니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꿈은 직업이 아닌데꿈을 직업과 동일시하는 교육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겠다.

 

30 지금과 같은 5월 초에는 관광객들이 밀려 들어온다. 그들은 비둘기 떼를 헤치며 산마르코 광장 주위를 맴돈다. 그 광장이 보여주는 놀라운 균형, 즉 대성당으로 상징되는 종교의 권위와 총독궁이 지닌 세속의 권위 사이의 균형에 대해선 대부분 무심한 채 말이다. 종교와 세속이라는 두 권위를 이렇듯 조화롭게 보여주는 곳을 다른 곳에서 또 찾아볼 수 있을까?

나는 산마르코 광장에 10월 초에 갔었는데 그 때도 관광객으로 넘쳤고, 비둘기와 갈매기들 때문에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나는 새를 싫어(무서워) 해서, 그렇게 많은 새 떼 앞에서는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얼어붙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말하는 종교와 권위의 균형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베니스는 새똥으로 뒤덮인 지저분한 도시, 바가지의 기억이 더 크게 다가오는 실망이 컸던,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 중의 하나다.

 

33 대부분 여행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내 여행은 정말 멋진 것이었다. 그 증거로 난 세 번이나 죽을 뻔했으니까.” 몇 년 전, 에리크는 북극으로 가던 중 기차 안에서 끔찍한 균에 발이 감염되었다. ~ 또 한번은 빙하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 한 걸음이라도 잘못 디디면 크레바스(crevasse, 빙하가 이동할 때 생기는 응력에 의해 빙하에 형성되는 열극이나 균열)에 빠져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게. 나도 죽을 뻔까지는 아니지만 6개월간 여행을 하는 동안, 벌레 물림과 알러지성 두드러기, 그리고 심한 몸살 감기로 세번이나 크게 아팠다.

 

33 그는 16미터짜리 요트를 사기 위해 터키의 초룸에 가는 길이었는데, 40년을 일하면서 지니고 있던 소망, 즉 자신의 배로 항해하는 꿈을 마침내 이룰 수 있게 되었다. 혼자서 지중해를 건너 대서양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고향인 브르타뉴까지 가려는, 좀 비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친구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16미터짜리 요트. 나의 꿈 중의 하나다. 아니 그렇게까지 클 필요도 없다.

 

35 걷는 것에는 꿈이 담겨 있다. 그래서 잘 짜여진 사고와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사고는 고운 모래밭에 말랑말랑한 베개를 베고 누워 반쯤 눈을 감고 명상을 한다거나, 솔밭에서 낮잠을 청할 때 더 잘 이루어진다. 걷는 것은 행동이고 도약이며 움직임이다. 부지불식 간에 변하는 풍경, 흘러가는 구름, 변덕스런 바람, 구덩이투성이인 길, 가볍게 흔들리는 밀밭, 자줏빛 체리, 잘려나간 건초 또는 꽃이 핀 미모사의 냄새, 이런 것들에서 끝없이 자극을 받으며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정신이 분산되기도 하며 계속되는 행군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생각은 이미지와 감각과 향기를 빨아들여 모아서 따로 추려놓았다가, 후에 보금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것들을 분류하고 각각에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36 왜 걷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이정표가 있고 유명하며 또 안전한 길들이 알프스에서 내 고향 노르망디에 이르기까지 즐비한데도 내가 왜 미지의 길에서 헤매려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공연히 혼자 별나게 잃어버린 젊음을 뒤늦게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내 몸이 한계에 이르러서 포기하는 때가 온다면, 최소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있으리라. 머리는 잠시 거짓말을 할 수가 있지만, 몸은 숨기기 어려운 법이니까.

머리가 하는 일은 항상 노력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때로 일한 것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가 볼 품 없기도 하다. 다행히도 나는 그동안 머리로 하는 일은 대부분의 경우에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훨씬 좋았었고, 내가 잘 나서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머리로 하는 일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에 크게 좌절했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오만과 좌절을 깬 것이 몸으로 하는 일이었다. 몸으로 하는 일은 저자의 말 대로 숨기기 어렵다. 딱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고, 노력했는데도 안 되는 경우도 드물었다. 새로운 삶은 머리보다 몸으로 하는 일에 더 큰 비중과 의미를 두는 이유다.

 

41 그들은 관광객에게 매우 친절한 태도로 접근한다. 그리고 목표로 정한 사람에게 약을 탄 음료나 과자를 건넨다. 이것을 받아 먹은 관광객은 곧바로 잠들게 되고, 깨어나서 보면 가진 걸 몽땅 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약을 탄 음료를 먹여 돈을 빼앗는 수법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옛날 실크로드에서 강도들이 대상의 물건을 약탈할 때도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3년전에 터키 여행을 준비하면서 유의할 사항에서 봤던 일들이다. 1999, 아니 수 백 년 전에 있었던 일들이 아직도 벌어지고 있고, 아직도 거기에 속는 사람들이 있다.

 

2.     나무꾼 철학자

50 그들의 얼빠진 듯한 모습이 내 짧은 터키어 때문인지, 아니면 내 계획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다른 식으로 다시 설명했고, 이번엔 알아들은 듯했다. 그들은 분명 지금 미친 사람과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눈에서 동정과 불신이 뒤섞인 것 같은 감정을 읽었기에, 너무 경솔하게 계획을 밝히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등 뒤로 꽂히는 시선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걸었다.

 

51 여기저기에 짓다 만 집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집주인들은 대개 일층이나 이층에 산다. 그 위로는 겨우 틀이 잡힌 벽들이 보이고, 시멘트 기둥 사이로 드러난 녹슨 철근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취득세는 집이 완성된 후에 내게 돼 있으므로 그냥 건축 중인 상태로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54 크리샤의 집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조금 마음이 아팠다. 환대받았던 곳을 떠나는 일은 언제나 어렵기만 하다. 오래 전 이 길을 지나다녔던 상인들 생각을 했다. 그들은 지금 내가 느끼는 이런 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고 이익이 남는 일들을 마무리 빨리 그리고 건강하게 돌아오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였을 것이다.

 

65 그는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천천히 그 책을 뒤적였지만, 별로 사용할 것 같지 않은 진부한 표현들, 예를 들면 내 차를 고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혹은 나는 이 맛있는 후식을 기꺼이 더 먹겠습니다등만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런 말들은 사제와 나 사이의 대화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몸짓으로 대화했으며, 때로 내가 가져간 작은 사전을 참조하기도 했다.

분명히 많이 쓰는, 그리고 꼭 필요할거라 생각되는 표현들만 모아 놓았을 텐데 실전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인간의 삶은 예측하기 어려워서겠지.

 

71 그는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몇 초간 침묵을 지키곤 했다. 자조적인 말투에 무슨 얘기든 일단 소리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누렇고 독특한 그의 이 뿌리들이 온통 드러나 보였다.

나는 삼림관리인 생활이 좋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겨울에는 독서에 전념할 수가 있으니까 말이오. 그래서 1월부터 3월까지 실컷 책을 읽고, 저녁 무렵 찻집에 가서 친구들에게 <미학><논리학>을 읽는 행복을 일깨워주기도 하지요.”

그의 눈은 지적인 분위기와 대화 상대와 의기투합하는 데서 오는 친절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도 1년에 3개월 정도는 돈을 벌지 않고 내 맘대로 살아도 되는 삶을 살고 싶다.

 

3.     터키식 환대

77 그날 오후 누군가 말하길, 내가 크나큰 실수를 저질러서 후세인이 모욕감까지 느낀다고 했다. 내 행동이 터키인의 전통인 환대 정신에 위배됐기 때문이다. 여행자를 자기 집에 받아들여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 것은 이슬람 교도의 의무였다. 독실한 이슬람 교도에게 환대손님인 여행자에게 모든 권리를 갖게 한다는 의미였다. 너의 집이 그의 집이며, 너의 음식을 그와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의 보답은 알라의 왕국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따라서 여행자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은 가장 나쁜 되였다. 이렇게 온화한 기후 아래서라면 여행자를 환대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그가 말했다.

나는 올해 초에 비슷한 실수를 했다. 제주도 피정에서 같은 방을 썼던 룸메이트인데, 제주도에 산다며 피정이 끝나고 애월에 가서 본인의 단골 식당에서 밥을 먹고, GD가 한다는 커피숍에도 갔었다. 내가 묵을 호텔에 데려다 줬을 때 밥값 겸 차비 겸 해서 3만원을 드렸는데, 매우 어이없어 했다. 나도 돈을 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다가, 누군가에게 빚으로 남기 싫다는 기분에 드렸다. 그분은 아마도 그깟 3만원에 본인의 호의가 무시되는 모욕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80 내 사정을 알게 된 그는 커다란 빵과 1킬로그램은 족히 될 만한 치즈 한 덩이 그리고 같은 무게의 꿀단지를 주려고 했다. 내가 극구 사양하자, 그는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실랑이하던 끝에 그에게 내 짐을 한번 들어보라고 했다. 그는 그제야 알겠다며 잼을 바른 빵과 치즈 한 조각만을 쥐어주었다. 솜씨 좋은 약사는 거절했으며, 오늘 밤 목적지 마을까지 가는 약도를 상세하게 그려주는 등 세심한 배려와 친절을 잊지 않았다.

 

83 아픔을 참으며 힘겹게 걷느라고 주변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만 해가 다시 나서, 비에 젖어 미끄러운 땅이 마르고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한 시간 반쯤 걸으니 고통이 조금씩 사라졌다. 내 몸이 엄청난 양의 엔도르핀을 만들어 고통을 없애준 모양이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의 달라진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어제 본 황폐하고 붉은 땅은 아베롱 지방의 석회질 고원을 연상케 했다. 오늘 보이는 것은 경작이 활발한 거대한 언덕들이었다. 그 중 한 언덕 꼭대기에 오르자 막 경작이 시작된 바둑판 모양의 검은 농지와 밀과 호밀로 가득한 부드러운 녹색 초원이 눈 앞에 끝없이 펼쳐졌다.

 

85 도보여행의 모든 결과는 정직하다. 몸 전체를 던지는 일이다. 내 몸을, 내 기억과 약과 옷, 식량, 침낭을 짊어질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모든 실수는 곧바로 혹은 이튿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혼자 걷는 이상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 ~

이곳에서 숙식과 안전을 해결해주는 것은 거창한 국제 교류도 몇 푼의 돈도 아니다. 그것은 불안한 가운데 쭈뼛거리며 다가가는, 나와 정말 비슷하지만 또 매우 다른 이 이간 형제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도보 여행뿐일까.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겠지. 모든 실수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라도 그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

 

90 그의 미소, 그의 시선 목소리 그리고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 등 나는 모스타파의 모든 것이 좋았다. 이런 장점들이 보기 드물게 조화를 이룬 사람이었다.

 

90 손을 허벅지 사이에 끼고 팔에 기대 몸은 약간 앞으로 숙인 채 그들은 마치 동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신기해서 둥그래진 눈으로 그들은 내 발끝에서 배낭, 침대 위의 옷, 샌들, 연고 등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훑어보았다. 이미 이런 소리 없는 관찰에 익숙해진 터라 마치 여신이 몸치장을 하듯 나도 발을 치료하는 데만 몰두했다.

 

91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렇다고 그걸 즐긴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95 안락함이 그리웠던 나는 별 세 개짜리 호텔에 들어가 빨래할 옷들을 맡기고는 뜨거운 욕조 안에 몸을 담그며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빨래 서비스 가격을 미리 알아보지 않은 탓에 방값만큼의 돈을 더 지불해야 했다. 명심해야 할 교훈을 얻었다. 시골 마을 사람들은 내게 호의를 베풀지만, 일개 관광객에 불과한 이곳에서는 나를 등쳐먹을 뿐이다.

처음에는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어색해질까봐 때로는 귀찮아서, 바가지를 쓰는지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점점 금액이 커지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면 나를 바보로 보는 것 같아서 화를 내거나 욕을 하기도 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바보가 되는 것도, 흥정하는 것도 지쳐서 나는 전통 시장에 가서도 아무것도 안 사려고 했었다. 그때 만났던 아일랜드 출신의 나이든 여행자(아마도 60대 초반?)는 바가지를 써서 더 내는 몇 천원이, 본인은 없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돈이지만, 누군가의 저녁 양식거리가 되기에 알면서도 속아 준다고 했다. 나도 그 이후에는 몇 천원 정도는 그냥 속아줬다. 말해봐야 서로 기분만 나쁘고 여행도 망칠 수 있으니

 

102 “이 길이 아니라오. 내 아들이 길을 인도해줄 거요.”

그는 물과 요구르트를 섞은 아이란(ayran)이라는 찬 음료를 권했다. 어떤 음료도 이만큼 상쾌하지는 못하리라. 이정표에 표시된 큰 길에서 멀리 떨어진 시장에서나 접할 수 있는 이런 구식의 행복을, 나는 이 관대한 노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음껏 음미했다.

 

4.     의구심

108 전날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탓인지 기분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특히 걱정되는 건 발이었다. 신발이 발에 익숙해지든지 발이 신발에 익숙해지든지, 결판이 나야 했다. 지금으로선 신발이 이기고 있다. 신발 가죽이 조금이라도 부드러워지라고 나는 되도록이면 물가로 걸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발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이유는 신발의 이음새가 엉망으로 바느질되어 있기 때문이다. 걸을 때마다 신발에 접힌 주름이 마치 단두대처럼 발톱을 조금씩 자르고 있었다.

조금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3000킬로미터를 걷는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신발을 왜 좋은 워킹화로 고르지 않았을까? 준비부족은 아닐테고, 그 전에 많이 걸어봤으니 신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을텐데아무튼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할까?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이에 대한 고통을 치르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109 무엇이 나를 이렇듯 자꾸 더 멀리 가게 만드는 것일까? 내가 지닌 상식과 신중함은 분명 멈추라 말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탓할 수 밖에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만 더, 좀더 멀리, 내 안에 억누를 수 없는 원초적인 충동이라도 있는 것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나는 스스로에게 무척 비판적이다. 언제나 나 자신이 그 희생자일 수 밖에 없으니까. 나를 걷고 또 걷게 만드는 이 격렬한 욕망은 대체 무엇일까? 얼마나 버티는지 시험해보려는 그리고 기록을 깨보겠다는 어쭙잖은 허영일까? 아니면 오만? 의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20여 년 전 도보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이 느낌만큼은 잘 알고 있다.

 

110 대부분의 스포츠와 달리 마라톤은 몇몇 챔피언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35킬로미터를 달리고 나서 몸이 이제 더는 못 하겠다고 비명을 지를 때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근육에 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지방을 분해하는 복잡한 화학작용이 몸 속에서 일어날 때, 주자(走者)는 자신의 머리와 장() 속에서 고갈된 에너지를 찾는다. 바로 이러한 뇌의 회전과 장의 회전이 결합되어 이를 악물고 뛰어감으로써 그는 소중한 몇 초를 벌 수 있는 것이다. 42킬로미터를 뛰어 근육이 마비돼버린 마라토너는 결승선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크로노미터(매우 정확한 시계)를 돌아본다. 그리고 행복은 바로 거기, 그가 단축한 몇 초 안에 숨어 있다. 마라토너에게 어느 날엔가 그를 훌쩍 추월할 수 있는 적수라고는 단 한 명뿐이다. 바로 자기 자신.

풀코스는 아니지만 10킬로미터는 뛰는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다른 사람보다 빨리 달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 젊은 남자들의 경우, 내가 그들을 추월하는게 기분 나쁜지, 나에게 추월당하자마자 속도를 올려서 다시 나보다 앞서 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1분을 못 가서 걷거나 아예 주저 앉는 경우를 많이 봤다. 본인의 속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나의 속도로 연습한 대로 뛰면 된다.  

 

110 하지만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욕구가 걷고 또 걷는 행위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물론 나는 좀더 먼 곳, 저 언덕을 넘고 이 마을을 지나서, 저 고개를 넘어서 늘 더 푸른 풀을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나를 앞으로 떠미는 이 통제되지 않는 충동은 내가 애써 숨기려 하는 어떤 두려움과 뒤섞여 있다. 끝까지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수전노가 동전을 긁어모으듯 1킬로미터라도 더 모아두는 것이다. 한 걸음이라도 걸을 수 있은는 한 그리고 배낭을 짊어질 힘이 남아 있는 한, 목표에 이르길 갈망하면서 걷고 또 걷는다. 내게 주어진 이의무는 바로 내가 정한 것이기에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게 시간 제약이 있는 것도, 매일매일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는 것도, 또 최소한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매년 네 단계로 나누어 시안까지 걸어가겠다는 목표가 있다. 하지만 일년을 더 추가한다고 한들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짧게 보아서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하나뿐이다. 이 나라의 비자 만료 기간 전에 이란 국경까지 도달하는 것. 지금으로선 파리에서 세운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니 좀 진정하자, 진정하자,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타일렀다.

 

123 내가 만약 차로 이동하는 중이었다면 혹은 손님으로서 그들의 차에 올랐던 거라면,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었을까? ~ 걷는다는 것은 자유며 교류다. 그런데 철과 소음의 감옥인 자동차는 선택이 불가능한 혼잡스러운 장소인 것이다. 이 유목민의 후손들이 게다가 조상의 덕망을 즐겨 칭송하는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서 앉은뱅이가 되어 이제 근육을 써서 스스로 움직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활동성이 퇴화해버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26 2주 전 삼순호에서 그랬던 것처럼 혹은 이틀 전 네브자트의 집에서처럼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끝까지 갈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발톱에서 느껴지는 고통도 낙관적인 생각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여기에 언어에서 오는 소외감이 더해졌다. 내가 과소평가했던 적()이었다. 걸을 때는 고독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내 안에 쌓여가는 영상들, 자신과 나누는 대화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숙소에서, 식당에서 그리고 사람들과 만날 때 나는 외딴 언어의 섬에 고립돼 있었다. 떠나기 전에 배운 말과 길을 가며 알게 된 말만으론 부족했다. 언어의 감옥이라는 이 넘지 못할 장벽은 어떻게든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견디기 힘들 것이다.

 

130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많은 운전자들이 나에 대해 서로들 얘기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내가 나타나면 모두들 몰려들어 그 믿기 어려운 소문 한 친구가 이스탄불에서 테헤란까지 걸어서 간다더라 의 진상을 확인하고자 했다. ~

나를 이미 보았거나 황당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 버스 운전사들은 특히 친절했고, 승객들에게도 그 얘기를 해줬다. 그러면 승객들이 모두 나를 격려해 주었다. 나도 일일이 화답했다.

 

135 예순 하나의 나이, 삼순호에 타고 있을 때는 걱정도 많았지만 육체의 젊음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내 신체기관을 내가 뛰어든 모험에 적응시키는 것, 이 첫 싸움에서 나는 승리한 모양이다. 나는 세포 하나하나마다 취기 같은 것을 느꼈다. 이 환상적인 풍경 속에서 몸이 공중에 뜨는 듯했다. 마침내 보행자의 열반(涅槃)에 들어선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욕심내서 걸었던 거겠지. 그런데 욕심은 열반에 들기 위해서 버려야 할 첫번째 항목이 아니었나? 어쨌든 걸음만으로 열반에 든 느낌을 받았다니 어떤 건지 부럽긴 하다.

  

5.     맹견 캉갈

142 철학자 미셸 세르(Michel Serre)는 수동성은 야만적인 것의 다른 형태라고 했다. 이러한 일상의 노력, 멀고 먼 목표를 향한 알 수 없는 그러나 강렬한 부추김 그리고 유익한 땀방울을 통해 나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어린 시절과 두려움과 고정관념의 사슬에서 해방된다. 나는 사회가 얽어맨 줄을 끊고, 안락의자와 편한 침대를 외면한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으므로 살아 있는 것이다. 걸으면서 몽상하기란 쉽지만, 걸으면서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날아오르는 독수리, 흘러가는 구름, 도망치는 산토끼, 엉뚱하게 마주치게 되는 교차로, 이름 모를 꽃의 진한 향기, 목동의 외침 혹은 끝없이 펼쳐진 언덕의 흰 물결. 이렇듯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거슬이 생각을 계속 이어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매 순간, 걷는 이는 수많은 사소한 사건들에 이끌려 명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로 되돌아오게 된다.

 

142 걷는다는 것은 꿈꾸는 자에게 더욱 관대하다. ~ 나는 종종 어떤 친구나 사랑했던 여인과 아주 흡족한 대화를 나누게 될 때가 있다. 그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 스스로 질문과 대답을 조절해나갈 수 있었기에 모든 것이 쉽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대화 중에는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기에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143 여행 중에 가끔은 지기(知己)에게 몇 마디 적어서 보내기도 한다. 오랫동안 얼굴도 못 보고 살다가 세상의 다른 쪽 끝에서 온 카드를 받은 친구는 아마 놀랄 것이다.

나도 여행하는 동안 엽서를 몇 번 보냈었다. 얼마전에 만난 전 직장 동료는 내가 터키의 파묵칼레에서 보냈던 엽서를 아직도 자리에 붙여 놓고, 언젠가는 그 곳에 가겠다며 여행의 꿈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는 건 큰일을 통해서만은 아니다.

 

152 사람들이 수도 없이 얘기했던 위험들 중의 하나를 극복한 것에 만족스러워하며 나는 아주 유쾌한 기분이었다. 이제부터는 다른 위험과 마주치게 되더라도 겁에 잔뜩 질리긴 하겠지만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168 원기를 되찾게 해준 저녁시간이었다. 시골 마을 사람들도 친절했지만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나는 대화나 접촉에 늘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우리 네 사람 모두 마치 무언가 서로 채워줄 것이 있는 것처럼 신뢰하는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169 길이 끝나는 정상에서 마치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는 한 남자를 보았다. 인가에서 10킬로미터쯤 떨어진 이곳에 살고 있는 앉은뱅이 노인이었다. ~ 그는 밤이면 덤불숲을 돌아다니다가 야외에서 그냥 잔다고 했다. ~ 나는 그에게 25만 리라짜리 지폐 한 장을 쥐어주었고, 그는 그 돈을 가슴에 꼭 품더니 내게 오랫동안 무슨 말인가를 했다. 알라가 내게 그 돈을 몇 십배로 갚아주실 거라는 뜻인 것 같았다. 사실 신에게는 그리 엄청난 액수가 아닐 것이다. 그런 보상보다는 차라리 알라가 이토록 헐벗은 자신의 피조물을 더 잘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전에 만났던 두 눈이 먼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두 사람이 동료가 되어 서로 의지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가장 감동적인 기도가 떠오른다.

주님, 저는 이미 많은 것을 가졌으니 저에게는 이제 그만 주시고, 저보다 못 가진 아이들에게 복을 주세요.”

오늘도 나는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기도했던 것 같은데참 알면서도 실천하기 힘들다.

마지막 문장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한 장면 같다. 이런 동화가 있었던 것 같다.

 

171 베흐체트는 은퇴한 농부였다. 일년 전, 친구의 영국인 친구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흔일곱의 그는 셰익스피어의 언어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비록 그 영국인은 오지 않았지만 그는 공부를 계속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베흐체트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이 마을에서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던 것이다.

 

172 그는 아주 기쁜 표정이었으며 그의 기쁨은 내게도 전해졌다. 외국 손님을 맞게 된 것이 너무나 기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

하루건 이틀이건 일주일이건 당신이 머물고만 싶다면 내 집은 당신 것이라오.

 

173 ! 이 세상에 아직도 그 노인처럼 진귀한 사람이 존재함을 확인한다는 건 얼마나 힘이 솟는 일인가.

 

6.     왔노라, 보았노라

188 그러나 뜨거워진 신발 바닥이 재촉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걸어야 했다. 항상 자문해보곤 한다. 무엇이 나를 자꾸 앞으로 떠미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길래 잠에서 깨자마자 나를 길로 내던지는 걸까? ~

특히 순례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하루 평균 30킬로미터를 걷는 것이 단련이 되면 육체의 개념 자체가 무화되곤 한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순례의 전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몸의 단련을 통해 영혼을 고양하는 일이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머리는 신() 가까이에 가 있다고나 할까. 보이오티아인들이 굳게 믿었던 걷기의 지적인 측면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189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스스로를 직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발견할 수 없었을 자신의 일부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혼자 걷는 것을 선호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여정에서 친구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의 순례자나 대상들이 나보다 유리했던 점이 바로 이것이다. 저녁이 되면, 그들은 도보여행자들과 자신들의 신앙, 피로 그리고 각자 발견한 점들을 서로 교환하며 하룻동안의 일과 생각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200 카이사르는 상원이 요구한 대로 전쟁 역사상 가장 짧고 가장 유명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판 위에 문자를 새긴다.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간 전쟁에 대해, 그는 다만 이렇게 언급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칼들이 부딪치며 내는 섬광, 죽어가는 병사들의 신음, 부상자들의 울부짖음, 쉭쉭거리며 날아가는 화살들, 요란한 채찍 소리, 이 모든 걸 보고 들었던 이 언덕은 그날 이후 2000년 동안 평온을 유지했다. 오늘날엔 다만 초원을 스쳐가는 바람과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종달새들의 지저귐만이 침묵을 깨고 있을 뿐이다.

정말 유명한 말인데, 그 유래는 몰랐었다. 이렇게 아픈 역사에 관련된 말인줄 알았더라면 인용하는 일이 없었을텐데……

 

201 그는 내 팔을 친근하게 하지만 강하게 잡아당기며 나를 끌고 가서는 자기 집으로 밀어넣었다. ~ 일단 감싸안고 훈훈하게 해주고 모든 망설임을 무력하게 만드는 후세인의 온정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는 모든 걸 알고 싶어했다. ~ 이 집에는 세상이 힘들게만 느껴져서 절망할 때도 위안을 줄 수 있는 소박한 행복과 아름다운 모습들이 가득했다. ~

후세인은 이방인을 맞게 되어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내 팔을 건드리거나 어깨를 치기도 했다. 접촉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이대로라면 그는 나를 끌어안고 포옹을 하거나 입을 맞출지도 몰랐다. 그는 관대하고 호의적이고 우정을 느끼게 하는 남자였다. 좋은 성품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다시 배낭을 집어들자 그는 길 끝까지 나를 배웅해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

이 친구의 우정은 정말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7.     1000킬로미터

207 그 아치에는 열쇠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1밀리미터 정도의 얇은 돌들이 촘촘히 아치를 이루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이러한 지그재그 모양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아무 형상도 아니었다. 갑자기 이 벽돌들을 거꾸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몸을 숙여서 다리 사이로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모든 그림이 아주 뚜렷하게 사람의 윤곽을 나타내고 있었다. 원호(원호)를 따라 그려진 형상들을 세어보니 정확하게 열네 개였다. 내가 이런 시도를 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내 자세를 진기한 듯이 쳐다보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몸을 바로 세우고 빙긋이 웃어보였지만, 그는 내가 약간 맛이 간 관광객이라고 생각했는지 부리나케 도망쳤다.

 

212 이 구역은 이제는 거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스만 문화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콘크리트가 나무로 지은 전통 집들 대신 들어서지 않은 것이다. 마치 불도저에 꿋꿋하게 대항하려는 듯 서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오래된 시를 읽을 때처럼 감동적이었으며, 반항적이고 연대적이고 고집스러운 정신만이 오직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도 영혼이 있는 법이다. 바로 그 곳, 무너져가는 사원의 그늘 밑 작은 광장에서 내가 세 명의 노인과 친분을 맺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몰랐다. 그들은 메카까지 성지순례를 하는 꿈을 이미 이룬 사람들이었으며, 모두 마치 깃발처럼 치렁치렁한 흰 수염을 휘날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고, 시간은 멈춰진 것만 같았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215 황량한 벌판에 일직선으로 단조롭게 난 길은 마치 경치에서 벗어난 듯 보였다. 그런데 그곳, 한창 공사 중인 나무 오두막 아래에 두 남자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수박을 쌓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사를 하기엔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지만, 두 남자는 자신만만하고 느긋해보였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떨었다. 사진을 찍어주자 그들은 보답으로 버찌를 주었다. “손님이 많은가요?”라고 붇자 그들은 무심한 미소를 지으며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들의 이 아름다운 낙관주의는 나를 더없이 즐겁게 했다. 이 장면을 마음속에 잘 간직했다가 세상의 번잡함으로 인해 평정을 잃으려 할 때마다 꺼내보리라.

 

217 정말이지 나는 그에게 고백하고 싶었고, 어쩌면 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과연 내겐 두려움이 없을까? 그는 마침내 테러리스트들얘기를 꺼냈고, 내게 총을 겨누는 악당 흉내를 냈다. 결국 나는 진짜로 겁먹었다. 이곳 사람들은 근심을 일상처럼 지니고 산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애쓸 필요는 없었다. 고독한 여행자는 원래 짐 속에 두려움을 갖고 다니는 법이니까. 그것은 숲속 혹은 한밤의 침묵에 스며들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질 때마다 고개를 들기도 한다. 등에 배낭을 메고 혼자 걷는다는 것은 위험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몸을 내맡김을 의미한다. 자전거 여행처럼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도 그리고 자동차 여행처럼 몸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전혀 없다. 지금까지는 두려움이란 놈이 배낭 안에서 부끄러운 듯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매일매일이 그리고 만남 하나하나가 축제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녀석이 은밀하게 몸을 일으켜 내게로 왔다.

 

225 밤에 베라고 베개를 주러 온 탈라트의 딸은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웠다. 탈라트가 딸의 이름을 말하자 그녀가 뭔가 환영의 인사인 듯한 말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미모에 거의 넋이 나간 나는 터키어를 더듬거리다가 끝내는 프랑스어로 끝도 없는 칭찬을 늘어놓고 말았다. 한마디로 나는 아름다움에 감탄해 그걸 겉으로 드러낸 것이다.

60이 넘어도 남자는 참…… 그러고 보니 여행이 끝나고 한참 뒤에 스물 여덟살이나 어린 여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나보다 스물 여덟살이 많으면 일흔 한살이다. 이런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 정도의 매력을 느끼려면, 도대체 얼마나 좋은 사람이어야 할까?

 

227 지혜란 길을 따라 걷는 중에 얻어지는 법이다.

 

228 이 세 사람 역시 뭔가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들은 공격적이진 않았지만 공포로 몸이 굳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총을 보고 겁먹긴 했지만 곧 평상심을 되찾은 것과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다. 그들의 두려움은 항구적인 것이며, 그들은 그것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몸짓마저 지배한다.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만난 몇 안 되는 자동차와 트랙터들 중 나를 태워주려고 멈춘 차는 한 대도 없었다. 두려움이 호기심보다 더 컸던 모양이다. 그리고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도 토카트 이전까지는 정말로 반갑게 인사하며 차를 대접했지만, 여기에서는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두려움만이 지배하는 지방에 들어선 것이다.

 

231 새로운 풍경을 갈구하는 나의 취향은 정말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다. 마치 새로운 미인을 보면 그 전의 연인은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바람난 애인 같지 않은가. 환상적인 장면을 막 보고 돌아섰는데도, 나는 다음에 올 경치에 다시 관심을 갖는다. 내게 행복은 항상 저 평원 너머에, 저 돌 장벽 뒤에 숨어 있는 것이고, 땅의 굴곡 속에, 강줄기가 바뀌는 곳에 그리고 좁은 통로를 빠져 나온 바로 그곳 어딘가에 있다. 그 행복을 잡으려는 욕망에 이끌려 나는 시간을 잊는다.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보니 열한시 반이다. 나는 혼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돌아본다. 그리고 펄쩍 뛰어올라 이 황량한 길 위에서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린다. 배낭의 무게가 허용하는 한 가장 멀리, 나는 용솟음친다.

이제 막 1000킬로미터를 주파했다.

 

8.     헌병들

241 “도대체 돈 말고는 다른 관심거리가 없습니까?”

그건 우리가 너무나,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이라오……” ~

마을을 한 번 가로지르기만 해도, 아니 여기 모인 사람들을 살펴보기만 해도 그의 말에 대해 그리고 모든 게 부족한 그들의 상황에 대해 수긍할 수가 있었다. 이 방엔 공기마저 부족한 듯했다.

너무나 가난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자발적 가난이니, 돈이 많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것도 사실은 어느 정도 기반은 갖춰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너무 가난하면 하루 하루 먹고 살 걱정에 그런 생각도 할 수 없겠지. 이런 말도 누군가에게는 오만이자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

 

258 다행히도 내가 소변을 보러 나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총에 맞을 수도 있었다. 운명이란 이런 식으로 정해지기도 또 틀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264 “하지만 나는 당신이 배고프지 않은지 물어본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에이치(h)발음을 분명하게 했다. 사실 푸른 눈은 내게 시장하지 않은지 정중하게 물으려던 것이었는데 (Are you hungry?), 그만 “Are you angry?”라고 발음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내가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에게 분노를 터뜨릴 기회를 잡은 것이 기뻤다.

 

265 모든 게 피곤했을 뿐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푸른 눈과 그 부하의 미숙함 혹은 순진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정말 위험한 문서들을 가지고 있었다면 배낭 속이 아니라 몸에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내 몸은 수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66 근처 사원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확성기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다섯시였지만, 616일은 아직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에 1000킬로미터대를 주파한 것, 트랙터 삼인조에게 강도를 당할 뻔한 것, 알리하지에서 체포된 것, 정말 다양한 감정을 체험한 하루였다.

 

268 모든 게 단지 불운의 연속일 뿐이기를 그리고 빨리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차분하게 여행을 계속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랐다. 하지만 그런 상상의 날개를 펴기에는 모든 것이 불확실할 뿐이었다.

 

9.     대상 숙소

268 하사관 한 명이 훈련장 한가운데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혹독함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어린 병사들로 구성된 소대원들을 무기 조작과 달리기와 행군으로 녹초로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 하사관들은 병사들에게 양수기 주위를 당나귀처럼 뱅뱅 돌라고 시킬 게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가르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270 앙카라에 있는 프랑스 영사관에 전화를 하자 한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가며 전화를 받았다. 그들이 자국인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비행기로 날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의 설명은 대략 이러했다. 위험한 지역들이 있다는 것, 내가 굳이 그런 곳에 모습을 드러낸 게 잘못이라는 것, 헌병들은 그들 마음대로 한다는 것, 따라서 그들과 얘기해봤자 소용없다는 것, 결론적으로 내가 체포되고 수색까지 받게 된 절차에 대해 영사관이 국가를 대표해서 항의할 명분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계속 여행하기를 고집하는 이상 나는 또다시 검문받고 체포되고, 심지어는 헌병들 마음대로 하루건 일주일이건 혹은 그 이상이건 감금할 수도 있었다. 내가 터키를 가로질러 도보여행을 하는 것 자체가 영사관 사람들에게는 잠재적인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프랑스 외교관도 우리 나라 외교관이랑 크게 다를 바가 없구나. 아니 생각해 보면 위험을 자초한 건 저자이기도 하다. 하지말라는 걸 본인 고집으로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위험은 본인 스스로 감수(at your own risk)해야 하는 거겠지.

 

271 그는 아주 편안하고 교양 있고 세상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터키인들과 달리 그의 훌륭한 영어 실력은 단지 교양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표출이었다. ~

무스타파 카트자르는 반대로 내가 자주 만났던 젊은 학생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인물이었다. 아마시아의 어린 학생들이 보여준 세상에 대한 호기심, 외국어와 여행에 대한 갈망 등은 유럽과 미국이 그들 세대에 미친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278 특히 방문 앞에 버티고 서서 총을 만지작거리던 그 남자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좀 이상한 일이지만 내가 겁먹었던 것은 공포 때문도 죽을까봐 두려웠기 때문도 아니었다. 보호가 철통 같은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가면을 쓰고 다가온다. 사람들은 죽음을 감추거나 억누르거나 아니면 내던져버린다. 나는 최후에 대해 자주 생각해봤다. 심지어 그걸 바라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죽음을 그렇게 가까이 직면한 적은 없었다. “태양도 죽음도 뚫어지게 바라볼 수는 없다라는 프랑스 작가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uld, 1613~1680)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런데 나의 죽음이, 내 배낭 때문에 겁에 질린 무지한 미치광이의 불안정한 손가락에 내맡겨진 채 거기 있었던 것이다!

 

279 물론 이 길에서 나는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르망디-파리 고속도로에서도 샹젤리제 거리를 건너면서도 혹은 횡단보도에서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턱없이 순진한 건 아니다. 걷는다는 건 모든 접촉에 노출된 일이다. 따라서 호의도 악의도 모두 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침대에서 죽기를 바랐다면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이 같은 생각은 언제나 확고했다. 자신의 침대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래서 절대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280 얼마 후 경쾌하게 길을 따라가고 있는데 자동차 한 대가 서더니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거절했다. 사람들이 다시 차를 세운다는 건 두려워할 게 없다는 얘기였다. 오늘의 압권은 앰뷸런스 한 대가 태워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아뇨, 아직은 괜찮습니다. 나중엔 혹시 모르겠지만……”

한비야의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아르헨티나를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했고, 그녀가 세운 차 중에는 시체 운구차도 있었다고 했다. 다행이 시체를 가지러 가는 차라 자리가 있어서 그녀를 태워줬다.

 

281 아침에 뜨겁고 풍성한 초르바시를 먹고 식당에서 나오다가 정말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그만 기회를 놓쳐버렸다. ~ 수셰리에서 놓쳐서는 안 되었던 장면은 유쾌한 웃음으로 가득 찬 짐을 싣고 가던 트랙터였다. 그 짐이란 바로 어린아이들이었다. 흙받이에, 차 덮개 위에, 좌석에, 농기구에 온통 아이들이 매달리거나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내가 카메라를 꺼내는 사이에 아이들이 모두 트랙터에서 내려버렸다. 세어보니 운전사를 포함해서 모두 사내아이 열일곱 명이었다. 난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을 새삼 확인해야 했다. 내가 아주 형편 없는 사진사라는 것을.

나도 멋진 사진을 찍을 기회를 많이 놓쳤었다. 귀찮아서, 남들과 똑같은 사진 찍고 싶지 않다는 쓸 데 없는 고집에, 때로는 그와 같이 타이밍을 놓쳐서, 못 찍고 후회했다. 아주 가끔은 너무 아름다워서 그 장면에 빠져 있느라 사진 찍을 생각도 못 했던 적들도 있기는 하다.

 

285 그는 이를 닦는 나를 조용히 그리고 경이로운 듯 바라보았다. 그의 치아는 좋은 상태가 아니었지만 두 개 중에 한 개 꼴로 없었으니까 웃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그가 입을 다물면 윗니가 아래의 빈 곳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이었다. 아랫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빈 곳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 웃음이 그에게도 전해졌는지, 잠자리에 들 무렵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돼 있었다.

 

287 돌아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다른 것을 향해서 똑바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리프도 만날 수 있었고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풍경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았는가. ~

시원하고 어둠침침한 식당에서 맛있는 초르바시를 먹은 다음에는 풀밭에 누워 한 시간쯤 낮잠을 잤다.

 

287 괼로바 시의 시장인 오스만 쿠르트가 테라스로 차를 내왔다. 그는 지금부터 한 달 전쯤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에 가던 중 이스멧파샤 해안을 걷고 있는 나를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괴짜가 지금 자기 옆에 있으니 어리둥절해했다. 처음엔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는 점차 흥분하기 시작했다. 정말 범상치 않은 일인 데다가 이야기만 들어도 흥미진진했는데, 이제 그 주인공과 마주하고 있다니……

 

292 아침에 반대편으로 가는 트럭 한 대를 세워서 이르판을 만났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실크로드의 단 1킬로미터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소심함이 거의 정신병이나 편집증에 가까운 모습으로 비칠 수 있으리라는 것, 물론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296 “난 당신이 어떻게 그토록 먼 길을 올 수 있었는지 알아. 마약을 하는 거지.” ~

나는 물을 소독하는 데 사용하는 그 알약을 보여주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를 납득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와 그의 동료들 머릿속에는 이제 다른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나의 성공은 처음엔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내가 흥분제를 복용한다고 믿게 돈 순간부터 모든 건 정상적인 일이 돼버렸다.

신포도의 또 다른 버전인 것 같다. 내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 부러움의 경지를 넘어서면 저기엔 뭔가 비밀 깨끗하지 않은 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금수저거나 드러나지 않은 도움을 받거나 등등. 가끔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가 있다. ‘그럼 그렇지라며 나를 위로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텐데

 

10.  여인들

306 교육도 문화도 그들을 거부한다. 물론 나며평등이 법적으로는 인저외고 있다. 여성 수상까지 나온 적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많은 여인들이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고 잡일일이나 하면서 숨어 지내듯 살고 있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들은 대로 자신들의 육체를 부정하는 규율에 따라 옷으로 몸을 감싸고 말이다.

 

310 유명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팬들에 대한 의무도 있고, 때론 그게 달콤하게 여겨지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싫은 일들도 해야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한마디로, 조심하지 않으면 거기에 완전히 예속돼버리는 것이다. 사랑받으려면 일단 건강 상태가 좋아야 한다. 게다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알리하지 주민들에게 받은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선한 얼굴로 나를 영웅 취급하다가 군대를 부른 그들 말이다. 그 일로 나는 터키인들이 내세우는 환대라는 덕목에 대해서도 상대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호텔의 지저분함이 오히려 익숙한 듯 느껴졌고 어느 정도 안심이 됐다.

 

315 어떤 목표가 막 달성될 찰나에 이르면, 나는 거기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내겐 언제나 그 다음이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이다. ~

에르주룸은 눈앞에서 자꾸 달아나고 있었다. 비록 가장 짧은 거리였지만, 내가 여행을 시작한 이후 가장 어려운 단계였다는 생각이 든다. ~ 내가 가까이 간다고 생각할수록 더 멀어지면서 저 도시는 얄밉게도 즐거워하고 있는 듯했다.

 

317 서아시아를 여행하고 나면, 20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곳에서 장사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대화의 기술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손님이 상점에 들어올 때 상인이 기대하는 것은 실제적인 이익도 이익이지만 좋은 대화를 나누면서 느끼는 기쁨이다. 나는 이곳의 상인들이 손님들과 벌이는 놀이에 금방 매혹되었다. 농간을 부리기도 하고 꼬이기도 하고 고상한 사교술을 동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도의 전략에 버금가는 머리싸움도 한다…… 이는 서양 사회가 지극히 신성하고 솔직함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엔 투명성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다분히 멸시하는 경향이 있는 행위들이다 하지만 잘 관찰해보면 새로운 게 보인다. 이렇듯 인간 대 인간으로 부딪침으로써 서로 마음을 열게 되고, 진심 혹은 거짓이 눈에서 눈으로 표현된다. 그러면 사람들 사이의 장사가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331 공포로 인해 발이 풀린 그는 트랙터를 멈췄다. 그가 천천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눈 속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셔서 아마 나도 그처럼 흙빛이 돼 있었으리라. 갑자기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살았다는 데서 오는 커다란 웃음이 산속에 메아리쳤다. 폭소가 멎은 다음엔 침묵이 찾아왔다. 우리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고, 그 다음엔 길을 그리고 100여 미터 저 아래를, 돌무더기 속에서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던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죽음이, 그것도 어이없는 죽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간 후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실 어이없지 않은 죽음은 또 어디 있겠는가?

 

334 다시 한번 깨달은 사실이지만, 현실은 언제라도 우리를 헤매게 만들어서 우리가 그것을 좌우한다고 믿는게 얼마나 헛된 생각인지를 알게 만든다.

 

11.  그리고 도둑들

347 어제 아침 떠났던 파진레르에서 겨우 15킬로미터 전진했다. 거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옴으로써 어제의 40킬로미터 그리고 오늘 아침의 10킬로미터는 모두 허사로 돌아간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 무엇을 불평할 것인가?

 

348 나는 큰길에서 잠시 쉬며 자신을 책망했다. 야슈티크테페에서 사람들은 총질하는 흉내를 내거나 손가락으로 목을 자르는 시늉까지 해가며 내가 얼마나 위험한 곳으로 가고 있는지 경고를 했다. 어제 아침 내게 차를 권했던 양봉가 또한 걱정스러운 듯 무기를 지녔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위험한 상황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순진하게 나의 수호천사만 믿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자꾸 고집한다면 언젠가는 수호천사도 나를 버릴 것이다.

 

352 방금 전까지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후 생각을 바꿨다. 물론 그들도 멋진 여행을 하고 있으며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나의 공통점은 거기까지다. 자전거 위에서 텐트 속에서 그들이 보는 것은 그 지방의 일부, 결국 풍경뿐이다. 같은 언어를 쓰며 텐트 속에서 잠을 자는 그들은 도둑에 대한 걱정은 나보다 덜하겠지만, 마을 사람들과는 거의 교류하지 못한다. 그들은 세상을 발견하고, 나는 몸소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세상과 직면한다.

 

356 내가 비정상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정이 있었다. 엘레스키르트의 길은 어제 저녁에 승용차로 그리고 오늘 아침에 트럭으로 두 번이나 지나서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지역을 걸어서 그리고 내 눈 높이에서 발견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가보니, 실제로 느낌이 많이 달랐다. 더 크고 더 훌륭하고 더 인상 깊었다. 한 마디로 더 현실적이었다.

 

367 다시 처음 왔던 길로 되돌아가서 이것도 이제 습관이 돼버렸다 나는 나 자신에게 거칠게 욕을 해댔다. 또 한 번 보기 좋게 함정에 빠진 꼴이 아닌가.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오늘 아침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또 덫에 걸리다니. 이곳에 마을 부호의 집따위는 없었으며, 오두막에 가까운 허름한 집 열 채 가량만이 움푹 들어간 대지 속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368 그런데 갑자기 작전을 바꿨는지 옆에 서 있던 흥분한 남자가 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나는 그 손을 제지하며 그를 길 반대편으로 힘껏 밀었다. 아드레날린을 한껏 분출하고 있던 나는, 나를 해코지하려 한다면 그에게 덤벼들 준비가 돼 있었다. 갑자기 겁을 먹었는지 그는 내게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러자 소년이 검지를 이마에 대며 저 남자 미쳤다는 의미의 신호를 보냈다. 내가 마을의 미친 사람들을 수집이라도 하고 다니는 건지,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373 몹시 흥이 난 뚱뚱한 여인은 자기 남편이 책임자로 있는 이 작은 마을의 일상을 설명해 주었다. 많은 부분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대부분 남편들이 독일에서 일하며 일년에 한 번 들른다는 얘기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조금씩 이 부드러운 여자들만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모든 게 만족스럽기만 하던 어린 시절 한 때의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성인이 돼서 되찾은 듯한 위안을 받았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전화는 여전히 불통이었다.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느낌이었다. ~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남자가 멀리 있을 때 여자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374 그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다니 나도 무척 행복했다. 처음에 아무렇게나 찍었던 것과 달리, 여자들은 아주 진지한 태도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나이에 따른 배치일까 아니면 단순히 친한 사람 옆에서 찍으려는 것일까? 이렇게 자리 정하는 일을 그들은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았고, 모든 절차가 재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마치 소풍 나온 여학생들이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겁 먹은 병아리들처럼 재빠르고 조용히 줄을 지어서는 모습과도 흡사했다. 비록 과감하게 마주 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카메라라는 기계는 그들에게 마술에 걸리게 하는 신비로운 상자 같은 것이리라.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악마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 몸을 웅크리고 그대로 따르는 게 더 나은 법이다.

 

12.  고원의 고독

376 어제 강도를 당할 뻔한 일 때문에 나는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실제 사건 이상으로 경계해야 하는 분위기 그리고 그로 인한 긴장이 내게 낙심과 환멸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음울한 생각으로 마음이 동요돼서 나는 위욕 상실과 분노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길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국도 쪽으로 갔지만 용기가 없었다. 호텔에서 든든히 아침식사를 했음에도 나는 식당에 가서 뜨거운 초르바시를 시켜 그 속에 빵 반쪽을 담갔다. ~ 사실 초르바시는 그릇 속에서 숟가락을 똑바로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진했다. 지금 그렇게 해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갑자기 내가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꾸물거릴 핑계를 찾는 열등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전 여행할 때, 비용을 아끼기 위해 처음에는 가능한 싼 숙소에서 묵겠다고 계획했었다. 그런데 첫번째 묵었던 싸구려 숙소에서, 빈대(bed bug)에게 온몸을 잔뜩 물려서, 시작하자 마자 여행을 중단할 위기를 겪고 나서는 그 계획을 싹 접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숙소를 택하는 첫번째 기준은 위생이었고, 투숙자 리뷰에 벌레를 봤다는 말이 있으면 아무리 별이 많고 합리적인 가격의 호텔이라도 일단 제꼈다. 특정 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낙심하고 환멸을 느끼고 나면, 선택 기준이 그것과 반대인 걸로 바뀌게 되더라.

 

377 거기 사람들도 나를 백만장자나 화성인 혹은 테러리스트로 여길 것인가? ~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이 세상에는 유럽, 미국, 알프스나 산악지대 등 걷는 것이 그야말로 행복인, 이곳만큼 아름다운 꿈의 고장들이 있다.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전설 같은 길들도 있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다른 장소들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후회 같은 것이 일었다. 잉카 유적을 따라가는 아메리카 횡단이나 산타페를 따라 신비한 서부를 향하는 아메리카 개척자들의 긴 여정 같은 것들 말이다. 어째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이런 나라를 택했을까? 무사히 도착할 가망이 점점 희박해진다면 이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어쨌든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할 의무는 없었다. 나는 금전욕이라든가 경쟁심 때문에 이 모험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은퇴한 이후 편안한 삶은 보장되었다. 내일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아나톨리아에서 죽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게 돌을 던지거나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378 험난한 길을 갈 때면 나를 탐색하고 나 자신과 겨루기 위해서 나를 잃어간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내가 떠나기 전에 친구 조제가 이번 여행이 자신과 벌이는 일 대 일 싸움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될 거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바로 지금이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어리석은 내기도 있는 법이다. 이런 식으로 2주째 진행되는 이 여행도 그런 것이 아닐까? 미지의 세계에서 나 자신을 잃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기분 나쁜 것은 차치하고라도 나는 에르주룸에서부터 이미 어리석은 미치광이들과 만나는 일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걷는 것의 경이로움이 일상의 기적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근육에 열이 나고 담즙이 마르고 분노가 얼어붙으면서 말이다. 두 시간 동안 걸어가 아리 마을의 지붕 아래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379 이 곳에서 보니 그곳이 그렇게 끔찍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 낙관적으로 본다면, 내 여행이 그다지 암울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세번이나 강도를 만났지만 세 번 모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파이베렌과 베지르하네에서 각각 한 나절씩을 낭비했다. 그런들 뭐 어떻단 말인가?

 

380 “하지만 콤포스텔라라는 목표는 당신뿐만 아니라 내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길이니까요.”

길이라…… 내가 지금 따라가는 여정보다 더 근사하고 신비로운 길이 있을까? 세상 djl에서 내가 이처럼 2000년이 넘는 동안 나보다 먼저 아나톨리아의 이 거친 길을 갔던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갔던 길을 내가 가고 있으며, 그들이 겪은 위험 역시 내가 겪는 위험이다.

 

380 아무 사심 없이 자신들의 시간, 음식 그리고 때로는 잠자리를 제공해준 모든 터키인들과 쿠르드인들을 다시 생각했다. 이러한 친절한 행위들을 회상하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걸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나는 여행을 떠난 이후 암울한 날들을 보냈지만, 그런 것은 내가 곧 떠나게 될 이 터키에서 보낸 아름답게 빛나는 추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그들은 나의 친구다. 그것도 아주 보기 드문 친구들이다. 이들과 맺은 우정은 단 하루의 우정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처럼 강하고 굳건하다. 예전엔 이런 경험을 못 했다. 우정과 사랑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비밀스런 연금술의 결과이며, 꼭 오래 지내봐야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모든 사람은 순례를 하면 변한다고들 한다. 나의 쿠르드와 터키인 친구들이여, 형제애로 맺어진 순례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 대한 기억과 그대들의 작별 인사를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 체 집으로 돌아가련다.

 

386 여기서나 다른 곳에서나 나는 귀빈들에게나 베풀어지는 호의로 가득한 접대를 받았다. 곧 떠날 이 터키에서, 나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중의 하나인 미사피르(misafir, 손님)’의 의미를 배우게 될 것이다. 나느 ㄴ프랑스어에도 있는 오트(hote)’라는 단어와 그것을 둘러싼 오묘한 후광을 좋아한다. 그것은 맞아들이는 영광을 가진 자를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맞아들여지는 기쁨을 가진 자를 의미하는 것인가? (프랑스어에서 ‘hote’주인손님을 모두 의미할 수 있음) 성공적인 접대가 접대의 두 주체에 달려 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터키에서만큼 타인에게 자신의 집을 개방하면서 그토록 따뜻하고 넓은 마음을 보여준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 이곳에서 나는 언제나 손님을 맞는 사람의 자부심이 나머지 주민들과 공유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387 우리 문명국가들에서는 이러한 접대의 개념이 잊혀져가고 변질돼 버렸다. 사람들은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만을 초대한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투숙만을 전담하는 집, 즉 호텔이 있다. 이곳은 국제적인 대신 개성은 없다. 프랑스나 일본 여행자는 뉴욕, 부에노스아이레스 혹은 방콕에 있으면서 자기 집에 있는 것과 같이 편안하게 느끼고 싶어한다. 집으로 초대받는 경우는 아주 상류층을 제외하면 대부분 예의의 차원이거나(내가 네 초대를 받은 일이 있으니까) 혹은 어떤 이익을 위해서다(주말을 보내러 오세요. 우리 이 일에 대해서 다시 의논해봅시다). 보답이나 혜택을 바라지 않고 조건 없이 내 집의 문을 열어주는 것은 좋았던 시기 이전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발견, 나눔 그리고 대화의 즐거움을 위해 식탁을 마련하는 일이 아직도 우리에게 가능한가?

 

394 고도를 고려할 때 이곳에서 성수기는 석 달 동안 계속된다. 성수기 전후로는 눈과 추위가 이 지역을 점령한다.

그런 연중 나머지 기간에는 무엇을 하나, 야쿠브?”

아무것도 안 해요. 자동차를 수리해서 친구들을 만나러 가서 함께 놀죠.”

그는 일년 중 석 달만 일해서 일년간 먹을 빵을 얻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내가 꿈꾸는 삶이다. 아니 일년 중 아홉 달을 일하고 석 달만 놀아도 좋겠다. 욕심을 조금 버리면 꿈꾸는 삶을 직접 살아갈 수 있을까?

 

398 나는 다시 출발하고 싶지 않았다. 누워서 자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물어오는 그 질문 터키는 아름다운가요? – 에 대답해야 했다. 주저 없는 답변을 명령하는 듯한 억양의 그 질문 말이다. 나는 물론 촉 귀젤(Cokguzel, 매우 아름답다)”이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영어식으로 말하면 ‘very nice’라는 표현이다. 그것은 문장들마다 점철된 일종의 열려라, 참깨같은 주문으로,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용될 수 있었고 또 거의 모든 것을 집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동작과 결합해 고통스러운 대화의 난처한 공백을 메워주는 말이기도 했다. 터키로 들어서면서, 내가 한 가지 배워야 할 표현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405 나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약해진 자신을 비웃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나는 천하무적이었다. 발이 감염됐어도, 강행군과 캉갈에도, 벼랑에서 추락할 뻔했을 때도 터키와 쿠르드의 강도도, 군인들에게도 저항했다. 그런데 지금 내장을 갉아먹는 미생물에게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공포를 잊게 해주는 것은 유머라고 했던가. 그러나 지금 내게는 함께할 동반자가 필요했다. 혼자서 형편없는 내 창자를 다시 붙들고 있는 기분은 우울할 뿐이었다.

 

406 장엄하고 구름에 덮인 산은 정말 아름다웠다. 새벽에 날이 밝자 산이 안개 속에 묻혀서 더욱 신비로운 모습으로 장식돼 있었다. 날이 밝아오자 산꼭대기가 구름으로 덮여서 낮에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라라트 산은 터키인들이 작은 고통의 산이라고 부르는 더 작은 화산봉인 퀴취크아리다이(Kucukagri Dagi)와 나란히 있다. 아라라트 산은 뷔위크아리다이 (Buyukagri Dagi), 큰 고통의 산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한 손을 부풀어오른 아픈 배 위에 얹고 있는 나도 그 말이 하고 싶었다.

 

13.  큰 고통의 산

408 그들과 나는 같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 나라를 횡단하고 구경하고 사진을 찍지만, 국경을 넘지는 않는다. 나는 고상한 기품을 지닌, 똑똑한 체하고 나야말로 진짜 여해자라는 것을 뽐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너는 허약한 늙은이나 마찬가지다. 흔들리는 유령 같은 얼굴을 해서는, 서아시아에서 미아나 된 주제에……’

 

414 아쉬움, 물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이란으로 가서 그곳에서 재미있는 사건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침대에 드러누워서 구름에 싸인 아라라트 산 꼭대기를 바라보며, 이것이 비록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나의 모험의 끝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418 돌 위에 새겨진 수치스러운 세월과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함없이 남아 있는 것은 평원 위 성채에서 바라본 기가 막힌 전망이었다. 나는 성채의 성벽 아래 펼쳐진 광활한 대지 앞에서 잠시 몽상에 잠겼다. 나는 종종 바로 이 순간처럼 방금 올라선 고개 위해서 내 발밑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속속들이 맛보는 일에 몰두하곤 했다. 모든 것이 변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차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시간은 내게서 멀어져가고 그와 더불어 내 마음대로 풍경을 즐기는 즐거움도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학대했다. 나는 여러 주째 자동차 타기를 거부했다. 그렇지만 이제 그 자동차 공포증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420 나는 테헤란에 갈 때까지 자동차를 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더랬다. 그런데 지금 나는 수치심을 꾹 참고 아픈 배를 끌어안은 채 자동차에 타서 여태껏 왔던 길을 거슬러가고 있는 것이다. 수셰리 조금 전에 나를 자신의 앰뷸런스에 태워주겠다고 제안했던 운전기사가 생각났다. 그 때 허세를 부리며 아직 안 태워줘도 돼요. 나중에라고 했던 말이 신경 쓰였다.

 

425 배가 너무 부풀었기 때문에 나는 누운 채로라도 소변을 보려고 여러 차례 시도를 했다. 할 수만 있었다면 나는 이 고약한 간호사가 보든 말든 들 것 위에서라도 소변을 보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고통이 심해지면 품위도 없어지는 법이다. 두 번인가 세번 반복해서 기진맥진한 나는 아주 잠시 동안이나마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일종의 혼수상태와도 같은 잠에 빠졌다. 몸부림을 치던 끝에 나는 마침내 들 것 위에서 네 발로 엎드린, 고통이 덜해지는 자세를 찾아냈으나 차가 요동을 칠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이제는 아무것도 의식할 수 없었다.

 

427 어떤 고통을 넘어서면 죽음도 두렵지 않음을 이제 나는 알게 됐다.

 

430 나는 실크로드 기행에 관한 계획을 끄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낙관주의(내가 조금만 분발하면 곧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을 거야 등등)와 비관주의(너는 늙은 영감에 부과하고 이젠 단체여행이나 다녀야 할 거야 등등) 사이를 오가며, 나는 환자를 회복시키는 병원의 분위기에 젖어들어 불굴의 여행 계획을 구상했다. 내 이질은 분명 오염된 물과 음식 섭취로 인한 것이었다. 그 불결한 디야디네의 식당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431 나는 내 체력을 과신했다. ? 노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아직도 젊은이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선 나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럴 수도 있이다다. 내가 그런 이유가 전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해도 그럴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나는 목적지 테헤란까지 가지도 못하고 한쪽 날개가 꺾였다. 하지만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올 한 해 동안 도달한 1700킬로미터는 내게 에너지나 인내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중국까지 가기 위한 에너지와 인내심은 아직 충분하다. 이 긴 여정, 이 고독한 여행 안에는 떠나는 삶과 다가오는 죽음이 있다. 삶에는 아직 쟁취할 승리가 남아 있다. 결국에 죽음이 이길 거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이다. 기다리면서 나는 죽음을 비웃어 준다. 그리고 나는 12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여행을 시작했을 뿐이다.

 

432 나는 그곳에서 돌아올 것이다. 그 다음에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삶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 이 여행을 준비하고 실현하는 것은 환상의 브레인 스토밍이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터키에서 거쳐온 1700킬로미터를 통틀어 그리고 이 시의적절하지 않은 중단이 예상치 못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 여행은 여전히 경탄할 만한 일이다. 가장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에르주룸대학에 이르기까지 나는 친절한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만났으며, 아직도 그들에게 매혹돼 있다. 풍부한 역사를 지닌 이 땅을 걷는 것이 나를 세계와 화해하게 해주었다.

 

435 물론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나 있는 서양인인 내가 단호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나는 조심한다. 결국 내가 무엇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거기에, 그 불우한 마을에 무엇을 찾으러 갔던 것일까? 나는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에 우선 민감한 탓에 가난한 사람들이 무시하는 과거를 찾으러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유복한 서양인인 나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버리려 한다.

 

436 나 이전에 걸어서 실크로드 전체를 다녀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르코 폴로 이래로…… 그러나 무용담이나 위업을 추구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내 지난 인생을 천천히 반추해볼 생각이다. 무척 오래 전부터 나는 자아를 탐구해왔는데 이 여행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나는 내가 변한 것이 없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불현듯 영원의 개념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든다. 무척 거창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넓게 펼쳐진 아나톨리아의 거대한 초원은 이러한 몽상에 적합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신성함을 가까이 하는데 전념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있다. 내가 끊임없이 그래왔던 대로 원하는 것 목표에 가까이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 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해본다면, 무한의 문은 우리 앞에 더욱 빠르게 열리리라.

 

436 진정한 느림은 포기를 내포한다. 나는 나를 많이 포기하지 않았다. 떠나기 직전부터 나는 모든 것을 계획해 놓았다. 진행 간계, 머물 곳, 찾아갈 곳 등등…… 이제 나는 도우바야지트와 사마르칸트 사이의 일정표를 짜지 않기로 결심했다.

 

437 몇 시간 후면 비행기가 나를 파리로 데려간다. 그러나 내 마음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가 쓰러진 바로 그곳, 도우바야지트의 길가에 머물러 있다. 몇 주일 후 혹은 만일 내가 생각했이던던 것보다 더 아프다면 몇 달 후 나는 다시 거기에 내 충실한 신발 자국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얼굴을 동쪽으로 향해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미지의 1만 킬로미터를 향하여.

 

14.  옮긴이의 글: 떠나든 머물든 삶은 계속된다

438 은퇴할 나이가 되어 기자 생활을 청산한 올리비에는, 다른 동료들처럼 ‘TV와 소파가 있는 안락한 여가를 누리는 대신 그가 오래 전부터 꿈꾸어 온 원대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다. 그것은 놀랍게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12000칼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는 일이었다.

나도 은퇴할 나이에 하고 싶은 꿈이 (현재로서는)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성지순례고 다른 하나는 비슷한 나이의 성인들로 구성된 무용단을 조직해서 춤을 추며 월드 투어를 하는 것이다. 둘 다 걸어서 할 건 아니니까,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는 것보다는 덜 황당하겠지.

 

 

내가 저자라면

1.     목차

: 일정에 따른 전개다. 기행문의 가장 일반적인 전개라고 하겠다. 제목은 각 장을 대표하는 것으로 정한 듯 하다. 읽어보면 왜 그런 제목인지 알겠는데 읽기 전에는 모르겠다. 별로 호기심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읽기 전에도 뭔가 호기심을 주는 제목들로 골랐어도 좋았겠다.

2.     보완할 점

: 각 장의 첫 부분에 이동 경로를 그림으로 자세히 표시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궁금해서 구글맵으로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한 곳이 더 많았다. 아마도 시골, 작은 마을들이라서 그렇겠지.

3.     장점

-       여행기의 가장 큰 미덕은 저자가 간 곳을 가고 싶도록 만드는 데 있다고 본다. 이 책은 잊고 있던 실크로드를 다시 가고 싶게 만들었다. 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       기자라서 역사의 맥락에서 현재의 정치와 시사를 읽는 안목이 있다. 정치적 상황이나 문화, 특정 사건에 대한 이유 등을 배경과 함께 이야기 하는 점이 좋다.

4.     내가 저자라면

: 각 장의 첫 부분에 이동한 곳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지도를 넣겠다. 개인적 감상을 곁들인 일기와 같은 기행문이지만 독자를 생각하고 쓴 책이므로 독자들에게 이 정도 친절은 베풀겠다.

일기와 같은 글이라고 하지만, 매일의 일상이 너무도 자세하게 나와서 좀 지루한 면도 있었다. 내가 저자라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날들이나 매일 반복되는 비슷한 내용은 대폭 줄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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