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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5일 11시 53분 등록

 

1225,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카톨릭 신자인 내게 크리스마스는 놀고 즐기는 휴일 외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내가 믿는 신이 탄생한 날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의미이겠지만, 이 밖에도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죄를 반성하고 죗값을 치른 뒤에, 깨끗해진 새로운 마음으로 산다는 의미가 있다.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카톨릭에 고백(고해)성사라는 의식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거다. 고백성사는 카톨릭 신자가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의 은총을 받는 성사이다. 범죄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죄를, 알면서 또 모르면서 짓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모르는 죄가 쌓이지 않도록 고백성사는 자주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한 일을 되짚어 보고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사제일지라도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아서,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 카톨릭 교회는 적어도 1년에 두 번은 고백성사를 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그 중 한번이 바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때이다. (다른 한번은 부활절이다.)

 

올해 초에 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뒤돌아보니 나의 삶은 올해도 다른 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큰 다짐은 효율적인 시간 관리, 즉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갖겠다는 거였다. 직장인이 아닌 1인 기업가로 살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5월에 Action Plan까지 만들어가며 공을 들였는데, 5월이 지나고 나니 다시 일상에 허덕이느라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두번째 다짐은 매주 지정된 책을 정독하고 정성스런 북리뷰를 하고, 완성도 높은 칼럼쓰기였다. 이 또한 초반에는 책을 두 번 이상 읽기도 하고, 칼럼도 주 초에 구상한 뒤, 초고를 쓰고 다시 마무리를 하는 등, 정성을 다했으나 역시나 오래 가지 못했다. 아마도 글을 잘 쓴다는 평가를 듣기 시작한 이후였던 것 같다. 처음에 글 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때는 이에 비례해서 투자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았는데, 점점 잘 한다는 오만에 빠지면서 게을러졌다. 내년에 책을 쓰겠다고 하면서, 다시 글쓰기가 힘들어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부분이다.

또 하나 중요한 다짐은 과정이 끝나고 어떤 일을 할지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이를 위해서 보다 심오한 자아탐색이 필요했고, 지속적으로 실행가능한 일인지 연습했어야 했다. 다행히도 어떤 일을 할지 찾고, 대강의 그림까지는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모습이나 실행가능성 여부는 머릿속에만 있을 뿐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이 역시 일상에 묶여서라는 변명이지만 지금도 바빠서 어려운 일을 내년이라고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지속 가능성이 없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수도 있다.

 

결국 올해 내가 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은 사자로 살기위한 준비 및 연습으로 수렴된다. 올해를 시작하며 나는 낙타의 삶에서 벗어나 사자로 살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했었다. 처음 시도해봤던 몇가지 일들의 결과가 좋았고, 그로 인해 지인들의 칭찬을 받으며 이미 사자가 된 듯 우쭐하기도 했다. 그런데 칭찬이 항상 약이 되는 것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올해 나에게 칭찬은 독이 되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오히려 내 안에 갇히게 만들었던 것 같다.

사자로 살겠다는 처음의 기개와 의지가 채 두 달을 가지 못했으니, 이제 문제가 무기력인지 저항력인지도 모르겠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고백성사를 본 후에, 나는 죄를 반성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고는 한다.  고백소를 나온 뒤, 천사 같은 표정을 짓는 나를 본 친구는 가증스럽다고 까지 했었다. 고백성사 한번에 천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죄를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려고 하다보면, 그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는 있지 않을까?

사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다시 낙타로 돌아가기 전에 사자로 사는 의미를 되새기고, 연습을 하다 보면 점점 사자로 사는데 익숙해지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다 사자를 넘어서 초인과 아기로 사는 길을 가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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