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따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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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나에게는 아직 100달러가 있으니까.”
뉴욕 주 시골마을 우드스톡의 한 오두막. 스펙만 좋은 무직의 청년은 서랍 속에 넣어둔 10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보며 중얼거린다.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에게 영향을 미친 20세기 최고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25세일 때의 장면이다.
조셉 캠벨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파리대학과 뮌헨대학에서 중세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였다. 미국과 유럽에 걸친 기나긴 가방 끈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유학을 마친 젊은 캠벨이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1929년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악명 높은 경제대공황이었다. 그의 나이, 앞날이 창창해야 할 25세였다.
사람에게는 공부해야 할 ‘때’가 있고, 사회에 공부한 것을 펼쳐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와 개인의 인생은 그 ‘때’를 순탄하게 열어주지만은 않는다. 미국을 강타한 경제대공황, 많은 청년들이 좌절과 방황 속에서 주저 앉았을 때 청년 캠벨은 의미 있는 쉼표를 찍기로 한다. 5년 간의 칩거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뉴욕 주의 우드스톡이라는 작은 시골마을로 들어가 오두막 생활을 한다. 먹고 사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는 ‘돈’에 대한 구속을 달리 생각해보고자 100달러짜리 지폐를 서랍에 넣고 불안한 마음을 다스린다. 이렇게 5년 간 독서, 사색, 습작을 통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 그는 20세기 최고의 신화학자로 거듭나게 된다.
한국에도 어두운 시대, 갇힌 공간에서도 자신만의 향기를 피워낸 인물이 있다. 1941년에 태어난 신영복은 5세 때(1945년) 해방을 맞이하고 10세 때(1950년) 때 전쟁을 겪는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활동하던 중, 28세 때(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다. 48세(1988년)가 되어서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여 20년의 수감생활을 비로소 마감하게 된다.
듣기만 해도 숨가쁜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삶을 설명하는 단 몇 줄에서도 그의 인생에 담긴 시대의 어두움과 아픔을 느낄 수 있다.
20년의 빛나는 청장년기를 후미진 작은 감방에서 갇혀 보낸 신영복. 그 스스로 표현하길 ‘무엇을 도모하거나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후미진 공간’이자 ‘더불어 관계 맺기가 어려운 적막한 처소’에서 그는 한학의 대가인 노촌(老村) 이구영 선생을 옥중 스승으로 모시고 동양고전을 공부한다. 또한 옥중 서도반에서 만당(晩堂) 성주표, 정향(靜香) 조병호 선생의 집중적인 서예 지도를 받아 소주 ‘처음처럼’으로 유명한 ‘어깨동무체’를 만들게 된다.
어두운 시대, 감옥이라는 고독한 공간 속에서 그는 성찰과 사색을 통해 ‘관계’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 결과 사람 간의 연대(連帶)를 그에 어울리는 서체에 담아냈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러 온 많은 이들을 맞이한 것은 ‘더불어 숲’이라 쓰인 연대적 내용과 그에 맞는 ‘어깨동무’ 서체의 대형 현수막이었다.
조셉 캠벨과 신영복. 두 인물의 교집합을 찾자면
어두운 시대, 후미진 공간, 성찰을 통해 거듭난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타의로 내몰린 격리된 공간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내면의 더듬이를 살려낸 그들의 ‘단절’과 ‘변모’에 주목하자. 이 즈음에서 비슷한 패턴의 인물을 묘사하는 괘상이 등장할
때가 되었다. 바로 주역의 19번째 괘, ‘지택림괘(地澤臨卦)’이다.
지택림괘는 아래에 ‘연못’을 상징하는 ‘태괘(☱)’가 있고 위에는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있다. 땅 밑에 연못이 위치하고 있다. ‘표면’으로 상징되는 땅과 ‘심연’으로 상징되는 연못을 마음 속에 떠올려보자. 사람은 외양을 가꾸는 일 못지 않게 내면의 탐구가 필요한 시기가 도래한다. 개인적으로 그 시기는 마흔 전후가 아닌가 싶다. ‘캠벨의 오두막’이건 ‘신영복의 감옥’이건 인물을 후미진 공간으로 몰아붙이는 힘은 ‘시대의 어두움’이었다.
시대의 어두움까지는 아니라 할 지라도 노력만으로 안되는 시기, 뜻대로 안되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런 시기가 다가올 때 우리는 알아야 한다. 표면의 땅 속으로 들어가 내면의 연못을 바라봐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즉 ‘도사림’의 시기가 필요한 것이다. 때를 살피며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한다.
나에게도 패기만만한 시절이 있었다. 마음 먹은대로 되고 뜻대로 되는 마법 같은 시절이었다. 돌이켜 보면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한 거였지만 어린 마음에 나의 추진력과 열정으로 모든 것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동쪽 산동에서 서쪽의 티벳까지, 실크로드를 넘어 파키스탄과 인도까지 여행을 하며 인생은 도전하는 자의 것임을 자신했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마주친 결핵은 악셀을 밟는 나의 발목을 잡았고, 신체적 제한으로 인해 나의 모든 외부활동은 방해 받았다.
그런 시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독서와 습작 뿐이었다. 원망과 화를 글로 토해 내며 시련과 주저앉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기였다. 의도하지 않은 멈춤 속에서 내면의 힘을 비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첫 책이 나왔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해준 남편을 만난 것도 그 비축과 도사림의 시기였다.
우리는 높은 곳만을 향해 가고자 한다. 하지만 ‘지택림괘’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가는 우리들에게 말한다. ‘낮은 곳으로 임(臨)하라’고. ‘땅 밑 연못’의 이미지에서 괘상의 이름으로 ‘임(臨)’을 이끌어낸 옛 성인의 가르침을 생각할 일이다.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러한 딴지조차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때가 아님을, 도사림이 필요한 지택림의
시기임을 말이다. (끝)
<본 글은 개인적 습작 차원의 글로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있음>
서두도 잘 읽혀요.
'주역으로 들여다본 인물열전&결정적 시기'라는 컨셉도 괜찮고요.
자신의 글에 대한 피드백도 적절하고요.
그 피드백대로 하려면 주역 공부도 공부지만
글의 분량이 많이 늘어나야 할 거에요.
특히, 세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면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습작 혹은 스케치 단계에서
그 정도 품질까지 가는 건 욕심일 수 있다는 뜻이에요.
두개나 세개의 절, 혹은 하나의 장이 되는게 나을 수도 있어요.
'위대한 멈춤'에서 9개의 도구를 다루면서
하나의 도구당 4개의 꼭지(절) 글을 배치했지요.
그 중 2개는 심층 인물 사례,
세 번째 꼭지는 큰 원칙과 다른 인물 사례들,
네 번째 꼭지는 실천 방법과 우리(두 저자) 이야기.
리아님한테 끌리고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성이 큰 20개 정도의 괘를
위의 글 형태(두 인물 사례, 괘 설명과 해석, 본인 이야기)로
스케치해 두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2월 말부터 매주 주역 강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해요.
강사는 유현주 박사인데, 이기동 교수님 제자인데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요.
공익 목적으로 하는 강의여서 교육비도 엄청 싸고요.
강의장이 서울 여의도이긴 한데,
관심 있으면 한 번 검토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