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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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진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잠결에 아이들의 환호 소리가 들린다. “이야~~!! 공룡메카드다!! 베이블레이드 좌회전 팽이닷!!” 침대에서 일어나서 아는 척을 할까 하다가 이내 이불을 끌어 당기고 침대 속으로 다시 파고 들어갔다. 아빠로서 올해도 미션을 완수한 뿌듯한 순간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뭔가 큰 일을 해낸 것 같다.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제 잠이나 더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포장을 뜯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아이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형아 근데 산타크로스 할아버지 오늘 온 거 봤어?”
“아니 나가는 뒷 모습밖에 못 봤어”
“아. 그냥 가셨구나”
순간 웃음이 나오면서 저런 ‘뻥쟁이’ 첫째의 어처구니 없는 거짓말이 우습기도 하고 창의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첫째가 아직도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를 믿고 있을까? 였다. 솔직하게 물어본 적은 없으니 정확히는 모르겠다. 초등학교 2학년이니까 아마도 없는 것을 대충은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많은 아이들이 어렴풋이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허구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에 대한 진실은 어쩌면 아이가 살아가게 되면서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구적 이미지, 상징체계에 첫 발을 들여 놓은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흡사 영화 “메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망설이다가 빨간약을 집어 들고 진실의 세계를 보았을 때와 같은 충격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7살 때였다. 당시 유치원을 다니던 나는 산타크로스 할어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적어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당시 유행하던 마징가젯트 로보트를 받고 싶다고 적어냈다. 그런데 부푼 기대감 속에 크리스마스 아침에 내가 받아 든 선물은 로보트 중간에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불빛이 나오는 근본을 알 수 없는 로보트였다. 크게 실망한 나는 울음을 터트렸고 다음날 아침 유치원에 가자 마자 선생님에게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착각을 하신 것 같다고 선물이 잘 못 왔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너무나도 건조하면서 사무적인 표정으로 약간 짜증을 내시면서
“그건 엄마한테 가서 이야기해야지~! 왜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니? 어머니께서 해결해 주실꺼야”
그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머리 속에서 그 동안 품었던 의심의 순간들이 조각난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하나의 그림이 되듯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래 그때 그래서 엄마가 혼자 나가셨구나. 그때 사 오신 후 만지지도 못하게 했던 이상한 포장 속 물건이 내 선물이었구나!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는 안 계신 거였어!!! 맙소사~! 엄마가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라니!”
내 어린 동심이 깨지는 순간이었고 무엇인가 믿었던 것에 대한 깊은 배신감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역으로 내 스스로 이제 난 아이가 아니고 곧 초등학생이 될 학생이라는 자부심을 스스로 느끼면서 어른들 세계의 비밀을 엿 본 듯 약간은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던 기억도 난다. 어찌되었건 나는 이제는 내가 어렴풋이 느끼고 만 있었던 새로운 세계로 처음 발을 내 딛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 사회는 많은 신화와 동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 동화와 신화가 때론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을 할 때도 있고 사람들을 속이는 나쁜 역할을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중 현실 속에서 우리의 꿈과 소망을 담아낸 것이 이미지화 되어 모두가 믿고 싶은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좋은 것들이 우리 삶 속에서 아름다운 동화로 남아서 작용을 한다. 모두가 거짓인 줄 알지만 그 이야기 속으로 기꺼이 빠져든다. 아마도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는 그 중 하나이면서 대표적인 것일 것이다. 특히나 그 대상이 어린아이들이나 보니 이 동화에 대해서 처음부터 “이건 거짓말인데 일단 들어보렴. 그리고 믿으면 내가 크리스마스때 선물줄께!” 이렇게 이야기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동화 속에 빠져들게 하고 또 시나브로 어느 순간 빠져 나와서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해 준다.
생각해보니 전날 큰 애 역시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아느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 질문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큰 애는 이미 비밀을 알아버린 것일까? 그래서 나를 혹시 떠 본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아직도 그 세계 속에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