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7년 6월 23일 12시 25분 등록
미녀와 야수.
부부의 첫 느낌은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이 말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특징이 있었는데 그게 왜냐하면 남편의 첫 인상이 어찌 보자면 좀 험악하고 거칠어 보이는 반면 여자는 너무나 예쁘고 지적이면서 우아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부도 있구나, 세상 참 재밌네 하곤 넘어 갔는데 그들과 교제를 하면서 미녀와 야수에서 머슴과 공주로 그러다 신사와 숙녀로까지 느낌이 점점 변해가 이젠 이 이상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부부의 모습으로 굳어져 있다.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고 남편도 마침 나와 동갑인지라 편안한 이웃사촌으로 지내는 데 가끔 밤이면 맥주 한 잔하고 꼬드기는 바람에 오밤중에 치킨을 먹으면서 깔깔대곤 한다. 집이 바로 옆이니 약속하고 5분만에 소위 생얼로 만나선 동네 야식을 섬렵 하러 다니는 것이다.
이웃과의 교제는 처음이지만 바로 곁에 좋은 사람이 산다는 것은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정 붙이기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준다.
이기적 독신의 원조가 난생 처음 색다른 교제를 통해 편안한 일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

마음이 어린 아이같이 투명한 그녀는 모든 일을 남편과 결부시켜 말하곤 하는데 그리 미운 타입이 아니라 오히려 귀엽고 가끔 재미있고 그렇다.
다른 부부와는 달리 자식이나 시집에 관한 이야기가 안 나오니 나 같은 싱글은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녀는 내내 “우리 신랑”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얼마나 달고 살았는지 “우리 신랑”이란 말이 내 입에도 붙어 있을 정도다.
가령 내가 “우리 신랑 언제 와?”, 하면 그녀는 ”응 우리 신랑 좀 늦는다네” 뭐 이런 식이다. 지난 번 청계산에 갔을 때도 내가 그를 향해 ”어이 ! 우리 신랑!” 그러자 그가 당연한 듯 나를 돌아보고 손을 흔든다.

부부는 먹성도 참 좋은 편이다. 치킨을 먹을 때 보면 “야수”가 다리 하나를 들어 “미녀”에게 대령한다. 그녀는 살만 오물오물 쏙 파먹고는 뼈다귀의 붙어있는 나머지 살을 그에게 살짝 밀어 놓는다. 그럼 자칭 머슴은 그것을 아주 맛있게 마지막까지 뜯는다.
공주마마는 뭐 조금만 혐오스럽게 생겨도 머슴에게 살짝 눈짓을 하고 “돌쇠”는 그것을 당연히 “네에 마님”하며 자기 앞으로 가져가 익숙하게 처리한다. 상전 받들기에 익숙해진 그는 앞에 앉은 이의 술잔이 오분의 일 정도 남으면 “여기 오백 하나 더!” 를 크게 외쳐댄다.
그런 모습이 눈에 익다 보니 어느덧 나도 그녀를 따라 하게 되었고 그러자 그가 공주마마 하나 모시는 것도 힘든데 황후마마까지 나타났다고 팔자 한탄을 늘어 놓곤 한다.

그들을 만나고 오면 기분이 참 즐거워지는 데 왜 그럴까 한번 짚어 보았다.
우선 그들은 별 볼일 없는 질문은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쓸데없이 심각하지 않다. 상대에게 이래라 저래라 늘어놓지 않는다. 걱정하는 것처럼 하며 상대의 결핍을 자극하지 않는다. 천박한 관음증이 없다. 그저 딱 적당한 거리에서 따뜻한 시선만 보내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만나고 오면 불쾌한 기분에 속이 상할 때도 있는데 그런 이들은 즉시 기피대상 리스트에 올려져 다시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위 부부와 반대의 느낌을 상대에게 주는 경우일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만남을 계속 유지시킬지 말지 하는 선택이 필요하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 잘 맞는다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드물다.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는 노력도 필요하고 자기 희생도 필요할 것이다. 불유쾌한 느낌을 참다 보면 부정적인 자극이라도 추구하려는 자신이 가엾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 인생이 슬퍼진다.

공주마마와는 늘 같이 운동을 하다 보니 끝내고 반신욕 하는 한 십 여분 정도 이런 저런 수다를 떨곤 하는 데 그 화제에 우리신랑이 역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돌쇠가 가끔 주인아씨 속을 썩이기도 하는 듯 푸념을 늘어 놓고 혼자 사는 게 얼마나 좋을 까하며 불만사항을 나열한다.

“우리 집 앞에다 버려, 내가 재활용해서 쓸께.”, “필요 없음 넘겨,”….
사랑싸움하는 부부에게 내가 던지는 말은 그들의 질투심에 살짝 불 붙이는 것이다
이 말은 즉시 우리신랑에게 전해져 가끔은 우리 집 앞에 버려지고 싶다고 그녀를 갈구는 듯.
아리따운(?) 두 여자가 서로 우리신랑이라 불러주니 머슴이면 어떻고 돌쇠면 어떠랴 그저 거두어 준다니 흐뭇하다는 표정이다.

“얘, 버린다고 다 줍는 거 아니란다. 요즘 들어 버리겠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부쩍 늘었어, 나도 보는 눈이 있단다. 아무거나 안 줍는다. 가서 줄 섰다 그래라. 부피가 크면 세금 많이 나오니 신중하고..”
공주마마는 눈과 입이 가늘어지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 우리신랑에게 말할 기세다.
“우리 신랑”이 뭐라고 그랬을까 안 봐도 비디오지만 내일이면 함박웃음을 지며 “언니, 우리 신랑이말야…”하며 시작될 그녀의 환한 얼굴이 기다려진다.
IP *.48.34.49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07.06.23 05:54:50 *.72.153.12
오~ 건강한 관계다. 웃음이 절로 나네요.
프로필 이미지
한희주
2007.06.23 07:18:36 *.233.199.93
좋은 이웃을 만나신 건 행운입니다.
넉넉한 '우리신랑'과 귀여운 공주님의 사는 얘기에 귀가 쫑긋해지네요. 아울러 사랑의 눈으로 이웃을 대하는 향인님의 배려까지.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07.06.23 18:31:58 *.72.153.12
예전에 '언니한테만 얘기해줄께'로 내가 즐거운(?) 파문을 일으킨 것 같은데, 그런 발언에 다 이유가 있다구. 왜냐하면, 이 글에서 풍기는 언니의 인상 그대로야. 언니의 이웃 뿐만이 아니라 언니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아는 센스를 가지고 있지. 그리고 지난번 수업에서 언니가 질문하면서 3기 연구원 멤버들 하나씩 다독여 주는 것도 보았고.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간택된 것이었다고 하면 언니가 너무(?) 황송(?)하려나.
어쨌든 언니에겐 그런 매력이 있는 것 같아.
프로필 이미지
여해
2007.06.23 22:11:18 *.211.61.252
우리 주변을 찾아보면 좋은 인연들이 참 많죠. 그래서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요?
프로필 이미지
향인
2007.06.24 13:38:43 *.48.41.28
정화씨, 이거 황공무지로소이다.진짜.기분이 마구 좋아지네.
칭찬은 여해뿐만 아니라 향인도 춤추게 하는데..ㅎㅎ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솔직한 감성, 그게 그대의 매력 중의 하나.

한희주님, 지난 번에 반가웠어요. 다음에 뵈면 제가 사는 이야기도 들어주세요.
여해님, 이번 주는 인연으로 주욱 가시는 군요.재밌군요.
프로필 이미지
종윤
2007.06.25 09:07:31 *.227.22.57
역시~ 향인 누나! 편하게 술술 읽혀서 참 좋네요. 저도 누나 동네로 이사갈까요? ㅎㅎ 전 결혼하고 원래 살던 곳에서 멀어졌는데, 덕분에 주변에 마땅히 만날 사람이 없네요. 핑계 같기도 하고... 잘 읽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향인
2007.06.26 23:03:50 *.48.41.28
이사오면 좋지..
요즘 생맥주 마시기 따악 좋은 계절..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92 응애 2 - 보다 냉정하게 보다 용기있게 [13] 범해 좌경숙 2010.04.12 2982
1291 [47]기도를 그리는 벽 한정화 2008.03.25 2985
1290 2. 수유공간너머 고병권 인터뷰 1. 창조적 소수의 개념 인터뷰 정예서 2010.03.12 2985
1289 [2-26] 수정 출간기획서 콩두 2013.11.26 2986
1288 [사자 9] <다름의 미학> 수희향 2010.01.18 2988
1287 [06]출근시간 변천사 [10] 양재우 2008.05.13 2989
1286 [칼럼12]역사와 함깨한 5월을 보내며 [6] 素田최영훈 2007.06.05 2990
1285 (22) 실연 에너지 [8] 香仁 이은남 2007.09.03 2990
1284 칼럼 17 - 새로운 언어 [1] 범해 좌경숙 2009.08.24 2990
1283 [22] 몽골구름빵 [17] 素賢소현 2007.08.29 2991
1282 고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러피언 드림화 그리고... [1] 書元 이승호 2009.08.02 2991
1281 [사자 13] <휴머니스트 인터뷰 2- 1장:창조적 소수의 개념> 수희향 2010.02.15 2991
1280 최초의 여성 심리 비극 ‘메데이아’ 를 읽고 생각 한다. [10] 학이시습 2012.07.09 2991
1279 (016) 천리마와 하루살이 [8] 校瀞 한정화 2007.07.02 2994
1278 6월오프수업 과제 - 내 삶을 밝혀 줄 역사적 사건들 [2] 정야 2009.06.16 2994
» (15)우리 신랑 [7] 香仁 이은남 2007.06.23 2994
1276 내가 전에 그랬었다. [7] 백산 2009.06.22 2995
1275 [대표글1] 남편을 고르는 세가지 조건 [8] 이선형 2011.01.03 2995
1274 칼럼 20 - 등대를 따라서 [2] 범해 좌경숙 2009.09.07 2996
1273 [23] 최선이 아닌 최선의 선택 [7] 최지환 2008.10.12 2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