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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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2월 23일 토요일 장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약 8개월 간 준비를 한 결혼식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저희 부부 두 사람만 고생하며 준비한 결혼식인 줄 알았는데, 막상 결혼식을 치르다 보니 주변에 저희 두 사람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많은 분들이 계셨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서면으로나마 깊이 감사 인사 드리고자 합니다.
저희 부부는 반나절의 결혼식을 마치고, 그 길로 약 열흘 간의 신혼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신혼 여행 중에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참 다른 구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하는 해외 여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신혼여행은 뭔가 조금 달랐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계획하고 준비했던 남자는 예정된 일정이 틀어지면 불안해 했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녀는 일정에 구속 받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일정은 항상 변동 가능하고 최종 결정은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좌우 되었죠. 그 뿐 아닙니다. 남자는 최적의 동선으로 가장 많은 것을 효율적으로 봐야 직성이 풀리지만, 그녀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들을 다 보았다면 그 날의 일정은 그 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날에는 이런 표정도 나옵니다)
그리고 경험을 중요시 하는 남자는 예정된 예산을 초과하더라도 뮤지컬은 제일 비싼 자리에서 봐야 직성이 풀리고 설사 음식이 남더라도 많은 것을 먹어 보려고 했지만 그녀는 예산을 초과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이런 두 사람이 열흘 동안 함께 여행을 하는데 어떻게 싸우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새삼 서로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지만 다행히 둘 다 이제는 서로 노하우가 생긴 탓에 그 싸움이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의지할 사람이 둘 말고는 없다는 것을 잘 알았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서로가 다르다는 점을 조금씩 인정하고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혼 여행 셋 째 날 즈음 늦은 저녁 런던의 어느 작은 펍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결혼을 한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저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감한다고. 그런데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고. 예전에는 ‘결과’가 중요해서 어디를 가서 좋은 구경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또 얼마나 예쁜 사진을 많이 찍었는지가 중요했다고. 그런데 지금은 그 ‘과정’에 좀더 많이 신경이 쓰인다고.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지금 기분은 어떤지, 혹시 나만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감정을 공유하는 ‘과정’들이 더 많이 신경이 쓰인다고. 그렇게 쓰이는 신경은 우리가 런던이 아닌 제주도를 가도 아마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그녀도 웃으며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새내기 신혼 부부 입니다. 연애는 오래 했지만 부부 생활을 처음입니다. 많은 것들이 낯섭니다. 신혼 여행을 마치고 바로 처가로 가서 인사를 드리고 어제 오후 늦게 신혼 집에 도착했습니다. 정신 없이 빨래를 하고 짐 정리를 마치고 나니, 새벽이네요. 늦은 저녁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도 낯설고, 공식적으로(?) 함께 맞게 될 첫 아침도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탓인지 아니면 시차 탓 인지 오늘은 새벽 일찍 잠에서 깼습니다. 옆에서 잠든 그녀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와 결혼 선물로 지인에게 받은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한 잔 했습니다. 그녀의 어설픈 남자친구였던 저는 오늘부터 그녀의 어설픈 남편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물론 제가 아내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녀도 나름대로 부담감이 클 것입니다. 서로가 잘 해야겠지만 제가 좀 더 잘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희 두 부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축복해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 올립니다.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