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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 10시 11분 등록

#31. 나쁜놈, 이상한 놈, 미친놈 I

 

김소령! 너는 내일부터 아침에는 나한테 보고하지 마라. 니가 아침에 보고하고 나면 하루종일 재수가 없으니까. 알았냐?”

 

아직도 나는 이 말을 평생 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만났고 관계를 맺어왔지만 타인으로부터 들어본 가장 심한 모욕적인 말이었다. 그때 나는 갓 소령을 단 영관장교였고, 저 하늘에 있는 별을 목표로 한창 비상하려고 하는 이카루스와 같았다. 이카루스는 뜨거운 태양에 의해 추락했다면 나는 그의 세치 혀에 저 깊은 심연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사람이 이런 말을 한 두 번도 아니고 자주 들으면 내가 실제로 그런 사람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끝이 없는 자존감의 추락이었다.

 

사실 그 자리는 우리 조직 내부에서도 악명이 높은 자리였다. 유달리 야근이 많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같이 근무하다보니 이래저래 힘든 자리라 대부분은 피하는 자리였다. 나 역시 그런 자리에 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그 자리에는 다른 선배가 있었고, 기수도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선배가 심신에 문제가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직책변경을 요청하였고 재수없게도 내가 거기에 대체인원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패기가 넘치고 자신감으로 충만 했었기 때문에 까짓것 한번 해보자는 심정이었고 구원투수는 나 밖에 없구나 하고 정말 어이없는 그런 생각을 하고 그 자리에 가게 되었다.

 

내가 그 자리에 가서 현실을 깨닫게 된 건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음에는 전임자 욕을 그렇게 하면서 같이 잘해보자고 하던 과장은 온데간데 없고 화를 내며 입에서 차마 담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정말 그 전임자 선배의 심정이 백분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불안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답답한 사무실이 싫어 옥상에 자주 올라가곤 했다. 5층 건물이었는데 이 위에서 떨어지면 얼마나 병원에 입원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심지어 퇴근할 때는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면 ‘6개월은 입원할 수 있겠지하고 이런 생각도 했었다. 어떻게든 그 상황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당시 1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정신력이었다. 위로해 준 동료들도 있었지만 솔직히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더 비참해질 뿐이었다. 나는 그때 나 자신을 군인이 아니라 영업사원이라 생각했다. 과장은 고객이고, 고객 중에는 이런 진상 고객이 있게 마련이다. 진정한 영업사원이라면 이런 고객도 다룰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객을 욕하기 보다는 고객만족을 위한 방법들을 찾아보았다. 첫번째는 열심히 일 하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사무실의 1등 출근과 꼴찌 퇴근을 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를 했으니 말이다.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업무 특성상 내가 잘한다고 끝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무실을 떠날 때까지 욕을 먹긴 했지만 다행히 관계가 더 악화되진 않았다.

 

그래도 역시 가장 속 편한 방법은 무시였다. 그가 무엇을 말하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었다. 너는 말해라 나는 듣지 않겠다는 식으로.(절대 티는 내면 안된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 시기에 나를 위한 또다른 수양방법으로 택한 것이 책과 음악이었다. 그나마 술과 담배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 때 구본형 선생님을 만났다. <The BOSS 쿨한 동행>이다. 아마 제목을 보고 택한 것 같다. 그 책을 통해 상사에 대해서, 그리고 나쁜 상사 밑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구체적으로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상사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좋은 상사와 나쁜 상사 그리고 무난한 중립적 상사.

책에 줄이 쳐진 곳은 역시 나쁜 상사였다. 이런 말이 나온다. ‘나쁜 상사란 누구인가? 당신이 출근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굴욕감을 느끼게 하고 지치게 하며 의욕을 잃게 만드는 사람이다.” 아마 그 당시 나의 상황과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렇게 1년을 버티고 전출 갈 때의 기분은 최고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 밑에서 1년을 버티고 나니 세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정말 어떤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냉정할 수 있었고 흥분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나를 한단계 성장시킬 수 있는 시간이었다.

 

1인 기업가의 구루인 <코끼리와 벼룩>의 저자 찰스 핸디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2년간의 군복무 과정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 생활은 분명 재미있었을 것이고 또 사람 다루는 법, 문제 해결하는 법, 일을 해내는 법 등 다양한 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그가 군대를 갔다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틀리지 않는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든 싫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관계가 항상 순탄하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한번씩은 꼭 이런 나쁜 놈, 이상한 놈, 미친 놈을 마주치게 된다. 군대 들어오기 전에야 그런 놈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군대는 다르다. 어찌됐든 그 놈이 제대를 해야 나랑 마주치지 않으니 상당히 긴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교과서적인 답변은 이 상황을 너무 비극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자이다. 오히려 나한테 사회생활에 앞서 주어진 하나의 시험 관문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꼰대들의 말이지만 제대 후 결국 나중의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거기서 꼭 이런 놈 하나를 만나게 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예방주사를 맞는다고 치면 어떨까. 위안은 될 것 같지 않지만

 

군대를 다녀온 대다수의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군대 갔다와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하는 것이다.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지만 세상이 자신이 생각한 만큼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사람이 더럽고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은 부정적인 것을 더 많이 느꼈을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러한 부정이 꼭 사람에게 부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지 않나.

 

영화 <신과 함께>를 보면 문제 사병(도경수 분)이 나온다. 매일 얻어터지고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를 돕는 수홍(김동욱분) 덕분에 군대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비극적 결말은 안타까웠지만, 군대라고 해서 꼭 나쁜 놈, 이상한 놈, 미친 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놈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거기에 위안을 삼자.

IP *.106.20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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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8 13:10:20 *.18.187.152

동일한 주제로 연재를 한다는 것 어렵지 않아요? 전 죽겠슴돠. 오늘은 군대로 어떤 이야기를 썼을까 궁금했는데. 기상씨 경주에서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사연이네요. 구체적으로는 몰랐는데, 그 사람 대단한 캐릭터네요.


음..저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이었어요. ^^;;;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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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21:10:38 *.223.32.122
구본형 <쿨한동행 더보스>의 연구소내 유일한 북리뷰입니다. 함, 보셔요~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r_review&search_keyword=%EB%B3%B4%EC%8A%A4&search_target=title&document_srl=538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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