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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5일 05시 18분 등록
내 외로운 생활 중에 나를 가끔 즐겁게 하는 것은 아래층의 검둥이이다.

옥상으로 화분이 늘어선 곳으로 나서면, 몇 개의 조그만 화분에 심어 놓은 고추와 상추와 꽃나무들이 있다. 누군가 물을 줬나 물자국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검둥이의 오줌자국이다. 아래층의 검둥이가 다녀간 것이다. 처음엔 검둥이 녀석이 화분에다 오줌을 갈겨논다고 나무랐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아래층의 이 녀석의 주인이 배변 훈련을 옥상에다 신문을 깔고 시킨 까닭이고, 또 이 녀석은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자신의 일,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녀석이 옥상으로 내 보내 달라고 낑낑거리는 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 그러고 나면 여지없이 계단이나 우리 집 문 앞에 내놓은 쓰레기 봉지에 실례를 하곤 했는데, 작년 여름에는 그 냄새 때문에 고생 했다. 락스와 쌀 뜬물을 동원해서 물청소를 하며, 무척 귀찮아 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규칙적으로 청소를 하셨고, 이 녀석을 위해서 일부러 밖으로 통하도록 문을 살짝 열어 두었기 때문에 곧 괜찮아졌다. 무엇보다도 계단이나 집앞에 오줌을 덜 누게 된 것은 검둥이 녀석이 커서 이제는 2살이 된 것이다. 그 녀석도 가릴 줄 알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 영역 표시로 춘란 화분에 오줌을 갈겨 놓으면 어찌나 미운지 때려주고 싶은데, 현행범이 아닌 이상 때려봤자 지가 왜 맞는지도 모를 놈이다. 춘란을 씹어 놨을 때도 몇 대 쥐어박아 주었어야 했는데, 그것도 못했다. 씹힌 춘란 보면 지금도 속이 상한다.

그렇게 미운 짓을 하는 중에도 미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 그 녀석이 외출했다 돌아오는 나를 가장 반기기 때문이다. 3층 문을 열면 이 녀석이 뛰어나와 꼬리를 흔들어댄다. 개가 사랑받는 이유가 꼬리를 잘 흔들어서라고는 알고 있지만… 이 녀석은 꼬리만 흔드는 게 아니라 몸통까지 흔들어 대는 녀석이라 그것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어, 그래. 이쁜 검둥아.’ 라는 말로 인사를 건낸다.
가끔은 주인이 훈련시켰는지 작은 인형같은 것을 건을 물고와서 앞에 서서 꼬리를 흔들어댄다.
집에 돌아오면 반기는 것이 있다는 것이 기분을 좋게 했다. 그것도 아주 반갑게.

그런데, 이렇게 이쁜 짓을 하는 녀석도 밖에서는 완전히 안면몰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오다가 동네를 한바퀴 도는 녀석을 만났는데, 아무리 불러도 지 갈 길을 그냥 가길래, 아래층의 검둥이가 아닌 줄 알았다. 개를 풀어 놓고 키우는 집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럴리가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 아니겠지 했는데, 집에 와보니 문이 잠겨 있어 문 앞에 앉아있다. 아무리 불러도 한번 휙 뒤돌아 보고는 가버리더니, 앞에 서게 된 상황에서도 위 아래로 한번 쳐다보고는 지 갈 길을 가버리더니, 집에 와서는 반긴다. 못된 놈. 이럴 때는 집에 안들여 보내주고 싶은 마음도 안 든다. 밖에서는 생까고, 집에서만 반기는 놈. 흥이다.

그래도 집에 책을 놓고 와서는 더운 길 혀 빼 물고 산책한 그 녀석에게 물 한 사발 가져다가 디민다. 먹다가 쳐다보고, 먹다가 또 쳐다본다.
‘드시기나 하셔. 야 이 잡놈아, 이럴 때만 아는 사람이냐?’

강아지 한마리 키우까? 이쁜 짓 많이 하는데.
밖에 외출했다가 돌아올 날 기다리는 강아지를 보는 것은 좀 그렇다. 그냥 아래층의 검둥이로 만족해야지. 밥 챙겨줘야 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 나는 춘란이 딱이다. 물도 매일 먹는 거 아니고, 음지나 양지나 며칠씩 놔둬도 괜찮은, 가끔 분갈이 해주는, 그래 춘란이 딱이다.
조금만 돌봐도 되는 그래서 정이 조금만 가는 화분들이 딱이다. 춘란을 포함해서 화분이 모두 12개. 이놈들 이쁘긴 한데, 물 달라고 소리는 질러도, 꼬리는 안 흔들잖아. 앞에와서 봐달라고 뒹굴지는 안잖아. 도도하기만 하지, 자기 쳐다보라고 와서 조르거나 하지는 안잖아.
그래, 강아지 한 마리 키우까.

아래층의 검둥이 때문에 마음이 많이 풀어졌나 보다. 절대로 안키운다고 하던 것이 이제는 조금 흔들리고 있다.

그래 물 주고 밥 주고 하는 강아지 한 마리 키워볼까. 그 녀석은 꼬리를 흔들잖아.
하하하. 그래. 미치게 외로워지면 그때 키우자. 지금은 아니고.
아래층의 검둥이로 만족하자. 그래 그 검둥이놈 더 이뻐해 주고.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그때 키우자.

외로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짐승들과 같이 살 다른 이유가 생기면 그때 키우자. 강아지건, 고양이건, 닭이건, 염소건 그때, 그때 키우자. 나중에. 나중에.
IP *.72.1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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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6.25 09:48:59 *.99.120.184
잘 빠진 남자(?) -> 외로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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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6.25 11:20:08 *.72.153.12
하하하.여해님. 이거 왜이러시나?
학교에 몸매 좋은 사람 있으면 잘 묶어서 서울로 데려 오세요. 밥 사드릴께요. 혼자 먹는 밥 이젠 지겨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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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6.26 23:17:12 *.48.41.28
에고 고 녀석 귀엽다.보고싶네.
나중에 나중에 하다가 못키운다.질르고 볼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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