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따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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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발적 단절: 구본형의 단식원, 조셉캠벨의 오두막,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런 인터뷰 여행을 자처했나. 여하튼 겨우 지리산에 도착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게. 보따리아.”
“단식 중이시니 에너지 많이 뺏지 않을게요. 선생님은 탄탄한 직장을 버리고 무엇을 위해 이 곳에서 단식 중이신 겁니까?”
“탄탄한 직장이 아니라 불타는 갑판이었지. 내가 여기 있는 이유? 두 단어로 요약하겠네. 단절, 그리고 변화”
그는 4권의 책을 건네며 눈과 입을 닫는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떠남과 만남>, <마지막 편지>가 그것이었다. 그가 준 두 단어 ‘단절’과 ‘변화’를 마음에 품고 4권의 책을 보따리에 넣었다.
지리산보다 더 빡센 곳. 이젠 미국이다. 그래도 일타쌍피. 두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먼저 숲 속으로 갔다. 저 오두막에 가방끈 긴 29세 무직청년이 있다고 한다.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책을 읽는 그의 뒷모습이 보인다.
“Hi! I’m Lia from Korea. 가방 끈 긴 당신은 왜 여기에 있고 무엇을 하는 거죠? 저에게 딱 한마디만 해주실 수 있나요?”
“나는 지금 귀환을 앞두고 이 곳 오두막에서 변모 중에 있어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Follow your bliss.”
그는 2권의 책을 건넸다. <신화의 힘>, <신화와 인생>. 이번 여행이 아니었으면 신화는 내 관심 밖 영역이라 읽을 일이 없었을 건데.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며 나는 보았다. 그가 책상 서랍을 열고 100달러짜리 지폐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속세의 인간을 잠깐이나마 만나 마음이 흔들린 걸까. 그래도 저 사람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독서를 시작할 것이다. 나도 자발적 단절을 할 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줄 나만의 부적 또는 주문을 만들어 봐야겠다.
자, 이젠 숲 속 월든 호숫가이다. 아까 그 오두막 무직청년보다 1살 어린 그는 지금 통나무 집을 지어 혼자 살고 있다. 이 청년도 가방끈 길다. 무려 하버드 출신이다. 다들 왜 이래?
“안녕하세요~ 숲 속 호숫가에서 혼자 외롭지 않으세요? 여긴 왜 오신 건가요?”
“삶을 의도적으로 살기 위해서.”
맞아.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고 했지. 의도대로 사는 것, 그것이 신의 의도임을 나는 왜 몰랐을까.
“선생님, 저한테 책 한권 선물해 주실 수 있나요?”
“이걸 갖고 가요. 자연의 관찰, 내면의 성찰에 대한 나의 모든 기록이 거기에 있으니.”
그의 책 <월든>을 보따리에 넣었다. 책 제목을 보니 콩밭, 마을, 호수 등 관찰의 디테일 강도가 셀 것이 짐작되는 제목이었다. 지루할 것 같다. 제일 나중에 읽어야지.
# 내몰린 단절: 신영복의 감옥, 빅터 프랭클의 수용소
스스로 의도한 단절이 아닌 내몰린 단절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먼저 감옥에 계신 분을 찾아 뵈었다. 조금 전에 만난 28세 청년 소로우의 나이였을 때 그는 감옥에 갔다. 무려 20년을 그 곳에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 감히 한마디 여쭐 수 있을까요. 어두운 시대, 갇힌 공간에서 선생님은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으실 수 있었나요?”
“관계에서 의미를 찾았네. 관계 속에서 자유로운 사상의 꽃을 피워냈지. 이 책을 읽어보면 무슨 말일지 알 걸세.”
그가 건넨 책은 <강의>였다. 관계론적 관점에서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과 더불어 고전의 숲을 거닐어 봐야겠다. ‘더불어 함께.’
가고 싶지 않은 곳, 왠지 으스스한 곳, 하지만 가야 한다. 수용소로.
“선생님, 저에게 딱 한마디만 해주세요. 얼른 이 곳을 나가고 싶네요.”
“그 심정 압니다. 여기까지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수용소에서 악몽을 꾸는 친구가 있으면 깨우지 않고 싶을 정도로 처참한 곳이니. 악몽이라 한들 수용소에서의 현실보다는 나을 테니까. 보따리아에게 딱 한마디만 한다면, 이겁니다.”
잠시의 침묵 후, 그는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으세요.”
그리고 건네준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따리에 챙겨 넣었다.
# 방랑자: 공자, 괴테, 박지원, 베르나르 올리비에
제일 만나고 싶은 사람들. 워낙 이동 중인 사람들이라 다 만나진 못하고 공자만 만나기로 한다. .
“선생님,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실까요?"
“나는 노나라를 55세에 떠났네. 14년이 지난 69세에 돌아왔지. 젊은이들이여, 과연 55세에 그대들은 이상의 실현을 위해 떠날 수 있는가. 그리고 또 하나. 無道한 사회일수록 仁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여라. 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는 <논어>를 건네주었다. 어르신이지만 오히려 엔간한 젊은이보다 패기만만하다.
보따리에 <논어> 외에 박지원의 <열하일기>,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를 넣었다. 인터뷰 여행 중에 읽어봐야지. 생각보다 인터뷰 여행기의 분량이 길어져서 이 즈음에서 마무리 할까 한다. 책을 넣은 보따리도 이미 꽉 차 터질 지경이다. 자의적 단절이건 내몰린 단절이건 <변모>를 위한 나만의 <성소>, <영웅여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보따리에 보물을 가득 싣고 귀환을 해야지. 무사귀환을 위한 나침반은 '내면의 목소리'다. 나를 믿자.
*
늦여름부터였나. 오프수업 전후로 계속 아팠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니 시원했다. 시원함 끝엔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당의정 바른 보약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콤하게 시작했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씁쓸함이 나에게 득이 되는 보약임을 알게 될 거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책 선물을 받았다. 이제 나와 인류에게 선물이 되는 책을 준비할 때다.
우리 동기들 모두 영웅여정을 통해 멋진 귀환을 했으면 좋겠다. 비슷하다고 쿠사리(?)를 먹긴 했지만 블리븐의 집단신화가 나는 좋았다. 전원 출간의 신화를 꿈꿔본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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