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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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민 문학]
사형제도는 공허한 십자가를 지는 행위?
-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안녕하세요? 지난번 소식에 말씀드렸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작품 기억하시죠? 그 책을 읽고는 몰입도와 가독성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그의 작품 몇 편를 더 읽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주말에 도서관에 갔더니 그의 최신작들은 이미 대여가 되어 자리에 없었습니다. 다만, 2014년에 출간된 <공허한 십자가>라는 작품이 있어서 얼른 집어 들었습니다. 혹시나 누군가 다가와서 대출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없애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일본 추리소설 섹션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몇몇 분들이 서성이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양식을 보인다고 합니다. 저는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어서 사실 잘 몰랐거든요. 그 작품은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따스한 환상문학’이라고하는 편이 나을 듯 싶습니다. 작가는 하나의 주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있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자, 그래. 그럼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하는지 알아보자.’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책은 한마디로 ‘사형제도’와 ‘속죄’에 대한 키워드를 지니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죽여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를 하는 것이 진정한 속죄의 행위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으로 시작합니다.
아빠가 출근을 하고, 엄마가 잠깐 시장에 간 사이에 8살짜리 여자아이가 잔인하게 살해됩니다. 범인은 어렵지 않게 잡히고, 유족들은 범인이 사형을 선고 받도록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립니다. 작가는 사형선고를 진행하는 유족들의 심리에 주목합니다. 범인이 사형을 받지 못하면 부모는 ‘나는 죽은 우리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자책할 것이고, 설사 범인이 사형을 선고 받아도 그 가슴의 응어리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사형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범인이 사형집행으로 목숨을 잃게 되면, 사죄를 받아야 할 사람이 사라져버리는 모순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목이 <공허한 십자가>라는 것은 바로, 누군가 십자가를 져야 하지만,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이 진정으로 참회를 하며 어깨에 십자가를 이고 가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작가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사형제도의 여러 가지 의견들을 다양하게 풀어 놓습니다. 또한 작가가 어떤 인물에게 더 애착이 있고, 사형제도에 대해서 어떤 입장인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굳이 일본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97년 12월30일 이후에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10년 넘게 사형을 집행하고 있지 않기에 실질적으로 사형집행 폐지국가라고 분류되지만, 법적 최고형으로 명시되어 있는 한, 언제든지 시행될 수 있다고 합니다.
새해부터 8세 소녀의 잔인한 살인 과정에서부터 피가 낭자하는 살해 현장을 묘사한 작품을 읽고 나니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요즘 TV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빠른 장면 전환과 생생한 대화체 덕분에 진도는 술술술- 나갔습니다. 각 장면들을 시각화 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몰입이 잘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잠시나마 집중했던 그 시간을 통해 무언가 얻었다는 보다는 소비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아마도 가족 살인으로 인한 한 가족의 붕괴 과정과 가해자에 대한 대책 없는 강렬한 분노의 표출방식이 정서적으로 낯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휴. 이제 잠시 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과는 떨어져있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좀 더 따스한 감성의 작품들을 만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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