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時田 김도윤
- 조회 수 2900
- 댓글 수 9
- 추천 수 0
#1. 시작하는 글 _ 하나가 되지 않는 잠
미국을 다녀온 후 한 3일을 앓았다. 잠들이 마구 조각났다. 깨어진 얼음 조각처럼 부서진 잠을 자다 몇 번씩 깨어나곤 했다. 어딘가에서 녹아 없어진 그 조각들은 아무리 합쳐봐도 채 하나가 되지 않았다. 몸이 땅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감각과 시간의 간격, 공간의 틈새, 몸의 부적응 속에서 생각해봤다. 난 대체 일주일 동안의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온 것일까?
위싱턴과 뉴욕의 거리를 걷고, 많은 사람들을 보고, 공원을 거닐고, 그림과 조각들을 즐겼던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정신 없는 일정 속에서 바삐 돌아다녔던, 촌놈이 그토록 한번 가보고 싶었던 미국땅에서 난 대체 무엇을 보고 돌아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참 궁금하다. 이제 기억을 되짚고, 무수히 셔터를 눌러댔던 사진들에 담긴 풍경을 참고 삼아 그 일주일 동안의 기록을 정리해보려 한다.
글을 쓰면서 나는 경험과 기억 사이의 간격에 절망할 테고, 감각으로 느꼈던 풍경과 불완전한 사진 사이의 간격에 또 한번 절망할 듯 하다. 그럼에도 기록한다. 이 기록이 내게 무슨 의미를 가질지, 또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또 어떤 의미를 당최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무의미함 속에서 굳이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진 않을 것이다. 그 어떤 고매한 교훈을 담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이 글을 객관적 사실만을 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자아의 시선으로 바라 본 미국의 풍경이 될 것이다. 글 속에는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을 것이고, 미국과 한국이, 그리고 여행 동안 읽었던 책과 경험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서두가 너무 길어졌다. 이제 그만 줄이고 시작한다.
#2. 칼의 노래 _ 비행기 안 _ 2007.06.07.토요일
이번 여행은 2편의 영화와 김훈의 '칼의 노래'로 시작되었다.
- 행복을 찾아서
- 프리덤 라이터스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행복을 찾아서(Pursuit of Happiness)'와 '프리덤 라이터스(Freedom Writers)'를 보았다. 참 오랜만에 맛보는 편안한 영화보기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생각해보니, 영화를 선택하는데 어느 정도 미국을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 담겨 있었던 듯 하다.
그리고 칼의 노래 1, 2권을 읽었다. 김훈이 비장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를 읽으며, 이순신 장군의 처절한 인간적 고뇌에 몸서리를 쳤고, 가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잠시 책을 멈추고 글의 행간을 따라 걸어보기도 했다. 그 안타까움, 그 슬픔, 그 비장함, 그 분노를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백의종군하기 위해 옥을 나서던 길. 그를 만나러 오시던 어머니가 배에서 돌아가시던 날. 자식을 잃은 아비의 마음. 그 가슴 아픈 걸음 걸음들을 따라 걸어보았다.
책을 읽다 잠시 잠이 들었다. 잠결 속에서 비행기는 난기류 속에서 마구 흔들렸고, 난 얕은 꿈 속에서 뒤척였다. 어디론가 계속 떨어져 내리는 듯 했지만, 결코 떨어지지는 않았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까?" 꿈과 현실 사이의 간격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내가 진정 살고 싶은 삶은 무엇일까?
온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일. 그 아무것도 없는 감각의 끝까지 가서 다시 거대하지만 텅 빈 중심을 찌르는 일. 그 부서질 듯 가느다란 감각의 끝에 매달린 투명한 촉수로 무거운 삶의 영혼을 관통하는 일.
몸과 영혼의 숨가쁜 춤사위, 감각과 정신의 황홀한 뒤엉킴.
절망과 죽음의 끝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는 나날' 속에서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감히 헛된 희망을 노래하지 말자. 냉정한 현실에 기초하자. 환상이 아닌 내가 본 것과 들은 것, 느낀 것에서 시작하자. 천길 낭떠러지 절망의 끝에서 눈부신 칼을 들어 태양을 찌르자. 그 반짝이는 완성의 순간을 꿈꾸자.
#3 국립 미술관 _ 워싱턴 _ 2007.06.07.토요일
- 국회의사당
토요일 오전에 출발해서 14시간을 날아왔는데, 다시 토요일 오전이었다. 해외 여행이라고는 이웃나라 일본과 신혼 여행 밖에 갔다 온 적이 없는 촌놈에게 13시간의 시차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워싱턴은 눈부셨다. 날씨가 더없이 맑았다.
워싱턴은 내게 미국 행정 수도란 의미보다는 스미스소니언(Smithsonion) 박물관과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이 있는 곳이란 의미가 더욱 컸다. 빨리 그 곳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단체로 여행 온 것을 어찌하랴. 일정에 따라 국회 의사당과 백악관을 차례대로 들리는 사이 시간이 무심히 흘러갔고, 어느덧 4시가 지났다.
- 국립 미술관, East 빌딩
겨우 국립 미술관에 도착했지만, 5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급한 마음으로 West 빌딩의 수많은 고전 작품들을 지나쳐서, 현대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는 East 빌딩으로 향했다. 비록 20~30분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곳의 작품들을 둘러보며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다.
- 칼더의 방
- 재스퍼 존스의 스케치
급하게 스쳐 지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알렉산더 칼더와 재스퍼 존스의 전시가 인상적이었다. 칼더의 모빌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높은 방은 움직이는 색색의 형태들과 빛에 비추인 무채색 그림자가 하얀 벽 위에 한데 어우러져 묘한 감동을 자아내었다. 재스퍼 존스의 스케치와 그림들을 같이 전시해 놓은 특별 전시는 '과연 현대의 미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내게 던져 주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내 작업은 눈에 익숙한 것들을 내가 어떻게 보는지를 '보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의 생각은 곧 그림이었다.
큰 생각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이 궁금하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나타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수단에 불과하다." 그리고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말한다. "나는 오랫동안 깊이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말해야 할 것이 무엇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숫자가 먼저가 아니라 이미지가 먼저였다. 조각이 먼저가 아니라 생각이 먼저였다.
마감 시간이 되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국가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던져본다.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이런 엄청난 작품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것 또한 국력의 차이로 연결되는 수많은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돈의 위력과 문화의 힘이 부러웠다.
약속 시간에 맞춰서 버스로 돌아가는 길, 역시 5시에 문을 굳게 닫은 허시혼 미술관 앞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솟구쳐 오르는 분수를 감상했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오리라 다짐했다.
- 허시혼 미술관
#4. 링컨 기념관 _ 워싱턴 _ 2007.06.07.토요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우선 한국전쟁 참전 용사 기념물에 잠시 들렸다. 그 곳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 한국전쟁 참전 용사 기념물(Korean War Memorial)
"Freedom is not free."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싸웠던 것일까? 또 무엇을 위해 죽었던 것일까? 가장 무서운 적은 살아 있는 적이 아닌 형체가 없는 적들이다. 아직 채 식지 않은 한낮의 열기 아래에서 난 'Freedom is not free'란 말의 의미를 곰곰이 되씹으며 링컨 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아메리카로!'를 읽은 나로서는 링컨에게 예전처럼 우호적일 수만은 없다. 물론 그는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그 위대함 또한 그 시대가 낳은 결과물임을 조금은 알게 된 나에게, 링컨의 동상이 앉아 있는 웅장한 기념관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 링컨 기념관에서 바라본 워싱턴 모뉴먼트
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으로 시작되는 유명한 연설을 했던 바로 그 곳에 서서 워싱턴 모뉴먼트를 바 라보았다. 그 풍경 속에는 루터 킹 목사와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가슴 뛰는 역사의 한 장면이 자리하기도 했고, 포레스트 검프가 달려가던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기도 했으며, 토크빌이 말했던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는 "천갈래 길을 숨긴 숲"이란 표현이 담겨있기도 했다.
자유와 아메리칸 드림.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미국을 일구어낸 두 개의 축이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5. 잠시 접는 글 _ 낯선 곳의 저녁_ 2007.06.07.토요일
숙소로 향하는 길, 교외에서 IHop이란 저렴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저렴한 가격에 엄청난 양이 나오는 미국식 식사를 마친 후 주변의 풍경을 몇 장 찍어보았다. 인적이 드문 길. 낯선 곳의 어스름. 저녁 무렵의 쓸쓸함. 나는 문득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어디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토록 많던 기념물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세계 곳곳의 유물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끝없는 욕심 혹은 짧은 역사에 대한 자격지심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 화려하던 연극 무대 뒷 편에 놓여 있는 이처럼 스산하고 차가운 풍경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저 편에서 'Midas'란 황금색 간판이 불을 밝힌다. 참 이상하다. 짐 자무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상하다.
Stranger than Paradise.
IP *.60.237.51
미국을 다녀온 후 한 3일을 앓았다. 잠들이 마구 조각났다. 깨어진 얼음 조각처럼 부서진 잠을 자다 몇 번씩 깨어나곤 했다. 어딘가에서 녹아 없어진 그 조각들은 아무리 합쳐봐도 채 하나가 되지 않았다. 몸이 땅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감각과 시간의 간격, 공간의 틈새, 몸의 부적응 속에서 생각해봤다. 난 대체 일주일 동안의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온 것일까?
위싱턴과 뉴욕의 거리를 걷고, 많은 사람들을 보고, 공원을 거닐고, 그림과 조각들을 즐겼던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정신 없는 일정 속에서 바삐 돌아다녔던, 촌놈이 그토록 한번 가보고 싶었던 미국땅에서 난 대체 무엇을 보고 돌아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참 궁금하다. 이제 기억을 되짚고, 무수히 셔터를 눌러댔던 사진들에 담긴 풍경을 참고 삼아 그 일주일 동안의 기록을 정리해보려 한다.
글을 쓰면서 나는 경험과 기억 사이의 간격에 절망할 테고, 감각으로 느꼈던 풍경과 불완전한 사진 사이의 간격에 또 한번 절망할 듯 하다. 그럼에도 기록한다. 이 기록이 내게 무슨 의미를 가질지, 또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또 어떤 의미를 당최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무의미함 속에서 굳이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진 않을 것이다. 그 어떤 고매한 교훈을 담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이 글을 객관적 사실만을 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자아의 시선으로 바라 본 미국의 풍경이 될 것이다. 글 속에는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을 것이고, 미국과 한국이, 그리고 여행 동안 읽었던 책과 경험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서두가 너무 길어졌다. 이제 그만 줄이고 시작한다.
#2. 칼의 노래 _ 비행기 안 _ 2007.06.07.토요일
이번 여행은 2편의 영화와 김훈의 '칼의 노래'로 시작되었다.
- 행복을 찾아서
- 프리덤 라이터스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행복을 찾아서(Pursuit of Happiness)'와 '프리덤 라이터스(Freedom Writers)'를 보았다. 참 오랜만에 맛보는 편안한 영화보기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생각해보니, 영화를 선택하는데 어느 정도 미국을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 담겨 있었던 듯 하다.
그리고 칼의 노래 1, 2권을 읽었다. 김훈이 비장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를 읽으며, 이순신 장군의 처절한 인간적 고뇌에 몸서리를 쳤고, 가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잠시 책을 멈추고 글의 행간을 따라 걸어보기도 했다. 그 안타까움, 그 슬픔, 그 비장함, 그 분노를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백의종군하기 위해 옥을 나서던 길. 그를 만나러 오시던 어머니가 배에서 돌아가시던 날. 자식을 잃은 아비의 마음. 그 가슴 아픈 걸음 걸음들을 따라 걸어보았다.
책을 읽다 잠시 잠이 들었다. 잠결 속에서 비행기는 난기류 속에서 마구 흔들렸고, 난 얕은 꿈 속에서 뒤척였다. 어디론가 계속 떨어져 내리는 듯 했지만, 결코 떨어지지는 않았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까?" 꿈과 현실 사이의 간격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내가 진정 살고 싶은 삶은 무엇일까?
온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일. 그 아무것도 없는 감각의 끝까지 가서 다시 거대하지만 텅 빈 중심을 찌르는 일. 그 부서질 듯 가느다란 감각의 끝에 매달린 투명한 촉수로 무거운 삶의 영혼을 관통하는 일.
몸과 영혼의 숨가쁜 춤사위, 감각과 정신의 황홀한 뒤엉킴.
절망과 죽음의 끝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는 나날' 속에서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감히 헛된 희망을 노래하지 말자. 냉정한 현실에 기초하자. 환상이 아닌 내가 본 것과 들은 것, 느낀 것에서 시작하자. 천길 낭떠러지 절망의 끝에서 눈부신 칼을 들어 태양을 찌르자. 그 반짝이는 완성의 순간을 꿈꾸자.
#3 국립 미술관 _ 워싱턴 _ 2007.06.07.토요일
- 국회의사당
토요일 오전에 출발해서 14시간을 날아왔는데, 다시 토요일 오전이었다. 해외 여행이라고는 이웃나라 일본과 신혼 여행 밖에 갔다 온 적이 없는 촌놈에게 13시간의 시차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워싱턴은 눈부셨다. 날씨가 더없이 맑았다.
워싱턴은 내게 미국 행정 수도란 의미보다는 스미스소니언(Smithsonion) 박물관과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이 있는 곳이란 의미가 더욱 컸다. 빨리 그 곳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단체로 여행 온 것을 어찌하랴. 일정에 따라 국회 의사당과 백악관을 차례대로 들리는 사이 시간이 무심히 흘러갔고, 어느덧 4시가 지났다.
- 국립 미술관, East 빌딩
겨우 국립 미술관에 도착했지만, 5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급한 마음으로 West 빌딩의 수많은 고전 작품들을 지나쳐서, 현대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는 East 빌딩으로 향했다. 비록 20~30분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곳의 작품들을 둘러보며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다.
- 칼더의 방
- 재스퍼 존스의 스케치
급하게 스쳐 지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알렉산더 칼더와 재스퍼 존스의 전시가 인상적이었다. 칼더의 모빌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높은 방은 움직이는 색색의 형태들과 빛에 비추인 무채색 그림자가 하얀 벽 위에 한데 어우러져 묘한 감동을 자아내었다. 재스퍼 존스의 스케치와 그림들을 같이 전시해 놓은 특별 전시는 '과연 현대의 미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내게 던져 주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내 작업은 눈에 익숙한 것들을 내가 어떻게 보는지를 '보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의 생각은 곧 그림이었다.
큰 생각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이 궁금하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나타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수단에 불과하다." 그리고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말한다. "나는 오랫동안 깊이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말해야 할 것이 무엇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숫자가 먼저가 아니라 이미지가 먼저였다. 조각이 먼저가 아니라 생각이 먼저였다.
마감 시간이 되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국가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던져본다.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이런 엄청난 작품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것 또한 국력의 차이로 연결되는 수많은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돈의 위력과 문화의 힘이 부러웠다.
약속 시간에 맞춰서 버스로 돌아가는 길, 역시 5시에 문을 굳게 닫은 허시혼 미술관 앞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솟구쳐 오르는 분수를 감상했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오리라 다짐했다.
- 허시혼 미술관
#4. 링컨 기념관 _ 워싱턴 _ 2007.06.07.토요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우선 한국전쟁 참전 용사 기념물에 잠시 들렸다. 그 곳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 한국전쟁 참전 용사 기념물(Korean War Memorial)
"Freedom is not free."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싸웠던 것일까? 또 무엇을 위해 죽었던 것일까? 가장 무서운 적은 살아 있는 적이 아닌 형체가 없는 적들이다. 아직 채 식지 않은 한낮의 열기 아래에서 난 'Freedom is not free'란 말의 의미를 곰곰이 되씹으며 링컨 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아메리카로!'를 읽은 나로서는 링컨에게 예전처럼 우호적일 수만은 없다. 물론 그는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그 위대함 또한 그 시대가 낳은 결과물임을 조금은 알게 된 나에게, 링컨의 동상이 앉아 있는 웅장한 기념관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 링컨 기념관에서 바라본 워싱턴 모뉴먼트
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으로 시작되는 유명한 연설을 했던 바로 그 곳에 서서 워싱턴 모뉴먼트를 바 라보았다. 그 풍경 속에는 루터 킹 목사와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가슴 뛰는 역사의 한 장면이 자리하기도 했고, 포레스트 검프가 달려가던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기도 했으며, 토크빌이 말했던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는 "천갈래 길을 숨긴 숲"이란 표현이 담겨있기도 했다.
자유와 아메리칸 드림.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미국을 일구어낸 두 개의 축이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5. 잠시 접는 글 _ 낯선 곳의 저녁_ 2007.06.07.토요일
숙소로 향하는 길, 교외에서 IHop이란 저렴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저렴한 가격에 엄청난 양이 나오는 미국식 식사를 마친 후 주변의 풍경을 몇 장 찍어보았다. 인적이 드문 길. 낯선 곳의 어스름. 저녁 무렵의 쓸쓸함. 나는 문득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어디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토록 많던 기념물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세계 곳곳의 유물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끝없는 욕심 혹은 짧은 역사에 대한 자격지심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 화려하던 연극 무대 뒷 편에 놓여 있는 이처럼 스산하고 차가운 풍경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저 편에서 'Midas'란 황금색 간판이 불을 밝힌다. 참 이상하다. 짐 자무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상하다.
Stranger than Paradise.
댓글
9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신웅
오유 월 도윤 님의 글에서 특히 맘에 와 닿은 부분은 '되돌아봄'이었던 것 같아요. 역사와 역사 속 인물 그리고 '도윤님 안팎'으로의 여행과 되돌아봄이요. 이번 7월은 아메리카로의 여행이로군요. 도윤 님의 여행기와 함께 아메리카로 여행 준비 잘 해둬야지 !
도윤 님의 글은 제게 보물찾기를 하는 것과 같은 호기심과 재미를 주곤하지요. '이번에는 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을 때가 많거든요. 이번 아메리카 여행에서는 어떤 보물이 제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많이 기대가 되네요 ! 순간 제가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탐험가가 된 듯한 느낌이... !!
사진.. '좋으네^^' ( 도윤님 버전 따라한 거예요. 크크 )
도윤 님의 글은 제게 보물찾기를 하는 것과 같은 호기심과 재미를 주곤하지요. '이번에는 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을 때가 많거든요. 이번 아메리카 여행에서는 어떤 보물이 제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많이 기대가 되네요 ! 순간 제가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탐험가가 된 듯한 느낌이... !!
사진.. '좋으네^^' ( 도윤님 버전 따라한 거예요. 크크 )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52 | (17) 외로움, 너를 안는다. [9] | 香仁 이은남 | 2007.07.07 | 3158 |
251 | [칼럼17] 가끔은 그냥... [10] | 余海 송창용 | 2007.07.07 | 2948 |
250 | [15] 몸의 정복자 [11] | 素賢소현 | 2007.07.04 | 3146 |
249 | (016) 천리마와 하루살이 [8] | 校瀞 한정화 | 2007.07.02 | 3082 |
248 | [16] 나도 무엇이 되고 싶다. [8] | 써니 | 2007.07.02 | 3129 |
247 | 잔인한 칭기즈칸? NO! [8] | 현운 이희석 | 2007.07.02 | 5005 |
246 | [칼럼016] 보통 사람의 위대한 드라마 [13] | 香山 신종윤 | 2007.07.09 | 3069 |
245 | [칼럼 16] 남자는 인생으로 시를 쓰고, 여자는 그 시를 읊어준다 [7] | 海瀞 오윤 | 2007.07.02 | 3433 |
» | (16) 아메리카 여행기 1 - 워싱턴 [9] | 時田 김도윤 | 2007.07.07 | 2900 |
243 | 동화책 그림속에서 발견한 몽골의 대서사시 [6] | 최정희 | 2007.07.02 | 3243 |
242 | [칼럼16]질주본능 [11] | 素田최영훈 | 2007.07.03 | 3108 |
241 | [칼럼16] 불편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 [8] | 余海 송창용 | 2007.06.29 | 3113 |
240 | (16)그대를 슬프게 하는 것들 [12] | 香仁 이은남 | 2007.06.29 | 3364 |
239 | [여유당 기행] 아! 다산 선생님... [8] | 현운 이희석 | 2007.06.26 | 3451 |
238 | (12) 엄마의 횡재 [8] | 香仁 이은남 | 2007.06.25 | 3206 |
237 | [14] 몸이 나의 출발점이다 [6] | 素賢소현 | 2007.06.25 | 2883 |
236 | (15) 불쑥 치밀어 오르는 화 [10] | 박승오 | 2007.06.25 | 3333 |
235 | [15] 茶山 ! 多産 ! 다 산 ! [3] | 써니 | 2007.06.25 | 2819 |
234 | (015) 짐승 [3] | 교정 한정화 | 2007.06.25 | 2745 |
233 | [컬럼015] 참 좋은 하루였습니다. [12] | 신종윤 | 2007.07.09 | 32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