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gum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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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폴 칼라니티
1977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고,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과 철학, 과학과 생물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그는 이 모든 학문의 교차점에 있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와 철학 과정을 이수한 뒤 예일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걸었다. 졸업 후에는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 병원으로 돌아와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고의 의사로 손꼽히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는 등 장밋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질 무렵, 암이 찾아왔다. 환자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오던 서른여섯 살의 젊은 의사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의사이자 환자의 입장에서 죽음에 대한 독특한 철학을 보인 그는 힘든 투병 생활 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약 2년간의 투병 기간 동안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How Long Have I Got Left?)’, ‘떠나기 전에(Before I Go)’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각각 [뉴욕타임스]와 [스탠퍼드메디슨]에 기고했고, 독자들의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5년 3월, 아내 루시와 딸 엘리자베스 아카디아 등 사랑하는 많은 사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여기서 제목을 정했구나.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프롤로그
23. 서른 여섯 살에 나는 정상에 올랐다.
누구나 한번 쯤은 이처럼 장미빛 인생이 있기 마련이다. 나도 이 즈음인 것 같다.
25. “왜 나한테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은 거야? 무슨 이유라도 있어? 좀 말해봐.” 루시가 말했다. 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말했다.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남자들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여자는 말해주길 원하고, 남자는 뭔가 정해지기전에는 얘기하기 싫어하고. 그래서 많은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고치려고 한다.
25. 나는 충분히 숙면을 취하고 칵테일 몇 잔을 마시면 부부 사이도 좀 더 가까워지고 결혼 생활의 위기도 해소되리라 믿었다.
그래. 많은 남자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25. 루시는 우리의 결혼 생활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다. 내가 뭘 잘못했지?
26. 하지만 우리의 커리어는 바로 지금이 절정이었다.
나 역시 주말 부부였고 서로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27. 서운한 감정의 단단한 모서리만 남게 되었다.
감정을 풀어내지 못하면 간격이 점점 커진다.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답이다.
35. 그 말과 함께 내가 꿈꿔왔으며 곧 실현되려던 미래, 그리고 오랜 세월 부단히 노력하며 도달하려 했던 삶의 정점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1.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
40. 내가 아는 의학이란 부재(不在)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부재, 내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돌아와 식은 음식을 데워 먹었다.
우리나라 의사만의 문제는 아니었네. 그런데 의사뿐만 아니라 직업을 가진 남자들은 대부분 이런 희생을 요구한다.
40. 늦은 밤이나 주말에야 얼굴을 보는 아버지는 부드러운 애정과 차가운 근엄함을 함께 보여주었다. …… “최고가 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란다. 최고인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보다 1점만 더 받으면 돼.”
예전엔 이런 말들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는데 이젠 그러고 싶지 않다. 최고가 되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41. 아버지는 부성애도 농축해서 발휘할 수 있는 거라고 나름의 타협점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런 결과는 짧고 강렬한, 진심어린 애정의 폭발이었다.
예전에는 자녀와 같이 있어주는 물리적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아버지처럼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이상적인 이론이다. 물리적 시간이 더 중요하고 무시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47. 나는 어머니의 강요로 열 살 때 <1984>를 읽었는데, 책에 나오는 성애 장면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지만 언어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을 키울 수 있었다.
모든 부모가 똑같겠지만, 자녀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키워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잘 따라오지 않는다. 요즘 드는 생각은 책 읽는 것은 이렇게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를때까지 맞는 것 같다.
47. 열두 살이 되면서 나는 목록에서 직접 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고, 형이 대학에서 읽었다며 <군주론>, <돈키호테>, <캉다드>, <아서왕의 죽음>, <베어올프>,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장 폴 샤르트르,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을 보내주었다. 그 중 몇몇 작품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소로만 앍겠다. 나머지는 얘기만 들었지 읽어보질 못했다. 이 도서도 읽어봐야 겠다.
47. <멋진 신세계>를 읽으면서 나는 도덕 철학의 기초를 쌓았고, 그 책을 대학 입학 논술 주제로 삼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올더스 헉슬리의 책이라고 한다. 인생 책이라고 하니 나의 위시리스트에 찜
51. 우리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만, 또한 생물학적인 유기체이기도 하다.
생물학적인 유기체이면서 유일한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동물이기도 하지.
52.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삶의 의미는 중요하다. 어떤 곳에 의미를 두느냐가 더 중요하긴 하지만. 문학의 중요성은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다.
52. 삶의 의미를 온전히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인간관계나 도덕적 가치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인간관계와 도덕적 가치를 배제한 삶의 의미는 의미가 있을까?
52. 인생의 무의미와 고독, 그리고 인간의 상호 유대감에 대한 절박한 추구를 이야기하는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디에 인용 안되는 곳이 없는 시이다. 들어보기는 진짜 많이 들었는데 정작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위시 리스트 추가.
52.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우리 자신이 고통받을 때 다른 사람의 명백한 고통에 얼마나 무감각해지는가에 주목했다.
타인의 고통이 나에게 어떤 고통을 주지는 않는다. 그냥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의 고통이 될수는 없지만 그래도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자세는 달라져야 한다. 우린 지식인이니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롤리타의 작가.
53. 조지프 콘래드는 잘못된 의사소통이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특유의 명쾌한 감각을 통해 보여주었다.
53. 나는 문학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비추어줄 뿐만 아니라, 도덕적 반성에 도움이 되는 소재를 가장 풍부하게 제공한다고 믿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학의 힘을 믿는다.
53. 대학 시절 내내,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는 금욕적이고 학구적인 내 연구는 그 의미를 만들어내는 인간관계를 쌓고 강화해나가려는 충동과 갈등을 일으키곤 했다. 반성하지 않는 삶이 살 가치가 없다면, 제대로 살지 않은 삶은 뒤돌아볼 가치가 있을까?
54. 나는 의미를 연구할 것인가 아니면 경험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었다.
54. 캠프는 젊을 때 할 수 있는 목가적인 경험을 모두 선사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56. 나는 아이나 노인의 지혜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하나의 순간, 하나의 정점이 있다. 쌓이고 쌓인 경험들이 삶의 세부사항들에 의해 마모되어버리는, 바로 이런 순간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현명해지는 순간이다.
57. 나는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지 알기 위해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유기체들이 세상에서 의미를 찾는 데 뇌가 하는 역할을 알기 위해 신경과학을 공부하면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연구소에서 일했다.
무언가 뚜렷한 목적을 두고 공부했던 저자가 부럽다. 너무 의미없이 공부했던 나 자신과는 비교된다.
61. 우리는 뇌 덕분에 인간관계를 맺고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그러나 때때로 뇌는 망가져버린다.
61. 나는 언어를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의 초자연적인 힘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단어는 사람들 사이이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삶의 의미와 미덕은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깊이와 관련이 있다. 인생의 의미를 뒷받침하는 것은 인간의 관계적 측면, 즉 ‘인간의 관계성’이다.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고 혼자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 인간은 인간을 통해서 즉 인간관계를 통해서 살수 있지 않을까.
62. 모든 학문 분야란 인간의 삶을 특정 방향으로 이해하는 일련의 도구, 즉 어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위대한 문학 작품은 나름의 고유한 도구들을 독자에게 쥐어주며 그 어휘를 사용하도록 이끈다.
62. 문학 연구의 주된 관심사가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반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일부 문학은 그럴 수 있겠지만
63.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자기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
64. 고통받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계속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66. 진지한 생물학적 철학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학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도덕적인 명상은 도덕적인 행동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따. 나는 영국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따. 그리고 예일 의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나. 우리나라도 이런 식의 공부과정이 일반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들어갈때부터 전공을 정해서 한 길로 가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73. 의사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환자의 신체를 침입해 들어간다. 그리고 환자의 가장 취약하고, 가장 신성하며, 가장 은밀한 부분을 들여다본다.
76. 우리는 엄청난 투쟁과 고통을 딛고 이 세상에 오지만, 세상을 떠나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76. 나는 죽음의 두 가지 수수께끼인 경험적인 징후와 생물학적인 징후, 즉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철저히 비개인적인 측면들을 파헤치기 위해 의학을 탐구했다.
77. 심폐소생에 실패하고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끝까지 환자를 살리려는 영웅적인 책임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의 이런 면 때문에 의사가 되려고 한다. 출발은 그렇지만.
86. 무자비한 자연은 인간의 출산에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88. 사뮈엘 베케트의 은유만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났고, 어느 날 죽을 거요. 같은 날, 같은 순간에, 여자들은 무덤에 걸터앉아 아기를 낳고, 빛은 잠깐 반짝이고, 그리고 나면 다시 밤이 오지.” 나는 ‘겸자’를 든 ‘무덤 파는 사람’옆에 서 있었던 셈이다.
92. 의과 대학원 4학년이 되자 많은 동기들이 방사선과나 피부과 같은 덜 고된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하기 시작했다.
이런 것은 동서양의 차이는 없나보다. 나도 역시 군에 있을 때 전과를 했다. 해군은 배를 타야 하는데 배를 타기 싫어 건설분야로 갔다. 그 선택에 대한 주위의 시선은 달갑지 않다.
92. 대부분의 학생들은 근무 일정이 좀 더 여유롭고 연봉은 더 높고 스트레스는 덜한, ‘느긋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전공 분야로 눈을 돌렸다. 입학 논술에서 그들이 내세웠던 이상주의는 물러지거나 아예 사라졌다.
현실을 보는 것이다. 이상만으로는 살기 어려운 세상이니 말이다.
93. 실제로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연봉, 근무환경, 근무 시간을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고 선택하는 건 직업이지, 소명이 아니다.
93. 당신의 삶이 이제 막, 아니, 이미 변했다는 겁니다. 앞으로 기나긴 싸움이 될 거에요. 남편분도 잘 들으세요. 서로를 위해 자기 자리를 잘 지켜줘야겠지만 필요할 때는 꼭 충분히 쉬어야 합니다. 이런 큰 병을 만나면 가족은 하나로 똘똘 뭉치거나 분열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죠.
94. 인간은 유기체이고, 물리적 법칙에 복종해야 하며 슬프게도 그 법칙에는 엔트로피의 증가도 포함되어 있다. 질병은 분자의 탈선에서 비롯된다.
엔트로피와 질병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연관관계.
95. 가령 당신이나 당신의 어머니가 몇 달 더 연명하는 대가로 말을 못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난 이런 면에서는 내 의사는 확실하다. 인간적이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보인다. 예를 들면 치매이다. 낳을 가능성은 없다. 정말 치매 걸린 사람이 자기의 모습을 보게된다면 계속 살고 싶을까.
95.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96. 나는 가차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신경외과의 소명의식에 이끌렸다.
105. 무의식 상태로 신진대사를 하는 이런 불완전한 생존 상태는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짐이 되어 대개는 시설로 보내진다.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나.
105.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110. 다른 급한 일들 때문에 환자의 고통을 외면했던 일. 내가 진찰하고, 기록하고, 몇 가지 진단으로 깔끔하게 분류해버린 환자들의 고통,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한 고통의 의미들이 전부 부메랑이 되어 내게로 돌아왔다. 복수심에 불타고, 분노하고, 냉혹한 모습으로
110. 나는 톨스토이가 묘사한 정형화된 이미지의 의사, 무의미한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기계적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로 변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인간적인 의미를 완전히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이런 자기반성은 성장을 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라 생각된다.
111. 비극과 실패를 겪으며 환자와 가족들 간의 관계 말고 의사와 환자 간의 아주 중요한 관계를 내가 잊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기술적인 탁월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레지던트로서 내가 꿈꾸었던 가장 높은 이상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누구나 결국에는 죽는다),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113.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액체가 들어가고 나오는 여러 주머니들과 끈을 매달고 연명하는 삶을 원할까.
기적을 바라고, 1%의 확률이 있다면 가족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라면 그냥 포기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1%의 희망 때문에 99%를 불행하게 보낼수는 없지 않나.
116. 큰 병은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삶을 바꾸어놓는다…..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부모의 정돈된 세계는 뒤집혀버린다.
이런 불상사가 내게는 일어나질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가족의 병은 그 사람만의 병이 아니다. 모두가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집안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이다.
116. 재앙(disaster)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부서지는 별을 의미하는데, 신경외과의의 진단을 들었을 때 환자의 눈빛이 바로 그렇다.
119. 그녀가 지난주까지 살아왔던 삶과 앞으로 살게 될 삶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을 것이었다.
120. 커다란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럿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121. ‘평균 생존기간은 11개월입니다.’, ‘2년 안에 사망할 가능성이 95퍼센트입니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대다수 환자가 수개월부터 2~3년까지 생존합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122. patient라는 단어의 초기 뜻 중 하나는 ‘불평없이 곤경을 견디는 자’이다.
그런 뜻이었구나. 영어공부할 때 한번 본 것 같기도 하다.
123. 인간관계에서는 솔직함이 중요하지만 교회의 제단 뒤에서 거대한 진실을 모두 폭로할 필요는 없다.
124. 이런 순간에 환자와 함께하는 건 분명 감정적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보람도 있었다. 왜 내가 이 일을 하는지,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 의문을 품은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생명(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정체성, 어쩌면 다른 이의 영혼이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을 지켜줘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이 일의 신성함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128. “폴, 내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 같아?”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도덕적으로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죽음에 직면하면 이런 의문이 드는 모양이다.
128. 오늘은 이 모든게 가치 있어 보이는 첫날이야. 아니,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견뎌내며 여기까지 왔는데, 오늘은 그 모든 고통이 가치 있어 보이는 최초의 날이야
어떤 특별한 경험이 사람을 바꾸게 하는 것이다
136. 언어 없는 삶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이 할 수 없다면 우린 어떨까? 늙는다는 것, 아프다는 것, 상실한다는 것은 슬픈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지 않을까. 이제 그런 나이가 되어가니 하루하루가 두렵기는 하다.
141. “뭔가 복잡한 문제가 있었나봐. 게다가 담당환자도 사망했고, 어젯밤에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서 뛰어내렸대. 그 이상은 나도 몰라.”
어떤 직업을 선망하는 것은 그 겉모습만 화려해 보이기 때문이다. 의사, 멋진 하얀 가운, 멋진 건물, 환자들의 무한 신뢰, 사회적 대우, 많은 돈. 의사는 그야말로 화려한 직업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알아야 한다. 왜 의사가 돈을 많이 받고, 대접받는 직업이 될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에서 알수 있지 않나.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것, 내가 환자 목숨을 쥐고 있다는 사실. 엄청난 부담감이다. 그래서 어쩌면 많은 의사들이 성형, 마취 등 우리가 보기에는 비주류를 택하는 것 아니겠나. 그들을 뭐라 나무랄 수는 없다.
142. 그저 해일처럼 몰려든 엄청난 죄책감 때문에 제프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거라 추측할 뿐이었다.
142. 제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 내가 그와 함께 병원문을 나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함께 있었다면 우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위로할 수 있었을 텐데, 삶에 대하여, 우리가 선택한 삶에 대하여 내가 알게 된 것들을 그 친구에게 들려주면 그 역시 내게 현명하고 영리한 충고를 해줬을 텐데.
그래서 우리는 혼자 살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혼자가 좋고 혼자의 삶이 편하다고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이다. 제프에게는 그의 괴로움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서 그랬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전화라도 했을텐데. 우리는 먹고 사느라 늘 바쁘다. 친구가 하나둘씩 멀어진다. 시간을 내어보자.
142.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우리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살고, 숨 쉬고, 대사 작용을 하는 유기체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모든 인간에게 평등한 것은 아마 죽음일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죽음조차 자본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죽지 않아야 할 병에 많은 사람들은 죽고, 가진 자는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한다. 그래서 돈은 가져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142.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속수무책으로 살아간다. 죽음은 당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제프와 나는 몇 년 동안 죽음에 능동적으로 관여하고, 마치 천사와 씨름한 야곱처럼 죽음과 씨름하는 훈련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의미와 대면하려 했다.
142. 우리는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을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멍에를 졌다. 우리 환자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 손에 달렸을지 몰라도,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다. 설혹 당신이 완벽하더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나는 군인이었지만 실제 전쟁속에 있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이 전쟁이지만 정말 전쟁은 의사들이 하는 것 같다. 사람의 죽음을 본다는 것, 다룬다는 것은 정말이지 보통의 정신력으로 버텨내기 힘든 일이다. 내가 만약 전쟁을 겪었다면 어떻게 됐을까하고 가끔 생각해본다.
142. 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힘든 경험을 그리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아닐까. 나약한 우리 인간이 어쩌겠는가.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을. 자살하는 사람을 보면 늘 안타깝다.
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
147. 나는 “죽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재혼하라고, 그녀가 혼자 남겨진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나도 아마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와이프에게 꼭 재혼하라고 얘기할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우렐리우스는 과연 어땠을까 궁금하다.
148. 내 병은 삶을 변화시킨게 아니라 산산조각 내버렸다. 형형한 빛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비춰주는 에피퍼니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앞길에 폭탄을 떨어뜨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병이 낫는다면 모를까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고칠수 없는 병임을 알았을 때 그 기분은 어떨까를 알려주는 문장이다.
148. 나는 한숨을 쉬었다. 동생은 선의를 가지고 한 말이지만, 아무래도 내겐 공치사처럼 들렸다.
동생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냥 하는 말처럼 느껴져 기분이 나빠진다.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기분이다. 무언가 나쁜 일이 벌어지면 주변 사람들은 다들 위로하는 전화와 말을 했다. 그러나 그런건 내 기분을 어떻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149. 폐암 진단은 확정되었다. 내가 신중하게 계획하고 힘겹게 성취한 미래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무척 익숙했던 죽음이 이제 내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죽음과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지만, 아직 죽음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149. 기로에 선 내 앞에 보이는 거라곤 텅 비고, 냉혹하고, 공허하고, 하얗게 빛나는 사막뿐이었다. 마치 모래 폭풍이 그동안 친숙했던 모든 흔적을 쓸어간 것처럼.
151. 1년 반 전에 나는 맹장염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나. 불과 1년 반만에 폐암이 발생했다. 그 1년반이 저자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 나는 과연 매년 받는 건강검진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매년 받고 있지만 과연 이것이 의미가 있나. 작은 것은 잡고 큰 것은 놓치는.
153. 병원에서 절뚝거리면서 나올 때, 불과 엿새 전만 해도 수술실에서 거의 36시간 가까이 서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의아스럽기만 했다. 한 주 만에 이렇게 병약해진 건가?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의 신체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알 수 있다. 결국 신체는 정신에 의해 지배당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폐암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아프지만 신체는 정상이었을 것이다.
154.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면서 나를 몰아붙이던 그 의무가 사라지자 나 자신이 어느새 병약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치 있는 힘을 다해 결승선을 통과한 후 쓰러지는 달리기 선수처럼.
의무와 책임이 사라진다면 행동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조직을 그만 둔 후 나태해질 수 있었던 나지만 연구원 과정을 통해 지난 1년동안 정말 정신없이 달려왔다. 오히려 조직에 있을때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연구원이 종점을 향해 가고 있는데 끝이 나면 어떻게 될까?
154.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이렇게 말했다. “어설프게 배우는 건 위험한 일이다. 뮤즈의 샘을 흠뻑 마신다든가, 아니면 아예 입도 대지 말라.”
나는 이제 좀 알겠다. 인문학을 안다고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좀 두려워진다.
155. 며칠 전만 해도 내년엔 수입이 여섯 배 늘겠구나 예상하면서 세웠던 우리의 재정 계획이 이젠 위태로워 보였고, 거기에 더해 내가 죽은 뒤에도 루시를 지켜주려면 이런저런 새로운 재정적 장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이다. 나는 그 반대이다. 이젠 한달 뒤에 우리의 재정은 반토막이 난다.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될까. 자본주의 시대에 돈은 곧 행복에 가깝다. 부정한다 해도 어쩔수 없다.
155. 달리 어쩌란 말인가?
161.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죽음에 대해서도 평소에 반드시 생각하고 정리해야 한다. 하기 싫지만 그래야 할 것 같다.
162. 다음 날, 루시와 나는 정자은행에 들렀다. 생식 세포를 보존하여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라면 절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죽기전에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존재가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것이지만 홀로 남겨질 그녀를 위해서는 이건 아닌 것 같다.
162. 희망(hope)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영어에 등장한 건 약 1,000년 전으로, 확신과 소망을 결합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63. 95퍼센트로 측정된 신뢰 구간을 극복하고 생존할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 이것이 내게는 희망이란 것일까?
통계곡선에서 늘 말하는 것이다. 신뢰구간에 드는 것. 이것은 인간이 불확실한 것을 선택할 때 제공되는 툴이다. 지진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통계자체가 그냥 확률게임이다. 언제나 95%가 답은 아니다. 1%가 전체를 지배할 때도 있다.
163. 우리는 모든 환자의 생존 확률이 평균 이상이라는 ‘희망’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통계자료와 나의 관계는 내가 환자가 되자마자 달라져 버렸다.
164. 일반적으로 환자가 원하는 건 의사가 숨기는 과학 지식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실존적 진정성이다. 통계를 지나치게 파고드는 건 소금물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뇌에 빠지는 일은 생존 가능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죽음만을 생각하면 없던 병도 생길 것이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우울해진다. 생각 줄이기.
164. 치료 가능한 변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내 삶을 둘러싸고 있던 안개가 살짝 걷히고 푸른 하늘 한점이 보였다. 그 뒤로 몇 주 동안 식욕이 돌아왔다.
얼마나 사람이 간사한 동물인가. 작은 것 하나에도 큰 희망을 가지게 마련이다.
163. 루시는 여드름이 나고 지저분해진 내 피부도 예전과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정체성은 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얼굴과 몸매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니까.
165. 많은 사람들이 암 진단을 받으면 일을 아예 그만둬요. 아니면 정반대로 일에 몰두하거나요. 어느쪽이든 괜찮아요.
나라면 일을 그만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암이 생긴 건 그 사람에게 삶을 돌아보라고 한 메시지메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경제적으로 못먹고 살 정도가 아니라면 그만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165. 저는 40년 인생 계획을 짰었어요. 첫 20년은 외과의사이자 과학자로, 마지막 20년은 작가로 살 생각이었죠.
이 남자 좀 멋있다. 나도 우연찮게 그만두었지만 20년은 군인으로 살았다. 나머지 20년은 작가로 살고 싶기는 하다. 내 능력이 한참 모자라는 것이 문제지만. 그대도 하고 싶은 것을 찾았으니 다행이다.
166. 내 가치를 찾는 건 내게 달린 문제였다.
당연한 답이다.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후회도 적은 법이니까.
167. 암 진단과 함께 부서져버린 현재와 미래, 미래를 아는 고통과 알지 못하는 고통,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어려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절실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암은 우리의 결혼 생활을 구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나도 부부관계를 돌이켜 보면 그냥 솔직하게 대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이다. 이해타산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진다.
168. 지금 우리 상태가 최고라는 건, 더 나아질게 없다는 뜻이잖아.
그게 어때서? 좋다는 뜻 아닌가. 여자와 남자의 차이인가. 어쩌란 말이지?
169. 그런 자료는 루시와 내가 아기를 가져야 할지, 혹은 내 생명이 꺼져가는 동안 새로운 생명을 양육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이건 정말 어려운 결정이다.
169.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나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입장이 갈린 채, 의학을 계속 파고들지 아니면 문학에서 답을 찾아야 할 지 고민스러웠다.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의학은 완전히 몸이 회복되면 하면 되는 것이고 당연히 문학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이 나왔겠지만.
170. 의사는 병에 걸리는 느낌이 어떤지 추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 그건 사랑에 빠지거나 아이를 가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건가. 장교인 나는 병사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아직 부정하고 싶다. 내가 왜 그들의 마음을 모를까?
170. 11년 동안 병원에 몸담으면서도 나는 고통의 구체적인 느낌을 전혀 알지 못했다.
170. 하프 마라톤을 달리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 추억이 되어버렸다. ….. 고통스런 요통이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피로와 메스꺼움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 달리고 싶다. 언제 달리고 못달렸는지 기억도 안난다. 2월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170. 고통스러운 요통이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피로와 메스꺼움 또한 마찬가지이다.
고통과 상실이 괴로운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현실을,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기도 한다.
171. 나는 내 삶의 모든 문장에서 주어가 아닌 직접 목적어가 된 기분이었다. 14세기 철학에서 환자(patient)라는 단어는 그저 ‘행동의 대상’을 의미했고, 나는 딱 그런 존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의사였을 땐 행위의 주체이자 원인이었으나, 환자인 나는 그저 어떤 일을 당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괜찮은 문장이다. 항상 주어나 동사가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형용사나 부사 같은 인생이 되면 안된다. 문장에 형용사, 부사, 목적어 그 어느 것도 빠지면 안되지만 주어나 동사만 있어도 그 뜻은 전달된다. 이게 핵심이다.
172. 내가 통계를 인용할 때마다 내 가치관에 집중하라며 퇴짜를 놓았다.
과학적 접근과 경험적 접근의 차이
172. 죽음에 직면하고 보니 더 미뤄선 안 되고 급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를 가져도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폐암 4기를 진단 받은 상태에서 아이문제를 생각하다니 보통 부부는 아닌 것 같다.
172. 삶의 의미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인간관계라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 의미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예전부터 아기를 원했고, 우리 가족 식탁에 의자를 하나 더 높고 싶은 생각이 본능처럼 아직 남아 있었다.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야 둘 다 간절했지만,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를 키워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아이를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아이의 성장은 곧 나의 성장이 되고, 아이들 때문에 부부관계가 나빠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좋아진다.
173. 하지만 나는 최종적인 결정은 루시가 내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그녀 혼자 아기를 키워야 할 텐데, 내 병이 악화되면 나까지 돌보느라 더 힘들 것이었다.
남자라면 당연한 생각이다. 안 그래도 미안해 죽겠는데 내 생각만 하는 꼴이다.
173. 루시와 나는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느꼈다.
174. 나는 다윈과 니체가 한 가지 사실에 동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을 규정짓는 특징은 생존을 향한 분투라는 것이다. …. 수년을 죽음과 함께 보낸 후 나는 편안한 죽음이 반드시 최고의 죽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아기를 갖기로 한 결정을 양가에 알리고, 가족의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가장 원하는 죽음이 편안한 죽음이다. 잠들어서 다음날 아침에 죽는 것이다. 이보다 완벽한 죽음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내 생각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175. 새로운 삶을 위해 아이를 가지는 일에서조차 죽음은 자기역할에 충실했다.
탄생은 죽음으로 얻어지는 것. 누군가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죽는다.
177. 그 주말에 스탠퍼드 신경외과 동문 모임이 있었고, 나는 거기에 참석하면 예전의 나로 어느 정도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있어 보니 지금의 내 삶이 예전과 얼마나 다른지 더욱더 실감날 뿐이었다. 내 주변은 온통 성공, 가능성, 야심으로 가득했다.
나도 사관학교 동기모임, 고등학교 동창모임이 있는데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실 답은 알고 있었는데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 책이 답을 주네. 나가봐야 이젠 현역이 아닌 나는 소외감을 느낄뿐이다.
177. 아무도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었으니 말이다.
178. 그렇다면,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던 청년에게 불치병은 완벽한 선물이 아닌가?
178.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인류의 양심을 벼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의 나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내 영혼을 들여다보니, 연장은 너무 약하고 불은 너무 뭉근해서 인류의 양심은 커녕 내 양심조차 벼리지 못했다.
179. 죽음에 관한 글이라면 뭐든 읽었다. 죽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정의하고 다시 전진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어휘를 찾고 싶었다.
군대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하면 군대에 관한 글은 모조리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주부터 시작이다. 과연 내가 쓸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답이 나오지 않을까.
179. 내 경험을 언어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밍웨이 역시 비슷한 형태의 저술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풍부한 경험을 하고 충분히 사색한 뒤 글을 쓰는 것 말이다. 내게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들이 필요했다.
179.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180.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대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게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거야(I can’t go on. I’ll go on)
180.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182. 사람들이 종종 신경외과 일이 소명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항상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 일을 직업으로 보면 안 된다. 만약 직업이라면 최악의 직업들 중 하나일 것이다.
군인도 마찬가지라 생각이 든다. 직업으로 생각하고 일하면 절대 안된다고 본다. 군인이나 의사나 모두 성직자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182. 도덕적인 의무에는 무게가 있고, 무게를 가진 것은 중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생사가 걸린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의무가 나를 다시 수술실로 끌어당겼다.
쉬운 결정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결정을 했다. 그 결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면 좋을텐데
187. 나는 내 삶을 이전 궤도로 돌려놓고 말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혔다.
192. 환자가 되면 자신에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려고 계속 애를 쓰게 된다. 누군가가 내 신용카드를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자금 계획을 세우는 법을 배워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과 비슷하다.
193. 만약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
194. 분노가 치밀었다. “평생을 바쳐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암을 주십니까?”
분노할 만하다. 신이 있다면 이것 또한 신의 뜻이라고 묻고 싶을 지경이다.
200.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시절, 나는 경험적 근거가 없다는 논리로 기독교 신앙을 공격했다. 기독교의 가르침보다는 계몽된 이성이 더 논리 정연한 우주를 보여주었다. … 신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았으니 신을 믿는 건 비이성적인 일이었다.
200. 오컴의 면도날은 어떤 사실 또는 현상에 대한 설명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오컴은 이 원칙에 의거하여 신과 세상 사이에 실제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기존의 교리를 부정하고, 신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는 오로지 피조물의 정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201. 과학이 신에 대해 어떤 근거도 제공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근거도 마현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인생 자체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다시 말해, 실존적 주장은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하게 되고 과학적 지식이 곧 모든 지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201.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과학방법론이 인간이 만든 산물이기에 영원불변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손쉽게 조작하기 위해, 현상을 다루기 쉬운 단위들로 축소하기 위해 과학 이론을 만든다.
202. 물질과 에너지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을 내세울 때는 탁월하지만, 고유하고 주관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실존적이고 본능적인 성질에 과학 지식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과학은 경험적이고 재현 가능한 정보를 체계화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과학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나약함, 부단한 노력, 고통, 미덕)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202. 이런 핵심적인 감정과 과학 이론 사이의 간극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 어떤 사상 체계도 인간 경험을 온전하게 담을 수 없다. 형이상학은 계시(啓示)의 영역으로 남아 았다.
202. 그레이엄 그린의 장편소설 <권력과 영광>에 등장하는 군 지휘관이야말로 무신론자의 원형이다. 그는 신이 없다는 계시를 통해 무신론자가 된다. 진짜 무신론이라면 세상을 만드는 차원의 비전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
202. 많은 무신론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프랑스 생물학자인 자크 모노의 말은 이런 계시적인 측면과 상충된다. “고대의 계약은 산산조각났다. 인간은 우연히 생겨난 우주라는 냉혹한 광대무변함 속에 자기 혼자라는 사실을 마침내 알게 되었다.”
203. 하지만 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가치(희생, 구원, 용서)로 돌아왔다. 저항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203. 신약에 따르면 인간은 절대 충분히 선할 수 없다. 선(善)은 물(物)자체이며, 사람은 절대로 물자체를 완벽하게 파악해 그 기준에 부합하며 살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예수가 전하려던 주된 메시지는 자비가 항성 정의를 이긴다는 것이라고 믿었다.
203. 물자체(thing itself)는 칸트의 용어이다. 칸트는 경험에 따라서 드러나는 세계인 “현상계”와, 인간의 마음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자체의 세계인 “예지계”를 구분했다. 칸트가 볼 때 예지계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현상계에서 경험되는 사물이 물자체와 어떤 관계가 있다고 가정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3. 또한 원죄의 기본적 메시지는 “늘 죄책감을 느끼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맥락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선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만, 항상 거기에 맞춰 살지는 못한다.”결국 이것이 신약성경의 메시지이다. 설사 당신이 구약성경의 <레위기>를 잘 안다 해도 그대로 따르며 살 수는 없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다.
204. 우리는 모두 이성적인 사람들이며, 계시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 그렇다면 형이상학자의 뜻을 품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해야 할까? 거의 그렇다.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되 거기에 닿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혹은 가능하다 해도 확실히 입증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 각자는 커다란 그림의 일부만 볼수 있을 뿐이다.
204. 인류의 지식은 한 사람 안에 담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맺는 관계와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생성되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궁극적인 진리는 이 모든 지식 위 어딘가에 있다.
206. 나는 화나지도 겁먹지도 않았다. 정말로 그랬다. 그것은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처럼, 객관적 사실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래도 희망적이었는데 다시 절망으로 돌아왔는데 말이다.
207. 문득 앨리엇의 <황무지>가 생각났다. “하지만 등 뒤에서 찬바람이 몰아치는 중에도 나는 듣는다 / 뼈들이 덜거덕거리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은 소리를.”
213. 대부분의 현대적 서사에서 한 인물의 운명은 그 자신과 다른 이들의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 <리어왕>의 글로스터는 인간의 운명이 “제멋대로인 아이들 손에 맡겨진 파리”같다고 불평하지만, 실제 그 희곡의 극적 구조를 만들어주는 건 리어왕의 허영심이다. 계몽운동 이후 개인이 무대의 중심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인간의 행동이 초자연적인 힘 앞에서 맥을 못 추는, 셰익스피어의 비극보다 그리스 비극과 더 닮은, 오래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오이디푸스와 그의 부모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이미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으며,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힘에 접근하려면 신성한 환상을 보는 예언자들을 통하거나 신탁을 받아야 한다.
그렇네. 우리 인간의 삶은 그리스 비극과도 같다.
214. 나는 신탁과도 같은 지혜의 말을 듣고 위안을 얻고 싶었다.
늘 대답이 없지만 늘 마음속으로 갈구한다. 신탁의 뜻을.
214. 끝의 시작도 아니에요. 그냥 시작의 끝인 거에요.
217. 마치 소금을 햝는 것 같았다. 나는 베이글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책을 읽는 것도 힘들었다.
한번에 와닿는 맛이다. 감기 몸살이라도 저런대 그보다 더한 고통이다.
217. 며칠이 지나자 텔레비전 시청과 억지 식사가 주요일과가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느낄 때 무기력하고 짜증이 난다. 주위에 있는 사람과도 싸운다.
217. 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녹색 담즙을 토하기 시작했고, 그 분필 같은 맛은 위산과 확연히 달랐다. 그건 내장 깊숙한 곳에서 나온 것이었다.
술먹고 토할 때 기분 더러웠고, 냄새도 역했고 색깔도 진짜 엿 같았다. 그보다 더하다는 것은.
225. 나는 다시 깨어나 세상을 민감하게 의식하게 되었지만, 형편없이 시들어버렸다. 피골이 상접해서 마치 살아있는 엑스레이 사진 같았다. 고개를 드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228. 결국 의사도 희망이 필요한 존재였다.
자기의 열정에,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상실과, 자기의 실수에 의한 환자의 생명이 좌우되는 것을 보는 것은 쉽지 않고 견디기도 힘들다.
229. 앞으로 루시와 내 딸의 삶에는 많은 것들이 부재(不在)할 것이다.
가장 슬픈 말이다. 내가 죽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시기는 제발 이런 때가 아니었으면 한다.
230. 내 앞에 펼쳐진 넓은 지평선에서 나는 공허한 황무지가 아니라 그보다 더 단순한 어떤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계속 글을 써내려가야 할 빈 페이지였다.
230. 시간은 이제 나에게 양날의 검과도 같다. 지난번에 병세가 악화되어 심하게 축난 몸 상태는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암이 재발하게 될 테고, 그러다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다.
231. 죽음은 예상보다 느리게 올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보다는 분명 빠르게 닥쳐올 것이다. 이런 자각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가장 명백한 반응은 정신없이 움직이려는 충동일 것이다. 즉, 여행도 하고, 근사한 식사도 하고, 여태껏 접어둔 많은 소망을 성취하면서 ‘삶을 만끽하는’ 것이다. 하지만 암은 무자비하게도 시간뿐만 아니라 기력까지 빼앗아버려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크게 줄었다.
우리 인간이 지금의 기술을 보더라도 이렇게 뛰어난데도 아직 암을 정복하지 못했다. 안 해서일까 못해서일까? 암으로 고통받는 건 겪는 사람도 그렇고 보는 사람도 그렇다.
231. 설사 기력이 있더라도 나는 거북이의 방식이 더 마음에 든다.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고 깊이 명상하는 방식 말이다. 물론 그냥 어떻게든 버티는 날들도 있다.
232. 지금이 몇시인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232. 사람들은 5년 후에 뭘 하고 있을까 늘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5년 후에 내가 뭘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죽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떻게 될지는 정말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점심식사 이후의 미래를 생각하는 건 시간 낭비다.
232. 그레이엄 그린은 인생은 첫 20년까지이고 나머지 시간은 그 20년을 회고하며 보내는 법이라고 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233. 모든 사람이 유한성에 굴복한다. 이런 과거 완료 상태에 도달한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대부분의 야망은 성취되거나 버려졌다. 어느 쪽이든 그 야망은 과거의 것이다. 미래는 이제 인생의 목표를 향해 놓인 사다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가 되어버렸다. 돈, 지위, <전도서>의 설교자가 설명한 그 모든 허영이 시시해 보인다. 바람을 좇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233. 하지만 절대 미래를 빼앗기지 않을 한 가지가 있다. 우리 딸 케이디. 나는 케이디가 내 얼굴을 기억할 정도까지는 살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목숨은 사라지겠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케이디에게 편지를 남길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대체 뭐라고 써야 할까? 케이디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으~ 눈물이 막 나려고 한다. 이 순간 아들, 딸의 모습이 스크랩된다. 나 역시 소망이 있다면 막내 딸 결혼식까지만 보고 죽는 것이다. 또 아마 그때가 되면 손주 볼때까지로 늘어날 것이다.
234.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데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에필로그
236. 당신은 제게 두 가지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겼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뜻하셨다면 만족하실 그런 사랑의 유산을. 당신은 바다처럼 광대한 고통을 남기셨습니다. 영원과 시간 사이에 당신의 의식과 나 사이에.
237. 누군가는 케이디가 태어나고 폴이 숨을 거둔 그 사이에 동네 비비큐 식당에서 우리 식구를 보았을 것이다.
238.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기쁜 순간을 누리려고 애썼다.
239. CT 촬영과 뇌 MRI 결과를 보니, 폐암은 더 심해졌고 뇌에도 새로운 종양이 자라나 있었다. 새로 생긴 뇌종양 중에는 연수막 암종증도 있었는데, 드물고 치명적인 침윤이어서 예후가 몇 달 밖에 되지 않는 데다 빠른 속도로 신경계를 쇠약하게 만들었다. 이 소식을 듣고 폴은 큰 충격을 받았다. 말은 거의 없었지만, 신경외과의였던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기대 수명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신경계가 쇠약해진다는 건 폴에게 크나큰 재앙이었다. 삶의 의미와 사고기능을 잃을 가능성 때문이었다.
하늘도 무심하다.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뇌종양이라는 선물까지 안겼다. 아이러니한 결과이다.
241. 폴은 토요일에 내가 녹화하는 동안 앨리엇의 <황무지>를 꺼내 거실에서 크게 읽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자극한다.”
244. 죽음이 더 확실히 그리고 더 빠르게 찾아오겠지만, 삽관 대신 안락치료를 선택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어떻게 잘 버틴다 해도, 앞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어”
245. 다가올 하루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이 되리라는 걸 알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싶었다. 새벽 6시에 나는 폴의 병실로 살그머니 들어갔다.
247. 폴은 부드럽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했다. “난 준비됐어.”
247.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원고가 출판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폴은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251.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폴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는 바람에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미완성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삶의 마지막 몇 해 동안 폴은 목적의식을 잃지 않고 또 움직이는 시곗바늘에 자극받으며 쉼 없이 글을 썼다.
그에게 이 책은 가장 큰 삶의 의미일 것이다. 그는 죽지만 이 책은 남아 있을 것이고 케이디가 나중에 볼수 있으므로 이 책은 이제 그가 되는 셈이다.
252. 완화치료를 받는 동안 그가 제일 신경 썼던 건 집필에 필요한 정신력의 유지였다. 그는 어떻게든 글을 쓰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지금 내가 배워야 할 부분이다. 의지가 많이 상실된 건 사실이다.
252. 폴은 의사이자 환자로서 죽음과 대면했고, 또 그것을 분석하고, 그것과 씨름하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사람들이 죽음을 이해하고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했다. 삼십 대에 죽는 건 이제 드문 일이지만, 죽음 그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다.
252, “그냥 충분히 비극적이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지. 독자들은 잠깐 내 입장이 되어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거야.” 그런 처지가 되면 이런 기분이구나….. 조만간 나도저런 입장이 되겠지. 내 목표는 바로 그 정도라고 생각해. 죽음을 선정적으로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야.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물론 폴은 그저 죽음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죽음을 용감하게 헤쳐 나갔다.
그래서 이 책이 좋은 것 같다. 훈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
253.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로 한 폴의 결정은 더할 나위 없이 용감했지만, 죽음을 기피하는 우리 문화에서는 그리 칭송받지 못한다.
253. 그는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와 오랜 시간 씨름했고 이 책은 그 본질적인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에머슨은 이런 글을 남겼다. “보는 자가 언제난 말하는 자이다. 그의 꿈은 어떻게든 말로 표현되며, 그는 장엄한 환희 속에 그 꿈을 널리 알린다.” 용감한 보는 자 폴은 이 책을 쓰면서 말하는 자가 되었고, 우리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죽음을 대면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253, 암 진단이라는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예전의 부드럽고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로 돌아갈수 있었다. 폴의 육체적인 생존과 우리의 감정적인 생존을 위해 우리는 서로를 꼭 붙잡았고, 그러면서 우리의 깊은 사랑이 있는 그대로 드러났따. 우리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결혼 생활을 지키는 비결은 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리는 거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불치병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254. 암 진단을 받은 직후 내게 자신이 죽으면 재혼하라고 했던 폴의 말은, 투병하는 내내 나의 미래를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열심히 애쓸 것인지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었다. 내가 재정적인 면에서나 경력 면에서 곤란을 겪지 않고 엄마로서 제 역할을 다 할수 있도록 폴은 철저하게 대비했다. 동시에 나 역시 그의 현재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255. 그를 지켜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위로했다.
256. 비록 지난 몇 년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충만한 시기이기도 했다. 매일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의 균형을 힘겹게 맞추며, 감시와 사랑의 새로운 깊이를 탐구한 시기였다.
257. 그는 암을 극복하거나 물리치겠다고 허세를 부리거나 허황된 믿음에 휘둘리지 않고, 성실하게 대처했다. 그래서 미리 계획해둔 미래를 잃고 슬픈 와중에도 새로운 미래를 구축할 수 있었다.
257.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이었다.
257.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자아로 살아간다.
258. 폴은 이 책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 책은 문학에 대한 그의 사랑이 맺은 결실이다. 또한 죽음에 직면하여 설득력 있고 강력한 인생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258.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면 내가 이미 브론테 자매나 키츠, 스티븐 크레인보다는 더 오래 살았다는 거지. 나쁜 소식은 내가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는 거고.” 그 후로 폴은 변화의 여정을 걸었다. 그는 의사라는 열정적인 사명에서 벗어나 다른 사명을 갖게 되었고, 남편에서 아버지가 되었으며, 물론 마지막에는 삶에서 죽음으로 나아갔다.
261.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 나는 폴이 세상을 떠나면 내 인생에는 오로지 공허와 슬픔만 남을 줄 알았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똑같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는, 또 끔찍한 슬픔과 비통함의 무게를 못 이겨 때로 몸을 떨며 한탄하면서도 여전히 큰 사랑과 감사를 계속 느낄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262. 폴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거의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별은 부부애의 중단이 아니라, 신혼여행처럼 그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결혼 생활을 잘 영위하여 이 과정도 충실하게 헤쳐나가는 것이다. “ 우리 딸을 돌보고, 가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이 책을 출판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폴의 무덤을 찾아가고, 폴을 애도하면서도 그에게 경의를 보내고, 꿋꿋이 버텨나가고….. 이렇게 내 사랑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264. 폴은 평생 죽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결국 그는 그 일을 해냈다.
274. 무엇보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글로써 여전히 살아남아 다른 이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을 분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어릴 때부터 성장과정부터 의사를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이며 2부는 암투병기부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목차가 너무 단순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고 나니 호흡을 한번에 가져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책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책인데 무 자르듯이 목차를 세부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읽는 맛을 반감시킬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 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등 등)
저자의 어린 시절은 크게 독자로서 궁금하지 않았다. 저자는 죽기 전에 자기의 삶을 한번 정리해볼 필요가 있었겠지만 그 부분을 읽을 때는 좀 지루했다.
저자의 성장과정은 있는데 루시와의 만남에 대한 부분이 없다. 언제나 사랑의 시작은 크고 작든 아름다운 법이다. 그 아름다움에 알고 싶다.
저자는 다양한 철학, 문학작품을 읽었다. 중간 중간에 사뮈엘 베케트 등의 문장을 인용하는 등 폭넓은 독서지식을 가지고 있다. 죽음 등에 대한 다양한 책도 소개해주었는데 그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한 꼭지정도 정리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등 등)
<명상록>에서는 죽음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디 인간이 그럴 수 있는 존재인가. 이 책을 통해 나는 철학을 통한 죽음이 아닌 실제 우리 삶에 있어서 죽음을 그려볼 수 있었다. 환자이면서 동시에 의사인 저자가 바라보는 죽음의 자세는 특별하게 보였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머리로 쓰는 책과 자신의 경험을 직접 풀어내는 책은 독자가 느끼는 감동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내용이었지만 몰입해서 읽을 수 밖에 없었고 죽음이 다다른 장면에서는 내 감정이 이입이 되어 뜨거워진 눈시울 때문에 계속해서 읽어나가기가 힘들었다. 이제는 내 주위에 결혼 청첩장보다는 장례식을 가야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나에게도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일 것이다. 멀게만, 나와는 상관없는 죽음이 이제는 구체적으로 내 삶에 성큼 들어왔다. 죽음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진실되게 얘기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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