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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9일 11시 51분 등록

 

왜 이런 상태가 될 때까지 참았어요? 숨쉬기가 꽤 힘들었을텐데…”

방금 전에 찍은 나의 폐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의사가 말했다. 사진 속의 내 폐는 왼쪽 아래 부분이 희뿌옇게 보였다. 선명한 오른쪽과 비교가 됐다.

나도 이런 말을 듣는 날이 오는구나. 돈을 많이 벌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무엇보다도 건강에 신경을 썼다. 아프면 돈이 많이 필요하니까…… 잘 먹고, 운동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지 않는, 건강을 위한 교과서 같은 생활을 한지 3년이 좀 넘었다. 그동안 10킬로미터를 달리고 난 후에도 죽을 것같이 힘들지 않고, 편히 호흡을 할 수 있어서 특히나 내 폐는 매우 튼튼하다고 자신했었다. 위나 대장 등 소화기 계통에 이상이 있으면 있었지.

몸살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간 병원에서, 단순 감기라기에는 증상이 나빠 이틀 연속으로 독감 검사를 했지만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의사는 39도가 넘는 고열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이런 저런 검사를 할 것을 주문했고, 그래서 찍은 엑스레이를 결과를 보며 설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엑스레이 사진으로만 보면 폐렴이나, 폐결핵, 폐암 중에 하나라고 했다. 모든 증세가 폐렴의 증세였기에 당연히 폐렴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폐암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듣자 덜컥했다. 다른 검사로 확정을 하기 전까지는 우선 폐렴이라고 생각하고 처방하겠지만, 만약 폐렴이 아니라면 CT 촬영이나 조직 검사를 해야한다고 했다.

 

이틀 후 다른 검사 결과가 나왔고, 다행히도 폐렴 확정 진단을 받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주말 동안 침대에 누워 오만 생각이 다 들었지만, 가장 나를 괴롭힌 건 건강에 대한 과신과 일처리의 미련함에 대한 후회였다.

아프기 1주일 전에 변경연의 마지막 오프 수업이 있었다. 그 전에 했던 과제를 종합 정리하면 되는 거였지만, 중간에 주제를 완전히 변경하고, 컨셉도 한번 바꿨던지라 처음부터 다시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알면 미리 시작했어야 하는데, 이번에도 또 미루다가 목요일과 금요일 밤을 새고 말았다. 이틀 밤을 새도 끄덕 없다며 오프 수업 공헌 준비와 집안 청소까지, 평소에 안 하던 일까지 하며 몸을 혹사했더랬다. 그래도 조금 피곤한 것 말고는 별 이상이 없길래, 쉼 없이 또 무리한 며칠을 보냈고, 나의 체력에 감탄했었다. ‘어 이래도 아프지 않고 괜찮네?’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하며……  

결국 나의 오만함과 미련함은 나흘 간 몸져 누워 새벽마다 통증 때문에 잠이 깨는 고통으로 되돌아왔다. 그 후로도 1주일은 무리하지 말고 찬바람을 절대 쐬면 안 된다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집에서 쉬었다. 2~3일 간 무리해서 번 시간을 그보다 몇 배는 더 되는 시간으로 갚은 셈이다. 그것도 고통 속에서.


조직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한지 3년이 넘었다. 그동안 건강 관리만큼은 제대로 하고 있다고 자신했었다. 이제 목표 설정 및 진행, 이에 따른 시간 관리도 잘 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누워있으며 깨달았다.

그래도 겨우 폐렴 정도를 1주일간 앓으면서 깨달은 게 다행이다. 정말 폐암이라도 걸렸더라면, 깨닫더라도 너무 늦었을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 얼마가 될 지 모르지만, 40년 정도라고 생각하면 조급해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동안처럼 건강에 유의하되 절대 과신 및 오만은 하지 말자. 그리고 몇 시간 아끼느라 며칠을 버리는 미련을 떨지 말자.

1주일을 잃고, 50만원 전액 환불의 성취를 잃었지만 그보다 훨씬 큰 시간과 깨달음을 얻은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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