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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4일 10시 10분 등록
몸의 정복자

몇일 전 양평으로 춤떼라피 강습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도심을 벗어나 양평의 맛깔스러운 공기를 아낌없이 마셨다. 내가 찾아간 곳은 여대생을 대상으로 리더쉽 훈련을 하는 캠프였다. 리더를 꿈꾸는 36명의 여학생들이 꽃 분홍 단체티를 맞춰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육장으로 학생들이 들어서기 시작 했다. 한창 에너지가 활발하게 움직일 시기일거라는 나의 기대와 다르게, 그녀들의 눈에는 생기가 없고 몸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오늘도 쉽지 않겠군. 어디 한번 시작해볼까.’

간단하게 춤떼라피에 대해서 설명을 한 후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색함에 여기저기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음껏 크게 웃으라고 하였지만 그녀들은 웃는것 조차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이어서 리듬에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옆으로, 그리고 뒤로, 곡선을 그리며, 직선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가만히 서 있었다. 아니면 한 가지 패턴이나 속도로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가슴이 아팠다. 이 친구들이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움직임을 통해서 보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수업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녀들을 멈추게 한 후, 동그랗게 둘러 앉았다. 많이 어색하냐고 묻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눈을 하나 하나 바라보니 질문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여러분 요즘 고민이 뭐에요? 뭐가 제일 힘든가요?”
한 여학생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솔직히 좀 숨막혀요. 여기에 와서 계속해서 내 목표가 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거든요. 안 그래도 요즘 취업이 안 되서 머리가 아픈데 막상 이런데 까지 와서 또 생각하려니 답답해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손뼉까지 쳐댔다.
“그러면 우리 그 답답함을 한 번 표현해 봐요.”
이제야 무엇을 할지 감을 잡은 듯 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그랗게 둘러섰다. 한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답답함을 표현해 보았다. 심하게 욕을 하는 그녀, 발악하며 온몸을 흔드는 그녀, 웅크리고 앉아 침묵하는 그녀, 팔짱 끼고 째려보는 그녀등 36가지의 다양한 화가 공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어색하고 경계로 가득 찼던 에너지가 부드럽고 느슨하게 변화해 갔다. 자신의 동작을 확장해서 그리고 반복적으로 음악에 맞추어 표현해 보자고 했다. 자우림의 ‘하하송’에 맞추어 답답함이 몸에서 모두 떨어져 나갈 때까지 신나게 흔들어 댔다.

"stop!!"
나의 목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정지했다. 거친 호흡만큼 그녀들의 몸이 격렬하게 확장되었다 축소되어지고 있었다. 우리의 몸이 본래의 호흡으로 돌아오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다시 음악을 틀고 걷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들 속에서 뭔가 잃어버렸던 방향감각이 되살아났다. 처음에는 나의 신호에 따라 그녀들은 움직였지만 어느새 그녀들은 앞으로 움직일지, 뒤로 갈지, 옆으로 움직일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돌지를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음악에 따라 속도를 내기도 하고 느리게도 움직임을 표현하며 빈 공간을 찾아 움직였다. 비어 있음이 그녀들의 움직임을 이끌고 있었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두 팔이, 경직되어져 있던 두 팔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몸과 하나가 되어 움직여 가고 있었다. 한명 한명의 몸의 문이 열리고 리듬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새신을 신은 어린아이처럼 폴짝 폴짝 뛰고 싶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춤떼라피를 처음 접할 때 음악에 맞춰 춤을 해치워 버리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몸을 붙잡고 있어 우리의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하고 우리 자신의 본능과 내면의 소리에 따르는 움직임을 잃어버리게 한다. 어릴 적 생각이 나는가? “너는 커서 뭐가 될거니? 목표가 뭐니? 그래서 성공하겠니?”라고 물으며 나의 상상의 세계를 맴돌던 어른들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너무 목표 지향적인 학습을 받아왔다. 그 결과 우리는 지나치게 목적을 지향하는 감각만 발달하여 원래의 방향감각, 즉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 내면의 충동과 욕구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가는지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기 보다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흔히 걷기 명상은 삶에 비유된다. 우리는 삶에서 늘 똑바로 걸어 나아가 벽을 만나면 그 한계를 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길이 막막할 때에는 빈 공간을 찾아 뒤로 또는 옆으로 한 발 짝 물러서거나, 아니면 원을 돌듯이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 때를 알아차리는 것, 그 빈 공간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유연함을 나는 그녀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싣고 36명의 춤 동지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들은 나에게 비어있음이 이끄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새삼스레 가르쳐준 스승들 이었다. 상기된 얼굴로 포옹했던 그녀들의 체온이 아직도 내 몸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못다 읽은 ‘칭기즈 칸’을 마저 읽기 위해 꺼내들었다. 책을 읽다 보니 그에게 한마디 건네고 싶어졌다. “당신이 손에 칼과 창을 들고 이 땅을 정복하기 위해 나섰다면, 나는 리듬과 맨 몸으로 사람들을 정복하러 떠날 것입니다. 나는 몸의 정복자 입니다.” 심장으로 부터 퍼져 나간 나의 피가 온 몸을 돌며 환호성을 치고 있다. 고개를 돌려 창문으로 비추는 나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름다운 한 여인이 비장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그녀를 바라보고 다시한번 속삭였다. '너는 몸을 정복하는 활짝 열린 리더가 될 수 있을 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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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7.02 12:25:51 *.211.61.150
다시 본 궤도에 오른 것을 환영한다.
길을 제대로 들어선 느낌이다.
힘이 있고 느낌이 있고 향기가 있다.
자신의 몸으로 체화된 주제와 내용이 어울림을 느낀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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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02 13:27:27 *.72.153.12
여~ 좋은데. 그 춤 쎄라피라는 거 우리 연구원들과도 함께 해주라.
난 벽은 넘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히히히. 소현 우리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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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2007.07.02 14:28:11 *.47.222.18
정말 마음에 와 닿습니다. 꼭 고난이나 장애를 만났을때 꼭 정공법만이 최선의 방책은 아니겠지요.
여유를 가지고 뒤를 돌아보면 처음 시작부터 잘못된 길일수도 있으니까요.
글 잘 읽고 한 수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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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07.02 16:33:07 *.6.5.196
언니, 내가 째즈댄스 할 때의 기분을 언니가 대신 표현해준 거 같아.
나도 언젠가 째즈에 관한 글 하나 올려야지... 그 기분은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걸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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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7.03 02:00:38 *.48.41.28
나도 소라한테 꼭 춤 지도 받아봐야지.
도대체 어떤 춤이길래 그럴까..매우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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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7.03 08:21:08 *.114.56.245
아주 가끔 텅빈 교실에서 마음껏 , 내마음대로 춤을 추곤해요. 소현이 이야기 하는 일종의 춤세라피인 셈이죠. 짧은 춤사위가 끝나면 나는 태고적 나로 돌아갑니다. 소현이와 작은 부분이나마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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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7.03 17:54:57 *.99.241.60
소현낭자..언제 그 춤떼라피를 우리 연구원들하고
한번 할수 없을까용..디게 궁금해지고 해보고 싶네...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은디
한동작으로 모아지는 것도 신기하구..
부탁혀요 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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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 신웅
2007.07.04 02:30:52 *.47.90.245
'호기심에 두 눈이 반짝반짝 거리고, 즐거움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며, 경험담이 머리 속에 생생하게 그려지고, 사람의 마음을 한 순간에 확! 휘어잡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에다가, '꿈꾸는 몸 춤추는 마음'이란 신비로운 심벌과의 자연스러운 연결 그리고 일관된 스토리텔링까지'

소현 님의 이번 칼럼은 너무나 재미있게 읽히네요. 순간 눈앞이 환해지고, 머리가 총명해지는 이 느낌! 그리고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세포 하나하나가 활짝 열리는 이 해방감!

왜 21세기가 여성의 시대라고 하는 지 이해가 되는 상황이네요. '호기심과 즐거움, 경험을 하는 듯한 생생한 느낌, 부드러운 카리스마, 남다르고 신선한 브랜딩, 일관된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상상력' 이와 같은 단어가 21세기 리더십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하는데 이번 칼럼은 그것의 정수를 여지없이 보여주네요. 소현 님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아주 매혹적인 칼럼이네요!

* 제 마음속을 사정없이 무찔러 들어오는 글이다 보니 혼자 오버를 좀 한 것 같네요. 제 맘에 너무나 쏙 드는 글이라 이번만은 드러내 놓고 열렬한 팬 마냥 열광하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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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07.04 10:28:44 *.231.50.64
길을 제대로 들어섰다는 여해 오빠 말에 또다시 춤이 덩실덩실..

정화, 향인 언니, 그리고 영훈오빠 아직 연구원에서는 쑥쓰~~~
나보다 기가 쎈사람들이 너무 많다우~~
나의 피라미 카리스마는 명함도 못내밀지.. 크크..

윤, 꼭 써봐봐.. 기대기대..0.0

정희언니. 언니에게 진작부터 우주의 기운을 느꼈지요.
리듬의 생활화 정말 멋진 일이에요.

열광신웅님 고마워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글이었다면 만족입니다.
열광신웅님도 춤세계에 입문하시지요.
그정도까지 가슴이 뛰었다면 몸의 이끌림에 따르셔야 합니다아.
함께 춤추자구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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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04 12:24:54 *.75.15.205
그래... 소라야, 네가 이것을 순서에 담아 풀어가고 싶었던 게지?
어둠-> 분노-> 좌절-> 타협->꿈틀거림-> 수용->화해와 사랑-> 환희
펄펄나는 한 마리 꾀꼬리가 된 것 같네, 넌 암컷이기도 숫컷이기도 그리고 그 중간이기도 해. 그 점들의 이어짐, 조화, 균형, 응집력, 진실/메시지를 잘 그려보렴. 밋밋하게 살지 말자. 그럴 시간이 어디 있니. 핫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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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07.04 16:53:14 *.73.2.34
언니야~~ 남성도 여성도 아닌.. 나는 히즈라?
인도에는 또하나의 성이 있데. 히즈라라고.
언젠가 그 책을 읽고 말이지..
태초에 우리 모두가 그러한 균형과 조화를 갖춘 성을 가지고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했었어.
우.. 언니의 답글이 우연이 아닌거 같아서
찌릿찌릿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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