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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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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1일 22시 42분 등록

  어제는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해운대로 나들이를 나섰다. 모처럼 만의 나들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간 모아둔 호텔 마일리지를 이용해 백사장 근처에 근사한 호텔도 함께 예약해 두었다. 특별히 많은 것을 하고 오기 보다는 편하게 쉬다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느긋한 토요일 오전을 보내고, 여유 있게 호텔에 도착을 하니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다. 저녁 메뉴는 ‘조개구이’로 정했다. 해운대에서 택시를 타고 10분 남짓을 달려 청사포로 향했다. 청사포는 바닷가 해안을 따라 분위기 좋은 까페들과 여러 조개구이 집들이 밀집한 곳이다. 그 가운데 제일 유명하다고 소문난 가게 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게는 저녁 6시도 되지 않았는데 손님들로 빼곡 했다. 대기번호를 받고 십 분여를 기다렸을까 다행히 금방 자리를 받을 수 있었다. 푸짐한 조개 구이 한 상과 단촐 하지만 정갈한 기본 반찬이 나왔다. 활활 타오르는 연탄불 위로 가리비와 키조개, 피조개를 가득 올리고 아내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다. 그 때였다. 요란한 가위질 소리와 함께 망개떡 파는 아저씨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은 무거워 보이는 떡 가방을 왼쪽 어깨에 맨채로 그는 요란하게 가위질을 하며 가게 안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의 떡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분 탓 이었을까. 가위질 소리는 더욱 요란하게 들렸고, 아저씨의 절묘한 추임새는 공연히 가게 안을 맴돌았다. 아저씨는 힘 없이 다음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소주를 두 병째 시켰을 무렵이었다. 아까 그 망개떡 아저씨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가게 안은 다시 요란한 가위질 소리로 가득찼다. 그러나 역시 그의 떡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가게를 나가려는 아저씨를 불러 망개떡 하나를 샀다. 5천원이었다. 아저씨는 우리 앞에서 더욱 현란한 가위질을 선 보이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가방 안에서 망개떡 하나를 꺼내 주었다. 아저씨는 자리를 떠났고, 나는 망개떡 하나를 꺼내 망개 떡잎을 벗겼다. 그런데 떡잎이 떡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바스라져 버린 잎들이 떡에 자꾸 붙어 떡 하나 베어 물기가 쉽지가 않았다. 떡 하나 먹고 나니 손 바닥이 온통 떡과 떡잎으로 난리도 아니었다. 순간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호의를 배신 당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스운 일이다. 고작 5천원 짜리 떡 하나를 사면서 나는 무슨 많은 기대를 한 것일까. 내가 그 아저씨에게 대단히 큰 도움이 준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또 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 보다는 손해 보지 않겠다는 욕심이 더 컸던 것은 아닐까. 그것은 ‘도움’이 아니라 명백한 ‘거래’였다. 나는 5천원 한 장으로 좋은 사람도 되고 싶고, 기막히게 맛있는 망개떡도 먹고 싶었나 보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오히려 5천원만 받은 아저씨가 오히려 손해인 듯도 싶었다.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대체 누가 누구를 돕는단 말인가. 또 그 아저씨가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나의 오만은 아니었을까. 누군가를 돕겠다고 나서면서 보답을 기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위험한 것은 상대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겉 모습 만으로 그 사람을 낮춰보는 것이다. 나는 본전 욕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어쩌면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나인지도 모른다. 진정성이 결여 된 도움은 욕심 보다 그 끝이 날카롭고 위험하다.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을 내려 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대를 낮추어야 한다. 만족이라는 것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기대를 낮춰야 그 빈자리로 자연스레 흘러 채워지기 마련이다. 자꾸만 손에 달라 붙는 망개떡잎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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