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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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살아가는 힘
문요한 지음
더난출판
1. 저자에 대하여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가 말하는 '자유로운 삶'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자율적인 삶’ : 2014년 5월28일 수요일 오후 7시30분. 경향신문 ‘심리톡톡’ 강연 내용 中
안녕하세요. (박수) 오늘 무척 덥네요. 더운 날씨에 여기까지 오셨는데 오늘 할 얘기의 핵심적인 주제는 ‘스스로 살아가라’입니다. 이게 다예요. 더 다른 얘기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 아닌가요?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란 것을 모르시는 분 없잖아요. 상담을 업으로 하는데 내담자가 가끔 물끄러미 실망스런 눈빛으로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하세요. 결국 내 문제는 내가 풀어야 되는군요. 그분도 처음 오실 때 그 걸 모르고 오시지는 않았을 거예요. 우리도 다 알잖아요. 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는 우리 의식과 다르게 누군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구원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죠. 계속 날 돌봐줄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거죠.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자각하는 순간에 변화가 열리기 때문에 그 얘길 꺼내는 순간이 중요합니다. (그 후에) 다른 상담자 찾아가는 분도 있고, 환상이나 기대를 내려놓고 작은 거 하나부터 내가 내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하는 그 때 삶의 전환이 열리는 분도 있고요.
사진을 보시면 아프리카의 양 종류입니다. 제일 빠른 건 치타인데요. 스프링복은 3m~5m 점프하면서 시속 100km로 달립니다. 이렇게 달려도 시속 60km 사자에게 잡혀 먹힙니다. 이 종의 특성이 처음에는 흩어져서 자기 풀 뜯어먹는데, 흩어지면 좀 위험해지죠. 그러기 때문에 맹수들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무리를 형성합니다. 모여다니는 거죠. 모여다니면 뭐가 단점인가요. 먹이가 부족해지죠. 앞에 있는 애들이 다 먹고 뒤에 있는 애들은 못먹게 되죠. 뒤에 있는 애들이 앞에가서 먹으려고 뛰기 시작합니다. 뒤에 뛰기 시작하면 전체가 뛰기 시작합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점프하면서 광란의 질주 시작합니다. 전체 스프링복이 멈출 줄을 모른대요. 처음에는 앞에 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다 뛰니까 앞이라는 게 존재하지를 않잖아요. 계속 뜁니다. 나중에 어떻게 멈추느냐. 비극적인 얘기인데 벼랑에서 멈추지 못하고 떨어져서 죽고 10%가 남습니다. 남은 10%끼리 모여서 무리를 형성하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멍청하지 않나요. 자기가 왜 뛰는지도 모르면서 파멸로 치닫습니다. 우리가 과연 스프링복을 멍청하다고 할 수 있는지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말 알고 뛰어가고 있는지 같이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1995년부터 정신과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정신과 오셔서 증상을 호소하는 내용, 상태들을 보면서 시대적 변천이 느낍니다. 예전과 리듬의 변화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불안하신 게 되게 많습니다. 불안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어떤 증상 가지고 오더라도 공통적으로 불안한 게 항상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안전하지 못하고 위기감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불안하신 분들 특징 중 하나는 상담 오시면 가만 있지 못합니다. 수첩 꺼내서 적거나 티슈를 꺼내서 책상을 막 닦으면서 상담을 합니다. 대걸레 있었다면 닦으면서 상담하셨을 수도 있겠죠. (웃음) 우리 어머니들 보면 하루종일 쓸고 닦고 하시는 분들 계시죠. 그렇게까지 살림 안하셔도 되는데 닦은 데 또 닦고 하시는 분들은 십중팔구 불안이나 분노 차 계신 분들이다. 왜냐하면 가만히 있으면 그 감성들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니까 자꾸 주의를 전환시키기 위해서 활동을 하는 겁니다. 운동선수, 학생 마찬가지입니다. 시합이나 시험을 앞두고 불안하면 많은 사람들이 활동량, 연습량 늘립니다. 양궁선수라고 한다면 그동안 200발 쐈다고 한다면 불안하니까 300발을 쏘는 거죠. 그럼 스스로가 위안이 됩니다. 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위안이 되는데 정말 더 중요한 것은 연습량이 아니라 실전같은 훈련을 하고 있느냐죠. 양만 더 늘려서 스스로가 뭔가 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 얘기 하는 이유는 스프링복처럼 정신없이 살고 있잖아요. 바쁘게 살면서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성장하고 나아지고 있는지를 되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에 대한 가장 흔한 증상은 과잉행동입니다. 행동뿐 아니라 계획도 포함됩니다. 자꾸 계획을 더 많이 세워요. 저는 “부지런한 게으름뱅이도 있다”, “바쁜 게으름뱅이도 있다”고 말했는데요. 활동량이 기준이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방향성과 능동성이라는 거죠. 내가 설사 부지런하게 살지 않더라도 내 스스로가 휴식이 선택이라고 한다면, 능동적 선택이라고 한다면 게으른 게 아닌 거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정신과 진료실에서 증상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여러 가지 변화가 있다고 했는데 최근 들어서 많이 본 증상은 (정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소진증후군이다. ‘번 아웃 신드롬’. 소진증후군은 우울증하고 다릅니다. 열심히 살던 사람이 갑자기 어느 순간에 배터리가 나가는 것처럼 소진상태, 탈진상태가 돼 버리는 거예요. 급격하게 무기력한 상태로 빠져드는 거죠. 갑작스럽게요. 자동차라고 한다면 우리가 사실은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등에 불이 켜지잖아요. 기름이 바닥나기 전에 주유를 하게 돼서 멈춰서는 일은 없는데 우리는 그런 신호들을 무시하고 잘 보이지가 않기 때문에 막 쓰다가 어느 순간에 탈진상태나 소진이 돼버린다는 거죠. 돌연사 얘기 들어보셨죠. 주변에 너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 분들있을 겁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돌연사는 거의 없습니다. 그전에 여러 가지 신체적·심리적 경고 증상이 다 있었던 거예요. 머리가 아프거나, 이유없이 피곤하거나 소화가 안되거나 가슴 답답하거나 그런 증상이 있었는데 어떻게 했겠어요? 다 무시한 거죠. ‘이 정도 힘들지 않은 사람 어디있어’. ‘나만 그런가’. 그러면서 ‘계속 열심히 살아야 한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경고등 켜졌는데도 달린 거죠. 임계점 넘은 순간 돌연사하는 경우도 있는 거죠. 정신과에서도 잘 살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옵니다. 특별히 문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공황발작을 일으키기도 하죠. 이런 공간에서도 갑자기 공황장애가 생기고요. 이런 분들 상담해보면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는데 다 경고 증상이 있었다는 거죠. 다 무시하는 거예요.내가 내 마음의 신호들을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을 하고 내가 쉬면 안되고 멈춰서면 안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그렇게 힘든 상황까지 자시자신을 내몰게 되는 거죠.
마치 마부가 있고 쓰러지 말이 있는데 채찍질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말이 쓰러지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쓰러진 말을 일어나라고 채찍질하면서 일어나라고 하는 게 말이 안되잖아요. 조금 회복하도록 돌보는 게 마부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채찍질을 합니다. 잔인하게 느껴지는데요. 내가 나를 대할 때 마부와 말의 관계처럼, 내가 나를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살았어요. 뭔가 마음에 안 들고 내 마음에,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자신을 비난하면서 살았습니다. 저는 20~30대 때 힘들면 산에 갔습니다. 산에 가는 이유가 자신에 대한 처벌 같은 이유였어요. 극기훈련하러 갔죠. 지리산에 많이 갔는데 가서 먹는 것도 잘 안먹고요. 지리산 천왕봉 정상까지 얼마나 빨리 갔다오느냐가 관건이었죠. 종주시간을 단축 하는 게 극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날 갔다가 탈진하고 쓰러졌습니다. 그날 울면서 내려왔어요. ‘뭐 하는 짓인가’. 내가 나를 왜 못살게 구는지 울면서 내려왔는데요. 대학 때네요. 그런데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지치고 쓰러지고 무기력하면 어떻게 하면 나를 보살피고 케어해주는 게 아니라 때리는 거예요. 왜 그거밖에 못하느냐고 말이에요. 그 끝은 계속 자기자신을 황폐화시키는 것밖에 안되는 거죠.
제 이야기인데요. 어느날 아이가 아팠어요. 아내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말자 했고 저는 학교에 보내자고 했어요. 아내가 이해가 안 됐어요. 아내는 “아픈데 집중도 안 되고 나은 상태에 가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죠. 저는 할말이 없는 거예요. 저는 “약하게 키우면 안되지”하며 역정을 냈습니다. 결국 아내가 아이를 학교에 안 보냈어요. 저는 집에서 나오는데 화가 나는 거예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라고 했는데 안 보냈으니까요. 오전 내내 상담이 안 들려요. 너무 분통이 나고 화가 나서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의사인데, 가도 된다고 했는데 왜 안보내는 것이냐 하고요. 점심을 먹고 포만감이 느껴져서 너그러워졌어요. 자율성도 높아지고요. (실제로 배가 부르는 상태에서 자기조절 능력이 높아집니다. 너무 다이어트 하지 마세요. 웃음.) 암튼 밥 먹고 나니까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제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생각이 과연 내 생각인가. 생각할수록 내 생각이 아닌 거예요. 저희 아버지한테 온 것입니다. 아버지가 말단 공무원이셨는데 맹장 수술로 2박3일 빼고 30년 정년동안 하루 빠지지 않고 출근시간 한 시간 전까지 출근하셨던 분이었요. 승진은 가장 늦으셨죠. 저는 부지런한 게 다가 아니구나 일찍이 알고 있었어요. (웃음) 아버지가 1년에 한 두 번 대취하는 날도 있었는데 승진 탈락되셨던 날이었어요. 대취해서 오셔서 ‘너희들은 나처럼 살지 말아라’라고 말하시는 걸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는데요. 그 생각은 제 생각이 아니 거예요. 아버지 생각이 아무런 비판없이 세뇌되고 주입돼서 제 생각인 줄 알고 살았던 거죠. 그게 제 생각인 줄 알고 살았어요. 아내 말이 맞아요. 제가 바꾸면 되겠죠. 하나의 사례만 이야기한 것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내가 이래야 한다’는 조건과 기준이 어디서 왔느냐는 것이죠. 생각해보면 좋겠구요.
■ 과연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는가
(동영상 시청) 트루먼쇼의 한 장면입니다. 트루먼이 자신의 삶이 다 쇼라는 것을 알고 탈출을 시도하죠. 트루먼쇼 연출자가 나가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트루먼은 태어날 때부터 입양돼 수많은 몰래카메라로 촬영돼 자신의 삶이 실시간으로 중계됐죠. 인생을 살면서 위기가 오기 마련인데요. 보편적으로 겪어야 할 위기가 사춘기와 중년의 위기입니다. 공통적인 위기라서 누구나 피해갈 순 없어요. 이러한 위기의 공통점은 ‘내가 내 인생을 살고 있지 못한다’는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입니다. 청소년기에서는 자아를 세우고자 하는 자율성 욕구가 생기면서 부모와 갈등을 야기합니다. 청소년은 미숙해서 반항을 위한 반항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반항은 피할 수 없는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중년의 위기도 본질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내 삶을 살지 못했다’ 집에 가도 내 자리가 없고요. 그런 자각에서 시작합니다. 요즘은 청소년기에서 사춘기가 유예돼서 대학생돼서 나타는 사람도 많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임신하듯이 요즘은 부모님의 중년의 위기 겪고 있는데 대학생인 아이도 늦은 사춘기를 겪어서 갈등이 해결이 안돼요. 서로가 예민해지고 정서가 불안정한 상태라서 충돌을 멈출 수 없는 거죠. 부딪히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내가 잘 살고 있는가, 그런 질문 자체가 중요하죠. 중년의 위기를 잘 못 넘기는 분들은 우울증, 중독의 문제에 잘 빠집니다. 외도에 빠지기도 하죠. 반면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분들도 많습니다. 청바지를 다시 꺼내입고 밴드에 가입하고 바이크를 타고 책을 쓰고, 춤을 배우러 다니기도 하고 주말농장도 하고요. 귀농, 창업, 영성프로그램 참여에 심리학, 인문학 공부도 하고 변화들이 나타납니다. 사람마다 유형별로 중년의 위기가 나타납니다. 자기 세계를 만들어나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격 유형마다 다른 형태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중년의 위기를 벗어납니다. 자기 세계를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인생은 힘듭니다. 인간의 욕구 중 자율성의 욕구가 굉장히 중요한 욕구입니다. 밥을 먹는 욕구와 같습니다. 그런데 억압되고 결핍되면 사람이 견딜 수 없다는 거죠.
■ 자기 자신을 움직이는 힘
자기 자신을 움직이는 힘을 동기라고 하죠. 동기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됩니다. 인지, 감정, 욕구. 우리들이 사실 이 3가지의 조화·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감정과 욕구가 마비가 된 사람이 많습니다. 신념이나 생각으로 감정과 욕구를 누릅니다. 억압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느껴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내 감정과 욕구를 잘 느낄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겠죠. 원하는 것은 내가 즐겁고 유쾌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으론 느낄 수 없어요.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경우가 많습니다. ‘성공 우울증’이란 말이 있습니다. 성공했는데 우울해요. 잘 안 맞는 조어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공 우울증을 겪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했는데도 우울해요. 내가 교수도 되고 책도 쓰고 돈도 벌었는데, 목표를 달성했는데 그 순간부터 우울해진 것이죠. 그것이 사실은 본인이 원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내가 원하는 것을 감정과 욕구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죠. 자기 동기를 찾으려면 감정과 욕구를 잘 느껴야 합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세 가지 욕구 :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와 심리적 욕구가 있습니다. 생리적 욕구는 먹고 자고 마시고 색스하고 그런 욕구죠. 심리적인 욕구는 타고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타고난 ‘본성적 심리적 욕구’와 사회적인 관계나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 심리적 욕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율성의 욕구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습니다.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가 판단하고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이 차단되면 마음이나 정신이나 관계가 멍들게 되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보면 ‘자율성의 욕구’와 ‘관계성의 욕구’가 충돌하면서 발생합니다.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 못해줘서 갈등이 생깁니다. 삶의 질이라는 것은 자율성있게 사는 것이고 인간관계는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죠. 그런다면 인관관계 잘 풀립니다. 내 삶은 자율성있게 살지 못하고 상대방에게는 내가 바라는 대로 하게끔 하고 싶어하죠. 유능함에 대한 욕구는 남보다 잘하겠다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재원이나 자원을 잘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관계성의 욕구는 누군과와 연결, 소속되고 싶은 욕구입니다. 이 3가지는 자기 만족적인 욕구입니다. 사회적인 욕구는 다른 사람과 비교를 통해서 내가 더 많은 누리고 가지고 싶은 욕구입니다. 소유, 지위, 인정 욕구 등은 사회적 욕구, 이런 욕구가 강하면 (사회적 욕구는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기 때문에) 끝이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사회적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다른말로 하면 ‘욕망’이라고 합니다. 타고난 욕구는 기본적인 욕구라고 한다면, 사회적 욕구는 욕망이라고 합니다. 욕망과 욕구를 구분하는 게 좋습니다. 욕망에서 벗어나 욕구를 잘 보면서 사는 게 좋은 거죠.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욕구인지 욕망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질의응답
Q : ‘깊이 연결돼 있을수록 우리는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말 뜻은 무엇인가요?
인간관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핵심은 하나는 ‘저 사람이 나를 알면 실망할 것이다’ 이런 두려움이고요. 다른 하나는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저 사람이 나를 휘두를 것이다, 지배할 것이다, 통제할 것이다’ 이런 두려움입니다. 이게 인간관계에서의 두려움이죠. 정말 우리가 부모, 연인 관계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고 소유하려 하고 집착하는 관계가 있죠. 그래서 사랑하면 자율성 침해받기 쉽다고 생각하잖아요. 사실은 인간은 애착관계 이후에는 탐색관계로 넘어갑니다. 애착이 잘돼 있는 아이는 믿음이 있는 거죠. 내가 위험에 빠지면 엄마가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대문에 궁금한 것이 생기면 욕구대로 갑니다. 애착관계가 잘 형성 안 된 아이는 잘 벗어나지 못하고, 벗어나더라도 뒤를 돌아봅니다. 엄마가 맘에 들어하는지 눈치를 보게 되죠. 우리가 어려서부터 결국은 타인의 욕망에 의해서 살게끔 돼 있어요. 먹고 살려면 타인의 욕망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에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욕구가 내 욕구인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처럼. 건강한 애착이 형성된 아이는 자기 욕구대로 탐색하죠. 깊이 연결될수록 안전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탐색을 할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되돌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죠. 안전하다는 느낌이죠. 무언가 도전하는데 망설이는 것도 걱정하는 것도 ‘준비 준비’만 하는 사람들은 잘 들여다보면 애착손상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여기서 잘 안 되면 끝장이다, 의지할 대상이 없다는 단절감 때문에 무언가를 시도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랑이라는 자체의 역기능을 봐서 그렇지 건강한 사랑은 자율성을 해치지 않고 차이를 존중하고 숨쉴 수 있는 거리가 있죠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누군가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죠. 건강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깊이 연결될수록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이죠.
Q : 제 아이가 2살, 4살입니다. 저희가 부모로서 공중도덕이라든지 가치관을 훈육하고 싶은데, 4살 아이가 고집을 부리고 떼쓰기를 해서 ‘감정코칭’이라는 책도 보고 하는데 대화가 안돼 고민이 있어요.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는 아니죠. 예를 들어서 아이들이 양치질 하기 싫어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하죠. 왜 스스로 하게 되느냐는 것이죠. 아이가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이해가 되는 순간에는 더 이상 부모가 시켜서가 아니라 습관이 되는 것이고 자율성 습득이 되는 것이죠. 1회적인 교육으로 되는 것은 아니죠. 왜 필요한지 반복적으로 설명해줘야 합니다. “이를 닦아”라고 했는데 바로 닦지 않는 아이들의 그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게 필요합니다. 아빠가 이를 바로 닦으러 가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안다고, 이해해 주는 게 필요하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왜 필요한지 반복적으로 설명해줘야 하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최대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 닦을래, 어느 것부터 할래 등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하죠. 자율성의 선택을 기획을 주는 게 필요합니다.
Q : 부부간에 대화할 때 서로의 가치관이나 철학을 존중하더라도 충돌이 있을 때 서로 자기 신념이라든지 설득을 시켜려다 말싸움만 있어서요. 어떻게 상대의 자율성 존중해야 하는지요. 흰색과 검은색 섞어서 회색을 만드는 게 꼭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중요도가 필요합니다. 시시비비 가리는 게 중요한지, 서로 연결되어 가는 게 중요한 것인지 말입니다. 자녀와 부모 관계도 그렇고요. 우리가 자꾸 시시비비를 가릴려고 하는 거잖아요. 감정적으로 틀어져 있으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죠. 시시비비 가리는 것보다 서로 연결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차이를 인정해주는 게 중요하죠.
Q : 제가 올해 초 국가개발국에 파견나는 것에 지원했습니다. 아프리카 스와질랜드로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에이즈감염이 높은 나라라고, 절대 가면 안된다, 가면 죽는다고 저에게 볼 때마다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집에 가기 싫을 정도로요. 제가 에이즈감염 관련 블로그 글을 메시지 보내주고 안심하라고, 쉽게 감염되는 게 아니다고 메시지를 보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가긴 갈 것인데,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 있을까요.
하나의 사례를 말해볼게요. 85학번인가, 86학번인가 안동 출신의 여자분이 당시 유럽 배낭여행 가고 싶다고 하니까 보수적인 집안에서 반대를 했습니다. 이 여자 분이 굉장히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10페이지짜리 편지를 아버지에게 썼습니다. 안전에 대한 문제, 또 우려되는 여러 문제에 대해 자세히 글로 쓰고 꼭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가 허락을 했고, 그 뒤에 그 분은 습관이 생겼다고 해요. 내 부탁을 상대방이 거절하면 한 번 끝내는 게 아니라 여러번 시도하는 거죠.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정성입니다. 부모들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아보고요. 말이 어렵다면 글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Q : 제 가족 중에 정신과 치료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움을 주고 싶어서 대화 시도하면 자기 문제점을 자기가 알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점이 ‘집에 돈이 없어서’ 등등 원인을 밖에 있다고 생각해서 내가 해결해줄 수는 없는데요. 그런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하고 어떻게 풀어줘야 도움이 될까요.
그 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외부에 원인 두고 위안 삼으려고 하는 거죠. 자기가 잡은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인 줄 알지만 그것을 버리라고 할 수 없죠. (그렇게 살아가도록 그냥 둬도 되나요?)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고 변화의 순간이 올 수 있죠. 다른 동아줄 주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놓으려고 하는 것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위로만 해주면 되나요?) 사실은 조언하는 것은 쉽지만 들어주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조언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기 편에 서서 들어주는 것이 더 힘드실 거예요. ‘지켜만 준다는 것이 방치 같이 느껴지지만’ 같이 있어주는 것이 중요하죠. 감정적 연결이 중요합니다. 내 편이다, 라고 생각하면 그때 이야기를 하는 거죠. 신뢰적인 관계가 형성돼야 합니다. 그 타이밍에서는 이야기 해도 되죠. 항상 연결이 중요하죠.
Q : 제가 육아하는데 친정 어머니의 도움을 받게 되고 여러 관계를 돌아보게 되는데요. 저와 엄마의 관계가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주는 것을 아는데도, 먼저 나를 세워야 하는데 그 순간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면 지칩니다. 내 변화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요.
결국 인식한다고 변화되는 건 아니고요. 정신치료를 하더라도 말 그대로 분석이나 통찰의 과정이 필요하고 훈련의 과정도 중요하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습관화가 돼 있어서, 안다고 해서 변화가 바로 있는 것은 아니고요. 변화의 과정은 훈련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훈련의 과정은 원하는 것으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반복하면서 후회도 하고 점차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훈련이 되려면 그런 환경이 돼야 하고요. 그런 관계 속에서 그런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게 쉽지 않지만 감정적 동요, 특정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하면 관찰이나 기록도 해두면 좋고요. 삶의 큰 변화만 생각하고 거창한 계획으로만 시도하려고 하는데 의지력 훈련은 작은 실천들을 강조합니다. 1~2주 정도 훈련을 하는 거죠. 간단한 것들을 훈련합니다. 2주간 집에 들어와서 발코니 신발을 정리하는 것을 먼저 한다든지 다이어트 중인데 1.5리터의 물을 2주간 마신다든지. 경청이 안 된다고 하면서 하루 한 통만 전화에 신경써서 한다든지요. 작은 실천을, 1~2주만 꼬박꼬박하고 노력해보세요. 생활의 작은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들이 결국엔 자기 인생의 자기조절력을 키울 수 있는 거죠. 작은 거 하나 하나 조금씩 노력을 하는 것이 삶의 자기 조절 능력이 필요하죠. 감정조절 문제도 스스로 이런 식으로 자기 조절을 가지게 되면 가능해집니다. ‘좋은 엄마’라고,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작은 부분에서 노력하면 연쇄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구본형의 마음편지
그는 옷이 참 잘 어울립니다. 특히 파란색 옷을 입으면 아주 멋집니다. 얼굴이 하얗고 잘생겼습니다. 키도 크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체형이 갸름합니다. 중년의 사내에게 잘 보이는 칙칙한 피부와 커다란 똥배가 없습니다. 여인들이 보면 누구나 좋아할 만큼 핸섬합니다. 정신과 의사일 뿐 아니라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그러나 그가 쓴 책은 마치 빙산과 같이 아직 다 역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좋은 책을 써내게 될 것입니다. 말도 아주 잘합니다. 그러니 그는 부러울 만큼 아주 많은 것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내가 보기에 정말 그의 매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 가끔 떠도는 구름 같은 허무와 슬픔의 흔적입니다. 나만 그렇게 본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푸르고 맑은 하늘에 떠 있는 흰구름이 하늘의 청명함을 가리는 대신 그 맑음을 더 해주듯, 그 영혼의 구름이 그를 더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그 구름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는 행복한 많은 것을 타고난 세속적으로 부러운 사람으로 그쳤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구름 때문에 그는 많은 외롭고 좌절하고 무기력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발견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아주 훌륭한 정신과 의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프기 전에 자신의 삶에 주도적이려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훌륭한 멘토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는 하얀 얼굴과 파란 셔츠처럼 냉정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동료와 후배들을 위해 아무 말없이 기꺼이 혼자 파티를 준비하여 챙겨줄 만큼 세심하고 따뜻하기도 합니다. 내게도 해마다 년말이 되면 잊지 않고 소박하고 간결한 그림이 있는 좋은 달력을 일부러 사서 보내 줍니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 들어가며
▶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 자율성
P7. 나는 작은 결정부터 하나하나 스스로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 그런데 참 두렵다. 무섭고 외롭다. 진짜 맞는 길일까?
P8.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시작은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삶에서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는 여전히 똑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그 분야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그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그것은 지능이나 환경의 차이라기보다 바로 자율성의 차이에 있다. 즉 삶에 대한 주인의식이 삶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P10. 나는 과연 자율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몸은 성인인데 여전히 보살핌을 받고자 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지만 자신만의 철학이 없으며, 삶의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렇기에 삶은 늘 위태롭고 휘청거린다.
P11. 단지 활동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의 능동성과 방향성이 없는 것이 더 큰 게으름이라는 메시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 1장 나는 스스로 살아가고 있는가 – 자율성의 원리
▶ 세상은 자율을 원한다
P23. 오히려 지금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개척해 나가는 삶의 정신과 태도가 필요하다. 시대의 흐름이 개인화라면 시대정신의 핵심은 바로 ‘자율성’이다.
▶ 이것은 나의 인생인가
P28. 예전과 달리 게으름과 무력감을 호소하며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전형적인 우울증도 있지만 ‘번아웃 증후군’인 경우도 상당하다. 즉 자신의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리고 탈진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자신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자신을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중략) 특히 자신의 능력 이상을 자신에게 요구하는 완벽주의 성향의 사람들에게서 많이 관찰되었다.
→ 우울증이 있는 와중에 이랬으니 내가 너무 무식했지. 내가 내 자신을 몰랐으니 말이다. 완벽한게 어디있겠어
P29. “일과 성취욕의 과다는 자기 착취 수준으로 심화된다. 이것은 타인에 의한 착취보다 효율적이다. 자기 착취는 자율적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하기 때문이다.
→ 자기 자신을 속였던 것이구만
P29.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자기 계발을 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매우 ‘자율적’인 모습으로 비춰지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착취해 소진시켜버리는 것이다. 이는 통제의 주체가 바뀌었을 뿐 여전히 자신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는 점에서 전혀 자율적이지 않다.
→ 근데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데… 모순아닌가?
P33.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누구를 위해 살아온 것인지 깊은 회의에 빠졌다.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욕구를 대신해온 대리 인생을 산 것 같은 느낌이다.
→ 내가 지금 이렇다.
P34.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대해 다시 돌아보자. 이 기준은 과연 나의 것일까? (중략)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나 생각은 사실 내 것이 아니라 강한 암시에 걸려 있거나 사회로부터 주입된 것은 아닐까?
P35. 불완전한 인간인 이상 우리는 다들 각자 바라는 모습이 있다. 문제는 바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거나 외부에서 주입된 것이어서 자신에게 맞지 않을 때다. 그런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너무 외면하거나 억압한 채 살아가게 되고 그로 인해 점점 힘들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떠오를 수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이런 이미지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 걸까’
P37. 유사 자율
거짓 자율은 스스로 자율이라는 말이 허구임을 잘 알고 있고 마지못해 억지로 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데 비해, 유사 자율은 스스로 자기 결정에 의해 나아가고 있고 자기 의지에 의해 열심히 살아간다고 착각하게 한다.
하지만 유사 자율은 결국 타인의 기대나 영향에 의해 끌려다니는 삶을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 내 스스로가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남의 시선? 남의 결정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
P39. 열심히 뛰는 것처럼 보이지만 떠밀리는 것이지 능동적으로 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열심히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율적으로 산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P43. 책임감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의 경험이 있어야 가능한데 지나친 양육이 책임감의 발달을 방해하고 있다.
▶ 알아서 하는 사람, 시켜야 하는 사람
P53. 즉 우리는 일은 괴로운 것이라고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일을 더 즐기면서 할 수 있는데도 싫어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은 괴로운 것’ 이라는 기본적인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자꾸 마음을 닫고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P56. 셰프형 직장인은 노동을 단순히 생계 수단으로서 생각하지 않고 자기 표현과 정체성의 일부로 바라본다. 스스로 업무 방식에 변화를 주고 독창성을 발휘하여 능동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 셰프형도 번아웃되기는 마찬가지 일 것 같은데… 다음에 나오는 예들이 다 내가 했던 것들인 결국 이렇게 되었것만…
▶ 적응과 순응사이
P59.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동물 실험을 통해 절망은 학습된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 바 있다.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실험실의 개는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더 이상 고통을 피하려는 행동을 포기한 채 수동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이후에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조건에서도 적극적으로 피하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셀리그먼은 이를 ‘학습된 무력감’이라고 명명하였다.
P60. 절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고 때로는 스스로 칭찬받고자 과잉 충성을 펼친다. ‘학습된 무기력’을 넘어 ‘자발적 복종’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P61. 이러한 ‘자발적 복종’의 단계가 되면 주체성과 자율성 회복이 정말 힘들어진다.
이 단계는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도 ‘적응’이라고 생각하거나 내외부 간의 ‘인지부조화’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생각조차 못한다. 자신이 정신적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자신이 여전히 자율적 존재라며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살아갈수록 자기 소외는 더욱 깊어진다.
P62. 스스로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때 이르게 혹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조직 밖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결국 별다른 준비 없이 자신이 용도 폐기되었다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차가운 현실과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P66. 이에 비해 ‘건강한 반항’도 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기보다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태도, 자신의 자아를 속박하려는 것들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을 벗어나려는 모습, 기존의 생각과 방식에 대해 똑같이 따라하지 않고 더 좋은 방식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자세, 사회적 비판 의식을 가지고 부당한 간섭이나 불합리한 제도에 대해 분노할 줄 알고 이를 해결해나가려는 행동 등으ㄴ 건강한 반항이다.
▶ 스스로 살아갈 때 행복하다
P72. 가족 갈등의 핵심은 자율성과 관계성의 충돌이다. 인간관계란 심리적으로 밀착되면 의도하든 안 하든 상대를 위하는 애정과 관심이 집착과 간섭으로 나타나기 쉽다. 알게 모르게 돈, 보살핌, 힘이나 위협으로 상대방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고 든다. 자율성과 개별성이 억눌릴 수 밖에 없다.
P73. 우리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지시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 있다. 그래서 하려고 마음먹었더라도 그 순간 누군가 하라고 지시하면 ‘뭐야, 내가 하려고 했는데… 꼭 시켜서 하는 것처럼 됐잖아. 에이 하기 싫어!’
P81. 생각해보니 그의 우울감은 하기 싫은 일이지만 딱히 대안이 없어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데 있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었지만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를 오랜 시간 동안 옴짝달싹 못하고 일에 매이게 만들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강했지만 오랫동안 이를 무시한 채 살아온 것이다.
→ 처음 우울증이 왔을 때 나의 증상. 그때 옆에 있던 최측근 가족이 잡아주었다면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P82. 삶이 답답하거나 권태감에 휩싸여 있다면 이제 잠자고 있는 자율성을 깨워야 할 때가 됐다는 신호다.
P83.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두 번 태어나고 두 번의 인생을 산다. 한 번은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면, 또 한 번은 자기 힘으로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 2장 결정도 연습이 필요하다 – 나를 만들어가는 자기결정력
▶ 누가 대신 좀 결정해주세요
P90. 현대인들에게 보이는 ‘자율의 패러독스’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삶의 기회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아졌는데도 정작 많은 사람들이 그 기회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자율성과 독립성의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도 있지만 너무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수많은 선택의 기회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선택이 어려운 것이다.
P91.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자율적으로 살아가려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자신의 삶에 무엇이 중요하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안다면 선택의 가짓수가 무한정 늘어나지도 않을 뿐더러 좀 더 결정을 잘할 수 있게 된다.
P94.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된 특성이 있다.
첫째, 자기 자신을 너무 모른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삶의 기준이나 원칙이 없는 경우가 많다.
둘째, 둘 다 손에 쥐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을 선택하면 저것은 놓아야 하는데 둘다 손에 쥐려고 하니 하나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셋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선택을 잘 못하는 이들은 실패와 타인의 부정적 평가에 무척 예민하다. 그래서 스스로 나서서 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따라가면 설사 잘몯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책임이기 때문에 차라리 덜 괴롭다.
▶ 자기 철학이 나를 만든다
P104. 인간의 발달에 있어 내사란 중요 인물과 주위 환경에서 요구하는 목표, 가치관, 삶의 태도나 방식을 제대로 씹지 않고 꿀꺽 삼켜버리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소화 흡수가 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데 문제는 삼켜버린 그 목표, 가치관, 삶의 태도나 방식이 사실 자신의 능력이나 특성에 맞지 않거나 너무 엄격하거나 경직되어 있다는 데 있다.
P106. 그러므로 개인이 건강한 성인이 되고 자율적으로 살아가려면 무의식적으로 내사된 외부와 집단의 가치와 규칙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통합과 자기화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 좋은 것은 꼭꼭 씹어서 흡수하고 자신에게 맞지 않거나 안 좋은 것은 버리는 소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P107.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놓은 규칙이란 게 없다.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꼭 맞출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며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에게 잘 맞는 것이다. 자기 이해를 밑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자율성은 고양될 수 없다.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 내 인생의 결정권
P112. 자율적인 사람은 인생이라는 책의 내용을 채울 책임이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차리고 하루하루 그 내용을 채워가는 사람이다. 자기 인생의 작가가 되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풍부하게 그려가는 사람이다. 좋은 순간은 좋은 순간대로 힘든 순간은 힘든 순간대로 묵묵히 기록해가는 사람이다.
→ 회사를 휴직하기 전부터 다시 우울증이 발현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우울증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기가 너무 힘에 겹다. 혼자 있음이 힘들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구도 없다. 하루하루를 채워나가야 하는데 다시 무엇으로 채울까? 너무 힘이 든다.
P118. 누군가로부터의 구원이라는 환상이 깨지고 스스로의 구원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순간이다. 자신을 더 이상 피해자 역할에 가두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주체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P118. 미국의 여성고용평등을 위한 비정부기구인 카탈리스트 회장 아일린 랭은 자신의 스트레스 해결 능력이 높아진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나는 스트레스를 보다 잘 극복할 수 있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기 시작하자 나의 스트레스 해결 능력은 놀라운 발전을 보였다.”
■ 3장 가치를 부여하는 순간 특별해진다 – 스스로 동기부여하는 방법
▶ 나를 움직이는 힘
P129. 이렇듯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욕구나 감정이 아니라 인지 차원에서 유발될 수 있다. 그래서 쉽게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좋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일 수 있다. 즉 인지는 유사 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내적 욕구나 감정과 충돌을 일으키기 쉬워서 시간이 지날수록 즐거움이 사라지고 쉽게 지친다.
→ 사실 즐거운직장 일을 할 때가 가장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P131. ‘내적 동기’란 동기의 원천이 기본적으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흥미, 호기심, 도전 의식, 자기 만족감 등에서 비롯된다. 이는 과제 수행의 결과에 대해 주어지는 강화와 관계없이 활동 그 자체로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지속력이 강하다. 쉽게 말해 그 사람이 좋아서 하는 일이며 일 그 자체로 보상이 된다. 그러므로 내적 동기에 의한 활동은 놀이 또는 유희의 성격을 지닌다.
→ 이런 일을 찾아야 하는데… 즐거운직장 일을 밖에서는 할 수 없는 건가??
P135. 실제 무기력한 사람들을 보면 감정이 둔감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는 데 서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판독 장치가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인식하는 것이 자기 이해와 동기의 기초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현대인들의 감정 장치는 훼손되어 있다.
→ 과거 그리고 지금도 이런 생각이 있다. 무엇이 좋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두려움 때문인가?
P136. 인생의 중요한 문제일수록 자신이 좋은지 싫은지를 잘 느끼는 것 자체가 중요한 판단 기준인데도 불구하고 점점 느끼지 못하게 된다. 결국 감정을 잘 느낄 수 없으면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가고 스스로 뭔가를 행동할 수 없게 된다.
P141. 이때의 즐거움을 짧은 순간의 쾌락이 아니라 지속적인 만족감에 가깝다. ‘즐거움’과 ‘자발적 불편함’이 만날 때 우리는 진정 행복해지는 것이다. 즉 불편 없는 즐거움이 나쁜 행복감이라면 불편과 함께 느끼는 만족감은 좋은 행복감이다. 그러므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쾌락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불편과 도전이다.
▶ 그 일은 나에게 중요한가
P159.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나 의미가 명확하면 우리는 그 일을 스스로 열심히 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의미는 행복한 사람들이 찾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그냥 지금처럼 살아가면 된다. 의미는 불행과 고통으로 삶이 힘든 사람들이 찾는다. 우리는 고통과 불행 속에서도 그 의미를 찾으면 이를 이겨낼 수 있다. 정말 괴로운 것은 고통 자체라기보다 ‘의미 없는 고통’이다. 그러므로 의미는 고통에 대한 보상이다.
→ 누군가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나에게 왜 행복을 그렇게 간절히 찾느냐고 물었었지.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진짜 행복이 정말 무엇일까 찾길 원했다. 그것을 잊기 위해서…. 그리고 그 많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고. 나와 대화를 했던 그 분은 행복을 찾지 않는다. 행복을 찾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냥 사는거라고… 그런데 이 문장이 그토록 간절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맞다. 나는 행복으로 보상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아닌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지~ 서운하지 않다. 상황이 다르니깐.
▶ 어떤 목표가 열정을 만드는가
P166. 우리는 반복하면 쉽게 지루해한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즐거움을 느끼는 도파민이 반복적인 활동에는 잘 분비되지 않고 새로운 자극을 줄 때 분비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신선한 그리고 지속적인 자극이 필요한 거야! 삶으로 게임을 하면 즐겁다니까
P167. 반복된 일상은 우리를 권태롭게 한다. 권태와 지루함을 무작정 견디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늘 일과 사람을 바꿔가며 ‘새로움’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권태를 넘어서는 길은 ‘깊이’에 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것을 추구할 때 우리는 또 다른 새로움과 즐거움을 느낀다.
■ 4장 결심을 성취로 이끄는 힘 – 원하는 삶으로 바꾸는 자기조절력
P179. ‘삶의 성장과 자율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기조절력이다.’
충동 조절이 잘 안돼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월급날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통장에 잔고가 없을 수도 있고, 할 일이 너무 많은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TV를 보거나 게임에 빠져 있을 수도 있고, 뒤돌아 후회할 줄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그리고 ‘아!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하고 뒤늦은 후회와 자책을 한다.
→ 참… 나다 나야
P180. 그러므로 현대인들에게, 특히 자율적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자기조절력을 갖추는 것은 꼭 필요하다. 자기조절력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관여되어 있지만 크게 의지력과 자기 관찰 능력이 중요하다.
자기조절력=의지력+자기 관찰 능력
P183. 삶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자기 조절을 위해서는 삶 전체에 대한 조율이 필요하다. 삶에는 자기 규율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왜 작심삼일이 반복되는가
P186.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할 때 분명 그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며칠 지나고 나면 그 결심의 끈이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점점 느슨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뇌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결심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결심에 따른 보상이 즉각 주어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야 얻어지기 때문이다.
P194. 우리는 흔히 죄책감이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에너지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기조절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죄책감은 악순환에 빠지는 계기가 된다. 기분이 더 나빠져서 더 큰 유혹에 굴복하게 될 뿐이다.
P195. 하지만 책임감과 자기조절력을 키우고 의지력 회복을 돕는 것은 죄의식이 아니라 연민과 용서다. 처음부터 실수도 변화의 과정이고, 한 번도 안 넘어지는 것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우리는 불필요한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도망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왜 잘 되지 않았는지 그 원인과 과정을 좀 더 잘 돌아볼 수 있게 된다.
P195.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계획이고 인생이다. 인간의 발전이란 그 누구라도 실수를 거치면서 이루어지는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당신이 정말 자기조절력을 원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법을 배워햐 한다.
P197. 자기조절력을 키우려면 안과 밖을 살필 수 있는 관찰의 힘을 키워야 한다. 자기를 일방적으로 통제하려고 하는 데서 벗어나 관찰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다. 즉 내 마음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고,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으며,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를 스스로 알아차릴수록 자기조절력은 커진다.
■ 5장 위대한 사람처럼 대하라 – 자율성을 끌어내는 관계의 힘
P207. 자율성은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해줄 환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꽃밭이 병들어 있는데 어떻게 꽃이 필 수 있겠는가! 그럼 자율성은 어떤 환경에서 발현되고 향상되는가? 자율성을 존중하고 만족시키는 환경을 한마디로 자율 지원 환경이라고 한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개별성을 존중하며,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돌아보고 해결하도록 돕는다.
▶ 관계 욕구를 활용하라
P220. 흔히 관계와 자율이 서로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면 자율을 포기해야 하거나 위협당하는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 아마 나는 이렇게 관계를 유지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P223. 자율은 관계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자율성이 발달되었다고 관계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율적일수록 친밀함에 기초한 건강하고 상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P223.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은 누군가와 사랑하고 싶이 연결되어 있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될 때 가장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반대로 가장 불행한 순간은 자신이 타인에게 의미 없는 존재로 느껴지거나 배척당하거나 중요한 사람을 떠나보낸 순간이라고 꼽는다.
→ 그렇지~!! 맞는 얘기지요~
■ 6장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5가지 법칙 – 자율성 실전지침
P266. 살다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삶의 의지가 꺾여 한 발도 앞으로 나가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두려움에 휩싸여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오늘에서 내일을 볼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삶을 바라보자.
P276. 변화가 쉽지 않은 이들은 세상이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주입되거나 일반화시킨 가정과 전제를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한다.
3. 내가 저자라면
★ 목차/구성에 대하여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에는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7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각 장의 분량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각 장에는 자신이 행동할 수 있는 실천법이나 툴을 삽입했다. 이 점이 눈에 띈다.
★ 이 책의 장점
실천법과 툴을 삽입한 점이다. 이 부분은 내가 쓰려고 하는 책에도 적용해서 실용서로서 활용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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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2 | #32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_이수정 [1] | 알로하 | 2017.11.21 | 1727 |
4751 | #33 영적인 비즈니스_정수일 | 정수일 | 2014.12.08 | 1728 |
4750 | #30 카를 융: 기억 꿈 사상_이수정 | 알로하 | 2017.11.06 | 1728 |
4749 | #33. 그림자 [1] | ggumdream | 2017.11.27 | 1728 |
4748 | 1만 시간의 재발견 | 박혜홍 | 2018.08.26 | 1728 |
4747 | 31.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해냄 | 강훈 | 2011.11.28 | 1729 |
4746 | #9. 서양의 지혜 | 녕이~ | 2014.06.09 | 1729 |
4745 | 11. 역사 속의 영웅들 | 해피맘CEO | 2018.05.22 | 1729 |
4744 | #6 신화와 인생(송의섭) [1] | 송의섭 | 2017.05.15 | 1730 |
4743 | #17 삼국유사 2(이정학) [1] | 모닝 | 2017.07.30 | 1730 |
4742 | #22 파우스트 2/2 (윤정욱) [1] | 윤정욱 | 2017.09.04 | 1730 |
4741 | #24 사기열전1 (2/2) | 송의섭 | 2017.09.18 | 1730 |
4740 | [08] 열정과 기질 - 하워드가드너(상편) | 정산 | 2008.05.26 | 1731 |
4739 | #24.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 [1] | 희동이 | 2014.10.06 | 1731 |
4738 | #24 - 사기열전 2(이정학) [1] | 모닝 | 2017.09.18 | 1731 |
4737 | (프로페셔널의 조건) 칼 융이 피터드러커를 구경하다 | 보따리아 | 2017.10.30 | 1731 |
4736 | #36. 죽음의 수용소에서_이수정 | 알로하 | 2017.12.18 | 1731 |
4735 | #20. 논어 | 불씨 | 2018.07.22 | 1731 |
4734 | #18 셰익스피어 4대비극(이정학) | 모닝 | 2017.08.06 | 1732 |
4733 | #23 사기열전1 (1/2) [1] | 송의섭 | 2017.09.11 | 17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