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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7일 11시 56분 등록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 작자 미상

 

장소만 보자면 이번 졸업여행은 그닥 기대될 게 없는 여행이었다. 출발 1주일 전에 춘천/가평에서 강화도로 장소가 바뀌었다. 춘천/가평도 한달쯤 전에 목포에서 바뀐 목적지였다. 졸업여행은 선배들이 그랬듯이 나도 땅끝마을 등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 남도 기행을 하겠다고, 연구원을 시작할 때부터 벼르고 있던 터라 실망이 컸다.

강화도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로, .고등학교 소풍에서부터 온갖 수련회와 워크샵, 주말에 시간 날 때 바람 쐬러 가던 그런 곳이다. 별다를 것도, 새로울 것도 없이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동기들과 함께 졸업여행으로 가게 되었다.

여행 전날 밤, 짐을 싸는데 카메라의 충전기가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 가까이 찾아 헤매다 포기하고 자려는 데 천둥이 친다. 창밖을 보니 눈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여행 잘 할 수 있을까?

 

다음날 아침, 다행히도 눈이 그쳤다. 날이 따뜻한지 밤사이 내린 눈도 거의 다 녹은 것 같다.

인천에 사는 송쓰는 고맙게도 부천까지 와서 나를 픽업해 줬다. 부천까지 어렵게 온 참치선배와 함께 강화도로 출발했다. 늦게 도착했지만 불평하지 않고 즐겁게 맞아준 동기.선배들 덕에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점심 이후에는 미션 게임. 출발 전에 미션이 무엇인지 비밀로 해서 궁금함과 기대가 컸다. 팀을 나누고 미션지를 받자 마자 미션 임파서블임을 깨달았다. 이런 것도 어릴 때 해야하는 걸까? 센스가 없는 건지, 강화도에 대한 역사와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아무리 미션지를 읽어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다른 팀이 다 출발한지 한참 지난 후까지 식당 주차장을 못 벗어나고 헤매는 게 답답했는지, 한 팀이 된 기획자 뚱냥이가 힌트를 던졌다. “키워드를 보라구요, ...!!!”

그렇게 키워드를 찾아 끼워 맞추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갑곶돈대, 풍물시장, 광성보 등 강화도의 아름다움을 함께 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맞춰? 이건 우리 밖에 못할거야, 라며 1등을 자신했고, 기획자가 함께한 팀이라 1등을 했다는, 주최측의 농간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전화 알리바이까지 조작했건만, 1등은 진짜 브레인이 있는 웨팀이 차지했다.

우리 참팀은 쇼핑 미션도 실패해서 1등을 못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광성보에서 인생 사진도 찍었고제일 예쁜 언니한테 준다며, 1등 상품을 건네 준 나연이 덕에 가장 큰 선물도 받았는데지난 6월 경주에서 매번 2등 밖에 못해서 화가 난다며 울던 신화 속의 알로하 공주는, 강화도에서 순위에 상관없이 게임을 즐기고, 특별한 여행지여서가 아니라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 해서 행복한 알로하 언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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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밤, 1년을 돌아보는 자리를 가졌다. 짧게 말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너무 길게 말한 사람들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는 못한 듯 했다. 그만큼 지난 1년간은 모두가 각자의 힘듦과 고통과 기쁨과 보람이 있었던 시간이었을 거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있던 나는 처음에는 정성스런 북리뷰와 칼럼을 써서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갈수록 초심을 잃고 대충 읽고 쓰다가 결국 초반보다 못한 부끄러운 수준의 칼럼들을 올리고 말았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반드시 과제 완수를 하겠다는 의지를 다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 달을 앞두고 무리하다 쓰러지는 바람에 완수를 못 했다.

이게 나다. 1년간의 연구원 과정은 나의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삶의 압축과도 같았다. 성실하고 잘 하려는 의지가 있어 빠르게 성과를 내지만, 지구력이 부족해서 오래 못 간다. 에너지의 업, 다운이 심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자기조절을 못해서 미련스럽게 무리하다 번 아웃되고 만다.

지난 1년간 나를 좀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잘 알게 되었다고 저절로 달라지지는 않는다1년의 과정을 끝내고 졸업여행까지 마친 지금, 이제 나는 압축이 풀어진 진짜 삶을 살아야 한다. 1년동안 느꼈다고 바로 다른 길을 걷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길을 가겠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로 인해 조금 더 아름다운 길이 되리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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