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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9일 13시 40분 등록
나는 빈 공간으로 달려요

강점혁명을 읽으며 늘 마음에 답답함이 떠나질 않는다. 내 강점이 눈앞에 선명하게 주어졌는데도 마음으로 받아들여 지질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강점은 눈에 보이질 않고 내가 원하지 않은 강점이 손에 쥐어져 있다. 역시 나를 인정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늘 튕기는 내 자신이 앙탈 맞은 고양이 같아 웃음이 나왔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들을 불러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은 제대로 놀아보기 위해 홍대클럽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연구원 활동을 하면서 머리만 너무 쓴지라 녹슬어 가는 나의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우리가 도착한 클럽은 토요일 밤의 열기를 알려주듯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빈 공간 하나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을 보면서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오늘 신나게 춤추기는 힘들겠군, 공간이 이렇게 좁아서야 춤추겠나.’ 우리들은 불평 섞인 볼 맨 소리를 연발했다. 춤추기에 좋은 명단 자리는 이미 다른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기로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 확보를 위해 애를 썼다. 춤추는 척 하며 몸싸움 아닌 몸싸움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어깨로 엉덩이로 자리 확보를 꿈꿔 보았지만 공간 확보는커녕 짜증지수만 높아졌다. 힘들고 피곤하여 포기하는 마음으로 무리속에서 빠져나왔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공간을 벗어나 그들을 바라봤다. 거리를 두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클럽에는 케오스 리듬의 음악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춤은 못추더라도 음악 감상이라도 하자는 마음에 두 눈을 감았다. 서서히 음악이 빛줄기처럼 몸과 몸 사이를 움직여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리듬을 타던 고개가 어깨로, 팔로, 허리로, 골반을 타고 무릎으로 전해져 갔다. 나는 곧 춤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초점이 다른 사람의 몸이나 나의 생각이 아닌, 온전히 나의 몸으로 옮겨졌다.

몸에 리듬이 가득차오를 무렵, 신기하게도 마치 모세가 바다를 가른 것처럼, 비좁은 클럽이 빈 공간으로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경이로운 마음에 나의 몸은 몇 배 가벼워 졌다. 나는 어느새 옆 사람이 모든 공간을 잡아먹었다고 불평하는 대신 빈 공간을 찾아 춤에 깊이 취해 있었다. 도저히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우리의 공간은 큰 바다였다. 끊임없이 파도치는 몸들이 공존하는 큰 바다.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명상 아닌 명상에 흠뻑 빠져있던 있던 나는 거칠어진 호흡이 원래의 리듬을 찾을 때까지 천천히 걸어 다녔다. 복잡한 사람들과 비좁은 공간속에서 그냥 걸으면서 빈 공간을 찾아 걸었다.

그 속에는 나만의 놀라운 질서와 패턴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원하거나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구나.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고 노력하거나, 그 공간이 너무 비좁아 내가 갈 수 없다고 포기해 버리며 살고 있었구나. 공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여유가 있을 때조차도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구나. 혼돈 속에서도 나는 빈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었구나. 나의 강점을 찾는 과정은 이렇듯 혼돈 속에서 남이 아닌 나의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구나. 비로소 그 공간속에 존재하는 나는, 내가 누구인지 투명하게 자신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확신을 품었다.

뜨거운 2시간이 20분 같이 흐른 뒤, 우리는 집으로 향하기 위해 클럽 밖으로 나왔다. 탁한 서울의 공기가 이렇게 맑았던가. 가슴속에 막힌 무언가가 시원하게 뚤린 기분이다. 홍대 앞은 줄지어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택시, 자동차로 가득 메워져 복잡하고 비좁았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너무나 혼란스럽고 위험스러운 교통문화를 가지고 있는 인도에서 만난 릭샤 운자사의 말을 떠올렸다.
“어떻게 아무런 규칙도 없이 제멋대로인 교통지옥에서 운전이 가능한가요?”
인도 운전사는 마음의 동요 없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no problem!! 나는 빈 공간으로 달려요.”

IP *.231.5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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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09 14:56:43 *.75.15.205
빗사이로 막가는 네가 보여. 다리몽댕이가 없어도 팔로라도 짚어서 뛰쳐나가 놀아도 그 공간 속에서 아니 어디에서건 너는 무한한 자유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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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07.09 17:01:24 *.231.50.64
ㅎㅎ.. 언니는 내가 삐리리~~ 할때 꼭 글을 남겨주더라..
센스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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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07.10 08:28:37 *.249.167.156
홍대 앞과 인도라.. 멀고도 가깝네.. 나도 끼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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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07.10 12:22:34 *.231.50.64
아.. 우리의 랩퍼 도윤이 있었구나..
홍대에 딱 어울리는 당신..
진짜루.. 우리 언제 홍태클럽에 가서 신나게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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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07.11 09:41:28 *.249.167.156
가사 못 외우는 랩퍼도 있남^^;;

날씨가 흐리네. 건강관리, 기분관리 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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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11 16:27:18 *.70.72.121
그래... 우리 몽땅 가자! 사부님도 끼워드리자. 몸치 노골노골하게 해 드리자. 난 지난 번 꿈 벗 모임 세렌디피티에서 사부님께서 덜렁덜렁 춤추고 싶어하시던 모습이 어찌나 정겹던지... 늘 가방모찌 전문인 내게 큰 위안이었다. 크흐흐 재밌더라. 도윤대사는 춤 잘추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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