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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3일 13시 17분 등록

학교폭력 부모교육 강의 시연을 하며

11기 정승훈

 

1층 유리문을 여니 경쾌한 종소리가 나를 반긴다. 이어 두 번째 문을 열기도 전에 첫 번째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힌다. 소리가 너무 커 혹여 시연하는 강사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을까 되려 내가 놀란다. 12월 연수받던 장소에서 시연을 하고 있던 강사가 나를 보자 눈이 커지며 말을 멈춘다. 나란히 앉아 시연을 보고 있던 담당자 3명이 고개를 돌리고 나를 쳐다본다. 그 중 한 명이 일어선다. 조용히 인사를 하며 시연하는 장소 뒤쪽의 접이식 유리문 안쪽으로 안내한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시다 앞에 분 끝나고 하시면 돼요.” 라고 말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치고 가방도 놓고 의자에 앉았다. 시연자 명단을 보니 내 앞으로 두 명, 내 뒤로 한 명이 있다. 1040분에 시작하니 5분 정도 일찍 도착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자리에 앉으며 시계를 보니 1030분이다. 탁자 위엔 시연자 명찰과 명단, 간식거리가 놓여있다. 접이식 유리문이 닫혀 있어 시연소리를 잘 들리지 않았으나 강사가 종이를 보다가 왔다갔다 한다. 뭔가 잘 안되나 보다. 어쩔 줄 몰라 한다. ‘강의 경력이 많으신 분인데...’ 무슨 일일까 걱정된다.

 

잠시 뒤 담당자가 접이식 문을 열고 들어온다.

시연하시던 선생님이 잘 못하시겠나 봐요. 그래서 순서를 바꿔서 선생님이 먼저 하시면 어떨까 하는데, 가능하시겠어요?”

그러마 하고 대답하고 준비해간 연수 자료집을 들고 시연하는 곳으로 간다. 담당자가 종이 4개가 들어있는 유리병을 건넨다. 그 중 하나를 뽑아들고 펼친다. 내가 고른 것은 2번째 강의다. 강의 시연 준비를 하며 가장 이해가 잘 안되던 강의였고 다른 강사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차시다. 농담처럼 이거 뽑으라고 앞쪽으로 놓으신 거 아니에요?” 하며 스스로 긴장감을 없애려 한다. 다행히 담당자들도 웃는다.

먼저 강의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와 청예단 소개를 한다. 나와 청예단의 인연을 이야기한다.

전 학교폭력 가해자의 엄마로 청예단에 법률자문을 받았어요. 벌써 3년이 됐네요. 법률자문을 받은 데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위안도 많이 받았어요.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던 그때 제겐 참 고마운 곳이에요. 그래서 작년 년말부터 전화자원봉사도 하고 있어요. 전화자원봉사를 해보니 학교폭력이 저연령화 되고 있고 피해자, 가해자 모두 피해자란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강의를 하며 차차 사례를 소개해드릴게요.”

나의 소개를 듣는 담당자들이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인다. 2차시에 대한 강의 시연을 하며 말이 빨라진다.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한다. 중간 중간 담당자에게 수강생인양 질문을 하기도 하고 동참을 유도한다. 간간히 웃으며 무언가를 적는다.

 

15분이란 시간이 지났다. “긴 시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인사를 하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잡고 기다린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피드백을 한다. 공통적으로, 상담을 하니 사례를 알고 있고 강의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것과 강의에 대해 숙지가 잘 되어있는 것 같다고 한다. 부정적인 피드백이나 조언은 없다. 다행이다. 나름 괜찮았나보다. 이제야 후련하다. 사실 시연의 부담 때문인지 어제 꿈에서도 시연을 했다.

 

시연이 끝났으니 돌아가도 되지만 나보다 먼저 하다 마무리 못한 강사를 기다려야겠기에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는다. 목이 마르다. 물 한 잔을 정수기에 따라 마시고 있으니 내 뒤의 시연할 강사가 들어온다. 시연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담당자가 나에게 한 말과 같은 말로 바로 시작할 수 있냐고 묻는다. 역시나 괜찮다며 외투를 벗고 앞으로 나간다. 음소거 된 영상을 보듯 시연을 본다. 손과 몸을 움직이며 활동적으로 한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준비해 온 텀블러에 있는 물을 마신다.

내 앞에 시연하던 강사는 어디 갔는지 가방만 의자에 있다. 밖에서 준비하고 있을 것 같아 그냥 앉아서 기다린다. 시연을 막 끝낸 강사도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서로 이것저것 질문하고 이야기를 한다. 알고 보니 청예단 소속으로 학교폭력예방교육을 하고 있는 강사다. 나에게 전화상담봉사를 하니 강의하는 데 어려움이 없겠다고 하며,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아직도 먼저 시연한 강사는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가 강의와 강의시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 드디어 내 앞에 했던 강사가 들어온다. 앞으로 나가 시연을 한다. 여전히 만족스런 표정이 아니다. 시연을 마치고 들어온 강사는 말한다. “너무 창피해요. 저 하나도 기억이 안 났어요.” 새벽 4시까지 준비하고 잠 한 숨 못자고 왔단다. 들고 있는 종이를 보니 차시마다 시연할 말들을 타이프한 모양이다. 처음엔 종이 없이 하다 중간에 종이를 들고 보며 하더니. 나를 보고 말을 잇지 못한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인 것 같다. 12월 연수받는 동안 같은 조였는데, 나를 보니 더욱 긴장이 되었나보다. 강사들은 아는 사람이 앉아 있으면 신경 쓰인다.

 

모두의 시연이 끝나니 12시다. 팀장이 우리가 있는 자리로 온다. 고생했다며 지난주엔 하루에 17명이 했단다. 오늘은 4명이 할 예정이었으나 한 명이 아파서 오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도 시연 보고 피드백 하느라 힘들었겠다며 애썼다는 말을 한다. 학교폭력 처리 사안이나 법령, 사례를 모르면 강의하기 어려울 테니 3월에 심화 연수를 계획 중이란다. 강의가 끝나면 분명 질문도 있을 텐데 대답을 못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팀장은 다시 한 번 고생했다며 한손엔 누구도 먹지 않은 간식거리가 담긴 쟁반을, 다른 한 손엔 서류를 챙겨들고 문을 열어달라며 2층으로 올라간다. 우리도 3월에 뵙겠다며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선다.

시연을 잘 못한 강사는 지하철역으로 가면서 너무 긴장감이 없고 불안하지 않아서 어제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안했어요. 이런 적이 없는데……. 담당자들이 얼마나 불성실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창피해요.” 라며 연신 창피하다고 한다. 강사가 어떤 스타일로 하는 지 보려는 거니까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위안을 했다. 위안이 안 되는 듯 후련하시겠어요?’ 라며 본인은 후련하지 않음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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