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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5일 09시 33분 등록
눈물 흘릴 줄 아는 마음 좋은 현명한 실천주의자



질문을 해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 자신들의 이야기를 내게 짐 보따리 풀어놓듯 그렇게 평생을 걸친 이야기를 단 몇 백 페이지로 요약해 준 그들에게 나는 무엇을 물어볼까?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실제 내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나이기에 나는 일단 일부러 노력이란 걸 기울여 그들에게 관심부터 가져야 했다. 그들 인생에 내가 궁금해 할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본받을 만한 점은 무엇이 있을까,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그 무언가를 그들은 말해줄 수 있을까. 그러면서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질문이라는 것도 답변할 수 있는 류의 것들을 물어봐야 하는 거라고.



나는 술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6월의 영웅들을 술자리에 불러내기보다는 함께 드라이브를 하기로 작정했다. 물론, 운전은 내가 하고 조수석에는 지도를 잘 볼 것 같은 정약용 할아버지, 내 뒷좌석에는 같은 무인으로 말이 통할 것 같은 이순신 장군과 칭기즈칸이 나란히 앉고 그 옆에 김구 선생님이 앉았다. 이렇다 할 목적지가 있다기 보다 그저 정처 없이 여기저기 누벼 보기로 했다. 아주 편안한 가운데 서슴없이 대화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이 내게는 바로 차 안이기 때문이다. 첫 신호등에서 차를 멈춰 섰다. 이때다 싶어 나는 첫 번 째 질문을 조심스레 던져본다.



고개를 돌려 정약용 할아버지에게 먼저 묻는다.



나: 할아버지, 제가 요즘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데 할아버지는 유배생활 하시면서 책을 800권씩이나 쓰셨잖아요. 어떻게 보면 세상과 격리되어야 했던 그 시간들이 원망스럽지만은 않으시죠?



정: 글쎄다, 내가 아마 현직에 계속 머물렀더라면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지. 그래, 어떻게 보면 내게는 참 좋은 기회였구나. 게다가 실제 현직에 있을 때 보이는 것과 한 발자국 물러나 있을 때 보이는 것과는 천지 차이거든. 무엇이 문제인지 보이게 마련이야. 문제가 보이면 그에 대한 해결책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법이거든. 언제나 문제와 해결책은 같이 찾아 온단다. 허긴, 살면서 그런 시간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들겠구나. 그 시간들이 내게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단다. 어쨌든 내 인생의 후반부에 주어진 조금 긴 휴식이었으니 다른 생각 하느라 낭비하느니 차라리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이 하고 싶었어. 네가 요즘 글을 쓰고 있다고 하니 글을 쓰는 데 있어 집중의 중요성을 너도 조금은 알겠구나.



그때 뒤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순신 장군이 반갑게 끼어들었다.



이: 나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면 바로 전쟁 전과 후, 물 위에서 보낸 시간들이지. 근데 난 그렇게 고상하게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어. 왠지 나랑 안 맞아. 세상과 격리되어 있어도 난 내 부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나름대로 살만 했어. 가끔 술이나 한 잔 마시고, 바둑이나 장기를 뒀던 재미가 아주 쏠쏠했지.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고독하기는 했었나 봐. 하긴, 그렇게 아팠으니 몸 튼튼한 장군답게 내게 주어진 그 시간들을 마음껏 누릴 수는 없었어. 몸이 아프니까 마음도 싱숭생숭한 것이 원 온갖 걱정이 다 내 몫인 것만 같았거든. 배 위에서 지낸 그 시간들이 사실 유쾌하지만은 않았어. 뭔가에 집중하지 않을 때에 밀려오는 그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 내 비록 글재주는 부족하지만 틈틈이 써 놓은 일기에도 내 그러한 심정을 밝혀 놓았지.



나: 그러셨군요. 저 같은 경우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해요. 요즘은 숨 돌릴 틈도 없이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이라 저도 거기에 편승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지금은 잠깐 쉼표를 찍고 있는 중이거든요. 요즘은 인터넷이다 핸드폰이다 뭐다 해서 세상과 격리되는 것은 좀 어려워요. 그렇지만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갖는다는 것,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정작 나 자신과 만나는 일에는 소홀하잖아요. 글쎄요, 남들은 이러 나를 두고 뭐라고 말할까요? 이순신 장군께서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 하면 산다’라고 하신 것처럼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라는 말을 믿어볼까 해요. 시간이 많이 지나 지금 이 시간을 돌이켜 보면 <참 잘했어요! >라는 도장 쾅 찍어주고 싶을 것만 같거든요. 이 시간이 결코 고독하지만은 않은 것을 보면 제대로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뒤엉켜 있지만 기대감이 더 큰 것 같아요.



어느덧 우리는 바다를 양 옆에 끼고 달리고 있었다.



나: 바다 보니까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이순신 장군께서는 실제 전쟁을 치를 그 순간에 무엇이 가장 두려우셨어요?



이: 사실 바다 위에서 전쟁을 치를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바다야. 전쟁을 치를 때는 언제나 죽을 각오를 하기 때문에 죽는 것은 오히려 두렵지 않지. 그러나 그 죽음을 허무하게 만들 수도 있는 성난 바다야말로 우리에게 등을 돌릴까봐 그게 참 무서워. 이 한 몸뚱이 싸우다가 전사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성난 바다의 먹이가 되는 것은 왠지 벌 받는 심정이랄까. 아마 그래서 내가 점을 그렇게 많이 봤었나 봐.



그때 나지막한 굵은 목소리의 칭기즈칸이 이순신에게 말을 건넨다.



칭: 하긴, 장군은 바다 위에서 싸웠으니 그럴 만도 하군. 난 워낙 초원지대에서만 싸웠던 터라 그럴 위험은 없었네만. 난 죽음이 제일로 두려웠어. 내가 죽으면 내 부하들이 뿔뿔이 흩어져 내가 피땀 흘려 정복한 이 땅을 산산조각 낼까봐. 내가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 그나마 내게 충성을 다하는 부하들이 나를 따르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가진 것들을 평생 누리며 살고 싶어 영원히 죽지 않는 약을 구해볼 수 없을까 여러 종교 지도자들에게 물어도 봤었지. 근데 그런 것은 없더라고. 죽음이 두려워질수록 그에 비례해서 똑같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뭔 줄 아나? 그것은 바로 욕심이라네. 정복에 대한 욕심이 늘어날수록 죽기가 아주 싫어지지. 욕심이 나니 죽기 싫고, 죽기 싫으니 또 욕심이 나고. 아주 악순환이야.



이때 잠시 신호등에 걸린 틈을 타 나는 뒤돌아 칭기즈칸을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나: 저는 뭐가 두려운 줄 아세요? 내게 주어진 삶을 다 살지 않고 죽는 것. 어떻게 하면 내가 숨을 거두는 날, 아 난 참 잘 살았다 라고 웃을 수 있을까. 천당 가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를 지으신 목적 따라 잘 살다 왔다고 말하고 싶은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뭐 이런 것들이 가장 두려워요.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명성을 얻고,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삶을 찬양해주고, 후세가 나를 길이길이 기억해주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어차피 다 버리고 갈 것들이잖아요. 아마 중학교 때 였을 거에요. 하루는 학교 다녀 와서 침대에 잠시 앉아 있는데 문득 그런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거에요. 삶이라는 이 전쟁터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나의 삶을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저는 후회라는 감정이 너무 싫거든요.



잠시 차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나는 백 미러에 비친 아직까지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김구 선생님께 여쭈었다.



나: 김구 선생님, 선생님은 살면서 후회해 본 적이 있으세요?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말이에요?



김: 나 말일세. 음...... 있지 왜 없겠나. 보통 후회할 일들은 젊을 때 많이 저지르는 법이야. 지금 이렇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게도 참 잔인한 구석이 있었구나 싶은 일이었지. 한창 어수선할 때였어. 스치다 라는 일본인을 살인한 사건이었는데 아마 자네도 알고 있을 거야. 그런 살인 충동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난 그 날 그 일본인을 난도질 하여 죽인 후 손으로 그의 피를 움켜 마시고, 그 피를 얼굴에 바르고 피가 떨어지는 칼을 들고 방안에 들어가 호통을 쳤었어. 교육자로서 살아 온 내 삶에 참으로 후회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 물론, 살인 동기에 대한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말일세. 그렇게 피를 마시고 얼굴에 바르고 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요즘 말로 내가 조금 ‘오버’ 했던 게 아닐까 싶어. 아마도 맺힌 게 많아서 그랬을 테지.



이때 칭기즈칸이 김구 선생님을 툭툭 치며 말을 이어 받는다.



칭: 선생 양반, 뭐 그 정도 갖고 그러시오? 원래 사내로 태어난 무상의 즐거움은 적의 패거리를 때려부수고 그 뒤를 쫓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빼앗고, 그들과 친한 자들이 눈물로 얼굴을 적시는 광경을 보고, 그들의 말을 빼앗아 타고, 그들의 딸과 아내를 안아보는 일이올시다. 나는 그런 나의 잔인한 야만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였소. 물론, 수많은 부하를 거느린 최고의 정복자로서 그 위엄을 지키기 위해 내가 일부러 보여줘야 하는 잔인성의 정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소. 그런 사소한 감정의 문제에 치우쳤더라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었겠지. 하긴, 지금 생각해보니 잔인한 짓 참 많이 하긴 했구려. 그렇지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다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 아니겠소?



이순신 장군도 뭔가 할 말이 있을 거라 짐작하고 얼핏 눈치를 봤으나 그냥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고 계셔 내가 말을 이었다.



나: 방금 얘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물리적인 잔인함 이외에 마음으로도 잔인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거요. 저야 뭐 누구를 때리거나 해코지하거나 그런 일은 잘 없었지만 친구든 옛 애인이든 한 번 마음에서 멀어지면 아예 그 존재 자체를 잊고 살거든요. 어떻게 지내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설령 다시 연락이 온다고 해도 아주 차갑게 대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냥 지나간 일은 되돌리고 싶지 않은 탓도 있고, 한 번 떠나간 정은 다시 주워 담기 어렵더라고요. 근데 가끔씩 그 정도가 저 스스로도 놀랄 정도에요. 정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것처럼 ……머릿속에 지우개라도 들었나 봐요.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많이 서운한 일일 수도 있고, 제가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마 저 때문에 상처 받았던 사람 여럿 있을 거에요. 저 참 나쁘죠?



나의 어린이 같은 질문에 다들 한바탕 웃어 주었고, 나도 덩달아 웃느라 정신이 팔려 갑자기 튀어나온 앞차를 보지 못해 급 정지할 수 밖에 없었고 우리의 이야기에도 잠시 브레이크를 밟았다.



나: 다들 괜찮으세요? 요즘 대한민국 교통이 말이 아니에요. 한 세대 당 자동차가 두 세 대는 기본이고 길은 또 얼마나 막히는지 몰라요.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참 많이 발전했죠? 정약용 할아버지, 이렇게 변한 대한민국을 보시니 기분이 어떠세요?



정: 글쎄, 한 편으로는 뿌듯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는구나. 원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란다. 너무 빠르게 발전하는 것도 그 나름의 부작용을 초래하는 법이지. 한 나라는 한 사람과도 같아서 몸이 너무 빨리 커버리면 마음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법이야. 언제나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루어 조화롭게 자라야 한단다. 너도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듯싶어 이렇게 지금 쉼표를 찍고 있는 것 아니더냐? 진정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내가 기울였던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병이 위독한 사람은 병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병이 들었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병이 심한 것이 아니란다. 미친 사람은 미친 것을 그 스스로 알지 못하고, 미쳤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진짜 미친 것이 아니고 말이야. 그러니 무엇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 나라에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희망이 넘쳐날 것이니라.



기다렸다는 듯이 김구 선생님께서 마무리를 지어주신다.



김: 암, 그렇고 말고요. 전 세계에 남은 마지막 분단 국가라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세계화를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합니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수준 높은 문화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습니다. 내 삶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후손들이 꼭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조금 욕심을 낸다면 더 이상 따라잡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모범을 보이는 위치에 섰으면 합니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닌, 공원의 꽃을 심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런 문화 말입니다.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그토록 소중하게 지켜 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인데, 저는 아무런 노력 없이 그저 다 된 밥상 앞에 앉아 마냥 즐거워만 하고 있네요. 문화라는 것도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일 테니 저부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요. 내 안의 코리아니티가 바로 우리들의 철학이겠죠? 오늘따라 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뜬금없이 자랑스럽네요.



어느덧 시계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6월의 영웅들에게 나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인생의 교훈 하나씩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가끔은 삶의 사건들 앞에서 눈물을 흘려라.

정: 언제나 말만 앞서지 말고 실천을 통해 보여줘라.

김: 얼굴 좋고 몸 좋은 것 이외에 마음 좋은 사람이 되거라.

칭: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소중한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라.



이들과 작별 인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다짐해 본다.



“눈물 흘릴 줄 아는 마음 좋은 현명한 실천주의자” 가 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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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17 06:49:25 *.72.153.12
윤, 균형잡힌 안정감이 있어서 좋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 중에 하나지. 난 불안하고 위태해서 만년 '얼라'인데....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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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07.18 01:59:28 *.6.5.241
언니, 나도 뭐 어디 맨날 안정감 있나...
왔다리 갔다리 하며 인생의 시이소 타듯 그러는거지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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