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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5일 20시 36분 등록
저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질문을 하는 편이 못됩니다. 거의 질문을 잘 하질 않지요.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는 말이 없다, 차갑다, 또는 새침떼기 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너무 그러면 안되겠기에 어디에 사는가 또는 커피에 설탕과 크림을 넣느냐 정도의 질문은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친해져도 그다지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는 왜 묻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아마도 저는 그런 것들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고 그러다 보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면과, 또 하나는 본인이 말하지 않는 것을 굳이 끄집어내기보다는 상대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 해서입니다.

질문을 하게 되면 상대의 입을 통해 어떤 답을 듣게는 되겠지만 진정 그 사람을 알려면, 그의 삶을 겪어보지 않는 한 그 대답은 단순히 질문자의 의도에 맞추려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입니다. 그건 바꾸어 말해서 저 자신에게도 해당되며 저 역시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대답을 하려고 하는 편입니다만 가끔은 상대에게 저를 잘 보이기 위해 그럴 듯한 대답을 하게 되지 않는가 해서입니다.

그래서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상대의 무언의 행동을 통해서 짐작하고 추측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인터뷰 형식의 숙제는 사실 참 제 기질에 맞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닐 때 과에서 1박2일 세미나를 갔는데 조교가 저랑 나이가 비슷했지요. 술도 한잔 들어가면서 웃다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 아직 결혼 안 하셨어요?”..그러다 다시 어떻게 웃으면서 시간이 흘렀는데 다녀와서 아이들이 하는 말이 제가 참 용기 있는 아이라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 눈을 동그랗게 떴더니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었다니..” 하며 신기해 하더군요.
그 때 처음, 이 나라는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맞는 말이더군요.

왜 결혼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이것이 상당히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거지요, 상대가 과거에 큰 상처가 있을지도 모르고, 이성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할 만큼의 험한 기억이 있는지도 모르고, 또 본인이 결혼에 대해 남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치명적인 핸디가 있는 지도 모른다는 것. 남의 아픔을 이쪽의 단순한 호기심으로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들을 느꼈지요. 물론 아주 친해지면 예외입니다만..

저는 그 때부터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상대가 말해 줄 때까지.
“속을 털면 털어 놓을수록 친해진다는 라는 것은 환상이다.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공감이다.”라고 언젠가 읽었던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인 니나가 그렇게 말한 것에 동감합니다.
사실 그래서 저는 질문을 잘 못합니다. 자신에게는 신랄한 편이지만 남에게는 그렇게 못하는 성격입니다. 이번 숙제는 저에게는 콩나물 뿌리 다듬는 것보다 어려웠습니다. 다음과 같이 좋아하는 시를 올립니다.

초 대

당신이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당신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고,
당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꿈을 간직하고 있는가를 알고 싶다.

당신이 몇 살인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다만 당신이 사랑을 위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진정으로 살아 있기 위해
주위로부터 비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알고 싶다.

어떤 행성 주위를 당신의 달이 돌고 있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당신이 슬픔의 중심에 가 닿은 적이 있는가
삶으로부터 배반당한 경험이 있는가
그래서 잔뜩 움추려든 적이 있는가
또한 앞으로의 더 많은 고통 때문에 마음을 닫은 적이 있는가를
알고 싶다.

또 나는 당신이 나의 것이든 당신 자신의 것이든
기쁨과 함께 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미친 듯이 춤을 출 수 있고
그 환희로 당신의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까지 채울 수 있는가,
당신 자신이나 나에게 조심하라고, 현실적이 되라고, 인간의 품위를 잃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당신의 이야기가 진실인가 아닌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 수 있는가를 알고 싶다.
주위로부터 배신했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당신 자신의 영혼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알고 싶다.

나는 당신이 날마다
어떤 것이 예쁘지 않더라도 그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지
알고 싶다.
그것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당신이 어디에 살고 있고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졌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당신이 슬픔과 절망의 밤을 지샌 뒤에
지치고 뼛속까지 멍이 든 밤이 지난 뒤에
자리를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고, 어떻게 당신이 이곳까지 왔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당신이 나와 함께 불길의 한가운데 서 있어도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가 알고 싶다.

당신이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배웠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다른 모든 것은 떨어져 나가더라도
당신의 내면으로부터 무엇이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가를
난 알고 싶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자기 자신과 홀로 있을 수 있는가,
고독한 순간에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진정으로 좋아할 수 있는가를 알고 싶다.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과제: 그들에게 하는 인터뷰/ 백범 김구. 이순신. 칭기스칸 , 다산 정약용

1. 당신에게 반대 입장 편에 있었던 사람들을 찬성 쪽으로 돌아서게 한적이 있습니까? 있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말해주십시오.

칭기스칸: 저는 그냥 다 죽여버렸습니다. 살려둔 놈 몇은 단 하나의 이유이지요. 그들의 주군을 배신하지 않은 녀석들.
다산: 당시는 서슬이 퍼런 당쟁의 시대였는지라, 또 전 귀양처에서 여생을 보냈는지라 그런 뚜렷한 기억은 없사오나 나중에 저의 책을 읽고 찾아온 반대편 이는 있더이다.
백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제가 감옥에서 고문을 워낙 많이 받아서.
이은남: 저의 재능인 의사소통으로 때때로 해결을 했습니다.워낙 4가지가 없는 사람은 그냥 보냈지요.

2. 당신이 살아오면서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며 또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백범: 책에 다 써 있구먼. 스승 고능선이오.
다산: 하도 여럿이라 누구라 말하기 힘드오. 주로 책을 통해 이 사람 저 사람의 견해에 영향을 받았소.
칭기스칸 : 뭐니뭐니 역시 나의 아내 부르테이지요.
이은남: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입니다.

3. 당신 스스로의 인생을 점수로 매긴다면 몇 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산: 내가 귀양살이를 하느라 구실은 못했지만 그래도 글을 많이 써서 널리 알렸으니 한 80점은 받아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순신: 나는 죽음에 있어 물음표를 달고 죽었으니 점수는 알아서 매기시오. 박통은 나를 한 300점 주시긴 하더구먼.
백범: 다른 건 그래도 나름대로 했는데 주애보의 가슴을 아프게 했어. 그러니 한 60점.
칭기스칸: 난 할 꺼 다했어. 제국의 기초를 다듬었잖아. 나의 큰 아들 또한 내 자랑스러운 자식이지. 한 90점을 받아야 할 듯한데..
이은남: 저는 아직 다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저도 백범님처럼 지은 죄가 있는지라 60점으로 할래요.

4. 당신은 스스로 유머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칭기스칸: 하하 물론 가끔 하지요. 우리 몽골족끼리는 잘 웃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유머를 이해 못하지요. 차원이 달라. 달라도 너~무 달라.
순신: 있을지도 모르나 그것은 하도 저를 괴롭히는 인간들이 많아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저도 웃으면 한 웃음 합니다. 하하하
백범: 감옥에 있을 때는 왜놈들 가지고 좀 웃었지.
다산: 책 속에 다 써놨습니다. 읽어보시지요.
이은남: 저는 모르겠는데 남들이 있다고 그러더군요. 저는 진지한 사람입니다. 끙~

5. 어떤 술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순신: 막걸리/ 그거 밖에 없었다오.
다산: 복분자주/제가 그기로 귀양을 갔지라우
칭기스칸: 마유주/ 몽골에는 양들이 널렸지요
이은남: 저도 복분자주. 그리고 와인, 맥주…./21세기엔 종류가 너무 많아요. 술을 만든 사람에게 예의도 표할 겸 그들의 장인정신을 기리기 위해 주로 나온 안주에 그때 그 때 맞추는 편이지요.

6. 만약 당신이 21세기에 태어나 이은남과 만나셨다면 그녀와 연애했을까요?

다산: 물론이지요. 저의 이상형입니다.
백범: 하고 싶었겠지만 제가 얼굴에 자신이 없어서리..
순신: 모든 근심을 뒤로하고 정열적인 그녀와 전원주택에서 살았을 것 같습니다.
칭기스칸: 당근이오! 그녀를 닮은 아들을 낳고 싶소.
이은남: 호호호, 저는 이 사람은 이래서 저 사람을 저래서 맘에 듭니다. 이 상태를 좀 더 즐길까 합니다.

이 때 사회자 등장.
“여러분들, 다들 바쁘신데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자 이제 오랜만에 이렇게 모이셨는데 회포 한번 푸셔야지요. 오늘은 맛있는 음식과 향기 좋은 술을 잔뜩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간의 모든 근심을 푸시고 진하게 한 잔 하면서 오프 더 레코드로 진짜 이야기 한 번 하러 가시지요.”

그러자 모두들 제가 원했던 게 바로 이겁니다 하며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IP *.48.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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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7.07.15 15:36:45 *.233.200.118
산뜻하고 향긋한 향인님의 칼럼,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공감이다.' 정말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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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15 16:12:43 *.70.72.121
" 당신의 내면으로부터 무엇이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가를 난 알고 싶다."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의 <초대> 가운데서

나도 향인의 그것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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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7.15 20:39:45 *.48.41.28
희주님의 답글도 언제나 산뜻합니다. 한번 장문의 글을 써 주시면 좋을 듯 싶어요. 감사.

써니님. 그것은 한 10인분 꽃등심에 둘러싸인 씩스팩, 바로 복근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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